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상 글 >
무심코 뿌린 말의 씨앗
글 : 이 클라우디아(해인) 수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에 좋은 열
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해 주신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고 품위있는
한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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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8주일
2012. 8. 5
요한 6, 24 ~ 35
♠ 복음 연구
* 24~25절 : 무리들은 빵의 기적이 있었던 그 밤에 제자들의 배가 한 척뿐이었고 그 밤에 그 배로 제자들만 떠났고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배에 오르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은 예수께서 다른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실 수 없었음을 증거한다. 그것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가지 않고서는 바다 건너편으로 가실 수 없었음을 부수적으로 증거한다. 무리들은 자기들의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에 가서 예수님을 만났다. 무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왔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찾고 그에게 나아오려는 열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예수께 나아온다고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동기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에게 오는가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단지 열심만으로는 부족하였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바른 생각과 마음을 가진 열심이 필요하다.
* 26~27절 : 예수께서는 자기를 찾아온 무리들의 잘못된 생각과 마음을 지적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기적을 보았기 때문에, 즉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보고 그를 믿었기 때문에가 아니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단지 빵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오늘도 또 그런 기적의 빵을 먹을 것을 기대하며 온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그것은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셨다. 빵은 사람에게 필요하지만, 결국 다 썩는 양식에 불과하다. 그래서 구약성경 전도서는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과 부귀영화와 그 모든 즐거움들은 다 지나가는 것들이다(요한 2:17). 사람은 빵을 아무리 먹고 또 먹어도 결국 늙고 병들고 쇠하고 죽고 만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즉 우리의 삶의 목적과 목표를 허무한 데 두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도 예수님 당시의 무리들과 비슷하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관심과 목표는 단지 세상의 것들, 즉 물질의 복이나 육신의 건강과 행복에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것들을 찾아 교회에 나오고 예수님을 믿으려는 것은 심히 부족하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다 썩는 양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비록 교회에 나와 그런 것들을 다 얻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영원하지 못하고 결국 다 없어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과연 영원한 것이 있는가? 이 세상에 과연 영생이 있는가? 우리가 하느님을 발견하게 될 때 그것을 깨닫고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 하느님은 영원하시다. 하느님은 영생이시며 그의 말씀은 영원하다. 베드로1서 1:23-25,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 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계시다.” 바로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복된 사실인가? 또 하느님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생을 주신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로 확증하셨고 보증하셨으며 그러므로 우리가 믿을 만한 자라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 보내신 구주이시요 영생을 주시는 주님이시다.
* 28~29절 :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사람들이 묻자,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라고 대답하셨다. 그렇다. 영생을 위해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 사람은 그를 믿어야 영생을 얻는다. 그것은 썩지 않는 양식이며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요 1:12). 그러나 하느님께 감사하게도,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지만, 이제는 여러분이 전해 받은 표준 가르침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롬 6:17). 마음으로 그를 거역하거나 거절하거나 배척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자.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자. 빵 기적을 통해, 바다 위로 걸어오신 기적을 통해 그를 믿자. 우리의 삶 속에서 하느님을 첫째로 여기자. 하느님의 말씀을 첫째로 여기자. 믿는 일을 크게 여기자. 교회를 귀히 여기자. 공동체 모임를 귀히 여기며 힘써 지키자.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다 썩는 양식을 위한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느님을 섬기며 성경 말씀을 배우는 일은 썩지 않는 양식, 즉 영원한 생명의 일이다. 그 일을 첫째로 귀히 여기며 그 일을 위해 힘쓰자.
