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로코 생일이다. 지난 주말에 앞 당겨서 내 생일과 함께 축하는 했지만, 아침부터 자기 생일이라고 하며 내게 빨리 선물을 달라고 한다. 월요일에 우체국에서 찾아온 선물이 딸의 장롱 안에 있지만 내가 꺼내지 않고 기다리라고 하니 졸졸 따라 다니며 조른다. 내 선물은 생일 아침에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줘야지. 로코가 조르는 것을 들은 딸이 일어나 선물을 내게 건넨다.
다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또 부르고 로코에게 선물을 주자, “야, 내가 갖고 싶던 책이야!”하고 좋아한다. “댕큐, 알라뷰 할머니”하고 뽀뽀를 하면서 책 케이스부터 연다. 48권짜리 연작 동화 ‘Mr. Man’ 시리즈를 가지고 싶어 한다고 해서 인터넷으로 신청했던 것인데, 정말로 좋아한다. 어른 손바닥만한 사이즈로 인간의 품성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림과 이야기가 한눈에 보이도록 만든 책이다. 자기가 이미 몇 권은 읽었지만 전부 다 읽고 싶었다고 하면서 밥상 앞에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죠니는 자기도 한권 보자고 덤비는데, 형이 절대로 못 만지게 해서 울고 불고... 엄마가 한권만 보여 주자고 해서 하나를 주었는데 더 달라고 우는 동생을 못 본 체 하다가 일곱 살 형아로써 할 수 없이 허락하고, 혹시 구기거나 망가트리지 않을까 곁눈으로 본다. 한참 놀고 죠니가 심드렁해지자 책들을 얼른 챙겨 일련번호 차례대로 책을 정리해 놓는다.
그리고는 자기가 그동안 제일 좋아 했던 것은 아빠 핸드폰 빌려 하는 핸드폰 게임이었는데, 이제는 ‘엄마 아빠가 선물로 준 GRAVITRAX가 첫째, 할머니가 선물로 준 Mr. Man이 둘째’라고 싱글벙글 웃으며 책을 읽는다. 그리고는 “아 오늘은 방학학교 가지 않는 날이니 종일 게임하고, 책을 읽으면 되겠다”고 하였다.
죠니가 어린이집 가고, 마음 편하게 엄마와 그라비트랙스 조립을 하고 놀다가, 미스터 맨을 읽고 하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밖에는 여름 장마처럼 비가 내리고, 나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는데 잘 되었다. 나도 책 읽고 빈둥거리고 놀았다.
죠니를 데리러 갈 즈음 반짝 해가 났다. 책 읽는 것도 지쳤고, 해도 나왔으니 아이들 데리고 공원에 가자고 딸이 말했다. 로코와 나는 공원으로 직행을 하고 딸은 죠니를 데리고 공원으로 오기로 해서 큰 길에서 헤어졌다. 로코는 건널목마다 좌우로 살피고 내게 조심해야 한다고 하며 길을 간다. 엄마 아빠가 있을 때는 안하던 일이다. 할머니를 배려하는 것이다.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축구하는 부자가 보이자 거기에 가서 놀면 안되냐고 나에게 묻고 뛰어간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물어 보고 섞여 축구를 한다. 아주 자연스럽다. 어차피 자기 아이하고 놀아주러 왔으니 다른 아이와 더불어 노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고 허락한 양반이 고마웠다. 늦게 죠니와 딸이 도착했다. 죠니는 할머니에게 손을 흔들고 유모차에서 내리자마자 형을 향해 뛴다. 축구에 방해가 되기도 해서 우리는 유아들 놀이터에서 놀면서 축구하는 로코도 가끔씩 본다.
딸이 내게 심심하면 거리를 좀 돌아보고 오는 것도 좋겠다고 해서 혼자 거리로 나와 자선가게도 가보고, 거리를 걷다보니 비가 쏟아진다. 공원은 피할 곳이 없으니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아 다시 공원으로 가다보니 세 식구가 비 맞고 나온다. 집으로 가는 동안 비는 곧 이슬비로 변하고 다시 해가 났다. 아 변덕스러운 에든버러의 날씨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