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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와 방상시
默 土 吳 鍾 洪
가. 여는 말씀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난 뒤에 가장 먼저 인간과 함께 한 동물은 무엇일까, 고고학적 연대 측정을 통해서 밝혀 진 바로는 개다. 개는 야생 늑대에서 나왔는데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오늘날 까지 인간과 생사고락을 함께 해 오고 있다. 북극 지방에서는 최근까지 그리고 지금도 일부에서는 인간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동반자로써 함께 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개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이동, 운반수단으로써 개가 없으면 삶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외에 개는 인간을 지켜주고 외로움을 달래주며 음식이 되어주고 사냥을 해 식량을 구해주는 등 가장 가까이에서 인간과 함께 하고 있다. 이렇게 개가 인간과 하나 되다 시피 하여 태고적 부터 함께 함으로써 개는 인간의 정신세계에도 신앙적 상징물로 새겨지기도 한다. 이와 같이 개는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아픔과 기쁨을 함께하여 왔다. 이 글에서는 개가 최초로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서 길들여져 인간의 손 탄 동물로 함께하였는지 밝히고 개가 가지고 있는 신앙적 상징성을 개 관련 생활 풍습과 '방상시方相氏'를 통해서 알아본다. 아울러 마고할망 여신시대와 관련하여 이 시대에 개가 어떤 기능을 했는지 살펴봄으로써 한겨레 역사의 또 다른 참 모습을 그려 본다.
리조시대 들에서 일을 하고 잠시 새참을 먹는 곳에 개가 냄새를 맡고 있다.
사진:하지홍. 임인학, 한국의 토종개, 주식회사 대원사, 1995
나. 개는 처음 어디서 누가 길들였는가,
단군조선의 후예이자 고구려에서 새끼 쳐 나간 몽골 칭기즈칸의 제국이, 동서 교역로를 개척해 서양을 개화시키기 전까지 서양은 이른바 기독교 암흑시대를 겪고 있었는데, 지상천국이 아닌 ‘지상지옥’을 만들어 야만과 미개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몽골제국이 동양의 선진문물을 서양에 뿌려줌으로서 서양은 비로소 미개에서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하여 이른바 ‘르네상스’라는 인문사회, 자연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게 된다. 이를 토대로 서양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산업혁명에 성공하여 동서양의 판도를 뒤 엎어버리고 우월한 물질문명을 앞세워 세계정복에 나선다. 그 결과 오늘날의 세계는 기독교적 서양 물질문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인간의 모든 영역에서 서양의 표준이 강제되었고 세계역사문화사에도 서양 중심으로 새롭게 짜여 졌으며 모든 것이 서양우월주의가 바탕을 이루게 되었다.
개의 기원에 관한 주장도 서양에 맞추어져 있어 저들이 역사시원으로 잡는 중동에서 개도 최초로 길들여져 세계로 퍼져 나갔다고 하는 것이 서양학계의 주장이며 한국내 제도권 학계의 주류적 견해로 보인다.
(http://www.nytimes.com/2010/03/18/science/18dogs.html)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서양의 양심 있는 기관과 학자들은 개의 기원을 사실대로 밝히고 있다. 서기2002.11.22. 영국의 최대 언론매체인 비비씨(BBC) 방송은 지금으로부터 약 1만5천년에 차이나에서 가까운 동아시아에서 늑대가 개로 길들여졌다고 보도하였다.
(http://news.bbc.co.uk/2/hi/science/nature/2498669.stm)
또한 서기2002.11.23. 호주의 ABC방송은 특집으로 개의 기원(Origin of Dogs)에 관한 보고를 관련기관과 네이처 지를 인용 하여 보도한 바 있다. 폴 타쿤(Pual Tacon)이라는 호주 박물관 연구원과 피터 사볼라이넨 (Peter Savolainen )이라는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인 스웨덴 왕립기술연구원 유전자학 박사를 출연시켜 직접 증언케 하였다. 여기에서 이들은 개는 최초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길들여져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그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5천년전이라고 선언했다(우리역사의 비밀/ 네티즌게시판/ 솔본).
더구나 “모든 개의 조상은 약 10만년전 동아시아의 늑대로 추정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소재 찰스턴 대학 연구팀은 최근 미국과학진흥회(AAAS)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늑대처럼 생긴 한 쌍의 개의 조상들이 최소 10만 년 전 인간의 따뜻한 애정과 쉽게 구할 수 있는 먹이를 찾아 인간의 사육권 아래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이 원시 개들은 인간을 보호자, 부양자 또는 최고의 친구로 삼았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인간의 사냥을 도왔다. 연구팀의 노린 누넌 박사는 "동아시아에서 이들이 길들여지는 일련의 과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보통 생각하기보다 더 오래 전, 즉 최소 10만여년 전의 일일 것" 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 2004.2.16).”
이와 같이 개의 기원이 동아시아라는 것을 외국의 공신력 있는 기관들이 인정을 하고 있다. 최근의 기사에서는 동아시아기원설을 부정하는 듯한 내용도 있지만 그 기사에서도 개의 기원이 동아시아라는 기본적인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todo=view&atidx=33263)
그렇다면 개의 기원이 단지 동아시아라는 사실만 보도 되어 있고 한반도 개의 기원에 대한 유물 유적은 없는 것일까, 이미 서기1970년대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대한민국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석장리의 이른바 구석기 유적에 개를 돌로 조각해서 세워둔 유물을 비롯해 고래, 멧돼지 등 조각이 있었으며, 자갈에 사람, 새 ,사슴 같은 동물을 새긴 선각화가 나왔다. 이것은 이들이 신앙생활을 하였고 동물숭배풍습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일정한 주술신앙을 말하는 것이고 결국 무당놀이의 흔적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개석상을 집 앞 문 정면에 심어 놨다는 것과 이 석상이 집을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과 악귀를 막아주는 부적역할을 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오늘날 동네 어귀에 있는 장승과 같은 기능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은 약70만년전의 전기 구석기층과 중기 구석기층 그리고 후기 구석기 층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후기 구석기층의 유적이 방사성 절대 연대측정 결과 약 3만년에서 2만년전의 것이라고 하며 개석상 유물은 이 후기 구석기 층에서 나왔는데 약 2만 8천년전의 것이다(변태섭, 한국사통론, 삼영사, 1998. 27~33쪽 / 공주석장리 박물관 누리집 대문글). 이는 최소한 3만년전에 개가 이미 인간정신의 신앙적 숭배대상으로 진화되어 활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처음 개가 길들여져 우리 겨레의 생활에 들어온 시기는 훨씬 이전의 시기일 것이다. 어쩌면 수십 만년 전부터 이미 개가 한겨레와 함께 생활해 왔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외국기관의 보도에서는 40만년전을 이야기한 것도 있다.
