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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떻게 살아가렵니까?
말씀: 갈라디아서 1장 11절 – 15절 말씀.
가시고기 수컷은 암컷이 낳은 알이 부화할 때까지 적들로부터 그 알을 지킵니다. 산소 공급을 위해 지느러미를 쉴 새 없이 움직입니다.
밤에 잠도 자지 못합니다.
여러 날을 굶습니다. 알이 부화될 무렵 지치고 쌓인 피곤으로 숨을 거둡니다. 그 아비고기는 새끼들이 부화되고 있는 그 앞에서 숨을 거둔 상태입니다.
알에서 깨어난 수백 마리의 새끼들이 죽어 있는 자기 아비고기의 살을 먹으면서 자랍니다. 가시고기의 아비는 죽어서 까지도 수 많은 새끼를 살립니다 (국민일보, 최낙중).
비록 가시고기의 삶이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많은 감동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 가는 정말로 중요합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감동을 주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아보려면, 그 사람의 장례식에 가보면 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는 짧은 인생 살아가면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되겠습니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감동적인 삶이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복음을 전파하며 살아갑니다.
갈라디아서 1장 11절 말씀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음은 또한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그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유대교와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유대교는 종교적인 모든 것을 랍비들의 전통 즉 선생으로부터 전해 받습니다. 그래서 구전으로 물려 받은 랍비들의 전통을 랍비가 받아서 가르치는 그런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바로 유대교였습니다.
그런 유대교의 교육을 받은 모든 유대인들을 향해서, 반박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다른 유대인들처럼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랍비로부터 그들의 종교가 전해지니까 – 전해 내려오면서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변질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기 시작합니다.
마가복음 7장 13절 말씀에,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전하는 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로마서 2장 29절 말씀에,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하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그 복음은 오직 하나님에게로부터 왔습니다. 그래서 그 복음은 사람에게 칭찬받고,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전하는 그 복음은 오직 하나님께 칭찬 받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그런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수감 되어 있을 때에도 복음을 부끄러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더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 말씀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그 복음은 바로 하나님에게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니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이 그의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온갖 어려움과 역경 가운데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파하게 된 것입니다.
과연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복음을 전파하며 달려가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과는 전혀 상관 없이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 가고 계십니까?
복음을 들고 달려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회복의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살리는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생명의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영원한 생명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 받은 그 복음은 우리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능력을 발하고 있습니다. 내가 있는 그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복음을 비추는 그런 귀하고 복된 인생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 교회를 세우며 살아갑니다.
갈라디아서 1장 13절 말씀에,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유대교의 전통에 따라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고, 감옥에 넣고, 채찍질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예를 얻고, 부를 얻고, 사회적 지위를 얻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성공을 위해서 구약 성경의 말씀을 따르기 보다는 오히려 유대교의 전통과 관습을 따랐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말씀이 그들의 삶 속에서 폐하게 되고, 결국은 유대주의자들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옥에 가두고, 때리고, 심지어는 죽이기 까지 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특별히 선택된 민족이었고, 사랑받던 민족이었으며, 약속의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의 약속에서 유대인들을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지켜주신다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특별한 만남이 있었던 민족들.
하나님과의 특별한 사랑을 나누었던 민족들.
하나님과의 특별한 교제를 나누었던 민족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기도를 소홀히 하기 시작합니다. 외식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보다는 유대교의 전통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보가는 그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그들의 생각이 그들의 삶의 방식이 그들의 습관이 그들의 생활 방식이 하나님 말씀보다 더 중요해지기 시작합니다.
말씀을 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옥에 가두고, 때리고, 죽이기 시작합니다.
말씀을 가까이하던 사람들이 말씀을 멀리하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비극입니다. 말씀을 따르던 사람들이 말씀을 멀리하면서 겪게 되는 비극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던 사람들이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겪게 되는 비극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말씀 속에 거하고 계십니까?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가까운 교제를 하시므로 말미암아 교회에 해를 끼치는 인생이 아니라 교회를 세워 가시는 귀하고 복된 인생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말씀의 능력이 살아서 역사하는 그런 믿음의 성도님들을 통하여 교회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말씀과 예배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런 믿음의 성도님들을 통하여 교회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내가 맡은 그 모든 사명을 감당하고 계시는 그런 믿음의 성도님들을 통하여 교회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날마다 날마다 교회를 세워가시는 인생이 복된 인생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교회를 핍박하고, 유대교의 전통을 따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니까 그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교회를 잔해하던 행동을 하던 사도 바울은 이제는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개척하고, 하나님께서 피로사신 교회를 위해 그의 인생과 그의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빌립보서 4장 8절-9절 말씀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교회에서 거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 처럼 교회를 세우는 그리고 교회에서 꼭 필요한 주님의 귀한 일꾼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 소명에 응답하며 살아갑니다.
갈라디아서 1장 15절 말씀에,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죄가 많은 자신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시고, 나를 부르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전에 인생의 잘못된 길로 달려 가고 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참된 길을 찾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의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바른길로 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늘 응답하시고, 순종하시는 모든 성도님이 복된 인생인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일꾼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사람을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감당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인생을 살아가시렵니까?
이사야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이사야 49장 1절 말씀에,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선지자로 불러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사야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하에 이사야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이사야가 이 땅에 나오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불러 주셨다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지자로 불러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평생을 살아갔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소명에 응답하며 달려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예레미야 1장 5절 말씀에,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이사야와 똑 같은 고백을 합니다. “내가 엄마 뱃속에 있기 전에부터 하나님께서 나를 아셨고,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구별하였고,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라는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예레미야는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로마서 9장 11절 말씀에,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불러 주셨습니다.
로마서 8장 30절 말씀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로마 교회 성도님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실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 성도님들은 소명을 받고, 그 소명을 감당하며 달려가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정하여 주셨고,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의롭게 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의롭게 하신 우리들을 주님 오시는 그 날에 영화롭게 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놀랍고, 원대한 계획 가운데 태어났고, 그 계획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성취되어가는 귀하고 복된 인생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