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추운 날에 벼르고 벼르던 골방을 꾸몄다
도시에서는 몸에 밴 집안 일은 오히려 한나절 수행감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 오후 다락골에선 극기의 시간이다
뜨거운 물로 꼭 짠 수건으로 거울을 닦아도 서걱 서걱 그대로 얼어버려 때처럼 밀리고
어제까지 불 땐 방인데 어느새 냉골이 되어 발은 꽁꽁
지난 가을 들어온 자개 삼층장이 안채 마루에 내내 서있었다
좀 해볼까 맘먹으면 일이 생기거나 손님이 오시고
시간이 막상 남아돌면 일하기가 싫고
농삿 일은 절기에 쫓겨 안할 수 없이 지쳐문드러질 때까지 하게 되지만
농한기에 해야하는 멱질이나 도배 농기구 손질이나 자잘한 갈무리 뒷설거지는
나이가 들수록 꾀만 나서 방문객이랑 어우러져 차마시며 나누는 환담에
하루를 훌쩍 보내고 싶은 날들이 많다
아무튼 유난히 하늘이 파아란 얼음짱같이 맑고 시리던 오늘 오후
갑자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마루의 삼층장이 눈에 밟혀
사랑방 주물난로에서 넘치게 데워진 뜨신 물을 들고
안채 골방 청소에 들어갔다
나란히 놓았던 두 짝의 문갑중 한개는 입구의 이불장대신 놓고
그 자리에 삼층 자개장을 세웠다
추운 골방이라고 너저분하게 늘어놓았던 방석이나 차렵이불을
차곡차곡 접어넣으니 다른 두 방-안방이나 별채 사랑방-보다 더 멋져졌다
사라져가는 자개문화를 아끼는 이에게서 하나는 선물받고 두개는 보관용으로
방 세개에 흩어놓으니
황토방에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이렇게 예쁜 걸 이제야 치웠구나
자개장의 진가는 지난 초가을 때아닌 긴 긴 장마때
트렁크나 일반 목재서랍에 넣어두었던 옷은 곰팡이도 피고
퀴퀴한 냄새에 쌀벌레가 고치까지 지어놓았는데
이중문으로 된 삼층장 속의 옷은 말짱했다
자개장은 황토방에서 더욱 빛난다
장인의 손에 하나 하나 올박혀 빛나는 꽃이며 구름이며 나무,사슴,
그 반짝이는 겉모습보다
상큼하게 보관되었다가 마주하는 새 계절에 입을
내 식구들의 정겨운 옷들을 챙기면서
한 세대전 누군가 애지중지 사용했을 삼층장
이렇게 내 방에 들어와 앉은 것도 참 고마운 인연이다
흙집은 자개장의 그 싫은 냄새도 다 흡수한다
오래된 고가구라 냄새가 다 날아간 걸까..
그래 오래 묵은 것은 참 좋은 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