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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7:15
언약의 핵심은 주도성입니다. 그분이 먼저 언약을 제안하셨고, 조건도 먼저 정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언약의 파드너인 우리가 얼마나 자격이 안되는지 알면서도 맺으셨어요. 그러니 언약 준수의 핵심은 우리의 반응보다 압도적으로 그분의 신실한 사랑이어야 했습니다. 제어되지 않은 욕망은 모든 관계를 파괴하고 왜곡합니다. 욕망이 지배하면 자신에게 이득이 될 때만 계산적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야곱은 유언의 때를 앞당겨 더 각별하게 사랑하는 아들에서를 축복하려고 했습니다.
Leadership is the core of the covenant. He first proposed the covenant and set the conditions first. Above all, he concluded it even though he knew how unqualified we were as the padners of the covenant. So the core of observance of the covenant had to be his faithful love, overwhelmingly more than our reaction. Uncontrolled desire destroys and distorts all relationships. When desire rules, it only recognizes computationally when it benefits you. Jacob tried to bless his more specially loved son by advancing the time of his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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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 역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한 채 동물 가죽과 형의 옷을 뒤집어쓰고 그 축복을 가로채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리브가도 아버지를 속이는 일에 아들 야곱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자식을 향한 애정 때문에 부부 관계에 거짓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하나님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아비를 속입니다. 이삭은 분명 큰아들에서의 목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끝까지 의심한 듯하지만(18,21,24,27), 에서의 털옷과 염소 가죽의 촉감에 속고,
It seems that Jacob also tried to steal the blessing by wearing animal skins and his brother's clothes without waiting for God's time. Rebekah is also actively helping his son Jacob to cheat his father. There are lies in the marital relationship because of his affection for his child. Jacob deceives his father by hiding his identity and even mentioning God's name. Isaac apparently thought it was not the voice of his eldest son and was deceived by the touch of fur and goat skin in (18,21,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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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에, 옷의 향취에 속아서 야곱을 위해 복을 빌고 있습니다. 송아지 가죽보다 더 부드러운 것이 염소가죽입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 권을 빼앗은 형제를 향한 비정함, 자식을 향한 부모의 편애, 부부간의 속임수와 부모자식간의 속임수 등, 보기에 심히 좋았던 첫 창조의 관계가 깨진 채, 혼돈과 무질서의 관계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죽기 전에 해주는 축복의 내용은 재산권인 재물과 지도력인 권위에 관한 것입니다.
He is deceived by delicious food and the scent of clothes and blesses Jacob. Goat skin is softer than calfskin. The seemingly good first relationship of creation, such as heartlessness toward the elder brothers who took away the crown in a bowl of red bean porridge, parental favor toward children, and deception between husband and wife and child, was broken and filled with chaos and disorder. In Genesis, a father's blessing before his death to his son concerns wealth, which is a property right, and authority, which is a leade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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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업이란 한 아들에게 다 주지 않고 나누어주는데 이삭은 모든 축복을 에서에게만 몰아주려고 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잊은 가정은 온갖 속임수로, 혹은 제 힘과 지혜로 자기 잇속을 챙기려 했지만 이제 그들이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들의 손에서 그것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께서 악을 선으로 혼돈을 질서로 바꾸시어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야곱이 이삭에게 받은 장자의 축복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야곱에게 작정하신 것입니다.
Dairy labor is distributed to a single son rather than to a single son, but Isaac seems to have tried to drive all of his blessings only from Esau. Families who have forgotten God's promises have tried to take care of themselves with all kinds of tricks, or with my power and wisdom, but now when they love, the more they will experience them escaping from their hands. God will eventually turn evil into good and chaos into order, and God's plan will come true. The eldest son Jacob received from Isaac was promised by God to Abraham and was determined to Jac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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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은 자신도 모르게 이 약속의 충실한 전달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야곱의 후손에게 풍성한 땅의 열매와 만민과 열국을 다스릴 권세와 복의 근원이 되는 영예가 주어졌습니다. 속이는 자가 받기엔 과분한 축복이긴 하나, 성경은 왜 하필 야곱인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방식으로 앞당기고 있는가? 나는 왜 직장을 하나님의 인도도 없이 교체하려하는가?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Isaac unwittingly serves as a faithful messenger of this promise. In this way, Jacob's descendants were given the honor of being the source of the abundant fruit of the land, the power and blessings to rule over all the people and the world. Although it is a blessing too good for the deceiver to receive, the Bible does not explain why Jacob is of all ages. Do we trust God's will, or are we advancing it in our own way? Why do I want to replace my workplace without God's guidance? Are we not pursuing the kingdom of God in the way we w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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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특식이 준비되다(15-19)
이삭이 속임수에 넘어가다(20-23)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다(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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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가가(15a)
집안 자기 처소에 있는(15b)
맏아들에서의(15c)
좋은 의복을 취하여(15d)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1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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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16a)
그 손과 목의(16b)
매끈매끈한 곳에 꾸미고(1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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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만든 별미와 떡을(17a)
자기 아들(17b)
야곱의 손에 주매(17c)
야곱이(17d)
아버지에게 나아가서(1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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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여 하고 부른대(18a)
가로되 내가 여기 있노라(18b)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1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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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19a)
아비에게 대답하되(19b)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19c)
에서로소이다(19d)
아버지께서(19e)
내게 명하신대로(19f)
내가 하였사오니(19g)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19h)
