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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에베소서 6 : 1-3 잠언 23 : 22
제목: 부모 순종 부모 공경
일시: 2011. 5. 8
장소: 라이프찌히 교회
I. 지난 4월 약 3주 정도 부모님이 이곳 라이프찌히를 방문하셨다. 아시는 권사님 두 분도 붙어 오셨다. 아내와 저는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모셨다. 어머니께서는 지금도 전화하면 “아들이 우리 때문에 너무 고생했어! 우리뿐 아니라, 두 명이 더 붙어서 말이야” 라고 안타까워하신다. 그렇기는 했다. 총 5000킬로가 훨씬 넘는 거리를 운전기사 노릇하랴, 가이드가 되어 가는 곳마다 설명하랴, 준비해 간 식사 차려 드리랴, 쇼핑안내하랴, 필요한 모든 것을 도와드려야 하는 도우미 되랴 할 일은 많았다. 하지만 너무 감사한 것은 어른들이 아프지 않고 즐겁게 계시다가 간 것이다. 게다가 계시던 첫 주일은 고난 주일과 남선교회 헌신예배로, 또 한주일은 부활주일과 성가대의 칸타타로 예배를 함께 드리면서 이렇게 환상적인 오스턴을 보낸 적은 없다고 하셨다. 특히 함께 오신 두 분의 권사님은 여행을 많이 다니시는 분인데 이번 여행은 이전의 모든 여행을 합친 것보다 더 진한 것이었다고 극찬하셨다. 저는 참 기분이 좋았고 더욱 마음속에 보람을 느낀 것은 효도를 저축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2011 올해 어버이날은 미리 땡겨서 해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하다. 오늘 5월 8일은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부모님들 어른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시는가?
II. 순종하라.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에베소서 6:1).
자녀가 부모에게 할 일은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은 아주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아담의 죄성을 가진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불순종의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롬5:19). 우리 인간은 불순종의 기질과 성품을 가지고 있어서 순종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 한다. 보지 말라면 더 보고 싶어 한다. 먹지 말라면 더 먹고 싶어 한다. 갖지 말라면 더 갖고 싶어 한다. “하지 말라”라는 통제가 들어오니 거기에 대해 순종할 수 없다는 죄의 DNA가 발동하는 것이다.
사실 순종은 다른 이의 말을 따르는 것이라기보다 불순종으로 체질화된 나를 거절하고 제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종은 외적일이기보다 내적인 일이다. 삶에서 가장 큰 적은 자신이라고 하지 않는가? 자기를 이기는 극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퍼덕거리며 아직도 살아있는 나의 자아를 붙잡아 놓는 것이기에 가장 힘든 상대와 싸움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들려오는 말이 옳고 당연히 따라야 함을 알아도 불순종의 본능은 우리를 지배한다. 순종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는 사람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아주 답답해진다. 둘째 혜주가 어릴 때 언니와 무슨 실랑이가 벌어지면 저나 엄마가 실컷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다 잘 듣고 있다. 수긍하는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인상이 찡그러지면서 하는 말은 "그래도"이다. “그래도”의 의미는 “알지만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내 생각이 잘못되고 언니 생각이 맞지만 안 된다”는 것이다.
순종은 자아, 나를 버리는 것이다. 나를 버린다는 것은 나를 세우고 있는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다. 거지라도 마지막 남는 것은 자존심인데 그것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순종은 나의 주장과 나의 생각을 접어버리는 것이다. 내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자라나면서 아이들은 자아가 형성된다. 미운 세 살이라고 하는 것은 자아가 형성이 되면서 언제나 외부의 도전에 대해 Nein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먼저 Nein이라고 말하는데 익숙해진다. 내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잘 쓰는 표현이 Alles meiner 이다. 다 내 것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다 니꺼가 되냐! 그리고 다시 한번 자아가 형성이 되는 시기가 있다. 청소년기이다. 자아가 더 깊이 형성되는 시기이다. 나의 생각과 이론을 펼친다. 자기의 주장을 하게 된다. 청소년기의 반항은 바로 자기를 강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들이기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잠언에서는 순종하라는 말을 달리 표현하고 있다. 청종이라는 말이다. 듣고 따르라는 말이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gehorchen)”(잠언 23:22). 부모님들이나 어른들에게 순종한다는 것은 경청하는 것이다.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할 때 영어로는 obey로 나오고 독일어는 gehorsam 이라고 되어 있다. 듣고 따르라는 것이다. 청종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듣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말하는 것은 내가 아는 것만 말하면 된다. 말하는 것은 내 의견을 말하면 되는 것이다. 듣는 것은 듣기 싫은 것 내 의견이 아닌 것까지 들어야 하니 어려운 것이다. 들어주는 것이 인내가 필요하다.
