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교육부는 서울 소재 16개 대학에 수능 위주 전형 40% 이상 확대를 요청한 ‘대입 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더불어 서류와 면접에서 고교명을 블라인드 처리하고, 학생부에서 정규 교육과정 이외의 모든 비교과 활동의 대입 반영을 폐지하는 등 학생부 종합 전형의 공정성 강화 방안을 내놓았죠. 그러나 이에 대한 고교와 대학 현장의 우려는 큽니다.
이 정부 들어 ‘공정성’이라는 잣대가 대입 제도 전반을 지배하면서 학교 교육과 이를 토대로 태동한 학생부 종합 전형의 취지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지적입니다.
이 시점에서 <내일교육>은 학생부 종합 전형의 ‘공정성’에 대한 현장의 인식을 재정립하기 위해 전국의 교사 21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우려 때문에 학생부 종합 전형이 정량 평가 중심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의견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성적이 아닌 학생의 ‘역량’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평가 기준을 좀 더 투명하게 세워 공정성 논란을 돌파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도입에 따라 학생마다 과목 이수 이력이 달라진다는 점을 고려해 대학이 평가 기준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곧 학생부 종합 전형의 신뢰도와 타당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제안입니다.
취재 정애선 기자 asjung@naeil.com 사진 전호성
설문 대상
설문 기간 : 2019년 12월 23일~26일
응답자 수 : 218명
재직 고교 유형 : 일반고 192명(88.1%), 자공고, 자사고, 특성화고, 외고 및 국제고, 과고 및 영재학교 등 26명(11.9%) 재직 고교 지역 : 경기(26.6%), 충남(12.4%), 서울(11.5%), 부산(11%), 제주(10.1%), 전남(5.5%), 경남(4.1%), 강원(4.1%), 충북(4.1%), 광주(2.8%), 세종(2.3%), 대구(1.8%), 전북(1.4%) 등
#1 학생부 종합 전형은 ‘공정하다’는 의견 65.6%로 우세
고교 교사들은 사회적 논란과는 다르게 학생부 종합 전형이 ‘공정하다’ 고 보는 의견이 우세했다. 전체 응답자(218명)의 65.6%(143명)가 ‘공정하다’고 답했고, ‘공정하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는 34.4%(75명)였다.
‘공정하다’고 답한 이유로는 ‘대체로 학교에서 보기에도 합격할 만한 학생이 합격하고 있어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3년 내내 학교에서 성실하게 활동에 참여하고 공부한 학생들은 대부분 대학에 진학했고, 일회성으로 활동한 학생들은 진학하지 못하는 결과를 볼 때 공정하다고 느낀다’는 의견이다. 대부분의 고교들이 수시를 중심으로 학교 시스템을 정비해오면서 ‘실제 교육 활동이 역동적인 학교의 입시 결과가 좋다’는 의견도 공정성의 근거로 제시됐다.
‘교사 30여 명의 정성+정량 평가가 들어 있고, 이를 교육 받은 전문적인 입학사정관들이 평가하고 있어서’ ‘학생의 실질적인 배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답을 찾는 수동적 사고 중심의 교육이 종합 전형을 계기로 변화하고 있다’ ‘학생의 총체적 역량을 판단할 수 있어서. 지필고사나 수능 같은 선택형 시험으로는 삶과 배움의 능력을 모두 측정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외에도 ‘중복 합격이 점점 늘고 있다. 이 전형이 추구하는 인재상이 대학마다 비슷해지고 있다는 의미이자 공정성을 확보해가고 있다는 의미로 생각한다’ 는 응답도 눈에 띄었다.
종합 전형이 ‘공정하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들은 ‘학생부 작성 과정이 학교의 문화와 교사 개개인의 역량에 의해 상당히 좌우된다’는 점을 가장 큰 한계로 꼽았다. 교육부가 발표한 공정성 강화 방안에 ‘모든 학생의 교과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을 기재하고, 학생부 기재를 위한 표준안 보급 추진’이 포함됐지만, 정작 학교 현장에서 기록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이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봤다. ‘과목별 세특을 모든 학생에게 입력하는 것은 이 항목의 취지를 위반하는 것이다. 표준안은 오히려 획일적이고 형식적인 입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학교 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정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는 지적이다.
