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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舌布施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若有人來하야 從乞舌時어든 於乞者所에 以慈悲心으로 軟語愛語호대 猶如往昔端正面王菩薩과 不退轉菩薩과 及與無量諸菩薩等하나니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於諸趣中에 而受生時에 有無量百千億那由他衆生이 而來乞舌이라도 菩薩이 爾時에 安置其人하야 在師子座하고 以無恚心과 無害心과 無恨心과 大威德心과 從佛種性所生心과 住於菩薩所住心과 常不濁亂心과 住大勢力心과 於身無着心과 於語無着心으로 兩膝着地하고 開口出舌하야 以示乞者하고 慈心軟語로 而告之言호대 我今此身이 普皆屬汝니 可取我舌하야 隨意所用하야 令汝所願으로 皆得滿足이라하고 菩薩이 爾時에 以諸善根으로 如是廻向하나니 所謂願一切衆生이 得周普舌하야 悉能宣示諸語言法하며 願一切衆生이 得覆面舌하야 所言無二하야 皆悉眞實하며 願一切衆生이 得普覆一切佛國土舌하야 示現諸佛自在神通하며 願一切衆生이 得軟薄舌하야 恒受美妙淸淨上味하며 願一切衆生이 得辯才舌하야 能斷一切世間疑網하며 願一切衆生이 得光明舌하야 能放無數萬億光明하며 願一切衆生이 得決定舌하야 辯說諸法호대 無有窮盡하며 願一切衆生이 得普調伏舌하야 善能開示一切秘要하야 所有言說을 皆令信受하며 願一切衆生이 得普通達舌하야 善入一切語言大海하며 願一切衆生이 得善說一切諸法門舌하야 於言語智에 悉到彼岸이니라 是爲菩薩摩訶薩의 布施舌時에 善根廻向이니 爲令衆生으로 皆得圓滿無礙智故니라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에게 어떤 사람이 와서 혀를 구걸하거든, 구걸하는 이에게 자비한 마음으로 부드럽게 말하고 정답게 말하나니, 마치 옛날의 단정면왕(端正面王)보살과 불퇴전(不退轉)보살과 다른 무량한 보살들과 같이 하느니라.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모든 갈래에 태어났을 적에 한량없는 백천억 나유타 중생들이 와서 혀를 구걸하거든 보살이 그 사람을 사자좌에 앉게 하고, 성나지 않는 마음, 해(害)할 생각이 없는 마음과 한탄하지 않는 마음과 큰 위덕 있는 마음과 부처님의 종성으로 나는 마음과 보살의 머무는 데 머무는 마음과 흐리지 않은 마음과 큰 세력에 머무는 마음과 몸에 집착이 없는 마음과 말에 집착이 없는 마음으로 두 무릎을 땅에 꿇고 입을 벌리고 혀를 내어 구걸하는 이에게 보이면서 자비한 마음과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하느니라.
‘나의 몸은 모두 그대에게 속한 것이니 내 혀를 가져다가 마음대로 써라. 그대의 소원을 만족케 하리라’라고 하느니라. 보살이 이때에 모든 선근으로 이와 같이 회향하느니라.
이른바 ‘원컨대 일체중생이 두루 하는 넓은 혀를 얻어 여러 가지 말을 능히 연설하여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얼굴을 덮는[覆面] 혀를 내어 말함이 둘도 없이 모두 진실하여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두루 덮는 혀를 얻어 부처님들의 자재한 신통을 나타내어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보드랍고 얇은 혀를 얻어 아름답고 청정한 좋은 맛이 항상 나게 하여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말 잘하는 혀를 얻어 모든 세간의 의심을 끊어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빛나는 혀를 얻어 무수한 만억 광명을 내게 하여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결정한 혀를 얻어 모든 법을 분별하여 말함이 무궁무진하여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널리 조복하는 혀를 얻어 모든 비밀하고 요긴한 말들을 잘 말하여 모두 믿게 하여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두루 통달하는 혀를 얻어 모든 언어의 바다에 잘 들어가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원컨대 일체중생이 모든 법문을 잘 말하는 혀를 얻어 언어의 지혜에서 다 저 언덕에 이르러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혀를 보시할 때에 선근으로 회향하는 것이니라. 중생들로 하여금 원만하고 걸림 없는 지혜를 얻게 하려는 연고이니라."