예)어느 집사님 아들이 그 어려운 외무고시 시험에 합격하여 일이 너무 잘 풀리게 되었다. 게다가 사귀고 있는 사람과 곧 결혼할 수도 있게 되었고 며느리 역시 좋은 학벌에 집안도 좋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다른 친구 집사님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이다. 그때 그 집사님의 처신이 아주 맘에 든다. 친구들에게 “내가 오늘 밥 살께 자랑하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라고 한다. 자랑은 돈 내고 해야 하는 것이다. 들어주는 사람은 듣기 싫은 것도 들어주는 인내가 필요하다. 이번에 부모님이 와서 두 권사님들에게 손주 자랑을 하셨다. 그러니 만원내고 자랑하라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얼마나 듣기 싫은지 권사님이 “목사님 만원드릴 테니 그만 하세요” 라고 농담을 한다.
부모님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은 다른 이들과 달리 오염되지 않는 순수한 동기인 사랑에서 나오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 아들이 정말 애썼어 라는 말과 더불어 하신 말씀은 “아들 목사가 공사하느라고 정말 고생었겠어. 내가 눈물이 다 나”라는 말씀이었다. 다른 이들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내가 공사하는 데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말했다. 라미나트 들고 6층까지 올라오기, 타이루 돌덩이리 들고 오르고 방수하고 타이루 붙이기, 그리고 책상 레갈 슈랑크 옮기기 등등. 그랬더니 위로 받기는 커녕 이곳을 방문했던 친구 교수는 자신이 미국에서 목회할 때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고 말하였다. 또한 한국에서 어느 목사님이 방문했을 때는 “우리는 시멘트를 매고 이고 새벽기도 후에 성도들과 애를 썼다” 는 식으로 말씀하고... 맞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아버님이나 어머님은 관점이 달랐다. 권목사가 아니라, 아들이었다. 아들이 고생이 너무나 많았어. 애미가 고생이 너무나 많았어. 너무 멋지게 지었어가 아니었다.
자녀들이 부모님께 해야 할 성경적인 최선의 덕목은 듣고 순종하는 것이다. 죄성을 거슬러 올라가기에 인내해야 한다. 나를 버리고 제압해야 하기에 쉽지 않다. 성경은 간단히 순종해야 할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것이 옳으니라.”
III. 공경하라
자녀들은 부모를 순종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아주 어릴 때는 맴매가 무서워서 순종한다. 가끔 아이를 가진 엄마 아빠들이 아이가 말을 안들을 때 제가 앞에 있는 것을 보면 “목사님이 이놈 하신다”라고 나를 판다. 내가 이놈 할지 안할지를 묻지 않고 내 이미지만 버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먹히는 줄 모르지만 이후에는 그 위협도 통하지 않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맴매로 순종하지 않는다.
조금 나이가 들어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경제적인 제재조치가 있을까봐 순종한다. 그리고 돈으로 그들을 제어하거나 격려를 한다. 청소년기가 되니 두 딸들이 자기들끼리 약속을 한다. 언니가 올 때까지 몸무게 얼마를 감량하여 빼면 언니가 자기에게 100유로를 주고 못 빼면 자기가 언니에게 돈을 주겠다나? 우리도 돈을 걸기도 한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도 경제제재조치를 두려워해서 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자기들이 직장을 갖고 돈을 벌면서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독립을 하게 되면 경제적인 제재를 통한 순종은 끝이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무기가 없어져 간다. 아이들이 크면 맴매도 못한다. 경제정책도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 시간이 갈수록 그분들이 약해져 감을 본다. 이전에는 아는 것이 많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까막거리고 잊어버리신다. 그렇게 건강하고 기백이 넘치던 어른들이 약해진다. 2년 전 심장의 혈관이 모두 막혀 아프셨을 때 한국에 도착한 날 아침 아버님이 심장수술을 하시고 하루가 된 아침이었다. 여기에 있을 때 모든 소식은 들었지만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고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육체적으로 약한 아버님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적응이 되지를 않았다. 언제나 적극적이고 액티브한 분이 그야말로 힘이 없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손짓을 하고 가니 가슴을 열어 보인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아픈데 호 해줘”라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전에 씨름을 하면 아버지의 알통을 부러워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늙어서 살이 탄력이 없는 것을 본다. 손등의 살을 꼬집어 올리시면서 “아들 봐라 만리장성이다”라고 한다. 이번에 오시어 3주간 있다가 가는 날 아침 차에 앉아 배웅하는 며느리 양사모의 손을 잡고 키스를 하시고 우신다. 그리고 "눈물을 안 보이려고 했는데" 라고 하신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이 점점 없어진다. 의견도 물으신다. 전에는 당신의 의견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렇게 순종하라고 하시는데 이제는 쳐다 보시는 것이 대견하기도 하고 뭔가 더욱 의지하고 있으신 것을 어깨에 느낀다.
