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다 / 모성숙
어렵게 들어간 새 직장은, 내 마지막 일터가 될 수도 있다는 초조한 흥분으로 시작되었다.
무언가 절실했는데, 그것이 돈인지, 사회적 위치인지, 의미있는 자기계발인지 밤마다 곰곰이 생각해도 선명해지지 않았다.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모여있는 종합학원, 그 속에 들어앉은 내 교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나이도, 모습도 영 어울리지 않는 영어선생이 되었는데, 이 공간이 내게는 한없이 귀했다.
일년여 난 투병생활을 했었다. 그 시간동안 난 아팠고, 그래서 쉬었고 덕분에 놀았다. 그리고 한없이 외로웠다.
생각이 돌고돌아 고인 웅덩이처럼 끈적거릴 때, 하루 몇시간만이라도 일을 하고 싶어졌다. 상황에 갇혀있는 내가 아니라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나의 삶을 꿈꾸었다.
아이들을 다 키워내었으니 젊은 시절처럼 악착을 떨지않아도 되는데 굳이....라고 말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일일이 다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유의미한 일을 하고 싶다는 절절함은 나를, 모든 순간, 모든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진실하도록 힘을 실어주었다.
학원의 운영방침이 자신과 맞지 않고, 원장님과는 대판 싸웠으며, 아이들 수준이 엉마진창이라고 말해준 나의 전임은 꽤 홀가분하게 떠나갔다.
교실을 넘겨받은 날, 뒤죽박죽 섞인 교재들과 출처도 알 수 없는 프린트물들을 보니 그가 이 공간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시간들을 보냈을지 짐작이 되는 것 같았다. 많이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 느낌.
아마도 그는 아직 젊고, 아직 기회가 많고, 아직 절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을 많이 써버린 나는 모든 것이 절실하다.
내 앞에 무슨 일이든 놓여지기만 한다면... 늘 벼르고 벼른다. 아주 잘 하지는 못 해도, 진짜 열심히는 할 수 있는데.
오늘은 잠깐 시간을 내어 행곡하지 않았던 것같은 나의 전임과 통화라도 해보아야겠다.
어느날인가 잠깐 들러. 바뀐 내 교실을 보며 얘기했었다. 이깟 월급으로 그 노력을 하느냐고. 그땐 그냥 웃었지만 이제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조건으로 내 가치를 묶어두지 말라고.
사람은 주어진 삶을 진지하게 마주 대할 때 성장하게 되고 최선을 다하는 마음 값은 누구도 함부로 가치매김을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아주 친절하게 들려주고 싶다. 나도 이전에는 잘 몰랐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