(연합뉴스,2009.08.04.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todo=view&atidx=33263)
이와 같이 가장 멀리는 전기 구석기 70만년전에 이미 한반도에서는 개가 길들여져 한겨레와 함께 생활하였고 3만년전에는 신앙적 상징으로 활용되고 있었음을 짐 작 할 수 있다. 그리고 개 관련 풍속과 유적은 이후에 구석기 말기와 신석기시대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의 동래 패총에서는 개뼈다귀가 발굴 된 바 있다. 또한 통상 7~8천년전의 신석기 시대로 알려진 조개무덤인 패총에서 개뼈가 발굴된다. 경남 김해 조개무덤과 전남 해남의 군공리 패총에서 발굴된 개뼈가 대표적인 사례다(하지홍, 김경석, 한국토종개의 기원에 관한 고찰, 한국축산지, 1998, 702쪽). 그리고 경남 울주의 이른바 반구대 암각화에도 개를 조각한 그림이 보인다. 단군조선을 이은 부여조선에는 관직 이름으로 저가猪加, 구가狗加, 마가馬加, 우가牛加를 두고 있는데 여기에 개를 나타내는 구가狗加가 나온다. 또한 열국시대(삼국시대)의 유적으로 알려진 경산시 임당동 제2호분에서 순장된 개뼈가 발굴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경주 건천 지방에서는 김유신 장군이 삽살개를 군견으로 전장터에 데리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한다. 이외에 삼국사기 고구려조에는 ‘유화부인’의 이야기에서 유화부인이 낳은 알을 개에게 주었는데 먹지 않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한 일본인들은 서기53년대 백제에서 수많은 사냥개를 수입해 갔다(이상오, 수렵비화, 박문사, 1971.-하지홍. 임인학, 한국의 토종개, 주식회사 대원사, 1995., 9쪽에서 재인용) 그리고 고분에서 나오는 물건, 고분벽화, 신라 토우등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개가 나온다. 이처럼 한반도에서는 전기 구석기부터 열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단절 없이 개는 우리겨레와 함께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개를 길들여 사육한 최초의 겨레는 한반도의 한겨레라는 것이다.
다. 한국인과 개 그리고 마고할망
우리 겨레는 사람이 낳고 자라는 동안의 삶을 여러 가지로 상징화 하여 뜻을 새겨 놓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띠’로 대표되는 천간지지天干地支(10간 12지)라는 것이 있다. 하늘과 땅의 원리와 여기에 인간을 넣어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이것은 삼태극 사상과도 통한다. 하늘 땅 사람이라는 3개의 존재가 하나로 어우러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땅을 상징하는 12지신에는 자子=쥐, 축丑=소, 인寅=호랑이, 묘卯=토끼, 진辰=용, 사巳=뱀, 오午=말, 미未=양, 신辛=원숭이, 유酉=닭, 술戌=개, 해亥=돼지가 있다. 이 12지신은 동서양의 상징수, ‘12’의 뿌리기도 하고 오늘의 세계를 있게 한 1만년전의 한국문명, 12연방국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 술戌=개가 나온다. 인간이 상징을 만들면서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볼 때 개는 인간 삶에서 가장 먼저 상징화된 동물일 것이다. 길게는 70만년전의 전기 구석기 문화로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개와 인간의 인연은 개국신화(단군신화)에 나오는 곰熊보다도 오래된 동물신이었을 것으로 본다.
이러한 개는 우리겨레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며 수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개도 주인은 알아본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등의 수많은 속담이 전해 오기도 하며 충성스런 동물의 모습으로 나오는 가하면, ‘개새끼, 개판, 개망나니, 개꿈, 개수작, 개팔자가 상팔자, 개소리’ 등 비천하고 더러운 모습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누렁이개는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여 농촌에서 많이 길렀다. 그리고 복날에는 개를 잡아먹는데 이는 개가 보양식으로 쓰였음을 말해준다. ‘동의보감’에는 ‘개고기가 위장을 튼튼하게 하여 양기를 복돋운다.’고 하며 리조실록에는 ‘여름에 개고기를 삶아서 먹는 것을 가장家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경향신문, 2006.1.1.).
1. 일제, 한국 개 씨를 말리다.
그런데 이러한 한국인과 개의 역사가 일대 위기를 맞은 시대가 있었으니 왜구침략기, 일제의 한국 개 말살책동이었다. 일제는 한국을 완전히 일본의 일부분으로 빨아들이기 위해 우리의 역사문화유산 등 건드리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할 만큼 철저히 한국을 지우는 말살만행을 저질렀다. 그 중의 하나가 한국 개 때려잡기다. 일제는 서기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차이나 본토는 물론 동남아 그리고 태평양으로 침략전쟁을 확대해 갔다. 이렇게 되자 자연히 군수물자로 피혁과 모피의 수요가 빠른 속도로 늘어났고 한국의 개에 주목한다. 삽살개 같은 경우는 털 복숭이라고 할 만큼 털이 많아 각종 방한복을 만드는데 중요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일제는 서기1940.3.8. 조선총독부령 제26호로 ‘한국내의 개 가죽 판매 제한령’을 내리고 조선 견피 수집을 국가 정책 사업으로 추진한다. 그리고 ‘조선 원피 판매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한국 개를 때려잡는 부서인 ‘도견부屠犬部’를 설치하여 왜구들의 개와 닮아 보호하던 진돗개나 집안에 묶여있는 개 외에는 모조리 때려잡았다. 그 수가 1년에 적개는 10만마리, 많을 때는 50만마리나 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우리 한국의 토종개는 거의 떼죽음을 당해 멸종위기를 맞는다(하지홍. 임인학, 한국의 토종개, 주식회사 대원사, 1995. 14쪽, 59쪽).
