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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이 매체미학과 예술의 정치화>
2. 아우라와 그 운명 & 기술과 예술: 매체란 무엇인가?
* 일시: 2024년 8월 28일(수) 오후8시.
* 형식: zoom 온라인
* 강사: 정혁현
* 참석자: 박연옥, 서선미, 서은혜, 정단희, 정명수, 이샛별, 유혜숙, 조세랑, 김안선, 박영균 (10명)
* 주 교재: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2017), 도서출판b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2007), 길
기술복제가 손상시키는 ‘지금 여기’라는 진본성이야말로 예술작품의 가장 민감한 핵심이다. _ 어떤 사물의 진본성이란 그 사물에 있어 근원으로부터 전해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총괄하는 개념으로, 여기에는 이 사물이 물질적으로 존속해 있다는 점에서부터 그 역사적 증언력까지 모두 포괄된다. _ 역사적 증언력은 물질적으로 존속해 있다는 점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물질적 존속이 인간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어버린 복제에 있어서는 이 사물의 역사적 증언력 또한 흔들리게 된다…그렇게 해서 정작 흔들이는 것은 사물의 권위다. 이 과정에서 탈락되는 것을 아우라라는 개념으로 총괄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즉 예술작품이 기술적으로 복제 가능하게 된 시대에 힘을 잃어가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이다. 이 과정은 징후적이다. |
-> 진본성은 사물이 생겨나면서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 ex)<모나리자>는 처음 그려진 순간부터 물질적 실체로서 우리 앞에 존재한다. 또한 원본에 복원 등을 통해 물질적 시간의 흐름과 변화 과정을 간직하지 못하도록 시간을 멈추는 기술 또한 가하고 있다. <모나리자>는 처음 의뢰한 사람, 이후 소유권의 이전, 당대의 어떤 사건 등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진본 작품 <모나리자>는 대상이 가진 모든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 진본성이야말로 아우라다. 오늘날 고대 동굴 벽화나 왕릉 등은 보존을 위해 현장을 봉해 놓고 복제품을 인근 박물관에 전시한다. 이처럼 진품이 가진 역사적 증언력 때문에 복제를 하는 것인데 복제를 하면서 진품의 대체품이란 의식이 생기므로 진품의 역사적 권위가 점점 더 분배된다. 이 과정에서 탈락하는 것이 아우라다. 이 과정은 징후적이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
이젠하임 제단화는 프레스코 방식으로 벽이 아니라 패널에 그려짐. 장소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이동할 수 있다. 제의 가치에 더해 전시 가치가 포함됨. 예를 들어 과거에는 성전이 있는 곳은 세계의 중심지 단 한 곳이었고 그곳에 어떤 작품을 갖다 놓으면 신에게 경배하는 도구로 기능하게 된다. 특별한 기간에만 전시해 그 축일에 감동을 강화했을 것. 이동성이 확보된 패널 제단화들은 신적 아우라를 가진 물건이다. 제의적 예술 작품은 대중에게 감춰져 있고 전시적 예술작품은 대중에게 드러난다.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 예술작품>을 마르크스 연구를 언급하며 시작한다. 그는 이 연구가 예언적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사회가 변화되어 나가는 과정을 현상만 기술하는 게 아니라 현상에서부터 어떤 방향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이런 의미에서 예언적이라고 한 것. 예술작품의 아우라가 붕괴되는 과정은 세계가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징후다. 이 세계의 변화는 하부구조의 변화에 의해 상부구조가 변화하는 징후다. 기술복제시대의 기술 변화(하부구조)가 예술(상부구조)이란 개념이나 형식 등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징후적이다.
* 대중mas의 탄생
영화는 복제를 복제하는 새로운 차원의 매체다. 뤼미에르 형제의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이 그랑카페에서 상영된 것을 영화의 원년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사람들 앞에서 동영상을 보여준 것뿐 아니라 여기에서 대중mas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대중이 출현한 시기는 대량 매체가 생산되던 시기다.
* 활판인쇄술:
당시 라틴어 성경을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 독일어란 표준어가 구성되는 역사적 계기가 됨. 성서 활판 인쇄물은 대중에게 보급, 사치품이었던 책값이 하락했고 성서 판매가 대규모 산업이 됨. (기계, 스크린, 영사기를 통해 대중들에게 매체가 전달하는 형식을 받아들이도록 하게 만드는 조건들 자체가 또 매체다) 텍스트가 사람들에게 보급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공통적인 감성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기독교인은 교회나 성서를 바탕으로 한 일정한 공통 경험을 갖고 있으므로 기독교인이라는 집단의 형상과 특징이 생긴다. 오늘날 대중이 이렇게 나타난다.
