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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경전의 숲을 거닐다(46-47)'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정준영 교수 /bbs]
초기경전 - 대승경전에 비해 좀 더 섬세하게 묘사 (표음문자의 특징)
어떤 사건이나 일들에 대해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현존 불교의 부류 ①동북아시아 중심의 대승불교
②동남아시아 중심의 상좌부불교
③티베트 중심의 금강승불교
최근 불교의 흐름 - 탈전통화
달라이라마: 금강승불교만 설하지 않고 인간의 문제와 그 해결방법을 다양하게 설법
불교는 더 나아가 과학, 심리학과의 융합을 통해서 불교의 영역이 확장되어가고 있다.
▒ 맛지마니까야 '앙굴리말라의 경' (Angulimala 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 제따숲의 아나타삔다까 승원에 머무셨다.
그 무렵 꼬살라국 빠세나디 왕의 영토에는 앙굴리말라라고 하는 도적이 있었는데
난폭하고 무자비하기 그지없어 끊임없이 살육과 파괴를 일삼았으며
자신이 해친 사람들의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다녔다.
어느 날 세존께서는 아침 일찍 탁발공양을 마치시고 앙굴리말라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셨다.
이 모습을 본 소몰이꾼과 양치기, 농부들이 깜짝 놀라 세존께 말씀드렸다.
"사문이시여, 이 길로 걸어가지 마십시오.
이 길에는 앙굴리말라라는 난폭하고 무자비한 도적이 있습니다.
열 명, 스무 명, 쉰 명의 장정들이 함께 간다 해도 그를 이길 수 없으니
사문이여, 이 길로 걸어가지 마십시오."
그들은 여러 차례 세존을 만류했지만
세존께서는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셨다.
도적 앙굴리말라는 멀리서 세존의 모습을 보고는
칼과 방패를 들고 활과 화살을 메고 세존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앙굴리말라가 아무리 온힘을 다해 달려도
보통의 걸음으로 걷고있는 세존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마침내 그는 달리기를 멈추고 세존을 향해 말했다.
"멈추어라 사문이여, 멈추어라 사문이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앙굴리말라여, 나는 멈추었다.
그러니 그대도 멈추어라."
"사문이여, 그대는 지금 길을 걸으면서 스스로 '나는 멈추었다'고 말하고
멈추어 선 나에게 도리어 '그대도 멈추라'고 말한다.
어찌하여 그대는 멈추었고 나는 멈추지 않았는가?"
"앙굴리말라여, 나는 이 땅의 모든 존재들을 향한 폭력과 파괴를 영원히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대는 뭇생명을 해치고 파괴를 일삼으며 자제할 줄 모르니
나는 멈추었고 그대는 멈추지 않았음이라."
세존의 말씀에 도적은 무기를 깊은 낭떠러지 아래로 던져버리고
세존의 발에 절을 올렸다.
▶앙굴리말라 - 희대의 살인마
그는 잘리숲이라는 곳에 있었다. 세존은 사람들이 세 번 만류했지만 계속 나아가셨다.
앙굴리말라는 그곳을 향해 걸어오는 세존을 보고 세 번 놀라게 된다.
① '아니, 지금까지 20명, 30명이 한꺼번에 와도 다 나에게 해침을 당했는데 혼자 온단 말야?'
'잘 되었다. 내가 지금 손가락을 모아야 되는데 마침 잘 되었다. 가서 죽이겠다. 그런데 대단하네. 혼자 오다니!'
② 죽이기 위해 뒤를 쫓아가는데 세존은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자기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세존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세존은 신통을 부리신 것이다. 그러면서 또 한 번 놀랐다.
'이 자는 내가 죽일 수 없는 자로구나! 나는 이 자의 몸에 닿지도 못 하는구나..'
③ '멈추어라' 하는 말을 듣고 '아, 이분이 바로 세존이시구나. 일반 사문인지 알았는데 말로만 듣던 세존이구나.'
'나를 교화시키기 위해 이곳에 스스로 오셨구나!'
부처님께서는 신통을 거의 사용하지는 않으시지만
대화로써 교화하기 어려운 상대에게는 신통을 보이셨다. (신족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처님 말씀만 듣고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나가야 할지 이해하는데
간혹 이성을 잃은 사람들은 대화로써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에 충격요법이 필요하다. 앙굴리마라 경우에도
이미 많은 사람을 죽였고, 사람을 죽이는 데 미쳐있었기 때문에 대화로 교화할 상황이 아니었다.