그러나 천만 다행스럽게도 8.15. 정치적 광복 뒤에 몇몇 깨어있는 개 관련 학자들의 노력으로 한국의 토종개가 부활한다. 그 대표적인 개가 삽살개다. 이하에서는 현재 살아남은 한국의 대표적인 토종개로 제주개, 진돗개, 삽살개, 풍산개를 소개하고 개와 관련된 이야기 세 편을 소개한 후, 무당놀이 신화에 나오는 개 관련 이야기를 통해서 개가 우리의 정신문화에 어떤 뜻을 갖고 있는지 살펴본다.
2. 한국의 토종개
- 제주개
제주개는 서기1960년대 까지만 해도 완전히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서기1970년대 초 순종의 제주 토종개가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고, 서기1986년 제주 축산개발사업소에서 제주 모든 지역을 구석구석 수색하여 제주시 삼양동에서 제주개 한 마리를 찾아냈는데 이는 대학의 교수진과 마을 노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 뒤 제주 개를 몇 마리 더 모아 제주토종개 원형복원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제주 개는 저항력이 강하고 행동이 민첩하고 영리해 사냥을 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꿩이나 노루 오소리 사냥을 잘하는데 오소리를 사냥할 때는 굴까지 따라 들어가 사냥을 한다고 한다(하지홍. 임인학, 한국의 토종개, 주식회사 대원사, 1995. 9~13쪽).
제주개
사진:하지홍. 임인학, 한국의 토종개, 주식회사 대원사, 1995
- 진돗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진돗개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그 만큼 한국개 하면 진돗개로 대표될 만큼 진돗개는 유명하다. 이러한 유명세 때문인지 진돗개의 원래 고향이 어디냐를 두고 의견이 여러 가지로 나뉘고 있다. 송나라 표류견설, 몽골견설, 리조시기 군마 목장용 몽골견 수입설, 전통 토종견설이 있다(하지홍. 임인학, 한국의 토종개, 주식회사 대원사, 1995. 89~90쪽).
그러나 개의 기원이 한반도라고 볼 때 진돗개의 원래 고향도 한국이라고 본다. 전통 토종견설에 따르면 석기 시대부터 사육된 한국 전통 토종개가 진도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해서 토착개로 정착했다고 한다. 석기시대라고 하는데 본 글에서는 전기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시기부터 길들여진 것으로 본다.
진돗개
사진:하지홍. 임인학, 한국의 토종개, 주식회사 대원사, 1995
진돗개는 한번 주인은 영원한 주인으로 섬기는 충직성을 보이며 그래서 다른데 팔아도 줄을 끊고 옛 주인집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얘기가 들려오기도 한다. 자유당 말기에 진도에서 군용견으로 강원도 전방에 팔려간 개가 한 달 만에 옛 주인집으로 돌와 왔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해남에 팔았던 개가 목줄을 끊고 옛집을 찾아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진돗개는 용맹하다는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산속에서 멧돼지와 맞붙어도 결코 겁먹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야생동물을 한번 물면 놓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개들과 싸울 때도 자신과 덩치가 훨씬 큰 개에게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일본사람이 한국에 왔다가 호랭이를 잡아 일본으로 가져가기 전에 호랭이 식량으로 진돗개 세 마리를 넣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보니 호랭이는 죽어있고 진돗개는 상처투성이가 되어 살아있었다고 한다(하지홍. 임인학, 한국의 토종개, 주식회사 대원사, 1995. 89~104쪽).
서기2011.4. 어느 방송사의 ‘동물농장’이라는 과목에서는 네눈박이를 한 ‘칸’이라는 이름을 가진 검은색 진돗개와 ‘베컴’이라는 이름을 가진 서양개가 맞붙어 싸우는데 진돗개가 훨씬 작은데도 지지 않고 베컴을 사실상 제압하는 것을 보았고, 서양개 ‘베컴’이 훨씬 상처가 많고 깊었다.
진돗개는 또한 탁월한 사냥능력을 갖고 있다. 외국 개와는 달리 특별히 훈련을 거치지 않고도 수렵을 잘 한다고 한다. 태어나서 5개월 정도만 되어도 야생동물 냄새를 정확히 맡는 다고 하며, 1년이 되면 산짐승을 쫓아가 잡으려고 한다. 몰이꾼이나 총 없이도 진돗개 하나만 가지고도 노루나 꿩 산토끼 등의 야생동물을 잡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또한 진도에 풀어놓고 기르다 보니 특별히 끼니를 충분히 주지 않아도 지들이 알아서 사냥해서 부족한 먹이를 자체 해결할 정도라고 한다. 이러한 진돗개는 백제시대에 일본으로 무수히 건너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아키다, 시바, 기슈, 홋카이도, 시코쿠’ 개 등이 진돗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하지홍. 임인학, 한국의 토종개, 주식회사 대원사, 1995. 89~104쪽).
- 삽살개
삽살개는 일제의 한국토종개 씨말리기 만행이 있기 전까지 온 나라에 골고루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하지홍. 임인학, 한국의 토종개, 주식회사 대원사, 1995. 57쪽). 삽살개는 다른 개와 다르게 긴 털로 온몸을 덮고 있다. 특히 머리털이 길어 눈을 덮고 있어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잘못 생각하면 외국에서 들어온 애완개로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한국 개와는 완전히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다. 이 삽살개는 ‘한번 정 준 주인은 잊지 못하여 해질녘이면 동구 밖까지 나와서 옛 주인을 기다린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이 많은 개로 알려져 있다.
황 삽살개
사진:하지홍. 임인학, 한국의 토종개, 주식회사 대원사, 1995
또한 이 개는 다른 개와는 달리 귀신을 보고 악귀를 쫓아내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악귀 쫓는 이야기나 귀신을 본다는 이야기가 삽살개에게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삽살개가 보통 개와는 다르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 삽살개는 일제가 가장 많이 때려잡은 개중의 하나라서 8.15. 정치적 광복이후 멸종된 것으로 알려 졌다. 그러나 다행히 깨어있는 몇몇 학자들에 의해서 경주와 강원도 깊은 곳에서 순수하게 남아 있는 삽살개를 찾아내어 마리수를 늘리는데 성공한다(하지홍. 임인학, 한국의 토종개, 주식회사 대원사, 1995. 44~83쪽).