* 영화에서 주변을 감싼 어둠이 영화의 중요한 매체다. 이 어둠은 우리 삶이 막간극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하게 해준다. 현실과 다른 세계임에도 오감을 자극하며 우리 현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이렇게 영화는 정치적 선전도구로 이용하기 좋다. 현실의 어떤 측면은 강조하고 어떤 면은 삭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매체를 공부하는 이유:
매체의 미학적 능력의 핵심은 현실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들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 과도하게 관심 가졌던 것들의 비중을 또한 떨어뜨릴 수도 있다. 인간은 창작하면서 중요한 (통제) 권력을 누리게 된다. 예술 작품을 통해 어떤 것은 보기에 좋고 어떤 것은 소음이고 어떤 판단은 중요하고 어떤 것은 민감하게 느끼게 하고 어떤 것은 둔하게 만든다.
* 벤야민이 예를 든 초기 영화들
벤야민은 최초의 할리우드 장편 영화인 <국가의 탄생>과 <불관용>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봤다면 영화의 징후적 예로 두 영화를 언급했을 것. <불관용>은 역사영화이기도 하지만 압도적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당시 미국은 관용을 강조하는 국가 이데올로기를 대중화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대중은 이에 호응했던 시기. 벤야민은 이 시대의 대형 역사영화가 전통의 전면적 청산의 징후를 보여준다고 했다. 복제의 복제기술을 통해 전통에 깃든 아우라를 붕괴시켜 전통을 전면적으로 청산하는 형태. 이것은 무슨 뜻일까? 전통은 이미 해체되었는데? 오늘 기술복제시대에 상상되는 과거라는 의미에서 오히려 대형 역사영화가 과거를 재현하면 할수록 원본성, 진본성이란 개념은 완전히 붕괴된다는 것.
역사의 광대한 시공간 내에서는 인간 집합체들의 존재 양식이 총체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인간의 지각 양식도 변한다. 인간의 지각을 발생시키는 매체는 자연적 조건들에 의해 제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조건들에 의해서도 제약되어 있다. …지각 매체의 변화를 목도하고 있는 우리는 이 변화를 아우라의 붕괴로서 파악할 수 있는 이상, 이 붕괴의 사회적 조건을 밝혀낼 수 있다. |
-> 농촌에서 자연의 시간에 따라 사는 사람과 도시에서 출퇴근을 반복하며 버티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세계는 다르다. 다른 감수성을 갖는다는 것. 농민과 노동자의 삶의 조건은 근본적으로 기술의 변화에 의한 생산력의 발전에 의해 변하며 이 발전에 따른 적절한 인간관계를 요구받는다. 인간의 기술발전은 지각 매체까지 변화시킨다. 인간의 지각을 발생시키는 매체는 자연적 조건뿐 아니라 역사적 조건들에 의해서도 제약된다.
복제 기술은 복제된 것을 전통의 영역으로부터 분리시켜 버린다. 전승되어 온 작품은 이 두 과정을 통해 그 기반이 극심하게 뒤흔들린다. 이 두 과정, 즉 복제품의 대량 출현과 그 현실화는 오늘날 대중 운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점을 가장 강력하게 대변하는 것이 영화이다. 영화의 사회적 의의는 그 가장 긍정적인 모습에서조차, 아니 바로 그 긍정적인 모습 속에서 영화가 지닌 다음과 같은 파괴적인 측면, 카타르시적인 측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즉 문화유산에서의 전통적 가치를 청산한다는 측면이 그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스케일이 큰 역사영화들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며…. |
-> 진품성은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 복제기술은 그것을 분리하므로 아우라가 붕괴된다. 인류가 처한 현재의 위기는 격변의 위기다. 벤야민이1935년에 이 글을 쓸 때 독일의 나치 정권이 집권하고 있었고 그는 파리에 망명 중인 상황. 벤야민은 반민중적 반민주적 권력에 의해 세계 역사가 장악되어가는 것을 느꼈고 그럼에도 그것을 저지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이 글은 권력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기 위한 글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벤야민이 아우라의 붕괴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복제품의 대량 출현에서 대중들이 소유하거나 감상하는 상황은 대중운동과 밀접하게 관련 있다. 이 대중들이 벤야민에겐 파시스트 나치 정권에 저항할 힘의 저장소였다. 벤야민의 ‘예술의 정치화’란 대중들이 민주적이고 독자적 주체로서 자유로운 공동체를 형성할 힘과 관련해서 예술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라는 개념이다.
