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주모프스키> 4중주곡은 빈 주재 러시아 대사인 안드레이 라주모프스키 백작의 이름을 딴 곡이다. 백작은 베토벤에게 러시아 선율이 들어간 4중주곡을 의뢰했다. 라주모프스키 백작 자신도 대단한 연주가로 제2바이올린을 맡아 4중주곡 연주에 참가하곤 했다. 소위 베토벤의 ‘중기’에서도 전반에 작곡된 4중주곡들은 자원을 극단적으로 아끼고 기존의 악장들을 더욱 발전시키거나 혹은 파괴시켜 나간다. 가령 세 번째 곡은 느린 악장으로 시작하는데, 이것은 그가 후기에 작곡한 4중주곡에서 다시 시도한 장치이다.
당시의 청중들이 이 곡을 듣고 탄성을 지르기보다 어리둥절해 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첫 번째 곡은 길이가 유난히 길고 1악장은 악기들이 논쟁이라도 벌이듯 복잡하고 정교한 곡이 이어지므로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이어지는 스케르초도 구조가 복잡하고 곡의 분위기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속속 변한다. 베토벤은 첫 두 곡에서는 러시아 민속 음악을 넣으라는 요청을 잘 이행했다. 그런데 세 번째 곡은 러시아 선율 대신 바깥 악장에서 막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