- 풍산개
풍산개는 북한지역의 대표적인 토종개다. 함경북도 풍산 지방에서 길러진다고 해서 풍산개로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이 개는 개마고원이나 백두산 고원지대에서 화전민이나 사냥꾼이 맹수 사냥 수렵개로 이용했다고 한다. 풍산개는 호랭이도 사냥한다는 말로 유명하다. 그 만큼 용맹스럽고 몸놀림이 날쌔 맹수사냥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짖는 소리가 다른 개와 달리 우렁차고 사냥감을 발견하면 절대 놓치지 않는 다고 한다. 자기보다 훨씬 몸집이 큰 독일산 세퍼드와 싸워서 이기고 야생 멧돼지를 추적하여 공격하는 모습이 북한 방송에서 소개되었다고 한다. 옛날 함경북도 주을에서 살고 있던 ‘야곱스키’라는 백인계 러시아사람이 풍산개 여러 마리로 호랭이와 곰을 사냥했다고 한다. 휴전선 철책에는 북한 인민군이 풍산개를 군견으로 배치해 놓았다고 한다(하지홍. 임인학, 한국의 토종개, 주식회사 대원사, 1995. 9쪽).
풍산개
사진:하지홍. 임인학, 한국의 토종개, 주식회사 대원사, 1995
이와 같이 한국의 토종개는 외국처럼 수많은 종을 교접 개량하여 우수종자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스스로 생겨나 외국개의 우수한 종자와 같거나 더 뛰어나다. 개가 짐승의 왕이라고 하는 호랭이까지 사냥한다거나 호랭이를 물어 죽였다는 이야기는 한국에서만 있는 일로써 외국에서는 그런 사례가 없는 것으로 본다. 이것은 한국의 개가 유전적으로 가장 우수하게 진화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써 세계개의 조상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특징이라고 본다.
3. 한국의 충성스런 개 이야기
리씨조선 중종 초에 전라감사를 지낸 양촌공의 충성스런 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그가 감사를 지낼 때 토종개 한 마리를 길렀는데, 이 개가 워낙 영리하여 주인의 신변을 지키는 것은 물론 크고 작은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당시 한양과 지방간의 문서수발은 역마에 의존하고 있었으나 양촌공은 급한 전갈이 있으면 항상 그의 개를 이용했다.
공문서는 입에 물리고 목에는 엽전을 넣은 전대를 달아주어 배가 고프면 주막에 들러 밥을 얻어먹게 했는데, 어찌나 영리한지 밥값 이상을 꺼내 가면 으르렁거려 주막 주인들이 이 개는 사람처럼 대우를 했다고 한다. 양촌공이 어느 날 급한 일이 있어 임신 2개월의 산기가 있는 이 개를 한양으로 심부름을 보냈다. 개는 돌아오는 길에서 아홉 마리의 새끼를 낳게 되었고 주인이 살고 있는 감영까지 한 마리씩 차례로 나르다가 아홉 번째 새끼를 나르고는 그만 탈진하여 죽고 말았다. 자신의 잘못으로 개가 죽었다고 자책하던 양촌공은 석공으로 하여금 견상(犬像)을 조각하게 하여 집 뜰에 두고 추모했는데, 양촌공 사후 후손들이 양촌공 장려비를 세우고 그 옆에 견상을 두어 주인과 개간의 충절을 기렸다고 한다.”
다음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술 취한 주인을 불길의 위험에서 구하고 개는 죽은 이야기이다. 고려시대 최자(崔滋)가 지은 「보한집(補閑集)」에 기록된 오수리의 의로운 개에 대한 전설이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기록에 의하면 김개인(金蓋仁)이라는 사람이 장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만취하여 집으로 돌아가던 중 풀밭에 누워 잠이 들었다. 이때 인근에서 불이나 김개인에게 불길이 번지자 개는 냇가에 가서 몸을 적시어 주인 주위의 풀에 물기를 배이게 하여 근방의 불길을 잡았으나 정작 자신은 불길에 시꺼멓게 그을어 죽고 말았다.
김개인이 깨어나 이 사실을 알고 노래를 지어 슬픔을 달래고 무덤을 만들어 장사지낸 뒤 이곳을 잊지 않기 위하여 무덤 앞에 지팡이를 꽂아 두었다. 얼마 후 지팡이에 싹이 돋기 시작하여 하늘을 찌를 듯한 큰 느티나무가 되었다 한다. 그 때부터 이 나무를 오수라고 했으며, 마을 이름도 오수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현재도 전북 임실 오수리 마을에 개무덤과 비석이 전해진다(노컷뉴스, 2006.1.3.).”
이러한 애절한 개 이야기는 한국인과 개가 얼마나 가깝게 지냈고 삶을 함께 하였는지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것이다. 최근에는 다음과 같이 개가 사람을 구한 이야기가 방송을 탓다.
- 민이개 생명은인
서울방송, 동물농장편, 2011.3.6.
어부 박우진(고윤숙 아내)은 서기2008.7. 냉동 창고에 들어가서 작업을 하던 중에 냉동 창고의 문이 닫혀 버렸다. 평소에는 그렇게 문이 닫혀도 안에서 열수 있는 장치가 있어 열고 나가면 되었다. 그런데 태풍으로 그 장치가 부서져 안에서는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냉동 창고의 문이 워낙 두꺼워 안에서 아무리 크게 소리 질러도 밖에서는 잘 들리지 않았다. 특히 어촌이라 사람도 대부분 밭으로, 바다로 일 나가서 없었다. 아무리 안에서 두드리고 소리쳐도 알 수 있는 사람은 주위에 없었다. 몸은 점점 차가워져 굳기 시작했다. 창고 안은 영하30도였지만 체감온도는 영하50도였다. 2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그래도 박우진은 죽을 힘을 다해 문을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외쳤다. 이 때 박우진이 키우던 ‘민이’라는 개가 이 소리를 듣고 냉동 창고 문 앞에 왔고 안에서 나는 다급한 소리를 듣고 주인임을 알아 차리고 짖어대기 시작했다. 민이 개가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신호를 실어 짖어 대니 마을에 있는 다른 개들도 이 개의 짖는 소리에 맞춰 같이 위험을 알리는 소리로 크게 짖어 댔다. 이때 밭에서 일하던 한 아주머니가 개들이 짖는 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너무 이상하여 짖어대는 곳으로 갔다. 냉동 창고에 까지 왔고 민이 개가 바라보고 짖어대는 냉동 창고 문 앞까지 가까이 다가가서 안에서 소리가 사람 소리가 나는 것을 알고 냉동 창고 문을 열어 박우진을 구해 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개는 귀가 고도로 발달되어 인간이 잘 못 듣는 소리도 들을 수 있으며 사람의 목소리에 실린 감정까지도 잡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짖을 때도 여러 가지 감정을 실어서 소리 낼 수 있다는 것이다.