이외에 ‘제도 자체보다 대학의 비공식적 고교 랭킹 비교에 따른 당락 결정이 불공정의 원인이다. 학교 그 자체를 바라봐 줬으면 좋겠다’ ‘학생부 기재 방침을 준수하지 않는 학교가 많다. 대학은 이에 대해 아무런 불이익을 주지 않고 있다. 교육부가 제시한 원칙을 지키는 교사와 학교는 오히려 불이익을 받고 있다’ ‘지도했던 학생들의 불합격이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평가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한다’ ‘입학사정관의 숫자가 훨씬 더 늘어나야 한다’ 는 의견 등이 종합 전형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꼽혔다.
#2 학생부 종합 전형의 핵심은 ‘교육과정·수업 활동’
현재 ‘종합 전형의 학교 현장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수행평가 확대와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 기록’이 58.7%로 가장 많았고, ‘선택 과목 다양화 등 교육과정 편성’이 26.1%로 뒤를 이었다.
동아리 활동을 비롯한 창의적 체험 활동은 12.4%로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초창기 창체 중심의 수시 대응 방식이 교육과정과 수업 중심으로 이동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결과다.
‘대학이 고교 현장을 반영해 종합 전형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평가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를 묻는 질문의 답도 앞선 설문 결과와 정확히 일치했다. ‘수행평가를 비롯한 세부 능력및 특기 사항 기록(56.4%)’과 ‘선택 과목 이수 이력과 성취도 (21.1%)’를 꼽은 응답자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이외에 ‘진로 활동의 적극성 및 깊이’를 꼽은 응답자도 11.9% 로 집계됐다.
#3 대학의 정보 제공, 아직 충분하지 않다
현재 대학이 제공하는 평가 방식에 대한 정보가 충분한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67.9%(148명)의 응답자가 ‘충분하지 않다’ 고 답했다. ‘충분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32.1%(70명)였다.
대학이 제공하는 종합 전형 정보 중 가장 만족도가 높은 것은 ‘학교 방문을 통한 고교별 전형 결과 분석 자료’였다. 충남 논산대건고 박진근 교사는 “요즘은 대학에서 학교를 개별 방문해 전년 입시 결과 자료를 토대로 합격과 불합격의 근거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학생들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좋다. 고교와 대학 간 이런 방식으로 개별 소통의 장이 늘면 교사들이 종합 전형의 평가 요소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종합 전형 평가가 실제 작동되는 과정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모의 평가 및 모의 면접’도 만족도가 높아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더 확대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최근 대학별로 다양하게 제작해 고교 현장에 배포되고 있는 ‘대학별 종합 전형 및 전공 안내 책자’도 만족도가 높은 정보였다.
반면 ‘대학별 입학처 홈페이지 정보 공시’와 ‘모집 요강 내 종합 전형 안내’에 대한 만족도는 가장 낮았다. 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대입 전형에 대한 정보를 일차적으로 접하는 자료인 만큼 정보 공개 방식이 대학별로 좀 더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는 요구로 보인다.
#4 ‘수능 위주 전형 40% 이상 확대’ 종합 전형의 취지 침해
최근 정부가 발표한 대입 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 중에서 종합 전형의 취지를 가장 침해하는 조치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묻는 질문에는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수능 위주 전형 40% 이상 확대’를 꼽았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이어 고교학점제를 앞두고 선택형 교육과정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학교 현장에 찬물을 끼얹는 조치다’ ‘수능과 종합 전형은 학생 평가 방향이 전혀 다른데, 이둘을 동률로 준비하라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학교 현장에서 수시와 정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교육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 ‘정시가 30% 이하일 때도 학생부 교과 전형의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맞추는 문제때문에 실질적으로 학급 내 절반 가량의 학생이 수능 점수를 필요로 해 과목명이 <화법과 작문> <독서와 문법> <고전>이어도 EBS <수능특강> 교재만 풀고 있었다. 문제 풀이 중심의 수업으로 돌아갈 여지가 크다’ ‘정시로 대학에 가겠다며 모든 수행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는 학생들이 벌써부터 생기고 있다. 그 학생에게 이제 학교에서 하는 모든 활동은 무의미해진다’ ‘고교 생활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정시 모집에 40%나 비중을 둔다는 것은 정상적인 교육 활동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 등의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이어서 ‘교과 세특 기재 단계적 필수화 및 기재 표준안 보급’ 이 17%, ‘정규 교육과정 외 비교과 활동은 대입에서 반영 폐지’가 14.7%, ‘공통 고교 정보 폐지 및 블라인드 평가 확대’가 7.8%, ‘자기소개서 단계적 폐지’는 5%를 나타내며 종합 전형의 취지를 침해하는 조치로 꼽혔다.
