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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귀감(儒家龜鑑). 휴정
孔子曰 天何言哉(공자왈 천하언재)리요 하시며
董仲舒曰 道之大原(동중서왈 도지대원)이 出於天(출어천)이라하며
蔡沈曰 天者(채침왈 천자)는 嚴其心之所自出(엄기심지소자출)이라 하나니
此(차)는 卽周茂叔(즉주무숙)의 所謂無極而太極也(소위무극이태극야)로다.
書傳序(태전서)에 曰精一執中(왈정일집중)은 堯舜禹(요순우)의 相傳之心法也(상전지심법야)오
建中建極(건중건국)은 商湯周武(상탕주무)의 相傳之心法也(상전지심법야)라
曰德曰仁曰敬曰誠(왈덕왈인왈경왈성)은 言雖殊而理則一(언수수이이즉일)이라
無非所以明此心之妙也(무비소이명차심지묘야)라 하니라
亏心之德(우심지덕)이 其盛矣乎(기성의호)인저
中庸(중용)의 性道敎(성도교)(天命之謂性천명지위성 率性之謂道솔성지위도 修道之謂敎수도지위교)
三句(삼구)도 亦名異而實同(역명이이실동)하야
體用備焉(체용비언)이니 此(차)는 乃孔孟(내공맹)의 傳授心法(전수심법)이로다.
공자 말씀하시기를 [하늘이 어찌 말하겠느냐] 하였으며,
동중서는 [도의 큰 근원이 하늘에서 난 것이라] 하였으며,
채침은 [하늘이란 것은 엄숙히 그 마음에서부터 난 것이라] 하였 으니
이는 주무숙의 무극이 태극이라고 한 것이다.
서전 서문에 [하나를 정미롭게 하고
중용을 잡은 것은 요임금과 순임 금과 우임금의 서로 전한 심법이고,
중용을 세우고 태극을 세운 것은 은나라 탕임금과 주나라 무왕이 서로 전한 심법이라] 하였다.
덕이라고 하고, 인이라고 하고, 경이라고 하고,
성이라고 하는 말은 이치는 모두 마음의 묘한 것을 밝힌 것이다.
슬프도다 마음의 덕이 그와 같이 성한 것이로다.
중용에서 말한 성, 도, 교의 세 마디가 서로 이름은 다르지만 내용은 같아서
체용을 갖추었으니 이것은 공자와 맹자의 전수한 심법이다.
道由性而出(도유성출)이니 言道而不言性(언도이불언성)이면 人不知道之本原(인부지도지본원)이오.
道由敎而明(도유교이명)이니 言道而不言敎(언도이불언교)면 則人不知道之功用(즉인부지도지공용)이라.
故(고)로 道之一字(도지일자)가 包性包敎(포성포교)라.
推其本原(추기본원)컨댄 必歸之天命(필귀지천명)이니
大學之三綱八目(대학지삼강팔목)이 亦不外乎是也(역불외호시야)로다.
도는 성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도를 말하고
성을 말하 지 않으면 사람이 도의 본원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도는 교 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도를 말하고 교를 말하지 않으면
사람 이 도의 공용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라는 한 글 자가 성품과 교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
그 본원을 추궁해 보면 반드시 천명으로 돌아갈 것이니
대학의 삼강령 팔조목 이 또한 이에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周易(주역)에 先言道而後言性(선언도이후언성)하니
此(차)는 道字(도자)-是統體一太極(시통체일태극)이오.
子思(자사)-先言性而後言道(선언성이후언도)하니
此(차)는 道字(도자)-各具一太極(각구일태극)이로다.
世之言道者高則入於荒唐(세지언도자고즉입어황당)하고
卑則滯於形氣(비즉체어형기)나 今言道字(금언도자)는 非他(비타)라.
循性之謂也(순성지위야)니라.太極(태극)이오.
子思(자사)-先言性而後言道(선언성이후언도)하니
此(차)는 道字(도자)-各具一太極(각구일태극)이로다.