*
설보시(舌布施): 혀를 보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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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약유인래(若有人來)하야 : 만약에 어떤 사람이 와서
종걸설시(從乞舌時)어든 : 혀를 구걸하는 것을 만났을 때
어걸자소(於乞者所)에 :혀를 구걸하는 사람에게
이자비심(以慈悲心)으로 : 이자심으로
연어애어(軟語愛語)호대: 부드럽게 말하고 사랑스럽게 말하되
유여왕석단정면왕보살(猶如往昔端正面王菩薩)과 : 지난 날 단정면왕보살과
불퇴전보살(不退轉菩薩)과 : 불퇴전 보살과
급여무량제보살등(及與無量諸菩薩等)하나니: 그리고 나머지 한량없는 모든 보살과 같이 하나니. 누가 혀를 달라고 하는데 거기에 자비심으로써 부드럽게 그 사람에게 ‘아 어서 오십시오. 내가 찾아가서 드려야 하는데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다.
이 대목을 공부하면서 내가 그 옆에 ‘선정후교(先情後敎)’라는 말을 써 놓았다. 우리 교육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선정후교다. 먼저 정을 담뿍 담고 나서 가르치는 것이다.
스님들이 학인들을 가르치든지 신도들에게 법을 설하든지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든지 먼저 마음에 정을 듬뿍 담고 가르치는 것, 여기도 이자비심이라고 했다.
설사 아무리 보기 싫은 신도가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까지도 싸잡아서 다 정을 담뿍 담고 마음으로 그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그리고 나서 가르친다. 정을 잔뜩 담고 그 정이 교감이 된 뒤에 가르침이 있어야 그 가르침이 효과를 발휘한다.
옛날 많은 부모가 그랬듯이 자녀들에게 밥해놓고 ‘꼴도 보기 싫으니까 밥이나 처먹고 빨리 가라’ 이런 식으로 하면 그 음식이 몸에 들어가서 뭐 좋을 게 있겠는가. 비록 시원찮은 음식이지만 마음에 정을 잔뜩 담고 나서 ‘음식이 좀 부실하다 그렇지만 어쩌겠나. 먹고 나가라’고 하는 자세, 그것이 교육에 있어서 제일 우선하는 것이다. 부드러운 말과 사랑스러운 말로 하되 왕석에 이런 보살과 같이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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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어제취중(於諸趣中)에 : 여래갈래 가운데서
이수생시(而受生時)에 : 수생시에, 이 대목을 보라. 대승불교는 보살이 아무리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모든 갈래에 다 간다. 지옥이면 지옥 아귀면 아귀 축생이면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 어디든지 다 간다. 생을 받아 태어나고 또 가서 수행하는 것이다.
내가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차이점은 수생에 있다.
소승불교는 수생하지 않고 이생을 마지막으로 끝낸다고 하는데 그것이 큰 오점이다. 그런 것은 그저 꿈일 뿐이다. 그렇게 될 수는 없다. 어디를 가도 우리가 수생하는 것이다. 생을 받아 태어나는 것이다. 늘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이생에서 지은 인연이 얼마이고 또 진 빚이 얼마인가. 저 태양과 하늘과 바람과 물과 불과 주변사람들과 곡식과 산과 이 모든 것과 나의 이 한 육신이 얼마나 많은 인연을 맺고 살았는데 어찌 도망을 가겠는가.
죽어서 빨리 태어나야 한다. 이치는 태어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소승불교는 ‘그만 끝낸다’‘이 생을 끝내고 수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낱말이 나올 때마다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차이점을 확연히 느낄 수가 있다.
열반에 들어서 다시는 안온다고 하는 것은 대승불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승불교에는 그저 죽으나 사나 ‘열반에 들어서 다시는 안온다. 그것이 소원이다’ 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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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 특징은 소승불교는 철저히 비구중심, 출가인을 위한 불교라는 점이다.
요즘 남방불교가 상당히 득세를 해서 초기 불교가 많이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유수한 교수가 소승경전의 경문을 인용하면서 ‘비구야 비구야’ 하고 신도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다. 비구중심인 소승불교에서는 거사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런 것은 비구가 비구에게만 하도록 되어 있다.
대승불교는 아니다. 대승불교는 중생 보살, 중생 보살, 끊임없이 중생 보살이다.
그러니까 소승불교는 대승불교에 비해 아주 부족한 불교다.
