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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1948년에 초대 유네스코(UNESCO) 의장을 지낸 생물학자 줄리언 헉슬리(Julian S. Huxley)는 우생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또 한 명의 저명인사입니다.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우생주의적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그린 풍자 소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를 쓴 올더스 헉슬리(Aldous L. Huxley)가 그의 친동생이었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지요.
줄리언 헉슬리는 영국우생학회가 1937년에 제작한 선전 영화 「인간의 유전(Heredity in man)」에서 해설을 맡았던 바가 있습니다. 15분 분량의 영화는 전반부에서 스포츠․음악․예술 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사람들의 가계를 소개하며 그 재능이 유전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후반부에서는 열등한 형질이 유전되는 예로서 지적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여섯 명의 형제가 모두 시설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비추며 이들의 일그러진 얼굴과 텅 빈 시선을 클로즈업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헉슬리가 “장애인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은 사회의 당연한 의무지만, 그들이 태어나지 않는 편이 자신을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보다 행복한 일이 될 것이다.”라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1)
이 영화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과거의 우생주의자들은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막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 혼인법을 통해 결혼을 제한하고 단종수술을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유전학적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조치만으로는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없었기에 좀 더 적극적인 네거티브 우생학자들은 안락사까지도 지지했고, 실제로 그러한 안락사가 암암리에 혹은 공식적으로 행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유전학은 단종수술이나 안락사가 아니더라도 원하기만 한다면 장애인의 탄생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좀 더 이상적인 형태의 기술들을 발전시켜 냅니다. 그러한 기술들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산전 검사(prenatal testing)와 선별적 낙태(selective abortion)라고 할 수 있지요. 즉, 초음파검사, 산모혈청검사, 양수검사(amniotic fluid test)2), 융모막융모생검(chorionic villus sampling, CVS)3) 등을 통해 태아의 장애 유무를 미리 확인하고 장애가 존재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선별적으로 낙태를 시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산전 검사는 어떤 유전학적 이상의 위험성이 존재하는지를 일차적으로 가려내기 위해 광범위한 산모를 대상으로 실시되는 선별검사(screening)와 선별검사에서 태아에게 일정 확률 이상의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될 경우 그러한 이상의 존재 여부를 확정하기 위해 실시되는 진단검사(diagnostic testing)로 구분을 해볼 수 있습니다. 양수검사 외에는 별다른 산전 검사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1960년대에는 양수검사가 선별검사인 동시에 진단검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초음파검사와 산모혈청검사와 같은 비침습적 검사가 선별검사의 성격을 갖는다면, 양수검사나 융모막융모생검과 같은 침습적 유전자검사는 진단검사의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지요.4)
이러한 산전 검사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거치면서 질병과 연관된 유전자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고 관련 기술이 정교화 됨에 따라 점점 더 확장되고 있습니다. 유전자검사를 제공하는 전 세계의 실험실과 클리닉에 대한 정보 등을 안내하는 진테스트(GeneTests)의 웹사이트(www.genetests.org)에서는 2015년 8월 1일 현재 유전자검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4,412가지 장애(disorder)의 목록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그 중 대다수는 태어날 아이에게 유전적 장애가 존재하는지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재생산 관련 검사이지요. 또한 유산의 위험이 없는 비침습적 검사인 초음파검사와 산모혈청검사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산전 선별검사가 이제는 거의 모든 산모를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광범위한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선별검사는 사회적으로 보자면 상당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공중위생 경제학에서는 이것이 비용 대 편익이라는 견지에서 정당화됩니다. 즉 산전 선별검사 프로그램은 관련 인구에 대한 검사를 실시하는 데 드는 총비용이 검사를 안 했더라면 태어났을 장애를 지닌 아기에 대한 의료비 및 복지비용보다 적다는 것이 논증될 수 있을 때 도입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유형의 비용-편익 분석에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단종수술과 안락사에 대한 근거로 활용되었던 과거의 네거티브 우생학과 뚜렷한 공명이 존재한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산전 검사를 정당화해주는 논거는 임신과 관련하여 소위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선택(informed choice)’을 할 수 있는 예비 부모의 권리입니다. 그리고 산전 검사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유전상담(genetic counselling)은 이러한 부모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면서 ‘비지시적(non-directive)’으로 이루어진다고 가정됩니다. 그러나 과연 산전 검사는 예비 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며, 예비 부모들은 비지시적인 상담을 기반으로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크게 보자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태아의 장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산전 검사가 현재는 고민을 하거나 선택을 할 여지도 없이 하나의 ‘관례화된(routinized)’ 절차로서 제공이 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검사 자체가 특정한 지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임신을 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받게 되는 초음파검사와 같은 선별검사는 이미 양수검사와 같은 진단검사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그러한 진단검사는 선별적 낙태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낙태가 불법화되어 있어 정확한 실태 파악이 불가능하지만, 미국과 영국에서 선별검사를 받은 산모들이 이후 진단검사와 낙태를 선택하는 비율은 이러한 연계적 경향성을 잘 보여줍니다.