우리는 예술의 정치화라면 흔히 80년대 민중미술을 떠올릴 것이다. 민중미술은 어떤 면에서 예술의 정치화의 한 측면이며 예술이 저항적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활용되는 앙가주망이다 (engagement : 샤르트르가 참여문학을 지칭한 말. 원래의 말뜻은 담보, 도박. 예술지상주의 문학에 대하여 사회·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내세운 문학. 작가는 상황을 폭로함으로써 세계의 변혁을 시도하고, 독자는 폭로된 대상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하며, 따라서 작가나 독자가 필연적으로 사회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 저항 미술의 정점이 민중미술이지만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민중미술은 형식에서 고답적이다. 복고적 형식으로 민중을 저항으로 이끌었다. 형식적이고 미학적인 면에서 자가당착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정치적 목적을 예술에 강요했을 때 이런 현상은 늘 나타난다. 벤야민이 우려했던 나치가 기획한 정치의 심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벤야민은 나치즘과 같은 신화에 대중을 동원하는 배타적 권력에 저항하는 능력이 대중운동(특히 영화)에 있다고 본 것.
* 왜 영화가 벤야민에게 희망의 징조가 되었나?
카타르시스적인 파괴적 측면 때문. 카타르시스는 정신의 정화가 아니라 전통과 신화적 세계를 쓸어버린다는 뜻. 대중이 자기 이익에 모순되는 방식으로 쉽게 동원되는 것은 신화적 세계관 안에 있는 것. 기술복제에는 아우라의 근거인 전통을 쓸어 낼 힘이 있다. 이제 대중들은 전통의 힘에서 해방된다. 벤야민은 비주체적이고 수동적인 대중들이 권력의 도구로 이용, 착취되던 방식의 세계 감각에서 벗어나 자기의 주체적 이익에 따라 세계를 판단하고 평화롭게 관계 맺고 민주적으로 연대할 방법으로 이끌 능력이 영화에 있다고 보았다.
기술복제에 있어 벤야민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1960년 이후에 과거에 전통적 좌파(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입각한 공산당)를 밀어버리고 신좌파가 구성된다. 구좌파가 역사적 필연성이란 교리를 매개로 대중을 동원하려는 억압적 권력이란 인식 속에서 신좌파가 탄생한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부각이란 측면 즉, 개인 자유의 영역 확장을 해방이란 프로그램으로 연결시키고 싶어 하는 신좌파들에게 벤야민이 각광받음.
* 한국에서는
광주민주항쟁과 더불어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입각해 학생 운동이 조직되고 노동운동과 연계해 일정한 정치적 성과를 이룸->1987년 타협->올림픽 거치면서 본격적 소비사회로 접어듬-> 공산권 붕괴되고 1990초반, 한국 좌파 운동이 대거 전향하거나 타협적 입장을 갖게 되고 이때 급진적 문화운동과 담론들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1990년 이후 문화운동들, 포스트모더니즘, 씨네21등 출판물…) 과거 구좌파에게 일종의 억압을 느끼던 것에서 해방되어 자본주의의 풍요를 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저항성을 유지하고 싶어한 사람들에게 벤야민이 중요해졌다. 그가 자본주의 예술을 만드는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보았기 때문. 벤야민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되었다. 하지만 벤야민이 타협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복음만은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될 것이다.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는 저항에 대해 생각할 수 없는 시대에 벤야민은 더욱 중요하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자본주의적 기술발전에 대해 긍정적인 벤야민이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서 빛을 찾기 위해 부단히 써 내려간 글이라고 생각된다.
아우라의 붕괴는 현대 생활에서 대중의 의미가 점차 증대하고 있는 점과 관련이 있다. 1. 현대의 대중은 대상들을 공간적으로 또는 인간적 관심을 끄는 쪽으로 더 가까이 접근시키는 것을 매우 열렬한 관심사로 삼는 동시에 2. 주어져 있는 모든 것의 복제를 손에 넣음으로써 주어진 것의 유일무이성(일회성)을 극복하려고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대상에서 그 외피를 벗겨내는 것, 아우라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은 세계 내에서의 평등성의 감각을 크게 진척시키고 있는 현대 지각의 특징으로서. 이 지각은 복제라는 수단을 통해 일회적인 것으로부터도 평등성을 획득해낸다.(30~31) |
* 아우라의 붕괴가 왜 벤야민에게 중요했나?
대중에게 평등성의 감각을 크게 진척시키고 있기 때문. 과거에는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감상 가능하고 소유할 수 있었던 예술작품을 오늘날 복제에 의해 광범위한 사람들이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의 평등성. 이것은 벤야민에게 진보적인 징후였다. 전통사회는 신분사회이기에. 기계복제 기술의 아우라의 파괴, 전통의 일소가 그에게 중요했던 것. 기술복제시대 예술작품이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우애’의 가치를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확산시킬 수 있다고 봄.