비유를 들자면 집에 있는 지금 쳐다보지도 않는 유선전화가 소승불교와 같고, 지금 여러분들이 다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은 대승불교와 같은 것이다.
그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다.
비록 석가모니가 소승불교를 가르쳤지만 그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야사는 출가를 해서 부처님의 여섯 번째 제자다. 그것을 보고 야사의 부모는 ‘우리는 영원히 삼보를 시봉하고 삼보에게 공양을 하고 헌신을 하겠습니다.’ 하고 부처님 앞에서 맹세를 한다. 야사의 부모인 그들이 최초의 재가신도다. 그 맹세의 글은 참 좋다. 그러나 일반 신도들은 그것이 다다. 더이상 넘보면 안된다. 넘보도록 되어 있지도 않다.
소승불교는 그렇게 출가자와 비출가자를 칼로 두부나 무를 자르듯이 나눠서 이야기 한다.
지금 태국도 다 그렇다. 어떤 동대 교수가 평소에 스님들에게 불만이 많아서 스님들이 못마땅해 했다. 그런데 태국에 가서 태국 불교를 살펴보고는 태국은 스님들이 절에 담이 무너져도 함부로 손대고 일을 하면 안되고 신도들이 와서 해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스님들은 일하면 지옥에 간다고 해서 신도들이 와서 절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신도들은 담 고치고 지옥 가도 좋고 스님들은 지옥가면 안된다는 것인가?
그 교수가 한국에 와서 다시 보니 한국불교는 보통 모든 신도들을 스님들처럼 공히 대하고 똑같이 가르치고 스님들이 절집의 일도 잘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교수가 내가 중앙교육원 할 때 그 이야기를 하고는 ‘내가 한국스님들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모릅니다.’라고 고백을 했다. 그 이야기를 내가 듣고 참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는 그렇게 소견이 다르다.
완전히 승단 중심이고 출가자 중심인 소승불교는 신도들에게 교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 나라에서 소승불교를 공부하면서 스님들을 가르치는 데는 거의 없고 거의다 신도들에게 가르치는데 그런 것은 소승의 교리상 앞 뒤가 안맞는 일이다. 소승불교는 교리 자체가 출가한 사람들도 제대로 따라하기가 힘드는데 일반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그런 상황들을 잘 알고 해야 된다.
비록 두리뭉실 되어 있더라도 알기는 알고 있어야 된다.
제취중에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 모든 곳에서 수생할 때 생을 받아서 태어날 때에
유무량백천억나유타중생(有無量百千億那由他衆生)이: 한량없는 나유타 중생들이
이래걸설(而來乞舌)이라도: 와서 혀를 구걸을 하더라도
보살(菩薩)이 : 보살이
이시(爾時)에 : 이때에
안치기인(安置其人)하야 : 그 사람을 탁 이렇게 앉혀 잘 모셔놓고
재사자좌(在師子座)하고: 사자좌에 계시게 하는 것이다.
이무에심(以無恚心)과 : 무에심과
무해심(無害心)과 : 무해심과
무한심(無恨心)과: 한도 없는 마음과
대위덕심(大威德心)과 : 대위덕의 마음과
종불종성소생심(從佛種性所生心)과 : 불종성으로부터 나는 마음과
주어보살소주심(住於菩薩所住心)과 : 보살이 머물 곳에 머무는 마음과
상불탁란심(常不濁亂心)과 : 항상 흐리지 않는 마음과
주대세력심(住大勢力心)과 : 대세력에 머무는 마음과
어신무착심(於身無着心)과 : 몸이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과
어어무착심(於語無着心)으로: 말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으로
양슬착지(兩膝着地)하고: 두 무릎을 땅에 착 대고서 혀를 구걸하러 온 사람에게 한다.
개구출설(開口出舌)하야 : 입을 열어 혀를 내어서
이시걸자(以示乞者)하고 : 구걸하는 사람에게 혀를 내보인다. 화엄경에 희안한 소리가 다 있다. 없는 소리가 없다.
자심연어(慈心軟語)로 : 자비한 마음과 부드러운 말로써
이고지언(而告之言)호대: 그 사람에게 고해 말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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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금차신(我今此身)이 : “내가 지금 이 몸이
보개속여(普皆屬汝)니 : 전부 당신에게 소속되어 있습니다.
가취아설(可取我舌)하야: 내 혀를 취해서 잘라가든지 어떻게 하든지 간에 내 혀를 취해 가서
수의소용(隨意所用)하야: 마음대로 쓰십시오.
