*제가 얼마전 노인대학에서 강의했던 내용입니다. 자서전을 쓰고자 하는 분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1강 - 자서전(自敍傳,Autobiography)의 정의와 특징
이 정 미
1) 자서전은 어떤 글인가? - 수필, 소설적 구성, 기록문학 → 문학성과 실용성
개인이 쓰는 자기 전기. 수필처럼 사실의 기록. 소설다운 구성, 흥미, 읽는 재미, 쓴 사람의 인생관, 교훈, 지식, 정보 등이 들어 있다.
자서전은 자기 생애에 관한 줄거리를 자기가 진술하면서 기록한 글이다. ‘자기가 쓴 자신의 기록 또는 傳記’이다. 쓴 사람 자신과 그의 일대기를 연대기 형식으로 쓴 글이다. 분량은 주로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다.
자서전은 시나 소설처럼 일정한 자격을 갖춘 문인이 쓰는 글과는 달리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의 한 종류이다. “인생이 짧기는 하지만 훌륭하고 영예롭게 살기에는 충분히 길다.”(키케로)라는 말대로 평범한 사람의 일생에도 나름대로 인생을 열심히 살아왔다는 흔적이 있는 한 그 안에는 남에게 읽혀질 가치가 있는 보물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일생도 한 편의 소설처럼 파란만장함과 무궁무진한 사건이 있기에 기록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서전도 독자에게 읽히는 일종의 글(文)이다.
글에는 실용적인 글과 문학적인 글의 구분이 편의상 있는데 이론상으로 말하면 글자로 쓴 이상 모두 문학에 속한다. 자서전을 문학의 5대 장르(시, 소설, 수필, 희곡, 평론)에 넣는다면 수필에 속한다. 수필은 다른 장르와는 달리 허구성을 필수로 하지 않고 개인 체험이라는 사실의 기록에서 시작한다. 수필에 속하는 글에는 설명문, 논술문, 기사문, 일기, 편지, 기행문, 기타 실용적 글 등등 다양하다. 허구성이 없는 수필도 분명 문학에 속한다는 것은 문학에는 사실 체험기록도 포함된다는 뜻이다.
자서전도 내용에 따라 얼마든지 문학성을 지향할 수 있다. 자서전은 소설의 형식을 취하며 소설처럼 서사성(이야기, 시간의 흐름, 그 안에 있는 의미)을 갖추고 있기에 소설적 구성을 통해서 소설적 감동과 재미를 안겨준다. 자서전이 소설과 다른 점은 사실과 허구성의 차이에 있다. 최근 일부 소설가들이 쓰는 자전적 소설은 자기 생애의 일부를 소설 형식으로 쓴 것이다. 그러다보니 반드시 일인칭으로 서술하는 자서전과는 달리 자전적 소설은 3인칭으로도 쓸 수 있다.
자서전은 실용성을 지닌 기록문학이다. 문학은 다르게 분류한다면 창조적 문학(創造的 文學)과 사회 현상이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기록문학(記錄文學)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기록문학은 시 소설 희곡 등의 창조적 문학과 대립되는 개념을 가진다. 수필은 성격에 따라 창조적 문학 또는 기록문학이 된다. 기록문학이란 근대 실증주의를 기반으로 실제적 경험적 사실성에 입각해 1회적이면서도 특수한 인간 자신의 체험 가운데 눈에 보이는 사건만을 작품의 소재로 한다.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려는 작가적 의도에서 창작된 문학의 작품군(作品群)을 가리킨다. 기록문학에 속하는 글은 르뽀, 수기, 전기, 자서전, 일기, 서간문, 여행기, 탐방기, 回顧錄 등이 있다. 서간문은 개인의 정서를 담았으면 창조적 문학인 수필에 속한다. 우리 문학사에서 자서전을 포함한 이런 기록문학이 성행한 이유는 1980년대 이후 급변한 사회 현상으로 인해 민중들의 이야기가 문학작품의 본질인 허구성에 비해 생생하고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이었다.
자서전은 개인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쓴 글이지만 독자로서는 얼마든지 문학 작품을 읽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문학은 인문학의 한 분야이면서 인간의 지성(知性), 감정(感情), 의지(意志)를 포함하는 언어예술이다. 문학은 우리의 다양한 삶을 반영하기에 일상을 벗어난 재미와 함께 정신적 성장을 도모하며 인생 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주기도 한다. 역사상 위대한 문학 작품은 자서전에서 나왔다. 자서전 중에서 고전 철학서로 자리잡은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고백록』(Confession), 존 번연(1628~1688)의『충만한 은총』(Grace Abounding to thechief of sinners), 워즈워드의 장시 『전주곡』, 괴테의 『시와 진실』, 오스카 와일드의 『옥중기』, 말콤 엑스의 『자서전』등등이 있다.
자서전과 유사한 글에는 전기(傳記,biography)가 있다. 전기는 유명한 인물의 일생에 걸친 사적(史蹟)을 후세 사람이 기록한 글이고, 그 반면 자서전은 유명한 인물이나 그렇지 않은 인물 ‘자신이 쓴 자신의 전기’이다. 전기와 자서전은 개인의 역사라는 점에선 동일하지만 차이가 있다. 전기는 주로 역사에 오르기 위해 남다른 업적과 그에 따른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를 주인공으로 한다. 전기에는 ‘비평적 전기’(評傳)와 ‘소설적 전기’(正史 소설, 실록체 소설)가 있다.