4. 일본의 하늘개(천구)신과 오키나와의 사자개
일본은 전 지역에 걸쳐 단군조선의 역사문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곳이라고 할 만큼 우리 상고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 개와 관련된 흔적을 살펴본다. 지금 일본이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우기는데 발판이 된 곳은 독도와 가장 가까운 시마네현(島根縣)이다. 그런데 이 시마네현의 이즈모(出雲)라는 곳에는 한국과 역사문화적으로 아주 친근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
고려역과 장승
사진: 단군기행,박성수,교문사,1988.
고구려 왕족, 약광 若光의 59대 후손이 이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어느날 갑자기 해상이 시끌시끌하여 사람들이 바닷가로 달려가 보았더니 여덟 개의 큰 돛을 단 배가 정박, 선상에 한 노인이 버텨서며 말하기를 ‘너희들은 들어라. 우리는 고려국에서 왔다. 너희들이 지금 우리에게 귀의하면 내가 너희 마을의 수호자가 되어 너희 자손을 번창하게하리라’라고 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오이소’라는 ‘어서오십시오’의 경상도 사투리로 지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오이소’라는 고려 신사에서 해마다 여름 잔치 때 배 두척을 바다에 띄워 신에게 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이곳의 역 이름도 ‘고려역’이고 역 앞에는 ‘천하대장군’이라고 쓰여진 장승이 버티고 있다. 또한 이 이즈모 신사를 보호하는 뒷 산이름이 팔운산八雲山이라고 하며 여기에 제단이 있다고 한다. 8이라는 숫자는 부도지의 마고삼신과 관련하여 세상만물을 낳은 ‘8려의 음’과 통하는 숫자이다. 그리고 이 이즈모 신사에는 무당(일본식 이름 미꼬)들이 있는데 신악무를 출 때 무당이 방울이 달린 나무를 들고 춤을 추며 세 바뀌를 돈다. 이것은 우리 옛 마한의 제천행사, 소도문화와 닮아 있다. 또한 무당은 춤을 추며 한번 돌 때 마다 8운산 방향에서 방울을 울린다. 이것은 부도지의 마고신화에서 나오는 ‘8려의음’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똑 같다. 무당은 머리에 ‘쪼오쪼오’라는 하얀색의 댕기를 달고 있다.
일본 무당, 미코가 방울달린 채를 들고 춤을 추고 있다.
사진: 단군기행,박성수,교문사,1988.
그런데 여기에 개와 관련된 지명과 이야기가 있다. 산 이름이 ‘하늘개’를 뜻하는 천구산天狗山이고 이 산에 있는 신사 즉 우리 한국식으로 산신당의 이름이 웅야熊野다. 이 역시 우리의 개국신화(단군신화)의 곰과 닿아있다. 이 천구산을 ‘하늘 궁궐’을 뜻하는 천궁산天宮山이라고도 하며 이 산 꼭대기에는 아주 큰 3개의 조각바위가 있고 여기에는 금줄이 둘러 쳐져 있다. 해마다 5월 4번째주 일요일에는 이 천구산을 여는 제를 올린다고 한다(단군기행, 박성수, 교문사, 1988. 192~195, 216~221쪽).
하늘개산을 뜻하는 천구산의 삼신바위에 금줄이 쳐저있다.
사진: 단군기행,박성수,교문사,1988.
하늘개산이 곧 하늘궁산이고 여기에 3개의 바위가 있다고 하며 이 산에는 곰을 상징하는 웅야신당熊野神堂이 있다는 것이다. 산꼭대기에 하늘신이 내리고 이것은 개로 상징되기도 함을 알 수 있다. 개가 하늘신이 된다는 것은 개의 신성함과 그 상징성을 암시한다. 천상에 있는 개를 뜻하니 개가 곧 하늘신임을 말하고 있으며 이 산에 있는 산신당의 이름이 곰이고 더구나 3개의 큰 바위까지 있다고 한다. 이는 삼신사상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곰 여신이며 마고삼신의 여신임을 가리키고 있다. 결국 개와 곰 그리고 마고삼신은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 마고삼신과 개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이 일본의 이즈모신사와 연관된 지명과 이야기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오키나와의 신령스런 산 입구에 세워진 고려시대의 사자개
사진: 단군기행,박성수,교문사,1988.
한편 일본의 최남단 영토 오키나와에도 마을마다 산신인 ‘우타키’가 있고 이 신령스런 산에는 신목神木이 있으며 돌로 쌓은 ‘이베라’라고 하는 제단이 있다. 또한 마을에는 신당이 있고 신당이라는 당집이 없는 집은 삼신석三神石을 모신 경우가 있다. 여기서 굿을 하고 노래하고 놀이를 한다고 한다. 이 곳에서도 마을 신산의 언덕에는 ‘고려견’으로 불리는 석상이 있다. 이 고려개는 통상 '고마이누'라고 부르는데오끼나와 현지 사람들은 ‘시시’라고 하여 사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마을 수호신인 샘이다. 그렇다면 우리 한머리땅 한겨레에게는 마고삼신과 개와 관련된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5. 마고할망과 신령스런 개
리씨조선시대의 작품으로 알려진 ‘숙향전’이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숙향이라는 여자와 이선이라는 남자가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노파, 할머니가 등장하고 숙향이와 이선의 사랑을 맺어주는데 주된 역할을 한다. 이 노파, 할머니가 마고할망이다. 숙향은 이 노파가 하늘(仙境)에서 내려온 마고할망인 줄 모르고 그냥 여느 노파로 알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숙향을 돕던 마고할망이 숙향과의 연분이 다하였다고 하며 떠나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사실은 본디 천태산의 마고할망이었다고 얘기해 준다. 마고할망의 갑작스런 작별인사에 숙향은 이제 누굴 의지하며 살아야 하느냐며 아쉬워한다. 이 때 마고할망은 자신을 대신할 ‘청삽살개’를 두고 갈테니 이 개가 숙향을 도울 것이라고 한다. 이 후에 청삽살개는 숙향과 이선을 오가며 소식을 이어주고 갖은 심부름 해주며 숙향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도와주고 결국 청삽살개의 도움으로 두 사람은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청삽살개는 천상의 세계의 존재인 마고할망을 대신하는 신령스런 존재로 등장한다. 또한 천상과 지상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천상과 지상을 연결해 주는 신령스런 동물로 나오고 있다.