영여소원(令汝所願)으로: 그대의 원하는 바대로 하여금
개득만족(皆得滿足)이라하고 : 다 만족하게 하십시오.” 그 광경을 한 번 그려보기 바란다.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없는 일인지 그런 것을 따지지 말고 액면 그대로 ‘대단하다 대단하다’ 하고 감동하는 것이다.
경은 그렇게 읽는 것이다. ‘어떻게 비상식적으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이거 순 엉터리 경이다’ 이렇게 따지며 읽는 것이 아니다.
그대로 순수하게 듣고 감동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에 이렇게 실천하라고 하는 것은 아니니까 힘들어 할 것은 없다. 그렇게 감동하는 것이고 그럴 때 마다 정화가 되는 것이다.
보살(菩薩)이 : 보살이
이시(爾時)에 : 이시에
이제선근(以諸善根)으로: 모든 선근으로써
여시회향(如是廻向)하나니: 이와 같이 회향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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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원일체중생(所謂願一切衆生)이 : 이른 바 일체 중생이
득주보설(得周普舌)하야 : 두루두루 널리 펴는 혀를 얻어서
실능선시제어언법(悉能宣示諸語言法)하며: 말의 어떤 법 그것을 전부 펴서 보이기를 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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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일체중생이
득부면설(得覆面舌)하야 : 얼굴을 덮는 혀를 얻어서. 얼굴을 다 덮는 혀가 더러 있다. 어릴 때 그런 장난도 하고 혀를 내밀어서 코까지 올라오나 어디까지 올라오나 시합도 한다.
소언무이(所言無二)하야 : 말하는 바가 둘이 없어서
개실진실(皆悉眞實)하며 : 다 진실하기를 원하며 혀가 크다고 하고 혀가 얼굴을 덮는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 32상중에도 들어 있는데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다’ 라는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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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 중생이
득보부일체불국토설(得普覆一切佛國土舌)하야 : 일체 불국토를 널리 덮는 혀를 얻어서
시현제불자재신통(示現諸佛自在神通)하며: 제불의 자재신통 나타내 보이기를 원하며
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득연박설(得軟薄舌)하야: 부드럽고 얇은 혀를 얻어서, 혀가 두꺼우면 별로 재미 없나보다.
부드럽고 얇은 혀를 얻어서
항수미묘청정상미(恒受美妙淸淨上味)하며 : 항상 미묘하고 청정한 상미 받아들이기를 원하며 혀가 맛을 제대로 보려면 민감해야 하니 얇은 혀가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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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득변재설(得辯才舌)하야 : 변재를 잘하는 혀를 얻어서
능단일체세간의망(能斷一切世間疑網)하며 : 세간의 의혹의 그물을 끊어버리기를 원하며.
말을 잘하고 진리에 맞게 말하면 사람들의 의문을 다 제거해 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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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득광명설(得光明舌)하야 : 광명에 빛나는 혀를 얻어서
능방무수만억광명(能放無數萬億光明)하며 :능히 무수 만억 광명을 놓기를 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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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득결정설(得決定舌)하야: 확실한 분명한 혀를 얻어서
변설제법(辯說諸法)호대 : 모든 법을 전부 설명을 하되
무유궁진(無有窮盡)하며 : 다함이 없기를 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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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또 일체 중생이
득보조복설(得普調伏舌)하야 : 널리 조복하는 혀를 얻어서
선능개시일체비요(善能開示一切秘要)하야 : 일체 비밀하고 요긴한 이치를 다 열어 보여서
소유언설(所有言說)을 : 있는 바 언설을
개령신수(皆令信受)하며: 다 능히 받아들이기를 원하며. 불교 이치를 자기 딴에는 소신있게 설명 하는데 듣는 사람이 그것을 믿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참 쉽지가 않다.