世之言道者高則入於荒唐(세지언도자고즉입어황당)하고
卑則滯於形氣(비즉체어형기)나 今言道字(금언도자)는 非他(비타)라.
循性之謂也(순성지위야)니라.
具一太極(구일태극)이로다.
世之言道者高則入於荒唐(세지언도자고즉입어황당)하고
卑則滯於形氣(비즉체어형기)나 今言道字(금언도자)는 非他(비타)라.
循性之謂也(순성지위야)니라
주역에서 먼저 도를 말하고 뒤에 성품을 말했으니
이것은 도가 한 태극을 거느려 체를 삼은 것이고,
자사는 먼저 성품 을 말하고 뒤에 도를 말했으니
이것은 도가 각자 한 태극을 갖춘 것이다.
세상에서 도를 높이 말하는 사람들은 황당한 말로 돌려보내고
낮게 본자는 형상과 기운에 걸릴 뿐이니
이제 말한 {도}자는 다른 것이 아니라 성품을 쫓음을 말하는 것이다.
戒懼(계구)는 是保守天理(시보수천리)니 幾未動之敬也(기미동지경야)오
愼獨(신독)은 是檢防人欲(시검방인욕)이니 幾已動之敬也(기이동지경야)라.
故(고)로 君子之心(군자지심)은 常存敬畏(상존경외)니라.
謹獨一念(근독일념)은 己發時工夫(기발시공부)요,
戒懼一念(계구일념)은 未發前工夫(미발전공부)로다.
然(연)이나 裳知未發(재지미발)이면 便是已發(변시이발)이라.
卽不中(즉부중)이니 中則天地萬物爲一體(중즉천지만물위일체)니라.
幽則有鬼神(유즉유귀신)하고 明則有日月(명즉유일월)하니 此亦謹讀一句(차역근독일구)니라.
涵養(함양)은 靜工夫(정공부)니 一箇主宰嚴肅也(일개주재엄숙야)오.
省察(성찰)은 動工夫(동공부)니 情念裳發(정념개발)을 覺治也(각치야)라.
故(고)로 曰精以察之(왈정이찰지)하고 一以守之(일이수지)라하니
所謂顧 諟天之明命(소위고 시천지명명)이니라.
경계하여 두려워함은 천리를 보존하여 지키는 것이니
조화의 미묘한 힘이 아직 움직이지 않은 공경이고,
홀로 있음에도 불구 하고 삼가 함은 사람의 마음을 점검하여 고찰한 것이니
이것은 조화의 미묘한 힘이 이미 움직인 뒤의 공경이다.
그러므로 군자 의 마음은 항상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생각을 갖는다.
홀로 삼가 하는 마음은 기틀이 이미 발한 때의 공부이고,
경계하고 두려워 하는 마음은 기틀이 아직 발하지 않은 때의 공부이다.
그러나 겨우 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문득 이미 발한 것이 되는 것이니 맞지 않는 것이다.
중용의 중은 곧 천지 만물과 한 몸이 된다.
깊고 어두우면 그곳에 귀신이 있고, 밝으면 일월이 있으니 이것 또한 홀로 삼가 한다는 글귀이다.
마음을 진리로 향하여 기르는 것은 고요한 공부이니 한 주재의 엄숙함을 주로 하는 것이고,
자기 마음을 반성하여 살핌은 움직이는 때의 공부이니
감정에서 생기는 생각이 발하면 곧 깨달아 다스리는 것을 주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미롭게 살피고 하나로써 지키라 하였으니 이것은 하늘의 밝은 명을 돌아보는 것이다.
心一放(심일방)하면 卽悠悠蕩蕩(즉유유탕탕)하야
無所歸着(무소귀착)이니 心必操(심필조)하고
意必誠(의필성)하며 言必謹(언필근)하고 動必愼(동필신)이니
內外交修之道(내외교수지도)니라.
一念之善(일념지선)은 慶雲景星(경운경성)이오
一念之惡(일념지악)은 烈風暴雨(열풍폭우)니
堯舜桀紂(요순걸주)가 在此一句(재차일구)로다.