청삽살개
사진:하지홍. 임인학, 한국의 토종개, 주식회사 대원사, 1995
한편 <강림차사 본풀이>라는 신화 속에도 개가 등장한다. ‘동경국’이라는 나라에 ‘버물왕’이라는 왕이 살았다. 이 왕에게는 아홉형제가 있었는데 다 죽고 마지막 삼형제만 남았는데 이 형제들마저도 ‘과양각시’라는 여인에게 속아 죽임을 당한다. 그런데 과양각시가 임신을 하여 삼형제를 나았는데 이 형제들도 결국 다 죽는다. 버물왕의 죽은 삼형제 원혼이 복수를 한 것이다. 과양각시는 너무나 원통하여 그 고을의 김치원이라는 통치자에게 달려가 이 억울한 사연을 풀어달라고 하며 김치원을 달달 볶는다. 결국 과양각시의 괴롭힘에 못이겨 ‘강림도령’이라는 남자를 불러 저승으로 보내 염라대왕을 불러와 과양각시 삼형제가 죽은 영문을 풀어 줄 것이라고 한다. 강림도령은 저승으로 갔고 염라대왕을 이승으로 데리고 오려고 한다. 그런데 염라대왕은 자신은 나중에 뒤 따라 갈 테니 강림도령이 먼저 이승으로 내려가라고 한다. 이 때 강림도령은 이승에 내려갈 때는 그 길을 모르니 길을 알려 달라고 한다. 염라대왕은 떡과 흰 강아지를 주며 그 강아지 뒤를 따라가라고 한다. 결국 강아지의 도움으로 이승으로 무사히 내려온다. 이 신화 속에서는 흰강아지가 저승과 이승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세민황제 본풀이> 신화 속에도 개가 등장하는데 역시 저승과 이승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세민황제가 이승에 있을 때 사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다. 죽은 뒤에 세민황제는 저승왕으로부터 이승으로 가서 죄값을 갚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세민황제가 이승으로 내려가려고 할 때 저승왕은 이승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면서 중간에 가다보면 어린 송아지와 흰 강아지가 나타나 길을 안내해 주겠다고 할 것인데 이것을 무시하고 그냥 곧은 길로 가라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는 개가 저승에서 이승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지만 그 개의 말을 듣지 말라는 것으로 나온다.
위 세 이야기는 개가 인간의 일상생활 이상의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령적인 세계의 중개자로 등장하기도 하고 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영험스런 존재로 나타나기도 한다. 일본에서 등장하는 하늘개(천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숙향전>에서는 마고할망과 개와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데 여기서 개는 할망과 친하다는 것이며 할망은 곧 여신을 말한다. 마고로 대표되는 여신시대가 남성중심의 가부장 사회보다 먼저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이 마고 여신시대는 무당이 중심이 된 무당놀이가 생활중심이 된 사회다. <강림도령 차사본풀이>나, <세민황제 본풀이> 모두 제주도의 무속신화이고 이 신화 속에 저승과 이승의 다리 역할을 하는 개가 나온다. 열국시대(삼국시대)의 유적으로 알려진 경산시 임당동 제2호분에서 순장된 개 뼈가 발굴된 것을 보더라도 개는 인간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령스런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무당놀이는 여성으로 대표된다. 제주도 무속신화에서 개가 나온다는 것은 무당놀이에서 개를 아주 중요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즉 무당놀이로 대표되는 여신시대에는 개가 인간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라. 개와 방상시
한반도 남녘에서는 서기 197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사람이 죽고 상여가 나갈 때, 앞장서서 상여를 매장지까지 인도하는 방상시方相氏라는 것이 있었다. 물론 전국에 걸쳐 모두 이런 의례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지역에서 있었던 것 같다. 방상시는 죽은 자가 상여를 타고 무사히 매장지까지 도착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죽은 자를 땅에 묻을 때 다시 온전히 묻히도록 보호해 준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리조시대의 기록을 보면 방상시는 명나라, 청나라 사신이 올 때 사악한 귀신이 달라붙지 못하도록 하는 기능을 수행 하였고 왕이 행차할 때도 수호자로서 등장하기도 했다.
서기1997.1.18. 경향신문
이러한 방상시의 유례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한국의 주류 견해는 차이나(중국)의 최초 국가라고 알려진 주周나라의 례식에서 나왔다고 한다.(주석: 주나라는 서기전 약8백년전 지금의 한대륙 섬서성에서 한겨레 계열나라인 은(상)나라를 멸망시키고 등장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주나라 궁중에서 귀신을 쫒아 내거나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의례에서 방상시가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 권32/ 잡지1/악樂’ 편에 나오는데, 신랑의 최치원이 기록했다는 5가지 놀이 중의 하나인 대면大面이라는 글에서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大面 /대면
黃金面色是其人 / 황금색 얼굴 이것이 그 사람,
手抱珠鞭役鬼神 / 손에 붉은 채찍 쥐고 귀신을 부리네
疾步徐趨呈雅舞 / 빠르게 걷다, 천천히 걷다 우아한 춤,
宛如丹鳳舞堯春 / 완연하다, 마치 붉은 봉황새가
요임금의 봄날 춤을 추는 듯.