세존께서는 앙굴리말라 존자를 시자로 하여
사왓티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승원으로 다시 길을 떠나셨다.
그 무렵 꼬살라국 빠세나디 왕의 궁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찾아와 앙굴리말라의 악행을 왕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폐하, 폐하의 영토에서 활개치고 있는 앙굴리말라의 횡포가 점점 거세지고 있습니다
저 난폭하고 무자비한 도적 앙굴리말라를 어서 잡아들여 벌하십시오."
그러자 빠세나디 왕은 오백 명의 기마병들과 함께 사왓티를 나와 아나타삔티까 승원으로 향했다.
왕이 절을 올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한낮에 무슨 일입니까?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이 대왕을 공격하기라도 했습니까?
아니면 웨살리의 릿차위나 다른 적국의 왕이 그대를 공격했습니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의 고민은 저의 영토 안에서 살육과 파괴를 일삼고 있는 앙굴리말라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도저히 그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만일 앙굴리말라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여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하루 한 끼 식사를 하고, 계율을 지키면서 청정한 생활을 한다면
대왕은 그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우리는 그에게 절을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며
옷과 음식과 필요한 약품을 보시하며, 법답게 그를 보살피고 수호할 것입니다.
하지만 세존이시여, 어찌 그토록 나쁜 행실과 난폭한 성품을 가진 자가
계를 지키며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앙굴리말라 존자는 세존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었다.
세존께서 오른 팔을 들어 보이시면서 꼬살라국의 빠세나디 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저기 보이는 저 수행자가 앙굴리말라입니다."
그 순간 왕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온몸에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부처님은 왕을 진정시켰다.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왕은 너무 놀라서 정말 앙굴리말라인지 확인을 한다. 이름, 아버지 이름, 어머니 이름을 물으면서..
그가 출가한 앙굴리말라 수행자임을 확인을 한 후 의복과 음식, 처소, 약품 등을 보시하고 싶다고 한다.
앙굴리말라는 '나에게 지금 누더기옷 세 벌이 있는데 이것으로 만족합니다. 따로 보시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 180도 바뀌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세존께 또 한 번 놀랐다. '정말 칼이나 몽둥이로도 다스릴 수 없던 사람을
세존께서는 이렇게 교화를 시키시는 분이로구나' 놀라면서 '저희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왕이 그의 신분을 확인한 후에 앙굴리말라 라고 부르지 않고
그의 어머니 이름 '만따니'를 따서 '만따니 뿟따' 즉 '만따니의 아들이여' 라고 부르게 된다.
'앙굴리=손가락, 말라=목걸이, 화관'이라는 뜻.
죽인 사람들 손가락을 목걸이로 걸고 다녀서 '앙굴리말라' 라는 호칭으로 불렸는데
그가 출가한 것을 확인하고 왕이 앙굴리말라 라고 부르지 않고 '만따니 뿟따' 라고 부름.
살인마라 하여도 출가를 하고 그 마음을 고쳐 먹고 참회하고 계를 지키는 생활을 했을 때
→ 과거를 용서해주고 (왕도 벌을 거두고), 호칭도 바뀌고, 새롭게 대접해준다는 것.. 매우 흥미로운 대목
그 당시 출가 수행자들, 특히 세존을 따르는 제자들의 영역이 국법을 초월해서도 보호받는 굉장히 존귀한 영역.
출가의 의미가 얼마나 무거운지.. 함부로 행동해선 안 되겠다, 왕조차 범접하지 못 하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업에 대한 과보는 피할 수 없다.
※빨리어 '손가락' - 앙굴리(anguli) / '화관, 목걸이' - 말라(mala)
▶앙굴리말라 사연
본명 '아힘사카' - '해를 끼치지 않는 자'라는 의미.
그는 바르게 성장을 하고 성인이 되어갈 무렵 간다라의 수도로 유학을 가서 공부도 아주 잘 하였다
그가 공부했던 '따까실라'는 굉장히 유명한 대학이자 교육도시 (부처님 주치의였던 지와까도 여기에서 공부를 한 곳)
아힘사카는 그곳에서 아주 엘리트로 성장하였는데 워낙 능력이 출중하다보니 주위 동료들의 시기와 질투가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아힘사카가 스승의 부인과 부정한 일을 저질렀다는 풍문을 만들어내었다.
화가 나고 복수심에 불타오른 스승은 '이것이 너의 마지막 과제이다.