내 사냥한(19i)
고기를 잡수시고(19j)
아버지의 마음껏(19k)
내게 축복하소서(1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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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20a)
그 아들에게 이르되(20b)
내 아들아(20c)
네가 어떻게 이같이(20d)
속히 잡았느냐(20e)
그가 가로되(20f)
아버지의 하나님 (20g)
여호와께서(20h)
나로 순적이 만나게(20i)
하셨음이나이다(20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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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21a)
야곱에게 이르되(21b)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21c)
네가 과연 내 아들(21d)
에서인지 아닌지(21e)
내가 너를 만지려 하노라(2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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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그 아비(22a)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22b)
이삭이 만지며 가로되(22c)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22d)
손은 에서 의 손이로다 하며(2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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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손이(23a)
형에서의 손과 같이(23b)
털이 있으므로(23c)
능히 분별치 못하고(23d)
축복하였더라(2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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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 가로되(24a)
네가 참 내 아들에서냐(24b)
그가 대답하되(24c)
그러하나이다(2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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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 가로되(25a)
내게로 가져오라(25b)
내 아들의 사냥한(25c)
고기를 먹고(25d)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25e)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25f)
그가 먹고(25g)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25h)
그가 마시고(2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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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비 이삭이(26a)
그에게 이르되(26b)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26c)
내게 입 맞추라(2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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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까이 가서(27a)
그에게 입 맞추니(27b)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27c)
그에게 축복하여(27d)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27e)
여호와의 복 주신(27f)
밭의 향취로다(2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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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28a)
하늘의 이슬과(28b)
땅의 기름짐이며(28c)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28d)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2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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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이 너를 섬기고(29a)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29b)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2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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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미의 아들들이(29d)
네게 굴복하며(29e)
네게 저주하는 자는(29f)
저주를 받고(29g)
네게 축복하는 자는(29h)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2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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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아들에게 속아 복을 비는 이삭_Isaac, who is deceived by his wife and son.
속임과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하나님의 뜻_ the will of God in deceit and relationships
속이는 자에게는 과분한 축복_ a blessing to the du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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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아우성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목도하고 있나이다. 주님, 제가 험악한 세월을 산 것을 아시지요? 하나님의 약속을 잊은 가정은 온통 속임수를 통해 자기 잇속을 차지하려고 발악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저희 어리석음과 거짓에도 변함없이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Do you see God's will in the roar of man? Lord, you know I've had a rough time. All the families who forget God's promise have no choice but to work hard to gain their own profits through deceit, but we praise God, whose plans are steadfast in our folly and falsehood.
2026.4.19.sun.Clay
신학 비평//
속임 속에서 이루어지는 약속 , 누가 언약을 붙들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방식으로 앞당기고 있는가? 창세기 27장은 신학적으로 불편한 장면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그런데 이 가정 안에서는 그 약속을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삭 → 에서를 축복하려 함, 리브가 → 속임으로 개입, 야곱 → 거짓으로 축복 탈취, 에서 → 이미 장자권을 가볍게 여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옳으냐가 아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기다리지 못하고, 확인하려 하고, 결국 개입한다. 신뢰 대신 조작으로.
1) 감각에 속는 인간 — 영적 분별의 붕괴
이 장면의 핵심은 속임 자체가 아니다. 어떻게 속았는가 이다. 이삭은 다 알고 있었다. 목소리는 야곱인데? 왜 이렇게 빠르지? 그런데도 결국 속는다. 왜인가? 감각 때문이다. 촉감 (염소 가죽)-미각 (별미)-후각 (옷의 향취) 육체의 감각이 영적 분별을 압도한다. 이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타락 이후 인간의 상태다. 보기에 좋은 것, 맛있는 것, 익숙한 것, 이것이 진리를 대체한다. 에덴동산의 반복이다.
2) 관계의 붕괴 — 사랑이 욕망이 될 때
이 가정은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었다. 그런데 그 사랑이 편애가 되고, 조작이 되고, 속임이 된다. 아버지는 한 아들만 사랑하고 어머니는 다른 아들을 밀어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속인다. 사랑이 아니라 욕망의 네트워크다. 사랑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을 때 그 사랑은 반드시 왜곡된다. 사랑하면 할수록 망가진다. 이 문장이 이 본문의 핵심이다.
3) 그런데도 이루어지는 약속
여기서 신학의 핵심이 터진다. 이 모든 엉망진창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야곱이 축복을 받는다. 이건 아이러니가 아니다. 언약의 본질이다. 인간은 실패한다. 관계는 무너진다. 동기는 더럽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는다. 이것이 은혜다.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 속이는 자에게 주어지는 약속, 그래서 이 장면은 불편하지만 동시에 위로다. 왜 하필 야곱인가? 성경은 설명하지 않는다. 왜 야곱인가? 왜 이런 방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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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은 남겨진다. 왜냐하면 언약은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선택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유를 묻지만 하나님은 결정하신다. 나는 왜 하나님의 인도 없이 직장을 바꾸려 하는가? 이건 단순한 선택 문제가 아니다. 신앙의 구조 문제다. 기다릴 것인가? 앞당길 것인가? 맡길 것인가? 만들어낼 것인가? 우리는 대부분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싶어서 하나님 없이 움직인다. 이게 아이러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순종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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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 것은 이 말은 위험하다. 그럼 막 살아도 되나? 아니다. 이 사건의 결과를 보라. 야곱 → 도망자의 삶, 리브가 → 아들과 생이별, 이삭 → 속은 아버지, 에서 → 분노와 단절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졌지만 인간의 삶은 부서졌다. 나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을 내가 완성하려 할 것인가?” 제가 야곱입니다. 제가 리브가 입니다. 제가 이삭입니다. 제가 개입해야 합니까, 아니면 기다려야 합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