* 30~31절 : 기적의 빵에 대한 관심 때문에 예수께로 모여온 무리에게 썩지 않고 영생하는 양식 즉 하느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일에 대해 말씀하시자, 무리들은 그를 믿을 어떤 표적을 요구하였다.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그들은 덧붙여서 자기 조상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것처럼 어떤 표적을 보여줄 것인지를 질문하였다. 그들의 질문에는 여전히 빵의 기적을 구하고 물질적 기적을 의지하는 기적주의적 생각이 있어 보인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질문을 하는 것 같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무슨 외적인 증거가 있는가? 우리가 그를 믿을 만한 어떤 외적인 증거가 있는가?” 물론, 성경에는 그런 질문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만한 충분한 많은 증거들을 주셨고 그것들을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진지하게 믿고자 하는 자라면 성경을 읽고 살펴봄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 32~34절 : 예수께서는 무리들의 질문에 진실하게 대답하시면서 광야 40년 동안 날마다 하늘에서 내렸던 만나, 이스라엘 백성이 날마다 먹었던 그 만나는 모세가 준 것이 아니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내려주셨던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이제 하늘에서 참 빵을 내리셔서 세상에 생명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빵은 육신의 생명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은 날마다 빵을 먹어야 살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빵을 먹어도, 날마다 빵을 먹어도 결국 죽고 만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느님이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고도 죽은 것과 같지 않은 빵, 참된 생명,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그가 죽지 않는 생명의 빵에 대해 말씀하시자 무리들은 그 빵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말했다. “주여 이 빵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 35절 : 생명의 빵에 관심을 가진 무리에게, 예수께서는 “내가 곧 생명의 빵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어떻게 생명의 빵이 되시는가? 그것은 그의 속죄 사역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인간이 죽는 것은 죄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죄가 없는 천국에서는 죽음도 없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인간의 그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것이었다. 그는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해 완전한 의(義)를 이루셨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그 의를 나누어 주심으로써 그를 믿는 자들이 죽지 않고 살며 죽어도 다시 살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고 말씀하신 것이다. 굶주리고 목마르면 결국 죽는 것이지만, 그에게 오는 자 곧 그를 믿는 자는 결코 굶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영원히 살고 죽지 않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빵이시다. 그러나 이 놀라운 생명의 주를 눈 앞에 두고도 유대인들은 그를 믿지 않았다.
♠ 복음 요약 : 인용된 성서구절이 예수 편에서 새롭게 해석된 내용이다. 첫째로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만나를 주셨다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모세를 ‘해방자’,‘구원자’로 여겼고 모세가 약속한 메시아적 예언자도 모세처럼 만나를 먹도록 해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모세를 통해 만나를 주신 분이 곧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모세를 능가하는 자임을 시사한 것이다. 둘째로 과거형 ‘주었다’를 현재형 ‘준다’로 설명한 것이다. 물론 유대인들도 탈출기나 만나를 과거 사건으로만 여기지는 않았고 앞으로 오게 될 메시아 시대와 연관시켰던 것이다. 예수의 현재형 언급은 바 그 시대가 지금 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셋째로 예수의 아버지께서 하늘로부터 주시는 빵은 참된 빵이라는 것이다. 이 ‘하늘의 빵’은 우선 만나보다 훨씬 더 뛰어난 빵임을 시사하고 실제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참된 빵으로서 새로운 빵임을 뜻한다. 특히 참된 빵이란 말은 하늘의 빵이 만나의 의미를 참으로 성취하고 신적인 본질과 생명으로 충만한 빵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 대화 방향 : ① 성당 내에 여러 단체에서 봉사자역할을 하면서 내가 아니면 다른 이는 할 수 없기에 그만 둘 수가 없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가?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이 보시기에 타당하다고 여기는가?
② 평신도들의 나눔보다는 본당신부님이나 교구장의 나눔을 더 소중히 여겨서 평신도들의 나눔을 경시한 적이 있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의 하신일과 비교해서 타당한일인가? 묵상해봅시다
♠ 참고 문헌 : ▪성서주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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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9주일
2012. 8. 12
요한 6, 41 ~ 51
♠ 복음 연구
* 41절 : ‘수근거리기 시작하였다.’고 하는 것은 불평을 말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 42절 :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왔다고 하는 것은 유다인들에게 더할 나위없는 엉터리로 들렸다는 것이다.
* 43절 : 이런 수군거림을 완전히 무시하시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불평을 말라고 권하신다.
* 44절 : ‘이끌어준다’는 그리스말의 동사는 무거운 물건, 예를 들면 배나 수레를 온 힘을 다해 끈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어떻게 사람들을 이끌고 가시는가? 강제로 아니 하시고 당신의 가르치심으로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으로써 사람을 끌고 가신다.
* 45절 : 아드님 그리스도께 이르기 위하여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만일 사람이 그분의 가르침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곧 인간의 협력도 있어야 하고 착한 의지도 있어야 한다.
* 46절 : 하느님 아버지를 본 사람은 그리스도뿐이시다. 그분만이 하느님의 비밀을 완전하게 아시고 우리에게 알려주실 것이다.
* 47절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는 말씀으로 더 한층 존엄성을 띄고 있다. 곧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참된 양식을 사람에게 주시고자 하신다.
* 48~50절 : 물질적인 양식이었던 만나는 그것을 먹는 사람들의 육체에서 죽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영적인 양식인 생명의 빵은 그것을 먹는 사람에게 그것 자체로 영원한 영적 생명을 주는 것이다.