네가 궁극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의 오른쪽 손가락 천 개를 준비해야 한다' 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힘사카는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시작했고, 사람을 죽여가면서 미쳐가기 시작했다.
999명을 죽이고 '잘리니숲'이라는 곳에 숨어 살고 있었는데, 1,000번째 희생자로 어머니마저 죽이려고 하였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 것을 세존께서 아시고 그것을 막기 위해 직접 잘리니숲으로 들어가신다.
주변 사람들이 계속 만류하였으나 세존께서는 거침없이 그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 이유는 완전히 이성을 잃은 앙굴리말라가 어머니 손가락마저 얻게 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그는 충분히 교화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렇게 들어가신 것 같다.
어느 날 아침, 앙굴리말라 존자가 사왓티로 나가 차례로 탁발을 하다가
여인이 출산 중인 집에 이르렀다. 여인은 지독한 고통을 겪고 있었고
난산 끝에 갓난아기의 몸에 장애가 생기고 말았다.
앙굴리말라 존자는 생각했다
"중생들은 참으로 고통받고 있구나.
중생들은 참으로 고통받고 있구나."
탁발공양을 마친 존자는 세존을 찾아뵙고
방금 전 사왓티에서 느낀 점을 아뢰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앙굴리말라여, 그렇다면 그대는 다시 한번 사왓티로 가라.
가서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해주어라.
'누이여, 나는 태어난 이후
의도적으로 산 생명의 목숨을 빼앗은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진실로 그대가 안락하고 태아도 안락하길 바랍니다' 라고."
존자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거짓입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살아있는 많은 생명들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세존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그대는 그 여인에게 가서 이렇게 말해주어라.
'누이여, 나는 성스러운 수행자로 거듭난 이후
의도적으로 산 생명의 목숨을 빼앗은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진실로 그대가 안락하고 태아도 안락하길 바랍니다' 라고."
앙굴리말라 존자는 여인을 찾아가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했다.
그러자 여인도 안락해졌고 태아도 안락해졌다.
그 뒤 게으르지 않게 열심히 정진을 거듭한 앙굴리말라 존자는
오래지 않아 위없는 청정한 삶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
존자는 태어남이 다하고 청정한 삶이 이루어졌으며, 해야할 일을 마쳤으므로
더 이상 윤회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꿰뚫어 알았다.
앙굴리말라 존자는 아라한 중의 한 분이 되었다.
희대의 살인마 앙굴리말라가 아라한 성인이 되었다.
이야말로 정말 인생역전이다.
부처님은 왜 '나는 태어난 이후 의도적으로 산 생명의 목숨을 빼앗은 적이 없다'고 말하라고 하셨을까?
부처님의 정확한 의중을 파악할 순 없지만 아마도 앙굴리말라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은 아닐까?
지난 과거에 대해서 진정한 뉘우침이 있는지, 그것에 대해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 같고
또 그렇게 예전에 잘못했던 일이라 할지라도 성스러운 삶으로 귀의한 이후에 차이가 있다는 것,
그것에 대해 또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범죄와 범죄자를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
부처님께서 그 모범을 보여주고 계신 이야기이다.
임산부의 고통을 보면서 '아, 중생들은 정말 고통 속에 살고 있구나'
고통에 대해서 일면 체험을 하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성제를 모르고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데, 그 시작인 고통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는 것.
산모가 난산을 하게 된 이유가.. 앙굴리말라를 보고 놀라서 그랬을까?
그렇게 설명하기도 하지만 후대의 주석가들 중에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 당시 인도문화에서 여인이 출산을 하고 있는 곳에 남성은 들어갈 수 없었는데
어떻게 출가자가 출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겠는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라는 주석을 붙이고 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살생을 언급하실 때 그냥 살생이 아니라 '의도적인 살생'이라고 표현하신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나도 모르게 벌레나 곤충을 밟아 죽이는 그런 살생이 아니라
내가 뭔가 계획을 세우거나 그럴 뜻이 있어서 상대방을 죽이는, 그런 의도적인 살생을 피해야 한다는 것
이것 역시 강조하고 계신다.
▶아이러니한 것은 살인마였던 앙굴리말라의 이런 일화 때문에
임산부나 출산을 하는 여인들을 위한 호신주문으로 앙굴리말라의 말이 사용되고 있다.
어떤 대목인가 하면, 그 전에 많은 살생을 저질렀으나 '내가 성스러운 삶으로 귀의한 이후에
그 이후에 나는 어떤 의도적인 살생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임산부에게, 출산하는 여인에게
'편안하고 안온하기를 바랍니다..' 이런 말을 하는 구절이 있다. 이것이 오히려 요즘에는
상좌부전통 불교국가에서 임산부나 출산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들려주는 수호의 문구로 알려져 있다.
