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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8:26-39 하나님의 일 2007. 5. 13
26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27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이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28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29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이 사람을 붙잡으므로 저가 쇠사슬과 고랑에 매이어 지키웠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30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가로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31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32 마침 거기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하신대 33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34 치던 자들이 그 된 것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촌에 고하니 35 사람들이 그 된 것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아래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36 귀신 들렸던 자의 어떻게 구원 받은 것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이르매 37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실쌔 38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저를 보내시며 가라사대 39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하시니 저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지난주에 본 말씀에서는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매 곧 잔잔하게 되게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홍해바다를 하나님께서 꾸짖으심으로 자기 언약의 백성들을 이끌어 내신 그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지금 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이 그 일을 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배에 탔던 제자들이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물결을 명하니 순종 하는고 한 것입니다. 아직 제자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모릅니다.
그런 의구심을 가진 채로 갈릴리 호수를 건너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갔습니다. 이곳은 이방인의 지역으로 봅니다. 육지에 내리니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이 사람의 형편이 어떠한가 하면 오래 동안 옷을 입지 않고 집에도 거하지 않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고 합니다. 29절의 괄호부분을 보시면 귀신이 이 사람을 가끔 붙잡으면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둔 것도 끊어버리고 광야로 달려 나갑니다.
마가복음의 평행구절을 보면 좀 더 상세하게 나와 있는데 이 사람이 자기 몸을 돌로 치는 자학행위까지 합니다. 이렇게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서 큰 소리로 외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귀신들린 자가 말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여 나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귀신들린 자에게 물었습니까? 귀신에게 물었습니까? 지금 귀신 들린 사람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러니 귀신에게 물은 것으로 봅니다. 그 이름을 물으심으로 그 정체를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군대라고 합니다. 많은 귀신이 들렸기에 군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그러자 이 군대귀신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무저갱으로 들어가라고 하지 말라고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무저갱은 바닥이 없는 깊은 구덩이인데 요한계시록에 보면 사단과 그 졸개들이 갇혀있는 곳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귀신들이 자기들의 운명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요한 일서 3:8절에서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오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마귀들이 예수님을 보고서 자기들의 멸망의 때가 된 것임을 알고 벌벌 떠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귀신이 간청하기를 무저갱으로 들어가라고 하지 마시고 돼지 떼들에게 들어가게 명하여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귀신들이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빠져 몰사하는 것입니다. 그 수가 마가복음에 보면 약 2천 마리가 됩니다. 굉장한 돼지 떼가 죽은 것입니다. 돼지를 치던 자들이 그 된 것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된 것을 보려고 왔습니다.
귀신이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님의 발아래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합니다. 귀신 들렸던 자가 어떻게 구원받게 되었는지를 보게 된 사람들과 그 근방의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면서 예수님께 떠나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고자 하시니 그 귀신 나간 자가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 일일이 고하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예수님이 자기에게 어떻게 큰일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한 것입니다.
이 결론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큰일을 증거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귀신이 나간 사람은 예수님의 일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의 제목을 무엇으로 정할까 한 주간을 생각해 보다가 막상 설교원고를 준비하는 순간에 이 본문이 보여서 하나님의 일이라고 제목을 정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곧 누구의 일입니까? 예수님의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시고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면 하나님의 일을 하자고 합니다. 그것도 많이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도 복을 받자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보면 인간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일을 하자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가 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한 것이 오히려 하나님을 거역한 일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최종적인 증거가 십자가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한다는 사람들이 참 하나님을 죽였다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이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어놓으신 일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요한복음 6:29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후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올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오는 사람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바라보고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 무리들을 보시고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영생하도록 있을 양식이란 하나님의 일이라고 보았기에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합니까? 하면서 질문하였을 때에 예수님의 대답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즉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믿음은 인간의 능력으로 이루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믿음을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정말 할 일일 없군요! 그렇지요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기에 우리는 속수무책입니다. 왜 그런지 오늘 본문을 다시 봅니다. 이 귀신들린 자를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한 방법이란 쇠사슬로 묶어 격리시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자기들의 삶에 피해를 주는 요소들을 없애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쇠사슬도 그 세력을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문열의 소설 ‘아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솔로몬의 아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내용인데 희미한 옛 사람의 그림자라고 부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과 연관이 될 것 같아서 좀 길게 인용을 합니다. “이제는 부르는 쪽도 불리는 쪽도 꺼려하는 환유들이 있다. 앉은뱅이 절름발이 곰배팔이 귀머거리 벙어리 청맹과니 용천뱅이 곱사들이 언청이 외팔이 땅딸이 난쟁이 키다리같이 신체적인 흠결이나 질병의 후유증으로 그 사람 전체를 이름하는 말들이 그러하고, 미치광이 떼쟁이 비렁뱅이 바람둥이 덜렁뱅이 허풍선이 억보 떼쟁이 악바리 맹추 숙맥이 오입쟁이같이 정신적인 장애 혹은 불균형을 들어 비유의 대상을 갈음하는 말들이 그러하다.”
방금 인용한 이런 사람들을 요즈음 만나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이런 사람들이 마을에 함께 어울려 살았습니다. 그들과 우리가 별난 존재라고 여기지 않고 더더구나 그들이 격리되거나 소제되어야 한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들은 사라지지 시작하였습니다. 정신병원과 각종 수용소 재활원 보호소 같은 시설에 그들을 가두었습니다. 생산능력이 없거나 사회 미관과 편의만 해치는 자들을 먼저 골라 데려갔다는 것입니다.