당시 프랑크프르트 학파에서(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벤야민과 긴밀히 연결되던 사람들은 미국에 피신한 상태였고 이곳에서 미국 대중문화를 경험. 1.2차 대전으로 유럽은 자본주의 발전이 요동쳤던 것과 다르게 미국은 대규모 전쟁의 군수기지 역할을 하면서 유일 강대국으로 부상. 1930년대 세계경제공항이 오기 전(2차대전 직전) 미국에서는 대중문화가 꽃 핌. 이 기술발전의 토대는 표준화된 제품을 공장에서 대량생산해 싼값에 수많은 사람에게 공급한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다. (포드 시스템 붕괴 후 다품종 소량생산->기호가 분화된 대중들에게 걸맞는 제품을 다양하게 생산하는 새로운 체제) 포드가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 라디오를 통해 구매 욕구 부추김. 자동차와 함께 교외에서 생활하는 미국적 삶의 양식을 이상적 삶으로 표지하는 표현물들을 디자인. 포드 노동자들은 비싼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는 임금을 받음(당시 평균 임금의 2.5배). 이들이 본격적인 자본주의적 소비주의의 삶의 모범으로, 미국의 표준으로 재현되기 시작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의 진정한 대중문화가 발생하기 시작. 프랑크푸르트학파는 그것을 보면서 비관적 진단을 내림. 이 세계가 노동자들을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소비하는 대상으로 전락시켰고 노동자들은 개인화되어 세계와 공동체에 대한 사고에서 자기와 주변인에 국한된 좁은 세계에서 살게 되었다 비판. 하지만 벤야민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주체성과 주체성들이 상호 교류하는 방식을 어떻게 구성할 것이며 그렇게 나타난 인간과 공동체의 세계상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세계가 우리에게 바람직하게 열릴까? 최근의 글들을 읽어보면 긍정적 이야기가 많다. 개인의 수준도 고양될뿐더러 집단지성의 결정 양식이 인류가 그동안 구성 못한 새롭고 바람직한 공동체적 사회 양상을 구성할 것이라고 낙관. 하지만 기술발전이 가져올 세계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우릴 실망에 빠트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Aura아우라: 1. 영기 靈氣, 신비로운 기운, 아우라. 2. (의학) 전조 前兆, 전구 前驅, 증상, 증후 (3판): 자연 대상의 아우라를 우리는 가까이 있더라도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것의 일회적인 나타남으로 규정한다. (2판): 아우라란 무엇인가. 그것은 공간과 시간으로 짜인 특이한 직물로서,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인 현상이다. ‘어느 여름날 오후, 고요히 쉬면서 지평에 가로놓인 산맥이나, 휴식하는 자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나뭇가지를 가만히 눈으로 좇는 것, 그것은 이 산맥의 아우라, 이 나뭇가지의 아우라를 호흡하는 것이다.’ |
-> 3판과 2 판은 아우라에 대한 정의가 조금 다르다. 아우라는 어떤 공간과 시간에서 나타남. 아우라는 ‘지금 여기’가 공간과 시간의 양상이며 그것으로 짜인 특이한 직물과 같은데 가까이 있는 것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 일회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아우라는 진본성과, 진본성은 제의 의식과 연결시켰기에 고대적 개념으로 말하면 이것은 ‘신성’이다. 예술 작품에서 다양한 미적 감각을 느끼는데 그 중 하나가 ‘숭고미’다. 숭고미는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파악 불가하기에 나타나는 경이로운 아름다움. 편안한 쾌락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해 있는 어떤 것과 관련됨. 인간은 사물들에서 이와 같은 걸 느낄 때 신성을 느낀다. 이 신성 때문에 사람들은 제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었다.
-> 여름날 오후:
고요히 쉬면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집중된 상태에서 산을 보면 오묘한 선들을 드러낸다. 누가 만들었기에 저렇게 웅장하고 장엄하게 존재할까? 휴식하는 자가 눈으로 좇는 각각의 나뭇가지들은 식물 성장의 자연 필연적 법칙뿐 아니라 다른 힘이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때 우리가 자연의 아우라를 호흡하는 것. 이것이 자연에서 느껴지는 신성.
벤야민은 이것이 전통과 관련되어 있고 이 전통은 기계복제 기술과 관련해 일소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전통과 관련된 신성이 일소될 수 있을까? 무신론자도 자기 감각을 넘는 경이의 체험을 할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아우라에 전통만 관련될까?
