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교육청이 지난 19일 개최한 ‘고교-대학 연계 포럼’의 주제는 ‘신문명의 시대,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철학과 인간상은?’이었다. 입시 정책의 문제점과 정보를 공유했던 예년과 달리 이날 포럼은 고교와 대학 교육의 오늘을 성찰하고, 미래 사회의 인재를 기르기 위해 필요한 과제를 짚어보는 자리였다. 서울대 사범대학 권오현 교수는 “이제는 우리가 당면한 교육 문제의 근원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문제의 본질이 학교 교육에 있는지, 입시 제도에 있는지, 그도 아니라면 그릇된 사회적 인식에 있는지 가려야 해법도 찾을 수 있다.
바다 위의 배가 출렁일 때 정작 파도를 잠재울 생각은 하지 않고 배가 고장 났다고 탓하며 배 수리에만 몰두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AI가 도래한 신문명 시대, 미래 인재를 키우기 위해 학교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 이날 포럼을 정리해본다.
취재·사진 홍정아 리포터 jahong@naeil.com
교육의 본질은 ‘한 학생의 변화’에 있다
포럼의 주제인 ‘신문명의 시대,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철학과 인간상은?’의 기조 발제를 맡은 연세대 민경찬 특임교수는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에게 꿈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초·중등 교육과 대학 교육의 단절, 대학 교육과 사회의 단절로 이어지면서 더욱 심화된다. 하지만 교육의 본질은 ‘한 학생의 변화’에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의 교육 문제를 성찰할 때 교육을 바라보는 초점이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민 특임교수는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 잊어버린 채 수단에 치우쳐 있는 것이 문제다. 학생은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아무런 고민 없이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정부는 사교육·학습 부담 줄이기, 선행학습 금지와 같은 지엽적 수단에 묶여 있다. 인간은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우리 사회가 다양한 가치를 존중할 때 성적이나 대학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이 행복해진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라는 문명사적 사건이 펼쳐졌다. 지금 세계는 인재 전쟁 중이다. 미래 사회의 모습은 인간과 기계가 공존할 뿐 아니라, 일자리 감소와 인구 절벽의 위기까지 겹쳐 있다. 인간의 창의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중·고교를 거쳐 대학에 들어온 인재들조차 스펙 쌓기와 수업 중 받아 적기에만 급급하다는 것이다. 창의성을 누누이 강조하지만 정작 학생들의 관심사인 학점과 창의성은 동떨어져 있다. 따라서 관심의 초점을 어디에 둬야 하고, 한 학생의 성공을 위해 어떤 교육 생태계를 만들어야 하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우선 ‘한 사람’을 중시해야 한다. 어느 고등학교, 어떤 대학교의 실적이나 통계를 놓고 성공을 말할 게 아니라 그 안에 속한 학생 개인의 변화에 집중해야 한다. 고교와 대학의 교육 목표 역시 ‘한 학생의 변화와 성공’에 맞닿아 있어야 한다. 성공의 기준에 대해선 여러 가치가 충돌하겠지만, 그 기준 역시 우리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할 과제다. 그동안 대학이 교육과 연구기관으로서의 가치에 집중했다면 이젠 달라져야 한다. 대학의 사회적 역할을 찾아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대학마다 추구하는 인재상을 명확히 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발맞춰 고교도 학생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목표 지향적인 교육 시스템을 갖춰나가야 할 것이다.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결국엔 행복하다. 본인의 특성과 가치에 따라 다양성을 끌어내는 교육을 중시해야 학교가 행복하고 학생들이 웃을 수 있다.
민 특임교수의 발제에 토론자로 나선 경기 성문고 황우원 교사는 “‘한 학생의 성공’이라는 키워드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교육과 입시, 평가, 고교-대학 연계 등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됐다”면서 “‘좋은 성적=좋은 대학=좋은 일자리=성공’의 등식이 틀렸다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 바른 인성과 태도로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자기가 원하는 적절한 일자리를 갖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10명 중 7명이 무조건 대학에 진학하는 기이한 현상은 사라질 것 같다”고 의견을 더했다.
경기 운천고 3학년 최예진 학생은 “‘미래의 인재상’이 모순된 말로 들린다. 정형화된 교육에서 벗어나 더 자유로운 세상에서 공부하고 꿈꾸고 싶다. 성적만으로 나를 표현하기엔 부족하다”면서 “창의성을 갖춘 인재 역시 과연 어떤 모습인지 그 기준을 모르겠다. 우리 학생들은 대학에 가기 위해 정답을 찾고 공식을 외우며 경쟁의 악순환 속에 살고 있다. 아무리 혁신적인 교육 정책이 등장해도 그 경쟁의 틀이 견고히 유지되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티칭 아닌 러닝으로 거듭나는 교실 수업, 소통·협업 능력 확장의 디딤돌이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서울대 사범대학 권오현 교수는 고교-대학의 연계를 위한 다양한 방법과 2015 개정 교육과정을 통한 학생의 과목 선택권, 대학 입시와 고교 교육의 힘이 어떻게 연동해야 하는지를 강조했다. 공정성과 신뢰도 측면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진 입시 제도는 결국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근본적인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 배경에 있다.
