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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6.25전쟁 피해 규모
이왕준 추천 0 조회 796 14.06.17 03:0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6.25 전쟁의 못다한 이야기들| 기사방 : 2011. 06
김재영 | 조회 191 |추천 0 | 2011.06.30. 23:53

 2011년 6월 25일은 6.25전쟁이 일어난 지 61년 되는 해입니다. 1950년부터 시작된 6.25전쟁은 53년에 휴전을 통하여 막을 내렸지만, 아직 휴전이기에 안심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전쟁 당시의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번에는 6.25전쟁이 무엇이며, 그리고 6.25전쟁에 피해는 무엇이었는지, 이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 후 6.25전쟁의 보상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앞으로 어떤 보상이 추가되어야 할 지 함께 생각을 나누어 봤으면 합니다.

 

 

 

 

 6.25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한국의 상황부터 이해해야할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함으로써 한국은 일본의 불법적인 한국점령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하지만 카이로 회담을 통해서 약속받았던 독립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북쪽은 소련에 의하여, 남쪽은 미국에 의하여 위임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북한을 위임통치하고 있던 소련군은 남북 간의 왕래와 통신을 끊음을 통하여 38도선이 단순한 경계가 아닌 공산권과 자본 권을 나누는 경계선을 만들어버렸습니다.
 이후 소련은 공산화 통일이 아니라면 통일을 받아드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하였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소공동위원회나 남북한 회담 또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1946년 미국은 유엔을 통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하려고 했으나, 소련 군정당국이 북한지역의 출입을 막음으로써 남북한 총선거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1948년 유엔 소총회는 “유엔의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의 선거 실시”를 결의하였고, 그 결과 5월 10일 38도선 이남지역에서만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이때의 선거가 바로 제헌국회의 성립이었습니다. 그리고 7월 17일 헌법을 완성하고, 8월 15일을 대한민국의 건국일로 선포합니다. 이후 북한에서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독립적인 나라로 선포합니다. 하지만 1948년 유엔 총회에서는 “한반도에 존재하는 유일한 합법정부는 대한민국정부”라고 선언하게 됩니다.
 그 이후 남한과 북한은 끊임없는 분쟁을 일으키지만, 전면적인 문제는 일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통일을 위하여 북한의 소련군과 남한의 미국군이 한반도에서 빠짐을 통해서 평화의 기미가 잠시 나타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이 남침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9시경에는 개성, 오전에 동두천, 포천이 함락 당했으며, 26일 오후에 의정부가 함락되었습니다. 28일 새벽 2시 30분에는 시민들이 건너기 위해서 모여 있던 한강대교가 폭파되었고 이때 이미 서울은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상태였습니다.
 7월 14일에는 한국군은 지휘권을 미군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고, 이승만 정부는 대전에서 대구를 거쳐 부산까지 이전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1950년 9월 15일에는 맥아더 원수의 인천 상륙 작전을 통해서 역전의 기회를 얻게 되었고, 9월 28일에는 낙동강 방어선에서 다시 진군을 시작했습니다. 10월 19일에는 휴전선을 넘어 북한의 수도 평양을 함락하고 북한지역의 대다수를 점령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38선까지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38도선을 중심으로 교전을 했으나, 양측에 피해만 늘어날 뿐 전쟁의 진척이 없자, 1953년 7월 27일에는 휴전선을 통한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6.25전쟁을 통하여 피해를 입은 군사들의 수입니다. 우선 국군을 포함한 유엔군의 피해상황부터 확인해볼까요? 국군을 포함한 유엔군의 전사/사망자 수는 178569명입니다. 이중에서 137899명은 국군의 사망자입니다. 전쟁 시작 당시의 국군수가 10만 명이 안됐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한국군의 피해가 엄청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전한 유엔군중 가장 많은 사망자와 사상자를 낸 국가는 미국입니다. 미국은 무려 36940명의 전사자와, 92134명의 부상자라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비록 약간의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미국의 군사동맹이 중요하고 필요한 이유를 적나라게 보여주는 예시이지 않을까요?
 그 외 유엔군으로 군사적인 동맹으로 16개 국가가, 그리고 의료 국으로 5개의 국가가 한국전쟁 당시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희생이 있었기에 현재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감사함을 느끼며, 동시에 외국이 위험에 처했을 때도 우리가 도움을 주어야할 이유가 625전쟁 당시에 우리가 받을 것이 있기 때문에 세계적이 차원에서 보답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에 북한군과 중공군의 피해를 한 번 살펴볼까요? 북한군의 인적피해는 정확하게 북한 측에서 발표한 것은 없지만, 약 60만에서 80만의 희생자가 났을 것이라고 예측되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공군의 피해도 중국 측에서 발표한 수는 약 40만정도의 피해지만 참전 군인수와 예측되어지는 부상자수를 더해보면 약 90만정도가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예측되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을 우리는 자주 놓치고 맙니다. 바로 민간인입니다.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이와 여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남북한 인구가 총 3000만이 되지 않았던 시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민간인 피해자는 250만 정도로 예측되어지고 있습니다. 사망이나 부상 행방불명뿐만 아니라 전쟁당시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아픔을 생각하면 3000만 국민 모두가 피해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6 25전쟁에 참전한 국군에게는 국가 보훈처에서 참전 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대해 줍니다. 참전 유공자가 되게 되면, 대통령 명의 참전유공자증서 수여받게 되고, 참전명예수당 지급받게 됩니다. 수당 지급은 만 65세 이상 되시는 분에만 한합니다. 그리고 돌아가시게 되었을 때도 국가에서 장제보조비를 지급해주는 동시에 영구용 태극기를 증정해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몸이 불편하시게 되면, 전쟁 때문에 입은 부상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보훈병원에 가시면 60% 진료비가 감면되고, 전국 약 400여개의 소에서 참전유공자에게 자발적으로 감면 진료를 실시합니다. 감면진료 병원 명단은 국가보훈처에서 꼭 확인하셔서 할인 받으시길 바랍니다. 게다가 75세 이상의 건강보험 가입자에 한해서는 진료비의 본인 부담액의 60%를 감면해줍니다.
 만약에 안장을 원하신다면 참전 유공자의 명예선양을 위해 국립호국원에 안장해드립니다. 여기서 국립호국원은 국립영천호국원(경북 영천시), 국립임실호국원(전북 임실군), 국립이천호국원(경기 이천시)에 위치하고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참전 유공자에 문화생활을 위하여 이용료를 감면해드리고 있습니다. 밑의 10가지의 이용료는 참전 유공자는 무료이니, 이 글을 보시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나들이 한 번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요? 이용료를 감면해주는 곳은 1. 고 궁, 2. 능 원, 3. 독립기념관, 4. 전쟁기념관, 5. 국·공립수목원, 6. 국·공립휴양림, 7. 국·공립 박물관, 8. 국·공립 공원, 9. 국·공립미술관, 10. 국·공립국악원과 같습니다.