*언캐니 Uncanny, 대상a
<강박적 아름다움>에서 할 포스터는 아우라를 프로이트의 개념으로 번역한다. 언캐니 Uncanny, 운하임리히 unheimlich (독어): 친숙하지 않은. 두려운, 섬뜩한, 친숙한 것에서 느끼는 낯섦. 언캐니는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과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 어떤 사물이나 말이나 그림에서 친숙한 것 속에 갑자기 섬뜩함을 느끼는 낯선 경험을 하게 되는 것.
프로이트는 공포증과 관련해서 이런 개념을 사용하나 라캉은 자신의 독특한 개념인 대상a와 연결시킨다. 오브제 쁘띠아. 소문자 대상a. 정신분석학에서 other(대문자로 쓰면 대타자. 소문자로 쓰면 소타자). 대상a는 인간이 자신을 구성할 때(자아정체성) 필연적으로 떨어져 나가는 어떤 것으로 주체의 핵심을 구성한다. 그래서 주체의 핵심이 외부에 있다고 본다. 주체가 구성되기 위해 떨어져 나가야 했던 것이 자아의 외부에 있지만 내 안에 있던 것이라 친숙하다. 이것과 대면하게 되면 내 자아 정체성이 붕괴된다. 대상a는 그런 측면을 가진 어떤 대상이고 이것은 아우라와 연결된다.
* 기술복제시대에 예술작품에서 아우라가 사라졌다면 예술 작품 자체도 과거에 느끼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것이다. 대량복제시대 아우라도 대량복제되어 대중의 움직임과 관련된 어떤 현상에서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예술 작품이 유일무이하다는 것은(아우라) 그것이 아직 전통의 연관 속에 묻혀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예술작품의 아우라적 존재방식(유일무이성)이 그 제의적 기능(본원적 사용가치)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일은 결코 없다. 한마디로 제의적 기능과 분리되기 시작하면 아우라는 붕괴된다. |
기술 복제에 의해 예술의 생산에서 진본성이라는 것을 판단하는 척도가 무효가 되는 그 순간 예술의 사회적 기능 전체 또한 커다란 변혁을 겪게 된다. 예술은 더 이상 제의에 근거하지 않고, 어떤 다른 실천, 즉 정치에 근거를 두게 된다. |
-> 벤야민의 논문과 관련해 중요한 주장이다.
예술은 더 이상 제의에 근거하지 않고 정치에 근거를 두게 된다는 것. 예술이 일정하게 감각적 체계를 우리에게 새롭게 제시하고 또한 이것을 훈련시키는 어떤 매체라고 한다면 기술복제시대에는 정치에 근거를 둔다. 예술은 오늘날 대중의 삶의 미래를 결정하는 정치와 관련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진본성은 원시시대에는 주술의 역할을 했다면-> 고대와 중세에서는 단 하나뿐인 사물이 수공업적으로 복제되기 시작했고-> 르네상스 시대는 수공/기술적 복제가 시작되었다(활판인쇄와 석판인쇄). 이때부터 진본성의 세속화가 시작되는 것. 신에 대한 숭배는 사라지지 않고 세속화되어 미 그 자체를 향한 숭배 현상으로 나타난다. 한마디로 제의가 세속화되어 미를 향한 제의가 되고 이것이 근대에서 ‘순수 예술’ 즉, ‘예술을 위한 예술’ 개념으로 나타남-> 예술은 어디에도 봉사하지 않고 오로지 예술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독자적 개념이 된다. 이 개념에는 굉장한 혁명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벤야민은 이와 같은 혁명성에 공감하지만 예술은 ‘예술에 대한 제의’란 의미에서 기술복제에 의해 타파될 것이라 보았다. 제의성이 일소될 것이라 봄. 이 제의성이 일소된 예술의 양태는 훨씬 더 정치와 연관된 양태를 갖게 될 것이다.
첫댓글 시험에 들게 하네요. 시작을 했으니 끝을 봐야 하는데...ㅜㅜ 읽어보시고 도움되셨음 좋겠어요. 1강과 중복되지 않는 부분부터 정리했습니다.
폭염에 가만 있어도 지칠텐데.....확인하고 정리하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진까지 넣어 깔끔하게 정말 정리를 잘하셨습니다.(최고)
고맙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마음이 왔다갔다해요...ㅎㅎ;
아이고~~~ 고생 많았어요. 잘 정리하셨어요. 이 정리 글을 혹시 강의 참여자들과 카톡으로 공유하는 건가요?
고맙습니다~이 글 공유한 것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