정말 그건 쉽지가 않다. 진실을 이야기 하고 확실한 것을 이야기해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조복설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말하는 것마다 ‘예 스님 말씀 따를게요. 오늘부터 화엄경 공부 열심히 할게요’ 하고 모두가 그렇게 되면 좀 좋겠는가? 그렇게 하라고 해도 잘 안한다. 내가 보조복설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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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 일체 중생이
득보통달설(得普通達舌)하야 : 널리 통달하는 혀를 얻어서
선입일체어언대해(善入一切語言大海)하며: 일체 말의 큰바다에 들어가기를 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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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체중생(願一切衆生)이: 일체 중생이
득선설일체제법문설(得善說一切諸法門舌)하야 : 일체 모든 법문을 잘 설명하는, 무슨 법문이든지 전부 다 잘 설명할 수 있는 혀를 얻어서
어언어지(於言語智)에 : 말의 지혜에
실도피안(悉到彼岸)이니라 : 다 저언덕에 이르기를 원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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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보살마하살(是爲菩薩摩訶薩)의 :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보시설시(布施舌時)에: 혀를 보시할 때의
선근회향(善根廻向)이니 : 선근회향이니
위령중생(爲令衆生)으로 : 중생으로 하여금
개득원만무애지고(皆得圓滿無礙智故)니라: 원만해서 걸림이 없는 지혜 얻게 하고자 하는 것이니라.
(36) 頭布施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頭布施諸來乞者호대 如最勝智菩薩과 及大丈夫迦尸國王等諸大菩薩의 所行布施하야 爲欲成就入一切法最勝智首하며 爲欲成就證大菩提하야 救衆生首하며 爲欲具足見一切法最第一首하며 爲得正見淸淨智首하며 爲欲成就無障礙首하며 爲欲證得第一地首하며 爲求世間最勝智首하며 欲成三界無能見頂淨智慧首하며 爲得示現普到十方智慧王首하며 爲欲滿足一切諸法無能破壞自在之首니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安住是法하야 精勤修習하면 則爲已入諸佛種性하며 學佛行施하야 於諸佛所에 生淸淨信하야 增長善根하며 令諸乞者로 皆得喜足하고 其心淸淨하야 慶悅無量하며 心淨信解하야 照明佛法하며 發菩提意하야 安住捨心하며 諸根悅豫하야 功德增長하며 生善樂欲하야 常好修行廣大施行이니라 菩薩이 爾時에 以諸善根으로 如是廻向하나니 所謂願一切衆生이 得如來頭하고 得無見頂하야 於一切處에 無能暎蔽하며 於諸佛刹에 最爲上首하며 其髮右旋하야 光淨潤澤하고 卍字嚴飾하야 世所希有라 具足佛首하며 成就智首하며 一切世間에 最第一首며 爲具足首하며 爲淸淨首하며 爲坐道場圓滿智首니라 是爲菩薩摩訶薩의 布施頭時에 善根廻向이니 爲令衆生으로 得最勝法하야 成於無上大智慧故니라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와서 구걸하는 이에게 머리를 보시할 적에 마치 최승지(最勝智)보살이나 대장부인 가시국왕(迦尸國王) 등 여러 큰 보살이 보시하던 것과 같이 하느니라.
일체법에 들어가는 가장 수승한 지혜의 머리를 성취하려는 것이며, 큰 깨달음을 증득해서 중생들을 구제하는 머리를 성취하려는 것이며, 일체법을 보는 가장 제일인 머리를 구족하려는 것이며, 바른 소견과 청정한 지혜의 머리를 얻으려는 것이며, 장애 없는 머리를 성취하려는 것이니라.
제1지(第一地)의 머리를 증득하려는 것이며, 세상의 가장 수승한 지혜의 머리를 구하려는 것이며, 삼계에서 정수리를 볼 수 없는 청정한 지혜의 머리를 이루려는 것이며, 시방에 널리 이름을 나타내 보이는 지혜왕의 머리를 얻으려는 것이며, 모든 법으로 깨뜨릴 수 없는 자재한 머리를 만족케 하려는 것이니라.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이 법에 머물러서 부지런히 닦으면 부처님의 종성(種性)에 들어가서 부처님이 보시하던 일을 배우며, 부처님께 청정한 신심을 내고 선근을 증장하느니라.
모든 구걸하는 이들을 다 기쁘게 하여 그 마음을 청정하고 한량없이 경사롭게 하며, 믿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불법(佛法)을 밝게 비추며, 보리심을 내고 보시하는 마음에 머물러 여러 근(根)이 희열하고 공덕이 증장하며, 착한 욕망을 내어 넓고 크게 보시하는 행(行)을 좋아하느니라.