어느 날 아침, 앙굴리말라 존자가 사왓티로 탁발을 나갔을 때였다.
어떤 이가 던진 흙뭉치가 존자의 몸에 맞았다.
또 다른 이가 던진 몽둥이가 존자의 몸을 쳤다.
또 다른 이가 던진 돌덩이가 존자의 몸으로 날아왔다.
결국 앙굴리말라 존자는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며
부서진 발우를 든 채로 세존을 찾아뵈었다.
세존께서는 멀리서 존자가 오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견디어라 수행자여, 견디어라 수행자여..
그대가 수 년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지옥에서 고통받을 업의 과보를
지금 여기에서 겪는 것이다."
그러자 존자는 한적한 곳으로 가 홀로 앉아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며 이렇게 노래했다.
'한때 게을렀어도 지금 게으르지 않은 자
그는 이 세상을 비추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저질러진 악업을 선업으로 덮으니
그는 이 세상을 비추네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나의 적들이여, 법문을 듣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라
바른 가르침으로 이끄는
훌륭한 사람들과 사귀라
참된 인욕을 설하고 원한의 여읨을 칭송하는
바른 가르침 따라 수행하면
나를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으리
그는 최상의 평온을 얻어
약한 자도 강한 자도 모두 보호하리라
물을 끌어오는 사람은 반듯하게 물길을 내고
활 만드는 사람은 화살대를 곧게 하고
목수는 나무를 바로잡고
현자는 자신을 다스린다
예전의 나는 손에 피를 묻히는 흉악한 살인자였으나
부처님께 안식처를 얻어
이제는 그 누구도 해치지 않는 자가 되었네
잘 왔노라, 잘못 오지 않았노라
이제 나는 세 가지 밝은 지혜를 얻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성취하였노라'
(마을 사람들은 아무리 앙굴리말라 존자가 아라한이 되었다 해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업에 대한 과보는 크게 세 가지인데, 현세에서 바는 과보, 내세에서 받는 과보, 내세 이후에 받는 과보..
그런데 아라한은 더 이상 윤회하지 않기 때문에 내세에서 받는 과보, 내세 이후에 받는 과보는 받을 수 없다
다만 현세에서는 그 과보를 받아야 한다.
몽둥이와 돌들이 날아왔는데 그것은 앙굴리말라를 해하기 위함이 아니라
까마귀나 개, 고양이를 잡기 위해서 던진 것들이라고 한다. (주석서 설명)
'행위를 보고 말해야지 사람을 보고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사람의 악행을 지적하다가 그만 그 사람 자체를 비난하는 우를 종종 범하기도 하는데
앙굴리말라를 대하는 부처님의 자세에서 또 하나 삶의 힌트를 얻게 된다.
※ 빨리어 '안락, 무사, 편안함' - 솟띠(sotthi) / '편안하길 바랍니다' - 솟띠 혼뚜(sotthi hontu)
※ 범일스님(btn): 왕이 왔다간 후에 '앙굴리말라가 세존의 제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사람들은 '무기로도 제압하지 못하던 앙굴리말라는 세존께서는 교화하셨다' 칭송을 하였지만
유족들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탁발을 다닐 때 세존도 함께 계셨기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는데
그 사이에 그는 아라한이 되었다. 어느 날, 무슨 일로 세존께서 탁발을 안 나가시는 날이 있었는데
그때 유족들이 그에게 돌과 몽둥이를 던져 크게 다친 상태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참아야 한다. 감내해야 한다. 세 가지 이유가 있으니..
첫째, 수백년 수천년 지옥에서 받을 고통을 이것으로 갚는다 생각하고 감내해야 하고
둘째, 그들은 유족들이다, 네가 행한 악업으로 그들이 받았을 고통을 생각해서 감내해야 하고,
셋째, 그 사람들은 아라한인 너를 해친 과보로 지옥고를 받을 것을 생각하고 감내해야 한다."
☞ '부디 이 등을 잊지 마소서' http://cafe.daum.net/santam/JtXH/26
'구름걷힌 달처럼' (합창곡) http://cafe.daum.net/amtb/5Yzr/2422

첫댓글 예 고맙습니다.
예, 저도 고맙습니다.. 들러주시고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시고 댓글까지 남겨주셔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