자서전은 회고록(회상기, memoir), 전기, 논픽션, 수기, 르뽀, 日記, 日誌 등과는 구별해야 한다. 회고록은 생애 중에서 특히 중요한 사회활동을 다룬 사람이 자서전처럼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서 쓰는 이야기이다. 작가의 자기 개발보다는 직접 마주치고 겪었던 인물,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한 글이다. 일기, 편지는 자서전 또는 회고록 쓰기에서 자료가 될 수 있다. 논픽션과 수기는 자신의 특정한 시공간에서 겪었던 체험담이다. 자서전처럼 자신이 주인공인데 분량이 자서전처럼 길지 않다. 르뽀는 자신이 관찰한 특정 사물이나 사회 현상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글이다.
2) 자서전의 특징
- 개별성과 보편성의 조화, 자기 정체성의 확립, 과거와의 화해, 마음 치료
자서전에서 기억하고 서술하는 주체와 독자에게 들려주는 사람은 작가 자신이다. 내용의 주인공은 작가 자신이다. 전기나 회고록의 주인공처럼 유명한 인물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면 다 쓸 수 있다.
자서전을 쓰는 데에 기본 요소는 작가의 관점, 주인공(작가)의 성격적 특성,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나 갈등 양상, 줄거리, 그 안에 있는 사건과 행위 등이 포함된다. 자서전 내용은 방대하다. ‘일기부터 자연에 대한 술회, 일화로 가득 찬 추억, 도덕적 증언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범위의 글을 아우르고 있다.’* 이처럼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정리하는 한에서 실용적인 글이다.
인간은 누구나 남의 이야기를 듣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문학이 나온 것이다. 평범한 인생의 평범한 체험담도 남에게 뜻 깊은 사색을 안겨주며 훌륭한 주제를 갖춘 읽을거리가 될 수 있다. 아무리 각자의 이야기가 특별하다고 해도 그 안에서 누구나 머리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보편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에는 그 개인이 속했던 사회 모습, 시대 풍조나 관습, 문화적 현상 등을 읽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자서전은 귀중한 역사적, 사료적 자료가 될 수 있다. 자서전 내용은 개인 체험기로 채워진 점에서 개별성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정서와 사상을 정리하는 것이며 자신과의 대화이다. 그래서 마음 치료하는 기능이 있다. 세상을 향한 지식을 품고 자신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모두 글에 속한다. 글은 독자에게 읽힘으로써 세상에 발표되기에 소통이며 궁극적으로는 작가와 독자의 삶을 풍요하게 해준다. 객관성을 띤 현실세계를 주관적인 저자와 만나면서 글은 쓰인다.
자서전은 흔히 노년기에 들어서 쓴다. 그 시기는 생애를 정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지나온 삶과 사물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기억을 되새기며 과거를 더욱 창의적으로 새롭게 바라보고 평가하는 태도를 통해서 남은 인생의 의미를 더욱 발달시킬 수 있으며 현재 생활에 잘 적응을 할 수 있다.
사람은 현재를 살아간다 해도 과거가 준 결과에 영향을 받으며 구속당하기 마련이다. 그렇다 해도 한번쯤 과거 속에다 자신을 던져볼 수 있다. 과거 속에서 자신의 훌륭했던 점을 돌이키면 현재의 문제 해결에 적용할 수 있다. 자서전 쓰기는 결국 과거와 미래를 포함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행하는 작업이다. 모든 문학작품은 결국 과거 체험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물론 누구에게든지 추억에 빠진다는 것은 늘 즐거움만 가져다주지 못한다. 과거에 대한 추억을 통해서 반성과 절망에 빠지게 하는 반면 즐겁고 보람되었던 체험은 현재에 그리움, 희망,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자서전 쓰기는 과거 기억을 수단으로 이루어진다 해도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자기 정체감을 형성하게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슬픔, 분노, 그리움, 행복 등을 느끼게 한다.
자서전 쓰기는 가장 기초적이면서 일반적인 글쓰기이고, 글에 대한 자신의 정직성, 진실성이 핵심이다. 자신을 올바로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 자신의 장단점, 잘했던 일과 실패했던 일, 보람된 일과 후회스런 일 등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마음이 있어야 글의 진실성이 살아난다.
"자서전 쓰기를 통해서 과거를 추억한다 해도 결국 과거와 화해하고 그 때 품었던 모든 후회, 분노, 통한 등을 해소할 수 있다."
*빌 루어바흐,크리스틴 케클러, 홍선영 옮김 『내 삶의 글쓰기』 한스미디어, 2011년, 46쪽
“당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삶의 매뉴얼을 지니고 있기에 사명감을 지니고 기록할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기적이고 축복이다. 자신이 살면서 누렸던 기적적인 순간과 축복받은 순간을 이제 말해야 한다. 오로지 나만이 내 삶을 정확하고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 그 사람의 삶은 오로지 그 사람만의 것이며 그것대로 가치가 있다.
담담한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만의 이야기를 조용하지만 힘 있게 적어 내려가야 한다.”
-- 현혜수, 『나를 기록하라』매일경제신문사, 2007, 17쪽 --
첫댓글 고맙습니다. 잘 강독 했네요.
항상 착각의 시론으로 정론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일들이 될까 고뇌하는 수고가 역력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