보살이 이때에 모든 선근으로 회향하느니라. 이른바 ‘원컨대 일체중생이 여래의 머리를 얻어 볼 수 없는 정수리를 가지며, 어느 곳에서나 그보다 나을 이가 없으며, 여러 세계에서 가장 우두머리가 되고, 머리털은 오른쪽으로 돌아서 깨끗하고 윤택하며, 만(卍)자로 장엄하게 꾸며서 세상에서 희유하고, 부처님의 머리를 갖추고, 지혜의 머리를 성취하여, 모든 세간에서 제일가는 머리가 되며, 구족한 머리가 되며, 청정한 머리가 되며, 도량에 앉아서 원만한 지혜의 머리가 되어지이다.’라고 하느니라.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머리를 보시할 때에 선근으로 회향하는 것이니라. 중생들로 하여금 가장 수승한 법을 얻어서 위가 없는 큰 지혜를 이루게 하려는 연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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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시(頭布施): 머리를 보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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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이두보시제래걸자(以頭布施諸來乞者)호대 : 와서 머리를 구걸하는 사람에게 보시하되, 머리를 떼주면 어쩌란 말인가?
여최승지보살(如最勝智菩薩)과 : 최승지 보살과
급대장부가시국왕등제대보살(及大丈夫迦尸國王等諸大菩薩)의 :대장부 가시국왕등 제대보살의
소행보시(所行布施)하야 : 행한 바 보시와 같이 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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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욕성취입일체법최승지수(爲欲成就入一切法最勝智首)하며 : 일체법에 들어가는 가장 수승한 지혜를 성취하는 머리를 얻으며
위욕성취증대보리(爲欲成就證大菩提)하야 :큰보리를 성취해서 증득하여
구중생수(救衆生首)하며: 중생들을 구제하는 머리를 취하고자 하며.
보리를 성취해서 증득해야 중생을 구제하기 때문이다.
위욕구족견일체법최제일수(爲欲具足見一切法最第一首)하며 : 일체법을 보는 최제일 가는 머리를 구족하고자 하며, 머리를 보시하니까 머리하고 늘 연관이 된다. 두(頭)라고 하나 수(首)라고 하나 크게 차이가 없이 이야기 하고 있다.
위득정견청정지수(爲得正見淸淨智首)하며: 정견과 청정한 지혜의 머리를 얻고자 하며
위욕성취무장애수(爲欲成就無障礙首)하며 : 장애없는 머리를 성취하고자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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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욕증득제일지수(爲欲證得第一地首)하며 : 제일 경지에 이르른 머리를 증득하고자 하며
위구세간최승지수(爲求世間最勝智首)하며: 세간의 가장 수승한 지혜를 구하는 머리를 구하고자 하며. 세간의 가장 수승한 머리를 구하고자 하며, 일단은 머리가 좋아야 한다.
욕성삼계무능견정정지혜수(欲成三界無能見頂淨智慧首)하며: 삼계에서 능히 그 이마를 볼 수 없는 청정한 지혜의 머리를 이루고자 머리를 보시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아무리 이마를 보려고 해도 그 이마가 저 하늘 끝까지 올라가서 끝내 이마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삼계무능견정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서 제일 존귀하고 높은 분이다’ 라는 의미다.
위득시현보도시방지혜왕수(爲得示現普到十方智慧王首)하며 : 또 시방에 널리 이르는 것을 시현해 보이는 지혜의 왕, 지혜왕의 머리를 얻기 위한 것이며
우욕만족일체제법무능파괴자재지수(爲欲滿足一切諸法無能破壞自在之首)니 : 또 일체 제법으로 능히 파괴하는 자재한 수를 만족하고자 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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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안주시법(安住是法)하야: 이와 같은 법에 안주해서
정근수습(精勤修習)하면 : 정근 수습할 것 같으면
즉위이입제불종성(則爲已入諸佛種性)하며 : 제불종성에 곧 들어가는 것이 되며
학불행시(學佛行施)하야 : 부처님이 행하는 보시를 배울 때에
어제불소(於諸佛所)에: 제불소에서
생청정신(生淸淨信)하야: 청정한 믿음을 내어서
증장선근(增長善根)하며: 선근을 증장시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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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제걸자(令諸乞者)로 : 모든 구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개득희족(皆得喜足)하고 : 기쁘고 만족함을 얻게 하고
기심청정(其心淸淨)하야 : 그 마음이 청정해서
경열무량(慶悅無量)하며 : 아주 경사스럽고 기쁨이 한량이 없이 넘쳐나며
심정신해(心淨信解)하야 : 마음이 청정해서 믿고 이해해서
조명불법(照明佛法)하며 : 불법을 환하게 비춰서 알며
발보리의(發菩提意)하야 : 보리의 뜻을 발해서
