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21. 설교문
탁종 버려진 물건처럼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지라도~
신앙고백
찬송 113 그 어린 주 예수
대표기도 정애자 권사(염성섭 집사)
성경말씀 로마서12:9~21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사무사 무불경 思無邪 毋不敬
헌금 123 저들 밖에 한밤중에
광고 브니엘 아파트 신축을 위해, 요양원 증축을 위해 기도
성탄절예배;성찬식,세례,선물교환,2부-국악공연예정
송구영신촛불예배(31일, 11시30분, 새벽송, 새벽기도회없음)
신년도 예배위원 희망자(기도위원,샤론중창단,회계,재단봉사,방송등)
찬송 121 우리 구주 나신 날
축도 주님, 일생에 꼭 한번은 내 이기심을 버리고 살게 ~
이 세상에
나만 아는 숲이 있습니다
꽃이 피고
눈 내리고 바람이 불어
차곡차곡 솔잎 쌓인
고요한 그 숲길에서
오래 이룬
단 한 번의 사랑
당신은 내게
그런
사랑입니다 / 단 한 번의 사랑, 김용택
언제 저는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을까요?
어제는 종일 3층 커다란 창가에 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햇살이 얼마나 좋던지 봄인 듯 했습니다.
창가에 놓인 화분에 한 겨울인데도 꽃봉오리가 맺혔습니다.
한겨울인데도
햇살은 이렇게 사랑을 꽃피웁니다.
10년을 누워만 계시던 한 권사님께서 휠체어 타고 햇살처럼 다가와
말을 건네며
목사님! 차 한 잔 드시겠느냐 묻습니다.
그러면서
꾸깃꾸깃 호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동전100원을 꺼냅니다.
그러자니
우리 이정숙 부원장께서 목사님! 도와주실 수 있느냐고?
쾌히 따라가
우리 40년을 누워만 사시는 강일권 어르신을 휠체어에 태워 드리고 있는데
강일권 어르신 사모님께서 40년째 찾아 오셨습니다.
물론 우리 요양원만은 아닙니다.
그 분의 인생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꼬작꼬작 싸들고 오신 봉투를 훔쳐보았습니다.
술 한 병에 천 원짜리 오징어 다리가
우리 강일권 어르신처럼 비닐봉지 안에 오그리고 있었습니다.
제 코끝이 찡했지만
웃으며 사모님의 등을 다둑여 드리고
자리를 피해 드렸습니다.
이것이 인생이고 사랑 아니겠습니까?
저와 5년을 함께 사신 우리 김성오 집사께서 자꾸만 쓰러지신다기에
원광대 응급실로 모셨습니다.
밤 10시가 되도록 응급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었습니다.
75세가 되도록 한숨만 보듬고 사시는 우리 김성오 집사님이
응급실 침대에 누워 제 손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며
“제가 목사님 속을 많이 썩혀 드렸습니다.”
그날 밤 얼마나 많이 눈이 내렸습니까?
검은 도로는 이미 빙판이 되었습니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긴장을 하며 겨우 요양원에 왔습니다.
김성오 집사님은 저에게 특별한 분입니다.
저의 첫 목회지의 첫 성도입니다.
그리고 이제 100명으로 성장 했습니다.
바로 한 알의 밀알이 썩으니 30배 60배 100배가 된 것입니다.
우리 김성오 집사님의 공로가 이렇게 큽니다.
감사드립니다.(박수)
건강하게 오래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9절입니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절,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절,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절,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란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절,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4절,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저주하지 말라
15절,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16절,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
17절,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절,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 하라
19절,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절,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절,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오늘 본문이 성경의 한 묶음입니다.
그리고 향기가 물씬 나는 한 아름 꽃다발 같은 말씀입니다.
한 단어로 줄이면 ‘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세상도 온통 사랑타령 아닙니까?
눈을 떠도 사랑
눈을 감아도 사랑
여기도 사랑
저기도 사랑
세상은 온통 사랑타령입니다.
그런데 우리 요양원 어르신들은 모두가 사랑 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이러니irony입니다.