1990년을 전후하여 취합된 관련 데이터를 보면, 미국(1984~1993년)의 경우 다운증후군에 대한 산전 선별검사에서 양성 결과가 나온 산모들 중 79%가 양수검사 제안을 받아들였고, 양수검사에서 다운증후군을 지닌 태아를 임신한 것으로 진단된 여성의 85%는 다시 낙태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영국(1991~1993년)의 경우에는 같은 상황에서 75%가 양수검사 제안을 받아들였고, 92%가 낙태를 선택하였지요.5) 그러니까 사람들은 기차역에서 가서 자유롭게 행선지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역 입구에서 모두에게 나눠주는 부산행 기차표를 받아들고 나서 부산으로 갈 것인지 말 것인지의 여부를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유전상담을 행하는 주체들과 여기서 제공되는 정보들이 결코 중립적이거나 비지시적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산전 검사와 선별적 낙태의 과정에서 상담을 행하는 주체는 장애에 대한 의료적 모델의 관점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장애를 의료적 중재를 통해 해결되어야만 할 문제로 여기도록 훈련을 받아왔으며, 어떤 이상이 치료될 수 없다면 사전에 예방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비논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한편 많은 장애인들에게 있어 장애란 엄연한 삶의 일부일 뿐 의료적인 비극이 아니지만, 장애에 대한 산전 검사와 낙태의 여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경험은 하나의 정보로서 제공되지 않습니다. 즉, 유전상담을 행하는 주체들이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지시적이고자 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지니고 있는 관점과 지식 자체가 이미 한쪽 방향으로 편향되어 있기 때문에 비지시적인 상담이 이루어지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지요.
셋째, 예비 부모들이 산전 검사의 결과에 따라 장애아의 낙태를 선택하도록 하는 강력한 사회문화적․경제적 압력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인 문화가 만연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장애를 지닌 태아의 출산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예비 부모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또한 사회적 지원의 미비 속에서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은 추가적인 의료비․양육비․교육비의 부담을 개인적으로 짊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다수의 실태조사에서 나타나듯 경제적 활동까지 포기해야만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해 이중적인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조건은 장애아의 출산을 가로막는 무시할 수 없는 압력으로 작용을 하지요.
하버드대학교의 생물학 명예교수이자 책임있는유전학을위한회의(Council for Responsible Genetics, CRG)의 일원인 루스 허버드(Ruth Hubbard)는 이러한 측면을 날카롭게 성찰하며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물론 어떤 여성은 그녀가 지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임신을 중절할 수 있는 권리를 지녀야 하지만, 그녀는 또한 임신을 중절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는 느낌을, 그녀와 그녀의 아이가 충족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할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는 확신을 지닐 수 있어야만 한다. 출산 전의 중재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따라 행해진다면 그것은 재생산 선택권을 확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선택권을 제한한다."6)
앞서 살펴보았듯 과거의 우생학도 때때로 본인의 동의를 거치는 소위 ‘자발적 단종수술’이라는 형태로 제시가 되었지만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강압이 존재 했습니다. 또한 현재 어떤 장애인이 시설로의 입소를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지역사회에서의 자립적인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사회경제적인 압력 때문이지 시설에서의 삶이 좋아서 이를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즉, 어떤 선택이 진정 자유로운 선택이 되기 위해서는 반대편을 선택을 가로막는 사회적 압력이 충분히 제거가 되어야 하지만, 자발적 단종수술이나 시설 입소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산전 검사 및 선별적 낙태의 문제에 있어서도 이러한 조건이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이러한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평가는 산전 검사를 받는 사람들이 어떠한 선택권도 부정당하게 됨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들이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강요를 당하거나 속아 넘어가서 선별적 낙태를 택하게 된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의 세 가지 요인이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을 맥락적으로 생성해내고 있으며, 이러한 맥락 속에서 산전 검사와 선별적 낙태가 하나의 우생주의적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각주1) 염운옥,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 유전자 정치와 영국의 우생학』, 11~12쪽.
각주2) 가는 주사 바늘을 이용해 자궁 내에서 양수를 채취한 후, 양수에 포함되어 있는 태아로부터 탈락한 조직세포의 DNA와 양수의 화학 성분을 분석하여 태아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산전 검사법이다. 일정한 양의 양수가 태아를 둘러싼 후인 임신 15주 이후부터 20주 사이에 실시된다.
각주3) 태아와 양수를 둘러싸고 있는 융모막은 수정란에서 유래되기 때문에 태아와 거의 유사한 염색체 구성을 나타낸다. 융모막융모생검은 이러한 융모막의 융모를 채취하여 세포유전학적 분석, DNA 분석 및 효소 분석을 하는 산전 검사법의 하나로 통상적으로는 임신 10~12주 사이에 실시된다. 양수검사보다 조기에 시행될 수 있는 반면, 태아가 유산될 위험성은 조금 더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각주4) 침습적(invasive) 검사란 신체 조직에 손상을 유발하며 그로인해 잠재적으로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는 외과적 형태의 검사를 말한다. 양수검사와 융모막융모생검와 같은 침습적 검사는 산모와 태아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어 유산의 위험성을 일정 정도 높이게 된다.
각주5) James E. Haddow and Glenn E. Palomaki, “Similarities in Women's Decision-making in the U.S. and U.K. during Prenatal Screening for Down’s Syndrome”, Prenatal Diagnosis 16, 1996, pp. 1161~1162.
각주6) Ruth Hubbard, “Abortion and Disability: Who Should and Who should Not Inhabit the World?”, ed. Lennard J. Davis, The Disability Studies Reader, New York: Routledge, 1997, p. 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