 

 

 

 

 한국 전쟁의 국군에 대한 보상은 부족하지만 국가보훈처에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간인과 유엔군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었을까요? 위의 사진은 625전쟁 60주년 기념 사업회에서 최초로 공개한 한국전쟁 당시의 칼라사진입니다. 위의 글처럼 한국전쟁 당시에 무려 40만이라는 고아들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거의 없었고, 군인으로 돌아가신 부모님을 가진 고아들은 그나마 국가의 지원을 받았지만, 그렇지 못하고 학살이나 행방불명된 부모를 가진 아이들은 국가의 지원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체 살아가고 말았습니다.
 전쟁에서 가장 힘든 것은 민간인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민간인에 대한 보상은 하지 않고, 군인에 대한 보상만 하게 된다면, 만약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다들 국가를 위해서 최전선에서 싸우길 원하기 보다는 자기 가족만 챙기고 도망가기 급급하게 될 것입니다. 군인만 국가를 위해 희생한 것이 아닌 민간인들도 국가를 위한 희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상이 부족한 점은 앞으로 개선해 나가야할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리는 사진은 바로 부산에 있는 재한 유엔 기념 공원입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엔이 인정하는 유엔 기념공원으로써, 한국전쟁당시에 참전한 16개국의 군인과 5개국의 의료팀이 한국전쟁 당시에 사망했을 때 본국에 돌아가기보다는 한국에 묻히길 원하는 수많은 유엔군들이 묻혀 있는 곳입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너무나도 약소국이었기에 이들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13위 안에 드는 경제대국이며, G20의 의장국을 맡기까지 하며, OECD국가 중 하나로써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25전쟁 당시에 도움을 줬던 국가와 유엔 군인에 대해서 보상은 2000년 전후로 시작하여 기념비를 몇몇 군데 세우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서서 유엔군으로 참전하여 사망하거나 부상 입었던 군인들에 대해서 보상을 해주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권익위를 방문한 네티즌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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