然(연)이나 心之虛靈知覺(심지허령지각)은 一而已矣(일이이의)니라.
渾厚包涵徒容(혼후포함도용)은 是廣大之氣象(시광대지기상)이오.
促迫偏窄輕躁(촉박편착경조)는 非有德之氣象(비유덕지기상)이로다.
省欲則心靜(성욕즉심정)이오 心靜則事自簡(심정즉사자간)이니라.
少言沈默(소언침묵)이 最妙(최묘)니 知道則言自簡(지도즉언자간)이니라.
한 번 마음을 놓으면 마음대로 흩어져 돌아갈 곳이 없으니
마음은 반드시 잡고 뜻을 반드시 참되게 하며 말을
반드시 삼가 하고 행동할 때에 반드시 삼가 할 것이니 이것은 마음과 몸을 함께 닦는 길이다.
한 선한 생각은 경사스러운 구름 과 빛나는 큰 별과 같은 것이고,
한 악한 생각은 매운 바람과 사나운 비 같은 것이니, 요순과 걸주도 이 한 구절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비고 신령한 지각은 하나일 뿐이다.
널리 온갖 것에 섞이어 후하게 포용하고 함양하며
조용함은 크고 넓은 기상이고 촉박하고 치우쳐 좁고 까불고 경조함은 덕있는 기상이 아니다.
욕심을 제거하면 마음이 고요하고 마음이 고요하면 만사의 일이 스스로 간단하여 질 것이다.
謹言(근언)은 乃爲學第一工夫(내위학제일공부)니 言不謹(언불근)하고 而能存心者鮮矣(이능존심자선의)니라.
多言(다언)은 最使人心流蕩(최사인심유탕)하야 而氣亦損(이기역손)이니 夢寐精神(몽매정신)도 亦不安(역불안)이니라.
纔舒放(재서방)이어든 卽當收斂(즉당수감) 하고 纔言語(재언어)어든 便思簡默(변사간묵)이니라.
必使一念(필사일념)으로 不妄起(불망기)니 一言(일언)도 不妄發(불망발)하야 庶乎寡過(서호과과)이니라.
말을 삼가하는 것은 배우는데 제일 중요한 공부가 되는 것이니
말을 삼가하지 않고 마음을 보존하기 극히 어려운 것이다.
말이 많음은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가장 방탕하게 하며
기운도 또한 덜게 되고 꿈속에 정신도 또한 편안치 못하다.
마음을 펴서 놓거든 곧 마땅히 거둬들일 것이고, 말을 하려는 때는 간단하고 침묵함을 생각하라.
반드시 생각으로 하여금 망령을 일으키지 말고 한 마디도 망령되게 하지 않아야 허물 이 적을 것이다.
聞人過失(문인과실)이어든 如聞父母之名(여문부모지명)하야
耳可聞(이가문)이어정 而口不可言(이구불가언)이니라.
남의 허물을 듣거든 부모의 이름을 듣는 듯하여 귀로는 들을 지언정 입밖에 내지 말라.
是非終日有(시비종일유)라도 不聽自然無(불청자연무)니
來說是非者(내설시비자)는 便是是非人(변시시비인)이라.
待左右(대좌우)에 當嚴而惠(당엄이혜)니
左右之言(좌우지언)은 不可輕信(불가경신)이오 必審其實(심필기실)이니라
親愛之言(친애지언)을 亦不可偏聽(역불가편청)이니
若聽一面說(약청일면설)하면 便見相離別(변견상이별)이니라.
시비가 종일 있더라도 듣지 않으면 자연히 없어질 것이니 와서 시비를 말하는 자가 나를 시비하는 사람이다.
좌우의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서 마땅히 엄숙히하여 은혜롭게 할 것이며,
좌우 사람의 말을 가볍게 믿지 말고 반드시 그 진실함을 살펴야 한다.
친애하는 사람의 말을 치우쳐 듣지 말고, 만일 한편쪽 사람의 말만 들으면 서로 의가 상해서 갈리게 될 것이다.