* 51절 : “생명의 빵” 대신에 여기서는 “살아있는 빵”이라고 하셨는데, 이 빵의 본성을 더욱 명백히 보여주신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는 말씀은 새로운 관념을 내어놓고 있다. 지금까지의 빵은 과거형을 가지고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으로 되어있는데, 지금부터는 미래형으로 아들 자신에게서 받을 것이다. 이것은 벌써 실현된 것이 아니고 장래를 위한 약속이었다. 이것을 생각해보면 위에서 하신 선언이 지닌 성체적 의미를 부인할 수 없게 된다.
♠ 복음 요약 :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어떤 사본에는 이 말씀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내가 주는 빵은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넘겨주는 나의 살이다.’라고. 까르무 신부는 ‘이 절에는 수난의 예언과 성체의 약속이 뒤섞여 있는데 여기에는 애매한 점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성체는 성사인 동시에 참된 예물,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사에서 우리는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참된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봉헌한다.
♠ 대화 방향 : 성체를 모시러 나갈 때 어떤 태도로 나가는가 ? 모시고 자리에 와서는 어떻게 기도하는가 ? 성체의 삶(비움, 나눔, 사랑)을 어떻게 사는가 ?
♠ 참고 문헌 : ▪ 신약성서 주해집 (크리스찬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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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일
2012. 8. 19
요한 6, 51 ~ 58
♠ 복음 연구
* 51절 :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으로 자처하셨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아들 예수님을 천상의 빵으로 주셨다는 뜻이다. 당신 살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과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베푸는 빵으로 내어주셨다. 우리는 성체성사에 참여하여 성체를 그 분의 살로 받아 모신다.
* 52~54절 : 예수님이 당신 살을 영원한 생명을 위한 음식으로 주신다고 말씀하시자, 유다인들은 이 살을 그분의 육신으로 잘못 알아듣고 서루 다투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예수님을 생명의 빵으로 믿고 다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장엄한 어조로 인자이신 당신 살을 먹고 당신 피를 마셔야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고 이르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가 영원한 생명을 전해주는 음식과 음료임을 믿고 성체를 받아 모신다. 영원한 생명은 세상종말에 하느님의 왕국에서 베풀어지는 선물이지만 영성체를 통해 이미 주어지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이 지상에 사셨던 예수님의 육체적인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신 인자의 살과 피, 영으로 가득 찬 살과 피이고, 그분의 전인적인 인격을 표현한다. 우리가 성체성사에 참여하여 그분 자신과 인격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우리는 믿음의 힘으로 그리스도 안에 머물고, 그분은 우리 안에 현존하신다.
* 55~56절 : 예수님의 살과 피는 영원한 생명을 위한 ‘참된 빵과 참된 음료’, 즉 실체적이고 확실한 음식이다. 중요한 것은 그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분과 인격관계를 보존하는 것이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살 수 있듯이, 예수님과 관계를 보존해야 하느님의 생명을 누릴 수가 있다.
* 57~58절 : 예수님이 아버지의 파견을 받아 그분 때문에 사시듯, 예수님의 살을 먹는 이도 예수님 때문에 산다. 그리스도인의 생명의 원천이 예수님이시고, 그분의 생명의 원천은 아버지이시라는 뜻이다. 그들은 영성체를 통해 예수님과 인격관계를 맺어 아버지와 예수님의 일치에 참여하고, 서로 하나가 되며, 아버지의 생명을 누린다. 이처럼 예수님은 만나와는 달리 영생을 주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시다.
복음 요약 :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은 곧 당신의 살이고, 그것으로 세상은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신 성체를 먹는 것뿐 아니라 예수님과 같은 인격으로 살아야 가능하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신비를 상기시켜 줄 뿐 아니라 실제로 재현시킨다.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자기를 온전히 내어주는 행위를 최고로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성체로써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사시고 진정 하나 되었다면 성체를 영하는 형제자매들도 하나 되어야 한다.
♠ 대화 방향 : 외로움과 오해받음, 몰이해의 고통들 가운데서도 늘 나와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이시다.
삶이 힘겨울 때 나는 어디에서 힘을 얻는지 생각해 봅시다.