안주사심(安住捨心)하며 : 버리는 마음, 사심에 안주하며
제근열예(諸根悅豫)하야: 제근이 희열하다. 모든 근, 안이비설신의 육근이 전부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서
공덕증장(功德增長)하며 : 공덕이 증장해서
생선락욕(生善樂欲)하야: 좋은 낙욕을 낸다. 이것이 중요하다. 좋은 낙욕. 모든 사람들이 다 낙욕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그 낙욕이 선낙욕이냐 하는 것이 문제다. 선낙욕을 내어서
상호수행광대시행(常好修行廣大施行)이니라 : 항상 광대한 보시행 수행하기를 좋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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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이: 보살이
이시(爾時)에 : 이 때에
이제선근(以諸善根)으로 : 모든 선근으로써
이시회향(如是廻向)하나니: 이와 같이 회향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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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원일체중생(所謂願一切衆生)이 : 소위 일체중생이
득여래두(得如來頭)하고 : 머리를 보시하는 이야기니까 일체중생이 전부 여래의 머리를 얻고
득무견정(得無見頂)하야 : 무견정 아무도 그 이마를 볼 수 없는 그런 이마를 얻어서
어일체처(於一切處)에 : 일체처에서
무능영폐(無能暎蔽)하며: 능히 가리울 이가 없으며
어제불찰(於諸佛刹)에 : 또 제불찰에
최위상수(最爲上首)하며 : 가장 상수가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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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우선(其髮右旋)하야 : 그 머리카락은 오른쪽으로 돌아서, 머리카락이 오른 쪽으로 돈다.
부처님이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광정윤택(光淨潤澤)하고: 빛은 깨끗하고 또 윤택해서
만자엄식(卍字嚴飾)하야: 만자로써 꾸며졌다. 모든 머리카락은 말할 것도 없고 손에 있거나 발에 있거나 피부에 있는 모든 털이 전부 만자로 장엄되어서
세소희유(世所希有)라 : 세상에 희유한 바일 것 같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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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족불수(具足佛首)하며 : 불수를 구족하며 부처님의 머리를 구족하게 되며
성취지수(成就智首)하며 : 지혜의 머리를 성취하게 되며
일체세간(一切世間)에 : 일체 세간에
최제일수(最第一首)며: 가장 제일가는 머리가 되며
위구족수(爲具足首)하며 : 모든 것을 갖춘 머리가 되며
위청정수(爲淸淨首)하며 : 청정수가 되며
위좌도량원만지수(爲坐道場圓滿智首)니라: 도량에 앉아서 원만한 지혜의 머리가 되기를 원하느니라. 저기 위에 소위 원(願) 할 때 원자를 여기에 해석한다.
청정수가 되어서 도량에 앉아서 마지막에 도량에 앉으면 깨달음만 남았다.
정각만 남은 것이다. 도량에 앉아서 원만한 지혜의 수가 되기를 원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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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보살마하살(是爲菩薩摩訶薩)의 :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보시두시(布施頭時)에: 머리를 보시할 때의
선근회향(善根廻向)이니 : 선근회향이니
위령중생(爲令衆生)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득최승법(得最勝法)하야 : 가장 수승한 법을 얻어서
성어무상대지혜고(成於無上大智慧故)니라: 가장 높은 큰 지혜를 성취하기 위한 까닭이니라.
무엇을 보시하든지 오로지 그저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이다. 중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똑같은 말이 여러 수 만 번 수십 만 번 반복되더라도 반복 될 때마다 우리에게 축적되는 의식의 세계는 분명히 달라진다고 하는 것을 아셔야 한다.
그러니까 관세음보살의 귀가 멀어서 우리가 관세음보살을 여러 번 부르는 것도 아니고 ‘관세음보살’ 연습하느라고 부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관세음보살을 부른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한 번 부를 때와 열 번 부를 때, 천 번 부를 때 우리 의식 속, 아뢰야식 속에 축적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임명종시에 아미타불을 열 번 부르면 극락 간다’고 하는데 평소에 열심히 부르지 않은 사람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평소에 열심히 부르니까 죽음을 맞이해서 열 번 아니라 얼마든지 부를 수가 있다는 이치로 전부 귀결이 된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다.
