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3,14,15일에 제주 강정을 다녀오신 오일창 모이세님의 글을 올립니다.
저는 참여하지 않아 보내오신 사진 중에서 10장 조금 넘게 골라, 보내 오신 글과 함께 올립니다.
글이 조금 길지만 다녀오신 정성을 생각하시어 천천히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
안동교구 사회사목협의회(정의평화위원회, 가톨릭농민회, 생명 환경 연대, 민족화해위원회 협의기구)를 두 차례 거치면서
10월 13,14,15일에 제주 강정 생명평화미사를 안동교구에서 맡고, 가능한 많은 신자들이 참여하기로 하였다.
생명환경연대 모전동 성당 생소모(생명 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모임) 회원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서
30명의 순례단(사제 4명, 수도자3명, 평신도 23명/전체 30명 중 개인사정으로 최종 참여자는 26명임.)이 조직되었다.
13일 이른 아침 문경과 상주를 출발하여 대구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11시에 제주에 도착했다.
미사(오후 4시) 전에 먼저 4.3 평화공원 참배에 나섰다.
기념관에서 영상과 해설을 곁들이면서 제주 4.3 사태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고, 분향소에서 25,000~30,000여 명의 희생자 영령들의 위패를 참배하였다.
첫 날의 생명 평화 미사는 강정 해군기지 건설 공사장 출입문에서 정도영 신부님의(가농 전담 사제, 풍양 성당) 주례로 드렸다.
공사장 출입문 건너편에 천막 성당이 차려져 그 곳에서 미사를 봉헌하지만 일부 신자들은 공사장 입구에 진을 치고 앉아서 미사를 드린다.
매번 미사 때마다 공사 차량의 출입 때문에 수십 명의 경찰이 입구에 진을 친 참여자를 의자 채로 들어서 한켠으로 옮겨 놓고, 경찰이 물러나면 신자들은 다시 진을 치기를 여러 차례 거치면서 미사를 드려야 했다.
미사 후에는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고, 이어서 인간띠잇기 행사를 하였다. 함께 손잡고 춤추고 노래하며 생명 평화를 기원하는 몸짓이다.
미사 후에는 해군기지 건설 공사장이 건너다보이는 강정천 하구(맷부리)를 현지 활동가의 소개를 들으며 돌아보았다.
바다로 흘러드는 강정천, 강정천과 주변 숲을 담고 있는 낯선 바위들(현무암), 평화로운 강정 앞바다와 민망스럽게 어울리지 않는 공사 현장이 가슴을 저민다.
저녁은 강정 평화 지킴이들을 이끌고 계시는 문정현 신부님과 예수회 수사 신부님을 모시고 술잔을 기울이며 강정의 이야기를 들었다.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고 모기가 기승을 부리지만 그래도 숙소는 명색이 호텔이었다.
둘째날, 6시에 일어나 7시에 약천사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 올레길 7코스를 걷는 기대에 부풀어서...
아뿔사 출발 지점으로 잡은 월정포구를 찾을 수 없다. 그곳에 안내자가 기다리고 있다는데...
한참 헤매다가 합류하였고 올레길 7코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숲, 개울, 바위, 바다가 어우러진 올레길이 깊은 감동을 준다.
강정에는 유명한 삼거리 식당이 있다. 강정 생명 평화 지킴이들이 당번을 맡아서 밥을 지어 나누어 먹는 식당이다.
우리도 함께하고파서 강정에 있던 이틀 동안 아침과 점심을 삼거리식당에서 먹었다.(예산을 절약하려는 꼼수가 없진 않았지만..)
식사 후에는 곁에 있는 공소에서 한 시간 동안 문신부님을 모시고 강정의 평화 운동의 의의를 들었다.
신부님은 추상적인 강의를 못하신다. 어느새 자신의 삶을 털어놓고 계신다.
이 땅의 가난한 이웃들의 고통, 생명, 평화가 결딴나는 사태를 겪을 때마다 연민의 마음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결국 그곳으로 가면 떠날 수가 없어서 평생을(2년 후면 금경축을 맞으심) 길 위의 신부가 되고 말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안동교구 신자들이 단체로 참여하고, 미사참례에 그치지 않고 생명 평화 운동에 함께 하려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치하가 늘어지신다.
둘째날 생명 평화 미사는 한결 힘이 솟았다. 안영배 신부님(생평 평화 연대 담당 사제)의 주례로 봉헌하였다.
어느새 묵주 기도 때는 팔을 쳐들게 되었고, 인간띠잇기 때는 몸짓에 힘들이 담긴다.
오후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관광을 나섰다.
먼저 주상절리 관광을 나섰으나 너무 복잡하여 주차장에서 돌아서 대신 군산을 올랐다. 벅적대는 관광지보다 역사적인 군산이 좋구나 싶었지만 내 혼자 생각인지 모른다.
송악산으로 옮겨서 올레길 10코스 탐방에 나섰는데 시간에 쫓겨 한 바퀴 다 돌지는 못하였다.
김대건 신부님 표착지인 용수 성지로 옮기고 일몰을 보려했는데 수평선에 구름이 끼여 장관을 이루는 모습은 볼 수는 없었다.
성지에서도 서둘러 주모경으로 순례를 마쳤다. 저녁 회식에는 회도 나와서 거나하게 한 잔씩 나누었다. 그리고 노래방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셋째날, 또 6시에 일어나 서둘러 짐을 챙겨 강정 공사장 입구로 출근하였다. 매일 7시에 드리는 생명 평화 100배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공소 회장님이(연세 지긋한 자매님) 좋아서 외치신다. "한 달에 두 번씩만 이렇게 많이 모여서 생명 평화를 기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꼬."
식전 남은 시간에 강정천 마을 위쪽 냇길이소를 찾았다.
피곤해서 가기를 꺼리던 자매들이 숲과 바위 속에 신비한 모습으로 숨어 있는 냇길이소를 보고는 연신 탄성을 자아내며 좋아들 한다.
셋째날 미사는 윤정엽(옥산 본당) 신부님 주례로 바쳐졌다. 세 번째가 되면서 이제는 강정의 생명 평화 미사가 우리들에게 힘있게 살아나는 것 같다.
‘강정의 평화’를(미사 때마다 문신부님이 선창하는 현장의 평화의 인사 노래임) 모두들 큰소리로 노래한다.
묵주기도도 힘이 솟는다. 이제는 공사장 입구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마지막 인간띠잇기는 시간이 없어서 함께하지 못하고 서둘러 삼거리 식당으로 갔다.
3시께 비행기를 타고 상주와 문경에 도착하여 헤어졌다. 피로가 밀려와도 흐뭇한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