♠ 참고 문헌 : ▪ 말씀의 등불 (가톨릭신문사) ▪ 말씀의 두레박 (생활성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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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1주일
2012. 8. 26
요한 6, 60 ~ 69
♠ 복음 연구
* 60절 : 여기서 제자들이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을 뜻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제자들이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라는 말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이 모두 들어있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라는 말에는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라는 뜻과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라는 뜻이 모두 들어 있다. 그들에게는 살과 피를 먹는다는 말과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이 몹시 듣기 거북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실생활을 예로 들면서 알아듣기 쉽게 가르치려고 애를 쓰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깊은 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에 관한 가르침에서는 비유를 사용하지 않으셨고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쉬운 예를 들지도 않으셨다. 그것은 이 가르침을 우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 61절 :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라는 말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이것이 너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느냐? 이다. 이 말은 내가 한 말이 너희의 믿음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냐? 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계시 말씀은 믿으려고 노력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믿음을 더욱 굳게 해주지만, 믿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걸려 넘어지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 62절 :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다는 것은 수난, 죽음, 부활, 승천을 모두 뜻하는데, 당신의 신적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을 뜻한다. ‘보게 되면’이라는 말은 신앙의 눈으로 보게 되는 것, 즉 믿음과 깨달음을 동시에 뜻한다. 그래서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시는 것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체성사에 관한 가르침도 알아듣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 63절 : 이 구절의 영은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의 아들, 즉 메시아이신 예수님으로 해석된다. 육은 지상에서의 인간 예수님으로 해석된다. ‘영은 생명을 준다’라는 말은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의 아들, 즉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뜻이다.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라는 말은 지상적인 차원, 또 육적인 차원에서는 영원한 생명의 약속, 구원 등 그동안 말씀하신 것들을 다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지상 생애가 다 쓸모다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시고, 수난과 죽음을 당하신 일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그 일들의 완성은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심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60절에서 제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불평했던 말들을 가리킨다. 즉 생명의 빵, 성체성사에 관한 가르침이다. ‘영이며 생명이다’라는 말은 예수님의 말씀은 영과 생명을 지는 영적 말씀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영으로 가득 차 있는 말씀이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것처럼 인간적인 이성으로 판단하고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 64절 :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라는 말은 너희들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믿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라고 다시 촉구하시는 말씀이다. 또 그들이 계속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의 책임이며 예수님 탓이 아니라는 뜻도 들어있다. ‘예수님께서 믿지 않는 자들, 당신을 팔아넘길 자를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는 말’은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속을 꿰뚫어보시는 분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 65절 : 이 구절은 앞의 37절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라는 말씀과 44절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라는 말씀을 반복한 것이다. 즉 믿음은 곧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다시 강조하는 말씀이다. 믿음이 은총이라는 말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일방적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은총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은총을 주시지 않는다고 하면 인간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게 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은총을 베푸시는 분이다. 그 은총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바로 믿는 사람이고, 그 은총을 거부하는 사람이 바로 믿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결국 믿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은 하느님이 아니라 믿지 못한 그 사람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 66절 : 그동안 예수님을 믿고 따라다녔던 사람들이 성체성사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믿음을 잃게 되고, 예수님을 떠나게 된다.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라는 말은 그들과 예수님의 관계가 끊어졌음을 뜻한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 관계를 끊은 것이다. 만일에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믿으려고 노력했다면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고 믿음의 결실을 얻었을 것이다.
* 67절 : 아마도 열두 사도만 남고 다른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떠났을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활동에 있어서 하나의 위기였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라고 물으시는 것은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는 질문이면서 동시에 더 굳은 믿음을 갖도록 격려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 68절 : 베드로가 제자들의 대표자 자격으로 대답을 한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라는 반문은 예수님만이 그들의 삶의 방향과 목적을 제시한다는 고백이다. 그래서 이 말은 그들은 예수님만을 따르겠다고 결심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라는 말에서 말씀은 성체성사의 가르침을 포함해서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말씀을 뜻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들을 다 알아듣지는 못하더라도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이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 69절 :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는 말은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시면서 하느님과 함께 하시는 분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곧 메시아를 뜻한다. 그래서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믿는다는 고백이다.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다.’라는 이중적인 표현은 베드로의 믿음이 강한 확신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나타낸다. 즉 마음으로 믿고 생각으로 아는 것이 일치되어 있는 내적 확신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안다’라는 말은 예수님을 안다는 것인데, 이 말은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깊이 결합하고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베드로의 고백을 다시 정리하면,
1)예수님 외에는 이 세상에서 믿고 따라갈 만한 분이 없다는 것,
2)예수님만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실 수 있다는 것,
3)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 복음 요약 : <묵상 - 예수님의 사랑과 우리의 응답>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믿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무슨 죄를 지었든지 간에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믿어주시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믿어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따라서 믿음이란 예수님의 믿음과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예수님만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나를 믿어주실 것이라는 그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께 의지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라는 것도 하나의 응답입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사랑으로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시고 우리는 다만 그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에 대한 응답이 곧 회개입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님과 우리가 일치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일치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일치되기를 원하셔서 음식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성체를 받아먹는 것은 예수님의 그 사랑에 응답하는 일입니다.