(박수소리)
하강례
향기좋은 꽃바구니
공부를 하러 오시면서 비구니 스님이 절에서 피는 꽃으로 꽃바구니를 만들어 오셨다.
불단에 올리신 꽃바구니는 쟈스민꽃도 섞여 있었는데 사랑스럽고 향기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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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가사를 공양 올리셨던 장호원 무량사 여초스님이 새로 품을 늘린 가사를 가져오셨다. 새로 입으신 가사는 큰스님께 편안하게 잘 맞았다.
“내가 이렇게 조(條)를 많이 할 자격이 있나. 조가 너무 많다.”
하고 큰스님이 말씀하시자 여초스님은 “대가사도 하나 해드릴까요?”하고 여쭈었다.
“아니야 아니야. 이번에 서울에서 가사불사를 해서 가사 받으러 가.” 라고 큰스님이 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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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 다음 주인 6월 13일, 서울 조계사 전통문화 예술 공연장에서 열린 원욱스님과 목동반야사 신도님들이 주최하는 <백 인의 불자들이 백 인의 스님들에게 올리는 가사장삼 공승제 및 나를 바꾸는 화엄경 봉정식>에 큰스님이 참석하셨다.
두 시간이나 되는 긴 공양의식에는 유홍준 교수의 축사도 있었다. 유홍준 교수는 ‘완벽한 형식은 내용의 진실성을 담보해 준다’는 요지로 ‘국보 196호로 지정된 754년에 쓰여진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의 제작경위’ 중에서 아름다운 구절들을 소개하여서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이날 큰스님은 법문에서 ‘내가 안와도 이 행사는 잘 진행되지만 내가 여기 온 것은 한 가지 제안을 하러 왔다. 연탄불공회를 만듭시다’라고 해서 큰 호응을 얻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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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이 승복을 입은 다음 장삼위에 입는 가사는 ‘불교 법복(法服)의 하나로 장삼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는 옷이며, 종파와 법계에 따라 그 색과 형태에 엄격한 규정이 있다.’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가사(袈裟)는 원래 청황적백흑의 5가지 정색(正色)을 피하고 색이 섞이고 바랜 듯한 괴색(壞色)을 말하는 카사야(kasaya)의 음역이라고 한다. 가사에서 조는 세로로 이어붙인 천인데 승납이 높고 지위가 높을수록 조가 많아지고, 대가사는 조가 없는 가사라고도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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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보광사 총무스님이 내려오셨다. 5월 28일에는 큰스님께서 서울 강서구에 있는 보광사에 오셔서 법문을 해주셨다. 그때 신도분들이 모여서 아늑한 화엄법회를 했다.
보광사 총무스님은 화엄회상에 전에부터 다니고 싶었는데 이제 오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계속 공부를 하러 오실 거라고 하셨다.
큰스님은 “현장에서 공부하는 것은 다르지.” 라고 하시면서 운문사 강주스님도 오셨다고 알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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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에서 오시는 비구니 스님은 큰스님이 꼭 기다리시는 스님인데 오늘 늦어져서 못오시나 하는 참에 마침 들어오셨다.
“오늘 큰 행사 있는데 왔네?”
하고 큰스님이 물으시자 에코백을 드리고 삼배를 올리셨다.
오전에 해인사에서 있었던 지관스님의 비석 제막식에서 받으신 책들을 담은 가방이었다.
“이렇게 담아서 줘?”
“예, 문도들이 주지 사는 사람이 많더만요. 차로 막 오고... 스님 오셨나 안 오셨나 내가 봤어요. 못오셨는가 보다 하고 교재나 한 권 갖다드려야지. 하고 가져왔어요.”
“과연 제자로다.”
하고 큰스님이 기쁘게 웃으셨다.
세세생생 가피를 얻으리
오직 중생, 중생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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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혜명화님 수고 많으셨습니다._()()()_
_()()()_ 공부하러 오시는 스님들께서도 큰스님을 공경하시는.. 眞心이 느껴집니다. 불단에 꽃바구니도 어쩐지 더 특별하게 예쁘고요. 와~ 사진까지...^^ 업그레이드 된 화엄경 스케치방이 정말 더 멋진걸요! 고맙습니다.
先情後敎~
이 방이 새로워졌네요..
고맙습니다..혜명화 님!!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환희로 채우는 화엄회상...고맙습니다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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