輕言輕動之人(경언경동지인)은 不可深計(불가심계)오
易喜易怒者(이희이노자)도 亦然(역연)이니라.
欲人無聞(욕인무문)이면 莫若勿言(막약물언)이요
欲人無知(욕인무지)인댄 莫若勿爲(막약물위)니라.
大丈夫心事(대장부심사)는 當如靑天白日(당여청천백일)하야
使人得而見之(사인득이견지)니라
奢侈華麗(사치화려)는 人之大惡(인지대악)이요
淳朴質直(순박질직)은 人之大德(인지대덕)이니라.
말과 행동이 가벼운 사람은 깊게 꾀하지 못할 것이니
기뻐하고 성내기를 쉽게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남에게 들리지 않게 하려면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남이 알지 않게 하려면 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
대장부의 마음을 청천 백 일과 같이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얻어 보게 할지니라.
사치하고 화려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큰 죄악이고, 순박하고 곧은 것은 사람의 큰 덕이다.
古賢(고현)은 時然後(시연후)에 言(언)이라
人不厭其言(인불염기언)하고 樂然後(낙연후)에 笑(소)라.
人不厭其笑(인불염기소)하며 義然後(의연후)에 取(취)라 人不厭其取(인불염기취)니라.
옛날 현인은 때가 된 후에 말하여 사람들이 그의 말을 싫어하지 않았으며,
즐거운 일이 있은 후에 웃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웃음을 싫어하지 않았고,
옳은 의리가 있은 후에 취 한 지라 그의 취함을 싫어하지 않았다.
君子行有不得이면 皆反諸己하야 而無責人之心이라
心常灑落(심상쇄락)이로되 常人(상인)은 纔不得於天(재부득어천)이면
卽怨天(즉원천)하고 纔不合於人(재불합어인)이면 卽尤人(즉우인)이라.
心常不寧(심상불녕)하야 忿懥勞擾(분치노요)니라.
人爲外物所動者(인위외물소동자)는 只是淺(지시천)이요.
人有才而露(인유재이로)도 亦是淺(역시천)이니 深則不露(심즉불로)니라.
識量大則毁譽欣慼(식량대즉훼예흔척) 이 不足以動其心(부족이동기심)이니
聖人之心(성인지심)은 應物卽休(응물즉휴)라 元不少動(원불소동)이니라.
군자 행하던 일을 얻지 못하면 다 자기 탓으로 하고 남을 책망하지 않으므로 마음이 깨끗하다.
보통 사람은 행함을 얻 지 못하면 그것이 하늘의 뜻임에도 남을 원망한다.
그리고 항 상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분하게 여겨 괴로워한다.
외물에 의하 여 동요되는 사람과 재주가 있어서 나타내는 사람도 깊지 못 한 것이다.
마음이 깊으면 나타내지 않는다.
식견이나 도량이 크면 훼방하거나 칭찬하거나 기쁘거나 슬픈 것이 그의 마음을 동요시키지 못한다.
성인의 마음은 사물에 응하여 쉬기에 원래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心誠色溫(심성색온)하고 氣和辭婉(기화사완)하면 必能動人(필능동인)이니라
惟正(유정)이라야 可以服人(가이복인)이니
故(고)로 寧可正而不足(영가정이부족)이언정 不可邪而有餘(부가사이유정)니라
正其義(정기의)하고 不謀其利(불모기리)하며 明其道(명기도)하고 不計其功(불계기공)이니라
一行有失(일행유실)이면 百行難補(백행난보)라.
故(고)로 防末(방말)은 在本(재본)이니라
人多於快意之事(인다어쾌의지사)에 忘却道(망각도)니라
爲政(위정)에 通下情爲急(통하정위급)하고 處事(처사)에 尤宜心平氣和(우의심평기화)니라
事最不可輕忽(사최부가경홀)이니 雖至微至易者(수지미지이자)라도 皆當以愼重處之(개당이신중처지)니라
마음을 진실히 하고 얼굴빛을 온순히 하며
기분을 평화스 럽게 갖고 말을 아름답고 순하게 하면 반드시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오직 바르게 하여야 사람을 감복하게 하는 것이니
바르게 하여 흡족하게는 못할지언정 악하게 하고 남음이 있게 하지 말라.
