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권 화백.코러스
CBS FM 라디오를 듣다가 알게 된 인상적인? 시입니다. "나? 나는 오탁번이다! 어쩔래?" 라고 따지는 구절이 재밌기도 하고 때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굳이 학번을 물어 위 아래나 나이를 가늠하는 일이 별로인 듯 한 기억이 있기도 해서 후에 인터넷에서 다시 찾아보게 된 시입니다. "오탁번 시인님의 학번(學番)에 관하여"라는 시입니다.
갓 제대하고 복학한 어느 학생이
학교 앞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시건방지게 떠드는
옆자리 학생에게 말했다
" 야! 너, 며탁번이야? 위 아래도 업서?"
쓴 소주에 빨갛게 취한 학생이
잠깐 생각에 잠겼다
'흥, 나보고 몇 학번이냐고 물었것다?"
술잔을 단번에 비우고 소리쳤다
"나? 나는 오탁번이다! 어쩔래?"
몇 학번이냐고 따진 학생도
잠깐 생각에 잠겼다
'몇학번? 며탁번? 오탁번?'
으하하하
학생들이 배꼽을 잡았다
"내 학번은 오탁번이다, 왜?"
학생들의 뜨거운 손자국이 묻은
이빠진 술잔들이
멋도 모르고 어지럽게 돌고 돌았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오탁번 시인님의 해피버스데이"라는 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사오정식 대화 같은데 완벽한 소통이 된 재밌고 멋진 시입니데이. >.<
온갖 빛깔 화려한 말들의 홍수 속에서 도리어 말이 장벽이 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까막귀인 할머니와 눈이 파란 서양 아저씨가 어쩌면 가장 완전한 소통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따라 행복해지는 시여서 담아봅니데이~^^"
시골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와 서양 아저씨가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제멋대로인 버스가
한참 후에 왔다
- 왔데이!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말이 영어인 줄 알고
눈이 파란 아저씨가
오늘은 월요일이라고 대꾸했다
- 뭔데이!
버스를 보고 뭐냐고 묻는 줄 알고
할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
- 버스데이
오늘이 할머니 생일이라고 생각한
서양 아저씨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해피 버스데이 투 유!
할머니와 아저씨를 태운
행복한 버스가
힘차게 떠났다
신복순 시인님의 '봄을 빨리 맞으라고 숫자 몇개를 슬쩍 뺏다'는 2월의 마지막 주말입니다.
정월 대보름. 가장 둥근달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밤 9시 30분이라고 합니다. 둥글고 평안하신 시간들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