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6.수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행 13;1~4
*제목; 사도행전강해(21)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1. 지난 주일낮예배 이야기
아무리 많은 기적과역사가 부어져도 “영안”이 없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영안”이란 하나님의 역사를 알아보는 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어리석음과 믿음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찮은 기도(믿음 없이 드리는 기도)를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합시다.
2. 복음이 이방으로 퍼져가다!
13장에서는 복음이 이방으로 퍼져가는 과정의 시작점으로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안디옥교회가 있습니다. ‘1절’을 봅시다.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행 13:1)
여기에 안디옥교회의 중심인물들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 서술에서 독특한 이해가 필요한 것은 바로 “기록순서”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기록순서는 그 인물들의 중요도 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방인으로 복음을 퍼져가는 상징으로서의 교회인 안디옥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역시 “바나바”입니다.
그에 대해서 성경은 매우 많은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행 11:24)이었고,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교회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사람(행 4:36~37)이었고, 안디옥교회의 초대 담임목회자였으며, 초야에 묻힐 뻔 한 사울을 발굴하여 주의 위대한 이방인 선교의 도구로, 또 기독교 신학의 틀잡이로 설 수 있도록 만든 사람(행 9:26~27)입니다. 그가 없었다면 바울도 없었을 것입디다.
그만큼 그는 안디옥교회와 이방선교에 혁신적인 공헌자입니다.
다음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입니다.
‘느게르’는 ‘흑인’(니그로)을 의미하고, 시므온은 유대식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흑인이면서도 유대교로 개종했다가, 다시 예수를 믿게 된 사람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구레네 사람 루기오”입니다.
“루기오”는 라틴식 표현으로 그는 아마 ‘이탈리아’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네 번째로는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입니다. 그는 왕족이었으며, 에서의 후손이고, 분봉왕 헤롯과는 아주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젖동생”)인가 봅니다.
이처럼 이방선교의 상징이요 핵심교회인 ‘안디옥교회’는 다양한 문화와 인종의 결합체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및 사울” 나옵니다.
초창기에 사울은 가장 영향력이 없었던 걸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그의 회심은 의심되었고, 그의 진의를 의심하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울 앞에 “및”이라는 단어를 써서 그리 중요하지 않고, 사람들의 관심 밖의 사람이라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이 헬라식 언어 표현이었습니다.
‘2절’로 이어집니다.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행 13:2)
이런 ‘안디옥교회’가 드디어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해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면 주의 사명인 서로 사랑하기(구제)와 영혼 구원(선교)에 애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절에서 그 준비과정이 기록됩니다.
먼저는 “주를 섬겨”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헬,레이툴게오’로 “예배”를 의미합니다. 모든 교회의 은혜와 섬김의 중심은 바로 “예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에서 믿음을 세워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에 집중합시다! 믿음이 여기서 납니다.
이들은 “예배”뿐만 아니라 “금식”까지 합니다.
“금식”이란 하나님께 때를 쓰는 수단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답임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그래서 집중하겠다는 선언입니다. 금식을 잘못 오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안디옥교회’가 준비되자 드디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사울”을 첫 번째 선교사로 세웁니다.
바나바는 누구입니까? ‘안디옥교회’의 담임목회자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그를 첫 선교사의 우두머리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는 이 선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 교회는 ‘바나바’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진행된다는 것을 선언하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오직 모든 교회와 선교의 주인이십니다. 이것이 사라질 때 교회와 선교를 그 빛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또 사울은 누구입니까? ‘안디옥교회와 교인들’이 아직도 의심하는 사울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들어 사용하시면서 그를 신뢰하시고, 그를 통해 이방 선교의 큰 그릇으로 쓰시겠다는 선언이십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교회와 선교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항상 옳으십니다. 그러니 그를 통해 로마가 무너지고 기독교가 대제국 로마의 국교가 되는 초석을 쌓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3~4절’입니다.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행 13:1~4)
여기에 보면 “보낸다”라는 단어가 3절에 한번, 4절에 한번 나옵니다. 그런데 그 단어가 서로 다르고 뜻도 완전히 다릅니다.
‘3절’의 “보내니라”는 ‘헬,아폴리오’인데 이는 사실 ‘자유케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교회만을 섬기던 그들을 교회를 섬기는 의미에서 자유케 하고, 하나님의 이방 선교를 향해 보낸다는 의미입니다.
‘4절’의 “보내심을”이 우리가 알고 있는 “파송하다”(에크펨포)라는 의미입니다. 즉, 모든 교회의 사역자와 선교사는 교회가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와 사역 그리고 선교사와 사역자들은 이런 마음으로 사역해야 하며, 또 그것이 사실이고, 무엇보다도 교회와 성도들이 이런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야 합니다. 사역자와 선교사는 오직 성령님이 파송하십니다!
3. 정리
교회는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이 모여 주를 섬기는 곳입니다. “다일공동체”(다양성 속에 일치)인 것입니다.
예배가 하나님 만남과 믿음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금식은 오직 하나님만을 따르겠다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인간이 교회와 사역의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교회와 사역과 선교의 중심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래서 항상 옳으십니다.
모든 사역자와 선교사의 파송주는 성령님이십니다. 아멘.
첫댓글 교회는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이 모여 주를 섬기는 곳입니다. “다일공동체”(다양성 속에 일치)인 것입니다. 예배가 하나님 만남과 믿음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금식은 오직 하나님만을 따르겠다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인간이 교회와 사역의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교회와 사역과 선교의 중심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래서 항상 옳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