조금만 부스럭부스럭 부댖기셔서 병원 모시고 가면
암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메스로 도려내겠습니까?
그래도 묵묵히 죽음을 견디시는 우리 어르신들을 보면
눈물만 납니다.
저는 우리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이제야
조금씩
사람이 되어 갑니다.
또 한해가 아리게 지나갑니다.
한 해 동안 가슴 저리도록 아팠습니다.
허리가 굽도록 힘들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머루처럼 시큼하기만 했던 제 가슴이
이제 먹포도처럼 검게 멍이 들었는가 봅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 소망입니다.
15절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언제부터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겠습니까?
주님?
정말로
사도바울은 이렇게 살았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16절입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
우리 집에 노랑 감국화가 옹기종기 모여 삽니다.
하얀 눈이 쌓인 눈 속에서도
노랑감국화의 절개節介는 더욱 아름답기만 합니다.
엊그제 TV에서 서울대를 졸업하고도
지리산자락서 40여년을 홀로 산 여인이
언제 70이 넘었는데도
다람쥐처럼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70이 넘은 소녀가 다람쥐처럼 홀로 깊은 산 계곡을 거닐다
꼬구라질 듯 혹한의 절개를 지키며 홀로 핀 한 송이
감국화를 발견하고
안쓰럽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 송이 감국화가 꼭 그 여인을 닮은 듯 했습니다.
사랑은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도 모르는 깊은 산 계곡 이름 모를 바위 밑에서
홀로 피어있는 겨울 감국화처럼 살아도
감국화는 행복할 것입니다.
감국화는 높은 곳도 모르고
그래서 높은데 마음을 둘 필요조차 없지 않겠습니까?(16)
언제 기회가 된다면
단 하루만이라도 찾아가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17절입니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절입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 하라.
우리 모두는 이렇게 살지 못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사랑이
이런 거라면 불가능한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노력해봐야 할 나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새해 목표가 4층 증축을 하여 49인시설로해서
일자리도 더 많이 만들고
우리 가족들에게 더 많은 기쁨을 만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꿈은 내년 하반기에 방송설교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꿈을 나눠 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어떻게 살았습니다.
혹시, 이렇게 살았습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래서 미움과 시기, 질투의 악순환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역사가 증명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잘 되었습니까?
성공했습니까?
지금생가해 보니 옹졸했던 과거가 부끄럽지는 않습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고대이집트에서는 잘못을 하면
뜨거운 숯불을 접시에 담아 머리에 이고 나르는 제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잘못을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20절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아직 미성숙한 제 가슴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살 수 있겠습니까?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20)
어떻게
이렇게 너그럽고
뜨겁게
사랑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라면 이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아가페 사랑 아니겠습니까?
도대체 이 말을 하고 있는 사도바울은
이렇게 살았는지 정말 궁급합니다.
21절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기독교의 시작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터입니다.
기독교 윤리의 핵심이 이런 십자가 사랑이라면
사랑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은 것처럼
죽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사랑 한 번 못해본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이기적입니까?
그런데 거짓말처럼
이렇게 사신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 악한 무리들을 악으로 갚지 않고
치열한 사랑으로
악을 견디며
악에게 지지 않고
묵묵히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시고
죽음으로 이기신 분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을 사랑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엊그제 통진당 해산 판결로 온 나라가 뒤숭숭했습니다.
헌법재판소 박한철 소장께서 판결문 서두에
사무사 무불경 思無邪 毋不敬
생각과 판단함에 있어 간사한 마음이 없고
늘 존중하고 배려하는
무불경毋不敬의 마음을 잃지 않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조목조목 판결문을 읽어 갔습니다.
저는 숨죽이며 TV를 시청했습니다.
무엇이 바른지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사무사 무불경 思無邪 毋不敬입니다.
바로 이 말씀이 아닌가 합니다.
9절입니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절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절입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그리고
12절입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란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그렇습니다.
우리는 소망 때문에 구원을 받습니다.
소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으면 보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보입니다.
이것을 영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믿고 기도하면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다릴 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