의리를 바르게 하고 이익을 꾀하지 말며 그 도리를 밝히게 하고 그 공을 헤아리지 말라,
한 가지 행실에 허물이 있으면 백가지 행실이 보충하기 어려운 것이니 끝을 막 는 것은 근본에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제 뜻을 쾌히 하는 일에 도리를 잊기 쉽다.
정사를 함에 하정을 통하기를 급히 하고 마음을 편안히 하여 일을 처리하고 기운을 부드럽게 하라.
일은 경홀 하게 하지 말며 비록 지극히 작고 쉬운 일이라도 신중히 처리하라.
見人善(견인선)이어든 尋己善(견기선)하고
見人惡(견인악)이어든 尋其惡(심기악)이니
從也改也(종야개야)에 俱爲我師(구위아사)니라
사람의 착한 일을 보거든 자기의 선행을 찾고,
사람의 악한 일을 보거든 자기의 악한 일을 찾아보며
쫓고 고침에 다 나의 스승을 삼을지니라.
結朋(결붕)에 須勝己(수승기)니 似我(사아)면 不如無(불여무)라
毁吾者(훼오자)는 師(사)요 譽吾者(예오자)는 賊(적)이니라.
非莫非於飾非(비막비어식비)오 過莫過於文過(과막과어문과)니라.
以德報寃(이덕보워)하고 以善報惡(이선보악)하라.
人若唾面(인오타면)이어든 不拭自乾(불식자건)이니라.
覺人詐(각인사)라도 而不形於言(이불형어언)이면 有餘味(유여미)니라.
卽人言(즉인언)하면 可以見所養之淺深(가이견소양지천심)이니라.
知足者(지족자)는 貧賤(천천)도 亦樂(역락)이오
不知足者(부지족자)는 富貴(부귀)도 亦憂(역우)니
知安則榮(지안즉명)하고 知足則富(지족즉부)니라.
人無百歲人(인무백세인)이로되 枉作千年計(왕작천년계)로다
大厦千間(대하천간)이라도 夜臥八尺(야와팔척)이오
良田萬頃(영전만경)이라도 日食二升(일식이승)이니라.
친구를 사귈 때는 나보다 승한 자를 구하라.
나와 같은 자는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나의 잘못을 말하는 사람은 스승 이요, 나를 칭찬하는 사람은 도적이다.
그른 것은 그름을 꾸미는 그름 같음이 없고 허물은 허물을 문채 나게 하는 허물 같음이 없다.
덕으로서 원수를 갚고 선으로 악을 갚으라.
사람이 내 얼굴에 침을 뱉을 지라도 닦지 말고 스스로 마르게 하라.
사람에게 속은 것을 알았을 때도 말로 나타내지 않으면 나머지 맛이 있다.
사람과 이야기를 하여 보면 교양의 정도를 알 것이며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귀한 사람이라도 근심을 하며
자기의 분수에 편안한 안분을 알면 영화스러울 것이다.
족한 줄을 알면 그것이 곧 부자이다.
사람은 백살을 살지 못하는데 천년 살 계획을 하고 있다.
아무리 천간 집이라도 잠잘 자리는 팔척이면 되고
좋은 밭이 만 이랑이라도 하루에 먹는 것은 두되 뿐이다.
人皆愛珠玉(인개애주옥)하되 我愛賢師友(아애현사우)니라
黃金萬兩(황금만량)이 未爲貴(미위귀)오
得人一語(득인일어)가 勝千金(승천금)이로다.
有名不用鐫頑石(유명불용전완석)하라
路上行人(노상행인)이 口是碑(구시비)니라
平生不作皺眉事(평생부작추미사)하라
世上應無切齒人(세상응무절치인)이로다.
貧居(빈거)하면 鬧市(요시)라도 無相識(무상식)이오
富住(부주)하면 深山(심산)이라도 有遠親(유원친)이니라
凡事留人情(범사유인정)하면 後來好相見(후래호상견)이니
若要人重我(약요인중아)인댄 無過我重人(무과아중인)이니라.