권 교수는 “교육의 초점이 어디로 향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과거의 교육이 학생들을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려 ‘동질화’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개별화’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며 “우리 교실 수업도 이젠 티칭(teaching)이 아니라 러닝(learning)으로 거듭나고 있다. 시대가 변화하는 만큼 교실에서 학생 한 명 한 명이 주인공이 돼 서로 다른 생각의 지도를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개별화가 심화할수록 미래 사회에 꼭 필요한 ‘소통과 협업 능력’의 가치가 확장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연 대입 준비를 위한 현실적 교육이 우리가 추구하는 본질적 교육에 얼마나 닿아 있을까. 마지막 남은 카드는 고교와 대학의 연계라고 생각한다. 우선 인재상을 연계하고 공통된 인식 공유가 필요하다. 미래 사회에 필요한 어떤 인재를 키울 것인가는 고교와 대학의 기준이 다를 수 없다. 이를 위해 고교 교육과 대학 전공의 연계도 뒤따라야 한다. 고교 교사 등의 고교 인력이 대입 전형 과정에 참여하고, 입학사정관 등 대학 인력이 고등학생의 진로 활동을 지도하는 인적 자원의 교류와 연계도 있어야 한다. 전공 캠프나 모의면접, 대입 전형 홍보·설명회 등 대입 준비 과정의 공동 연계도 필요하다.
학생의 희망 진로를 기반으로 과목을 선택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고교-대학 연계의 힘이 어느 정도 발휘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다. 대학의 전공에 따라 어떤 선택 과목을 들으면 좋을지 참고할 수 있게 가이드북을 만들어 배포했더니 고교 현장에서 이를 지나치게 고정화해 이해하면서 오히려 선택의 폭을 제한하는 역효과도 있었다.
결국 대학 입시의 큰 틀은 학교 단위의 평가로 이뤄지는 전형이 이끌어갈 것이다. 수시 학생부 종합 전형이나 교과 전형 등이다. 대입 제도의 간소화 요구 등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수능 100%만으로 학생을 뽑는 정시가 생겨났지만, 수능이 지금처럼 객관식 문제로 치러지는 상황이라면 학교 교육과 수능의 괴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대학 입시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이견이 충돌하고 있다. 갈등과 혼란만 가중시키며 이를 키워갈 게 아니라 문제의 본질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는 입시 제도의 관리와 더불어 사회적 인식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 ‘비판적 사고’는 학생뿐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에게도 꼭 필요한 소양이다.
권 교수의 발제에 대해 경기 위례한빛고 전대원 교사는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의 욕구, 교육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욕망이 달라지지 않는 한 교육의 밝은 미래는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좋은 대학과 직장, 개인의 성공이 교육의 목표이자 본질이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바뀌는 건 아니라는 것. 지금 우리가 말하는 창의성은 현재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 시대를 초월해 필요한 인재의 역량이라는 의견이다.
미래 인재를 기르는 방법과 교육의 방향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 길로 과감히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토론자로 참석한 경기 수리고 김종표 교장은 “고교 교육을 옥죄고 있는 대입 제도부터 개선해야 한다”면서 “창의·인성 교육을 강화하려면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 핵심 역량 기반의 학교 교육과정을 다양하게 운영하는 한편 학생 참여형 교수-학습의 확대, 교원의 전문성 신장이 담보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 교사 역시 “조금 늦더라도 함께 가는 것이 관건이다. 과연 누가 함께 갈 수 있게 설득하며 희생할 것인가, 그런 여건을 누가 조성할 것인가가 문제다. 혁신학교든 자유학년제든 고교학점제든 어떤 변화를 시도한다 해도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너무 빠르거나 과한 일은 없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소통·협력·전문성의 가치 기업의 인재상도 달라지고 있다
미래의 인재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는 KT 인재경영실 이원준 실장의 발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기업이 선호하는 인재상의 변화다. 5년 전만 해도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 1위가 도전정신, 2위가 주인의식, 3위가 전문성이었던 데 반해 올해는 소통·협력이 1위, 전문성이 2위에 올랐다. 이 실장은 “대기업 신입사원의 출신 대학이 과거엔 서울대 등 스카이 일색에서 이제는 각 대학으로 고르게 분산되고 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되려면 소통하고 협력하는 태도를 갖췄는지, 대체 불가한 전문성을 지녔는지, 그 직무가 내 적성에 잘 맞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황 교사는 “고교 교육이나 진로 교육의 관점에서 멀리 내다보면서 학생들을 어떤 인재로 길러야 할지 생각하게 됐다”면서도 “다만 기업의 인재 채용 기준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실제로 학생들의 진학과 진로를 지도하는 고교 담당 교사의 입장에서는 체감하기가 쉽지 않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3시간이 넘게 진행된 이날 포럼은 고교와 대학을 넘어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교육의 문제, 교육의 본질을 되찾기 위한 방안을 서로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래 사회에 필요한 인재상이 무엇인지 확인한 만큼, 이제는 그 인재를 기르기 위해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 구체적인 노력도 활발히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미래 사회에 필요한 어떤 인재를 키울 것인가는 고교와 대학의 기준이 다를 수 없다. 이를 위해 고교 교사 인력이 대입 전형 과정에 참여하고, 입학사정관 등 대학 인력이 고등학생의 진로 활동을 지도하는 인적 자원의 연계가 필요하다. 학생의 희망 진로를 기반으로 과목을 선택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고교-대학 연계의 힘이 어느 정도 발휘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