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몸담은 문학 동아리에서 제 법 먼 바깥나들이를 했다. 매달 동읍에 위치한 분재원에 ‘가락문예관’ 간판을 걸어놓고 문학연수를 가지는 모임이다. 어느 달 나도 회원 한 사람으로 고전 문학에 나타난 선인들의 해학과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동아리 살림을 알뜰히 살아주는 젊은 회원 한 분 친정이 같은 고향 의령이다. 이 회원 고향 마을 근처 문 닫은 초등학교 ‘의령예술촌’ 기획전시 방문행사였다.
예전에는 시골 면 단위 행적구역 안에 초등학교가 서너 개 되었다. 지금은 한 면에 한 개 초등학교도 맥을 잇기 어려운 처지다. 함양 용추계곡엔 폐교가 절이 된 학교도 보았다. 양반이 사는 밀양 폐교는 연극촌으로 바뀌었다. 어느 폐교는 야생화 동호인들이 운동장에 들꽃을 심어 가꾸기도 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마산의 어느 대학에서 분교로 바꾸어 놓았다. 아직도 일부 폐교는 유령의 집과 같은 곳이 더러 있다.
나는 운전을 못하는지라 회장이 운전하는 차에 동승해 창원을 벗어났다. 남해고속도로 가야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법수 지방도를 탔다. 이앙기가 지나간 들판에선 땅내 맡은 모들이 파래져 가고 있었다. 길섶엔 망초 꽃이 망울망울 하얗게 피었다. 연초록 이파리들은 신록으로 더욱 짙어가고 있었다. 오월 산자락 아카시 꽃향기는 가고 어느새 유월 산자락 밤나무 꽃향기가 진동했다. 지금쯤 고향집 마당귀 감꽃은 졌지 싶다.
함안 법수에서 남강을 가로지른 백곡다리를 지나면 의령 정곡면이다. 나는 회장에게 이병철 생가를 들렸다 가자고 제안했다. 마침 의령군수는 서울에서 내려온 단체방문객을 안내하고 주차장으로 나오고 있었다. 우리보다 조금 뒤엔 진주의 어느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풍수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전세 관광버스로 찾아왔다. 나는 삼성그룹 창업자 생가 문간을 지나 사랑채와 안채 사이 뜰을 거닐며 명사의 태실지기를 느껴보았다.
이어 고개 넘어 송산을 지나 평촌으로 가면서 봉황대와 일붕사 실버타운은 차창 밖으로 살폈다. 옛 평촌초등학교는 내 대학 동기생 초임지라 젊은 날 한 번 찾아 온 적이 있었다. 폐교를 예술촌으로 가꾸어 운영하는 의령 예술인들이 자랑스러웠다. 그 예술촌 촌장은 출향인사로 문필가이며 정년퇴직한 교수였다. 사실 우리가 찾은 궁유는 한 세대 전 서울에서 좌천된 우 순경이 저지른 총기사고로 큰 아픔을 겪은 곳이다.
친정마을 가깝다는 인연으로 창원에 살면서도 예술촌 살림을 맡아주는 심성 고운 회원이 있었다. 이 분이 동료 여성회원 몇 분과 마음모아 먼저와 예전 학교 사택이 예술촌 관리동으로 바뀐 자리에서 점심상을 차리고 있었다. 상추쌈에 삼겹살을 굽고 부추전이 나오고 막걸리 반주도 한 잔 곁들었다. 시차가 있었지만 함께한 회원이 열여덟 분이었다. 식사 전후 틈내어 회원들이 출품한 시화와 다른 전시작품들을 감상했다.
교정 모퉁이에 장승을 세우고 원두막이 있었다. 고목엔 그네를 묶어 두었다. 아직도 하얀 페인트가 남은 책 읽는 소녀상과 그보다 더 인상적인 콘크리트 인물상이 있었다. 얼핏 보아 이승복상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단추 옷에 책가방 메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역사 속에 인물이 아니라 근세 인물이지 싶었다. 차례 지내러 큰집으로 가다 눈길에 옷을 벗어 아버지를 구하고 죽은 상주 효자 정재수상으로 어느 예술품보다 빛났다.
우리들은 마당 잔디밭 둘러앉아 시화전 출품작 시낭송을 가졌다. 예술촌에서 가까운 ‘아름다운 시절’ 영화촬영지 벽계유원지와 한우산 걸음은 뒤로 미루었다. 우리들 발길은 부림면소재지 신반정보고등학교에서 가꾸는 들꽃 밭으로 향했다. 그곳 교장을 지내다 지금은 창원시내 학교로 자리 옮겨온 회원이 소개해준 들꽃 탐방이었다. 휴무일임에도 시간을 만들어 우리들을 안내한 들꽃박사가 있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의령 동부는 벽촌이라 교통이 불편하고 산물이 넉넉하지 않다. 그럼에도 예나 지금이나 큰 인물이 많이 나오는 고장이다. 그곳에서 홍의장군 곽재우와 독립운동 자금을 댄 백산 안희제가 태어났다. 안호상 박사와 이극로 선생 고향이다. 대법관과 장성도 더러 나왔다. 요즘 와서 부산교육감 설동근과 정보통신 귀재 진대제가 그 지역 출신이다.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다녀온 아름다운 동행에 내 고향 흙내는 도꼬마리처럼 붙어왔다.
첫댓글 도꼬마리 같이 마음과 마음에 다닥다닥 들러붙어 있는 정이 좋습니다. 수필은 예술촌 게시판으로 모시고 갑니다.
도꼬마리는 한 번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주오돈님의 가락님들... 의령촌 문학기행 잘 역어 주어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