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조용미, 문학과지성사, 2004.
상처의 미학 / 자아를 바라보는 시선
이혜원
자기 자신을 그리는 것보다 더 쉬우면서 어려운 일이 어디 있을까. 자기 자신은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모델이긴 하지만 관찰의 대상이자 주체라는 모순 때문에 언제나 혼란을 초래한다. 자기 자신을 묘사하면서 애증에 사로잡히지 않는 경우는 없다. 자신에 대한 치열한 응시와 이해를 통해 자화상은 완성된다. 거듭해서 자화상을 그리는 자들은 그것을 통해 자신을 발견해 가는 경이를 맛보게 된다. 자화상에 드리워지는 독특한 분위기는 곧 외계로 끄집어 올려진 내면의 정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고독이나 상처, 혼란과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한 내면의 풍경이 전경화되면서 자화상의 애매한 표정들을 만들어낸다. (...)
조용미의 시집이 「삼베옷을 입은 自畵像」을 표제로 세운 것은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삶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삼베옷을 입은’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수식어가 암시하듯 이 시는 죽음에 이른 자아에 대한 상상에 근거한다.
폭우가 쏟아지는 밖을 내다보고 있는
이 방을 凌雨軒이라 부르겠다
능우헌에서 바라보는 가까이 모여 내리는
비는 다 直立이다
휘어지지 않는 저 빗줄기들은
얼마나 고단한 길을 걸어 내려온 것이냐
손톱이 길게 쩍 갈라졌다
그 사이로 살이 허옇게 드러났다
누런 삼베옷을 입고 있었다
치마를 펼쳐 들고 물끄러미 그걸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입은 두꺼운 삼베로 된 긴 치마
위로 코피가 쏟아졌다
입술이 부풀어올랐다
피로는 죽음을 불러들이는 독약인 것을
꿈속에서조차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인가
속이 들여다보이는 窓봉투처럼
명료한 삶이란
얇은 비닐봉지처럼 위태로운 것
명왕성처럼 고독한 것
직립의 짐승처럼 비가 오래도록 창밖에 서 있다
「삼베옷을 입은 自畵像」 全文
(...)
이처럼 폭우가 쏟아지는 특이한 장면을 배경으로 그려지는 자화상은 매우 기괴하다. 아마도 꿈속에서 본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 이 자화상은 죽음에 가까울 정도로 피폐하게 소진된 육체를 그리고 있다. 이 시가 더욱 처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누런 삼베옷을 입은 채 물끄러미 그것을 내려다보는 허망한 시선 때문일 것이다. 불길한 소멸의 징후를 드러내는 육체에 무기력하게 그것을 바라보는 눈길이 닿으면서 형언할 수 없는 존재의 심연이 펼쳐진다. 휘어지지 않는 빗줄기들처럼 쉼 없이 고단한 길을 걸어온 육신이 이르는 처절한 소멸의 장면을 그녀는 언뜻 보아버린 것이다. (...)
시인의 말
삼천 개의 뼈가 움직여
춤이 되듯
나는 삼천 개의 뼈를 움직여
시를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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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처절한 장면을 무던하게 보는 나는 이미 生命이 낡아버린 것인가.
더위와 함께 세월이 지나가고 있다.
2025년 7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