이때 자녀들은 그렇게 믿었고 커 보이고 모든 것을 다 알고 능력이 있어 보였던 부모님들을 순종을 지나 공경해야 한다. 에베소서 6장 2절은 이렇게 말한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잠언에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23:22)
"Verachte deine Mutter nicht, wenn sie alt wird." 우리는 그분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 시대의 발전속도는 놀랍다. 이전에 100년의 세월을 지금은 단 일년 만에 만들 수 있고 이제는 단 한달 만에도 과거의 백년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이다. 이 빠른 속도에 어른들은 적응하지 못한다. 찬양도 다 따라 부르시는 지 의문이다. 언어도 어린자녀들이 얼마나 잘하는가? 예)That is book. Is that a book? 일본식으로 발음하며 못했다. 우리 때는 마이 마이 워크맨이 있어서 늘 귀에 꼽고 다녔다. 요즘은 어떠한가? 원어민이 학교에 있고 외국에 나가서 언어를 하는 것은 필수이다. 요즘은 언어 하나 더 하는 것이 유행 아닌가! 컴퓨터를 통해서 온갖 정보를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이 더 똑똑하고 아는 게 많아”라고 어른들이 스스로도 말씀하신다. 반면 우리의 부모님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무식해지는 것 같다. 컴퓨터도 다루고 언어도 더 잘하고 학벌도 높고 아는 지식도 많아져서 어른들을 무시하기도 한다. 돈도 벌고 경제력이 생기고 육체적인 힘이 생기기 시작하면 부모를 무시하기 시작한다. 이때 어른들의 가장 큰 무기가 무엇인지 아는가? “너도 이 나이 돼 봐라”이다.
그런데 어른들이 참으로 모르시는가? 그분들을 잘 보고 경청하고 순종하고 무시하지 않고 마음에 담으면 인생이 아름답게 될 것이다.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교과서이다. 교과서대로 하면 잘 될 것이다. 우리는 그대로 따라 갈 것이다. 병 주고 약 주시는 분이시다. 어머님은 아버님에게 당뇨가 있음을 아시고 늘 제게 말씀하시곤 했다. “아들도 조심해라.” 아닌 게 아니라, 40대 중반이 되니 당뇨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다. 앞서 가신 아버님이 어느 날 말씀하신다. “아들 눈 좋을 때 책 많이 읽어라.” 시간이 지나니 그 말씀의 뜻을 안다. 다초점 랜즈를 껴야 한다. 이제 앞으로 더 살아가면서 부모님들이 밟으신 그 길을 걸을 것이다. 이미 전철을 밟으신 분들이기에 그들이 척후병과 같이 모든 것을 수색하시고 어디에 인생의 지뢰가 있고 장애물이 있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려주신다. “엎드려” “조심해” “지나가야 해” 등등의 말씀을 해 주신다. 그러기에 미성숙한 내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그분들에게 순종하고 나의 얄팍한 지식과 경험으로 그분들의 백발의 지혜 인생의 지혜를 무시하지 않고 공경하다 보면 장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분들이 오래 사시면 좋겠다. 오래 사심으로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그 길을 미리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들이 하신 말씀들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대로 말할 것이다.
IV.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결과가 무엇인가?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오늘 말씀은 단호히 말한다. 네 부모에게 순종하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 있는 계명이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서 어버이 주일을 맞아 부모에게 어른들에게 순종하고 존경하여 풍성한 삶의 축복을 맛보기를 축원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