이 기록에 이어 <고려사>의 정종조에도 방상시와 관련한 기록이 보이며 리조시대에 들어서면 여러 문집에서도 방상시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성현의 <용재총화>이며 <문헌비고>이다.
방상시탈
그림: 호두까기님
그런데 위 ‘대면’에서 보이는 기록을 뜯어보면 방상시의 본래 모습과 유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탈을 쓴 사람이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이다. 탈춤놀이를 찾아 가 보면 방상시가 원래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있다. 한반도에서 인디한대륙으로 건너간 인디한겨레가 알래스카 아낙섬에 남겨놓은 고래뼈로 된 가면이 있다. 이 가면은 3천년된 것으로 온돌과 함께 발견되었다. 이 가면은 미국 고고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장례식 때 쓰던 것이라고 한다(오두님 블로그에서 인용).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userId=namsanodu&logId=4285651
3천년전이면 방상시가 차이나의 주나라에서 유래하였다는 시대보다 훨씬 앞선다. 고래로 된 뼈 가면을 인디한겨레가 한반도권에서 출발하여 알래스카에 도착하여 장례용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권에서는 그 보다 훨씬 먼저 장례용으로 탈을 쓰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장례용으로 쓰였다면 당연히 위 방상시가 가지고 있는 악귀를 쫓거나 달려드는 잡귀를 퇴치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장례를 치루면서 단순히 방상시 탈을 쓰고 우두커니 서 있었을까, 위 대면 놀이 기사를 보면 탈을 쓰고 춤을 추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처용무處容舞라는 것이 있는데 이 처용무는 <삼국유사 권이 기이편2> 의 처용설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처용춤은 탈을 쓰고 춤을 추면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방상시가 굳이 차이나족의 주나라에서 유래하였고 그 의례가 한반도로 전해 졌다고 볼 필요가 없다. 더욱이 이런 근거로 볼 때 방상시의 원조는 한국이며 아득한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방상시의 상징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 처용춤은 무당놀이의 전형이다. 무당놀이가 한반도권에서 생겨나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것은 이미 참역사동아리 삼태극 <한겨레참역사>방에서 공지로 증명된 바 있다. 무당놀이의 굿놀이가 악한 귀신을 쫓아내는 역할을 한다고 볼 때 방상시의 원조는 한국이라는 것이 더욱 굳어진다.
방상시를 실은 수레
사진: 조선의 귀신, 무라야마치쥰, 김희경역, 동문선, 2002.
리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례식에 등장한 방상시-두번째 사진에는 방상시수레뒤에 죽산마 행렬도 보인다.
둘째, 위 대면놀이 기사에는 붉은 색이 등장한다. 붉은 색은 한국의 황토와 동일시된다. 한반도 땅 덩어리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것이 황토다. 온 나라가 황토로 범벅이 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많다. 서양식 시멘트 모래 콘크리트 집이 등장하기 앞서 우리는 한국의 흙, 황토로 집을 짓고 살았다. 자연친화적인 신령스런 흙, 황토로 집을 지으면 건강은 따 놓은 당상이었고 모든 면에서 인간에게 가장 이상적인 주거공간을 선사하였다. 최근에는 다시 황토바람이 불어 황토집, 황토벽돌, 황토불가마, 황토염색, 황토벽지, 황토침대 등 건강을 생각하는 상품들이 고급화 되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이와 같이 황토는 우리 한겨레가 이 땅에 처음 살면서 함께 해온 우리의 흙이다. 이 흙은 무당놀이에서도 당연히 중요시 여겨 악한귀신을 쫓아내고 좋은 기운은 들어오게 하는 부적과 같은 상징을 갖고 있다. 따라서 위 대면놀이에서 붉은색은 한국의 흙, 황토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악귀를 쫓아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본다. 방상시가 붉은 옷을 입고 장례행렬 가장 앞에서 간다는 것도 붉은색이 갖고 있는 벽사기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도 방상시가 차이나족의 주나라에서 시작하여 한국으로 전래 되었다고 하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리조5백년과 일제35년간 뿌리깊이 자리잡은 외래기원설과 사대주의 노예그지 근성에서 나온 또 하나의 폐악이라고 밖에 달리 생각할 수없다.
마. 방상시의 눈은 개 눈이다.
방상시는 보통 네 개의 눈을 갖고 있다. 신분에 따라 높은 자는 4개의 눈을 가진 방상시가, 신분이 낮은 자는 2개의 눈을 한 방상시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눈이 무슨 역할을 하였는지 생각해 보면 개의 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앞서 언급한 개가 우리민족에게 령적으로 어떤 상징성을 갖고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방상시의 눈은 자연히 악한 귀신을 볼수 있는 눈을 상징한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귀신을 볼 수 있는 신령스런 눈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악한 귀신을 알아보고 쫓아 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개 중에 특히 삽살개가 악한 귀신을 알아보고 주인에게 달라 붙지 못하게 짖어서 쫓아 낸다는 기록은 정확히 방상시의 눈을 가리키고 있다.
개는 귀와 코 그리고 눈이 제일 많이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멀리서도 오는 사람이 주인인지 낯선 사람인지 알고 낯선 사람이라면 짖어 댄다. 필자는 군에서 야외 훈련을 나갔을 때 경상북도 어느 낮선 시골 마을의 산등성이에 올라서서 마을로 들어가려고 할 때 그 마을의 개들이 짖어대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마을에 낮선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그 먼거리에서도 감지하고 짖어 댄 것이다. 그 만큼 개의 피아식별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또한 개는 삼십리 밖에 있는 것 까지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하며, 밤에도 사람의 3분의 1빛을 갖고도 사물을 식별할 수 있다고 하며 특히 움직이는 것을 더 잘 감지 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을 동체시력이라고 한다. 우리 조상님들은 이런 개의 식별 능력에 주목하여 개가 악한 귀신을 알아 볼 수 있고 또 악귀가 오는 소리를 잘 듣고 짖어서 내쫒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개를 신앙생활에서 일정한 상징으로 삼아, 개를 악한 귀신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고 죽어서는 저승으로 무사히 갈수록 지켜주고 길잡이가 되어 주는 존재로 믿었을 것이다. 우리 조상님들은 이러한 개의 탁월한 분별능력을 알아보고 자연스럽게 악귀가 출몰하는 세계에서 신성한 능력을 발휘하는 영험한 동물로 신격화 시켰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방상시라는 것이다. 또한 12지신(열두가지 띠)중의 하나인 개신(술신戌神)으로 등록해 놓은 것으로 본다.