일치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 곧 영성체입니다.
♠ 대화 방향 : ① 베드로의 고백처럼 나 또한 고백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② 영성체를 모실 때의 나의 마음과 자세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③ 나는 예수님의 사랑에 응답을 잘 하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 참고 문헌 : 송영진 (모세) 신부 성경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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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형제회(FB) 전국 봉사자 7월 월례회의 > 내용 공지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FB
권 토마 (순)
2012년 7월 전국봉사자 월례회 모임은 원곡동 안방마님이신 김상희세실리아 집에서 열렸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속에서도 아폴로니아 자매님, 보나파시아 자매님,
이쁜 큰누님이신 아나스타시아 자매님이 전주서 올라오셨다.
서울은 베드로 혼자 오셨고, 원곡동은 15여분이 참석하셨다.
보나벤투라 형제님은 학교수업관계로 참석하시지 못했다.
그날 진행은 당산동의 한 남기 베드로 형제님이 했다
궂은 날씨 속에서도 세실리아 누님은 맛있는 음식 솜씨를 한껏 뽐내셨다.
코이노니아로 시작해서 주요한 안건인 <성서형제회 하계 연수회> 일정을 정리해 보았다.
전주는 여러 가지 자료를 모은 자료집을 소개하셨다.
특이하게 이번 하계연수회에서는, 41세 늦은 나이에 사제가 되셨고, 지금은 부산교구의 퇴직하신 원로신부님으로 계시는 허성신부님이 수고해주신다고 한다.
신부님은 그동안 주로 사제들을 위한 강의를 해 오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동엽신부에 의해서 소개되기도 한 허성신부님은 평탄한 삶은 아니신 것 같았다.
사제로 서품되기까지 신학교며 수도원에서까지 쫓겨나신 적도 있고, 선교사생활 후 늦은 나이에 사제생활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요번에 여름수련회에 가는 유항검 생가터에서 진행되는데, 다른 곳과 달리 ‘생가터’라고 하는 것은 나라에서 큰 죄를 지었을 때에는 그가 사는 집을 불사르고 그곳에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연못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유항검은 우리나라에 천주교회 역사에 등장하는 윤지충과 권상연과는 사촌간이고, 우리나라를 세상에 알려진 것이 그때당시 외국주교님에 의한 자료를 바탕으로 달리신부가 쓴 조선천주교역사가 전부인까닭에 조선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한 달리에 의해서 한동안 유항검은 배교자로 알려져 성인품에 오르지 못했다고 합니다.
요즈음 들어서 새로이 해석되고 새롭게 발굴되어 교황청에 보낼 125인 성인품명단에 올려졌다고 합니다. 유항검은 윤지충과는 이종사촌간이고 권상현과는 외사촌간이라고 알려져 있다. 내포지방의 사도인 이존창과 더불어 일찍이 우리나라 천주교의 시작을알려진 인물이신 유항검집안의 신앙생활을 되살펴보는 좋은 여름수련회가 되기를 간절히 빌어봅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한 사람들은 각종 관군의 탄압을 피해 전국을 다녔기에 그중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첫사제이신 중국인 주문모신부를 우리나라에서 활동케 한 대표적인 여성회장인 강완숙도 여기에 속한다. 우리나라에 주문모 신부및 프랑스신부가 오셨지만, 그들은 들어와서 얼마 있지 않아서 순교되고 오랫동안 우리나라 사제를 기다리다가 몇 십 년만에 한국첫사제인 김대건신부도 활동하신지 몇 해가 되지 않아서 순교하시고, 그나마 최양업십부님은 홀로 전국을 헤메이시다가 과로로 순직하셨으나, 나라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신자수의 증가는 오로지 평신도 회장들 특히 여자회장단들의 목숨 건 희생이 있기에 가능했다
조선유교사회인 그때에는 집안에 제사를 지내야하고, 조상신을 집안에 모셔둬야 하고, 그리고 나이가 찬 사람들 특히 여인네들은 시집을 가지 않으면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기에 형식적인 결혼생활인 동정부부가 생겨났으니, 그 중 하나가 루갈다 동정부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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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6월 1일 ~ 30일 수입 지출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