이 소설을 몇 년 전에 보았는데 최근에는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서구에서 광기를 둘러싸고 실제로 이루어진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광기를 어떻게 처리하였는지를 보면 추방, 감금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광기의 규정을 보면 엉터리 같은 규정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광기의 역사를 인간의 이성과 권력이 결탁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이성이 이루어 놓은 일이 인간을 감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보편적이고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인간들이 행한 일이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경제적인 능력이 없거나 공동의 삶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격리시키고 추방시켜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습니까? 마을에 장애인 시설이 들어오면 마을전체가 들고 일어납니다. 반대서명 받기 위하여 열심히 ?아 다니는 사람 중에 교회 다니는 사람은 없윱歐?
오늘날 한국의 사교육 열풍을 보면서 다들 미쳤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그 미친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여 안달이 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저 자신도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어버이 날이라고 카드를 만들어 써 왔는데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잘 하겠다고 하고서는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6:26절을 기록하였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숙제보다 책 읽은 것을 좋아하고 학습지 보다 영화보기를 더 좋아하기에 자기 할 것을 하고 해라고 하니 이런 말씀을 적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제가 평소에 늘 하는 말을 하기에 그런가 하였더니 ‘레나 마리아’라는 책을 보고서 적었다는 것입니다. 양 팔이 없이 태어난 장애인으로 복음성가 가수로 활동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어릴 때 외롭고 힘들어 하면 그의 어머니가 이 말씀을 읽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기 집안에 장애인이 있으면 어떻게 숨기려하고 버리려고 합니다. 부끄러운 일이 있으면 숨깁니다. 교회 나와서도 서로 서로 가면을 쓰고서 가면무도회를 하는 것입니다. 나는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해! 성공한 사람이 되어야 해! 주류에 들이 않으면 안 돼!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는데! 이렇게 자기 자신과 자녀들에게 수많은 쇠사슬로 묶어두고 있습니다. 그 쇠사슬로 묶어두지만 그것이 해결책이 안 됩니다. 폭발하게 되면 그 쇠사슬을 다 끊어버리는 폭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승희가 남의 자식이 아니라 우리의 자식이며 우리의 모습입니다. 한화그룹 회장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다만 그럴 능력과 힘이 없어서 그렇게 못할 뿐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힘이 없고 못생기고 공부 못하고 가난하면 사람 취급을 못 받는 세상입니다. 그런 사람을 격리시키는 세상입니다.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책에서도 돈 벌어올 때는 귀하게 여기던 가족들이 몸이 아프면서 점점 곤충으로 변하자 결국 감금시키고 돌보지 않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를 찾아 오셨습니까? 동네사람들이 사는 일에 방해된다고 쇠사슬로 묶고 격리시켜버린 그 사람을 찾아가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이제 그 사람은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님과 함께 거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미쳤다고 쇠사슬로 묶어 격리시킨 사람들 자신들은 미치지 않았다고 귀신에 사로잡히지 않았다고 정상이라고 여긴 그들은 예수님을 쫓아내었습니다. 제발 떠나달라고 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두렵다는 것입니다. 무엇에 대한 두려움입니까? 돼지 떼가 물에 빠져 죽었으니 경제적인 손실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두려움은 빛이 어두움에 비쳤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진리가 임하니 두려운 것입니다. 자신이 평소에 정상적이라고 여기면서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정생활 반듯하게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 아닌 줄 알고 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아닌 줄 알고 있습니다. 마귀가 그렇게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에베소서 2:1-3절을 봅니다.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 본질상 진노의 자녀, 즉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 어떤 모습입니까?
우리가 말하는 미치광이가 아닙니다. 장애인이나 사회적인 소수자들이 아닙니다. 아주 정상적으로 이 세상 풍속을 좇아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다 해당되지 않습니까?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는데 우리는 다 이 세대를 본받고 살지 않습니까? 세상 풍속을 좇아 살면서도 자기 마음의 원하는 대로 살면서도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지도 모르고 정상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참으로 귀신들린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이런 자들에게 기쁨의 소식이 왔습니다. “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섦肉?나타내려 하심이니라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10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큰 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세상의 풍속을 좇아 브레이크 고장 난 자동차처럼 내리막길을 달려가던 우리를 건져내신 분이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죽이시고 함께 살리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혀 주셨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와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선물이기에 우리 자신을 자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일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크신 일이 바로 예수님의 일입니다. 귀신들린 자가 증거 한 내용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행하신 일을 증거 한 것입니다. 전에는 마귀가 시키는 대로 끌려갔던 사람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를 예수님이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세상을 향하여 세상의 풍속을 좇아 달려가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자신도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닌데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니 나도 어쩔 수 없다고 달리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보고서 미쳤다고 하면서도 자기도 그 미친 사람의 대열의 합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기며 그들보다 더 열심히 달려갑니다. 심지어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그길로 달려가는 거라사의 광인의 행렬입니다.
그런 곳에서 불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서 예수님이 약속하신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 그래서 소망으로 약속된 그 세계를 믿는다면 귀신들린 거라사의 광인이 고침 받은 것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하나님의 일 곧 예수님의 일입니다. 이 일이 증거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