有客來相訪(유객래상방)하야 如何是治生(여하시치생)하면
恒存方寸地(항존방촌지)하야 留輿子孫耕(유여자손경)이라하야
爲子死孝(위자사효)하고 爲臣死忠(위신사충)이니
人無忠孝之心(인무충효지심)이면 其餘(기여)를 不足觀也(부족관야)니라
사람들은 구슬과 옥을 사랑하더라도 나는 어진 스승과 벗을 사랑한다.
황금은 만량이라도 귀한 것이 되지못하되
사람 에게 진실한 말을 얻는 것은 천금보다 중요하다.
이름을 남겨 두려고 비석에 새기려 하지 마라.
이름을 남길 만한 일을 했 으면 오고가는 사람의 입이 다 비석이 되는 것이다.
평생에 남에게 눈썹을 찡그리게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원한을 갖고 덤빌 사람은 없다.
가난하게 살면 번화한 시장 가운 데 살지라도 서로 알고 왕래하는 사람이 없고,
부자로 살면 깊은 산 속에 살지라도 먼데서 사람이 와서 친하는 자가 있다.
모든 일에 인정을 베풀면 그 뒤에 서로 좋게 보게 된다.
만일 사람이 나를 중히 여기려거든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중히 여겨라.
손님이 와서 어떻게 생활해 가느냐고 물으면
항 상 마음속에 덕을 심어 자손에게 주어 경작하고 산다고 하라.
자손이 되어서는 효도로써 죽고,
신하로써는 충성으로 죽어야 하니,
사람이 충효가 없으면 더 이상 볼 것이 없다.
心統性情(심통성정)이니 君子存心(군자존심)을
恒若鑑空衡平(항약감공형평)하면 與天地合其德(여천지합기덕)이니라
於戱(오희)라 三月忘味(삼월망미)하고
終日如愚(종일여우)는 此聖賢忘內之樂也(차성현망내지락야)오
不貴黃屋(불귀황옥)하고 不賤陋巷(불천누항)은 此聖賢忘外之樂也(차성현망외지락야)라
然則聖賢之樂(연즉성현지락)은 不在內外(부재내외)니 當在何處(당재하처)오
古之詩人(고지시인)은 觀鳶魚(관연어)하고 而知道之費隱(이지도지비은)하고
聖人(성인)은 觀川流(관천류)하야 而知道之不息(이지도지불식)이시니
今之學者其可不盡心乎(금지학자기가불진심호)아
文王之詩(문왕지시)에 無聲無臭之天(무성무취지천)을 子思子亦引之(자사자역인지)하사
以結中庸之義(이결중용지의)하시니 旴(우)라 卽吾渾然未發之中也(즉오혼연미발지중야)라
此周茂叔所謂太極本無極也(차주무숙소위태극본무극야)니라.
마음은 성품과 정을 거느리는 것이니
군자가 마음을 갖기를 항상 거울과 저울과 같이하면 천지와 함께 그 덕을 더하게 된다.
석 달을 고기 맛을 잃고 날이 새도록 어리석은 사람 같이 행동한 것은
성현들이 안을 잊어버린 낙이고 황옥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더러운 골목 거리를 천하게 여기지 않으니 이는 성현들의 밖을 잊어버린 낙이니,
그러므로 성현의 낙은 안과 밖에 있지 않으니 어떤 곳에 있을까.
옛날의 시인은 공 중에 나르는 솔개와 물에 노는 고기를 보고 도가 나타나고 숨음을 알고,
성인은 냇물의 흐름을 보고 도의 쉬지 않음을 알았으니,
지금의 학자들은 어찌 전심전력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왕의 시에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하늘이라 한 말을 자사가 인용하여 중용의 뜻을 맺었으니 슬픈 일이다.
이 것이 내가 혼연히 말하지 않은 중용이다.
이것이 주무숙이, 태극이 무극을 근본한 것이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