‘공통 고교 정보 폐지 및 블라인드 평가 확대’ 는 대학에서도 우려가 큰 조치 중 하나다. 지원자의 학교 환경을 고려하지 못할 경우 교육과정의 다양성이 평가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질 수 있어서다. 자칫 특정 고교의 학생이 집중적으로 합격하는 문제가 오히려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설문에서도 ‘지원자의 환경에 대한 이해없이 평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한 학생을 상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고교 정보가 폐지된다면 절대적인 서류 평가가 돼 열악한 환경의 학생들이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 같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공정성 확보 열쇠, ‘새 교육과정과 수업 활동 해석력’에 있다
이번 설문에서 종합 전형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교사들이 대학에 제언한 내용은 크게 ‘교육과정’과 ‘세특 기록’ 두 축으로 나뉜다.
우선 종합 전형의 근간이 되는 학교 교육과정이 과거와 달라졌기에 현 시점에서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전공 연계 선택 과목 이수 이력과 성취도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학생들마다 이수한 과목이 다르다는 것은 곧 정량 평가를 통한 ‘한 줄 세우기’ 선발이 불가능한 구조이기에 대입 제도를 둘러싼 ‘공정성’ 논란을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성으로 보는 시각이다.
따라서 대학 입학사정관들의 ‘교육과정 리터러시 능력’을 높여 교육과정상 과목의 위계와 구성은 적절하게 편성됐는지, 학생들의 선택 폭을 실질적으로 보장한 편성인지, 과목별 수업이 충실하게 운영될 수 있는 적절한 단위 수를 확보했는지를 점검하고, 상대평가 과목의 경우 이수자 수 분산을 고려해 교과 성적 수치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등이 과제로 제기됐다.
종합 전형 평가에 있어 세특 기록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자칫 ‘교육 활동을 제대로 기록하기’보다 ‘진학을 위해 잘 기록하기’로 방향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학생들은 동일한 수업을 했는데, 개별화된 내용을 기록해달라는 대학의 요청은 학생의 실제 역량보다 과장되게 입력될 소지를 내포하기에 오히려 비교육적인 측면이 있다. 학교에서는 실제 활동 사례 중심으로 기재하고, 이를 해석하는 방법은 대학에서 연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고려해야 한다.
경기 나루고 이명섭 수석교사는 “대학이 어떤 기록을 원하는지 아는 순간 찾아오는 유혹을 학교가 뿌리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그럴듯한 교육 활동을 과장해 기록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며 “기록의 본질은 말이나 글로 하는 평가이자, 피드백이다. 그 바탕은 사실(팩트) 기록이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판단과 해석의 위험에 대해 고교와 대학이 모두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특 기록의 방향에 대한 고교와 대학의 관점을 통일시킬 필요가 있는 시점인 만큼, 이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소통이 요구된다.
교육과정과 기록이 평가에 미치는 영향, 대학이 한 목소리 내야
현재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대입 전형에서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대학의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경희대 임진택 수석입학사정관은 지난 9일 한국외대에서 주관한 ‘진로진학 상담교사 컨퍼런스’에서 “대입 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으로 종합 전형의 평가 환경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새 교육과정에 따라 대학은 새로운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다. 초점은 학생의 과목 선택이 될 것이다. 선택 과목을 대입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취지로 본다면 ‘고교학점제형 학생부 종합 전형이 온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규정했다.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고교 현장의 인식과 대학의 고민이 방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이번 설문에서는 종합 전형의 공정성과 관련, ‘합격과 불합격 사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적지 않았지만, 이는 종합 전형의 취지와 자칫 충돌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진동섭 이사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현 교육 제도에서 합격과 불합격의 모델을 보여주는 것은 동일성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된다. 이보다는 학교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 평가와 기록이 학생 선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종합 전형을 운영하는 모든 대학이 한 목소리를 내서 서류 평가의 기준을 알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결국 종합 전형은 교육과정을 잘 이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으로 정착되고 있으니, 고교와 대학이 교육과정을 연계하는 지점에서 공정성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결국 학생부 종합 전형은 교육과정을 잘 이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으로 정착되고 있으니, 고교와 대학이 교육과정을 연계하는 지점에서 공정성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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