네눈박이 진돗개
그림: 호두까기님
더구나 날카로운 눈과 그 눈두덩이에 또 다른 눈 두개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네눈박이 개, 특히 진돗개는 사악한 귀신을 막고 쫓아내는 영험스런 동물로 여겼을 것이다. 이 네눈박이 개에 착안하여 방상시에 4개의 눈을 만들어 넣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바. 방상시와 곰 그리고 마고여신
방상시의 차림새를 보면 보통 4개의 눈을 가진 가면을 쓰고 곰가죽을 걸치고 웃도리는 빨강색의 저고리와 아래는 검은 치마를 입는 다고 한다. 방상시가 수레에 얹혀 끌려가는 경우가 아닌 방상시 탈을 사람이 쓸 경우 방상시 탈을 쓴 사람은 창과 몽둥이도 보통 들고 나간다. 방상시의 빨강색 옷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황토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는데 사악한 귀신을 쫒고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황토는 지금도 집 주변이나 전통 굿 행사를 할 때 주위에 뿌려놓아 악귀의 침투를 막는데 쓰고 있다. 검은색 치마는 북방을 가리키고 이는 죽음과 탄생이라는 두 가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죽은 자는 지금 저승으로 가고 있지만 다시 새 생명을 받아 살아날 것이라는 염원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검은색으로 대변되는 북방은 어머니 여신, 마고삼신할망을 가리킨다. 그리고 4개의 눈을 한 가면을 쓰는 것은 악귀가 어느 방향에서 달려들더라도 다 찾아내서 퇴치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부도지符都志의> 8려음의 8이 모든 방향을 나타내고 있는 데 이 8이 방상시 탈 풍습에서는 4개의 눈으로 축약되어 쓰이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곰 가죽을 걸친다고 하는데 이것도 개국신화(단군신화)의 곰과 이어지고 곰은 여성으로 마고삼신으로 대표되는 여신시대와 통한다.
마. 닫는 말씀
한국의 개는 오늘날 세계에 퍼져있는 개의 원조다. 이와같은 사실은 외국의 공신력 있는 기관과 언론이 이미 보도한 바 있다. 또한 한머리땅 한반도의 충남 공주 석장리에서 발굴된 구석기 유적의 개석상에서도 한국의 개가 가장 오래된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개는 세계에서 가장 충성스럽고 지혜로우며 용맹스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랭이를 사냥하는 풍산개, 호랭이를 잡아죽인 진돗개, 주인을 위해 주인의 분신이 되어 죽음을 무릅쓰고 충성하는 개, 주인의 눈빛만 봐도 주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어 행동으로 옮기는 개의 모습에서 한국의 개는 오늘날 세계 모든 개의 뿌리임을 알 수 있다. 한국개의 이러한 특징은 유전자적으로 가장 앞서 진화된 것을 보여 주며 유전자 성분이 가장 복잡하고 잘 진화되어 있다는 것은 한국개가 세계 모든 개의 조상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개는 한국인과 유구한 세월을 함께 해 왔으며 그 영험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신앙의 세계로 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영적인 세계에서도 인간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영험스런 동물로 숭앙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우리의 ‘숙향전, 강림도령 차사 본풀이, 세민황제 본풀이’ 등의 이야기에서 발견되며 특히 우리의 전통 장례풍습에서 사용되어 왔던 방상시에서도 확인이 된다. 이 한국의 개는 우리의 뿌리문화이자, 세계인류문화의 뿌리인 마고삼신 할망 문화와도 연결이 되며 방상시 풍습을 통해서 우리의 개국신화(단군신화)와 연결 지어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고인돌, 삼태극 삼사상 등이 한반도권에서 시작하여 세계로 퍼져나갔듯이 개도 한반도에서 시작하여 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것은 현생인류가 한반도권에서 시작하여 세계로 퍼져나가 오늘날 인간의 조상이 되었음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1. 참고 문헌
-한국사 통론,변태섭,삼영사,1995.
-한국의 토종개,하지홍, 김경석,주식회사 대원사,1995.
-한국토종개의 기원에 관한 고찰(논문), 하지홍 김경석,
경북대학교 유전공학과,<한국 축산지-1998, 40호6월 701~710쪽>
-단군기행,박성수,교문사,1988.
-삼국사기/권32/잡지제1/락
김부식저/김종권역(하), 도서출판 신화사,1983.
-삼국유사,일연, 최호역, 홍신문화사,2002.
-샤마니즘,미르치아 엘리아데,이윤기 옮김,까치,2007.
-조선의 귀신, 무라야마 치준, 김희경역, 동문선,2002.
역사를 바로 알면 세상이 바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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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오 종 홍
펴낸곳 : 삼 태 극
첫댓글 개와 방상시에 관한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든든한 우리 서정님~ ^^* 늘 고맙습니다.
댓글을 이제야 답니다^^ 글 감사합니다.
저도 이제야 답글 답니다. 고맙습니다. ^^*
개에 대한 글인데도 저는 첫 번째 그림 <들밥>에 정이 갑니다.
그림 제목이 <들밥>이라 그렇고요(고수레~ 하고 먹겠지요^^)...
큼지막한 그릇에 술을 따뤄 마시고, 밥을 담아 먹고...
편~안하게 몸에 덜 걸쳐도 부끄럽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애기 젖을 물리는 모습도 흉하지 않고...
삼태극님 달아놓으신 댓글이 다시 한번 글을 보게합니다.
늘 고마워 해야할 사람은 접니다.^^
아하, 그 그림에 <들밥>이라고 제목이 달려 있군요. 전 그것 못봤습니다. 지금 다시 한번 자세히 보니 <들밥>이라고 써 있어요. 서정님의 예리한 관찰력에 감탄합니다. ^^*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아네요 개 이야기 우리가 최초으로 개 길들어서 키워다는 이야기
역시 무개있는 글!! 잘 보았습니다.
좋은 글 잘보았습니다 흥미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