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4일 주일예배 설교문 / 마태복음 20:1-16 /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합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영 안에 거하는 영에 속한 생명으로서 혼과 육의 것들을 처리해야 할 것을 나눴습니다. 먼저 교만, 그리고 화, 음욕, 지난주는 돈이었습니다. 다음 주에 나눌 욕심(야심)까지 총 다섯 가지를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①모든 패망의 선봉은 교만입니다.(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②모든 악의 쓴 뿌리요 내 인생을 더럽게 하는 것은 내 속의 화입니다.(히브리서 12: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③음란은 내 인생을 불구덩이에 들어가게 해서 파탄나게 합니다.(잠언 7:23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
④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그 한 푼이 뭐라고 돈 때문에 미혹을 받고 평생 근심하면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디모데전서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⑤그리고 나를 죽이는 것은 바로 나의 욕심 때문입니다.(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교만, 화, 음란, 돈, 욕심.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것들은 우리 인생을 망가뜨리는 모든 근원적인 문제덩어리입니다. 이것을 혼의 생명인 나의 자아에서는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기회를 타고 들어오면 즐기고 추구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릇에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요, 국을 담으면 국그릇, 물을 담으면 물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담아내느냐에 따라서 이름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담아낼 때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담아내지 못하면 버리는 쓰레기가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생령은 네페시 하야(생물)입니다. 생령은 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다른 동물도 똑같이 네페시 하야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경의 관주에 보면 생령에 번호가 달려있고 그 설명을 생물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번역을 생령이라고 좀 특별하게 번역했지만 원어성경은 짐승이나 사람이나 똑같은 네페시 하야(생물)입니다. 그릇은 똑같습니다. 다만 그 안에 무엇을 담아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호랑이의 생명을 담으면 호랑이가 되는 것이고, 토끼의 생명을 담으면 토끼가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무슨 생명이 있어야 합니까? 개띠는 개가 있고, 닭띠는 닭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 안에 하나님이 있어야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토기장이이십니다. 우리를 진흙으로 빚어서 사람의 형상을 만드시고 그 안에 하나님의 생기 즉 하나님의 형상을 넣어주셨습니다.
창세기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은 영입니다.
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모든 죄를 회개하고 나의 자아를 십자가에 처리하십시오. 모든 교만, 화, 정욕, 돈,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구체적으로 처리하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채우십시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디모데후서 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겉으로 볼 때는 금 그릇 같은 인생이 있을 수 있고, 은 그릇, 질그릇 같은 인생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깨끗하게 씻어 담아내야 합니다. 똥이 있으면 금 그릇도 소용이 없습니다. 누가 그것을 금 그릇이라고 하겠습니까? 똥 그릇이라고 하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채워 예수님을 담아낸 천국 백성의 사람이 된다면 “됐습니다.” 이제 그 사람은 이제 “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 구절은 19장 30절과 20장 16절에 두 번 반복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오늘 읽은 본문은 앞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어봅니다. 예수님 저는 ‘돈’ 문제는 처리했습니다. 자아의 처리해야 할 것 다섯 가지 중 처음으로 처리했다고 담대히 말하는 자가 나온 것입니다. 19:27 이렇게 돈을 처리한 자에는 합당한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28-29절입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19장 30절, 20장 16절입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되리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순서만 다르지 내용은 같습니다. 그 사이에 포도원 품꾼 비유가 있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 예수님은 비유를 쓰신 것입니다.
이 일은 포도원에서 포도열매를 수확하는 철에 있었던 일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포도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 일꾼들을 불렀습니다. 수확기가 되면 일손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날그날 일하는 일일(一日) 일꾼들을 부른 것입니다. 이를 하루 품삯을 받는 품꾼이라고 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이른 새벽에 인력시장에 나가서 일꾼을 모집했습니다. 하루에 한 데나리온(denarius)씩의 품삯을 준다고 말하고 일꾼들을 불렀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당시 유대나라의 시간에다가 6시간을 더하면 지금의 시간계산이 됩니다. 0시는 6시, 3시는 9시, 12시는 저녁 6시.
총 근무시간은 12시간.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총 12시간을 일해야 하루 일당을 받던 시대였습니다.
품삯을 받는 일꾼은 새벽같이 일어나 일터에 나와 기다립니다. 일꾼들을 모집하는 이가 나타나면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선택되면 일터로 팔려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일이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일할 일꾼들을 새벽 6시에 딱 정해서 데리고 가서 일을 시켰는데 주인이 웬일인지 인력시장에 또 가보는 것입니다. 가보았더니 일자리가 없어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 아침 9시에 다시 부르고 낮 12시, 오후 3시에도 불러서 같이 일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오후 5시가 되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인력시장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새벽 6시에 불러서 일자리가 없으면 오늘은 공치는 날이다 하면서 자기 집으로 가서 놀던지 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오후 5시가 되어도 일을 기다리는 사람은 참으로 안타깝고 말 못할 사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그래 주인이 보고는 그 사람도 불러서 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곧 오후 6시가 되어서 결산할 때가 왔습니다. 각각 정해진 품삯을 받는데 맨 나중에 온 사람이나 처음에 온 사람이나 똑같이 품삯을 주는 것입니다. 이게 웬일... 새벽부터 처음에 온 사람이 화가 났습니다. 원망이 나는 것입니다. 왜 한 시간 밖에 일한 사람하고 우리를 똑같이 대우하느냐는 것입니다. 11-14절. 이때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답변하셨을까요? “약속한 대로 주는데 내게 무슨 잘못이 있느냐?”
우리는 이제까지 18-20장을 통해서 처리해야할 것 4가지를 보았습니다. 교만, 화, 정욕, 돈. 잘 처리했습니다. 이렇게 자아를 처리하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선 사람들에게는 합당한 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나 상 주신다는 것이 거래는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했으니 이 만큼은 보상해주셔야 합니다. 예수님보고 흥정을 하는 것입니다. 19:27절에 베드로가 그렇고, 20장에서 새벽부터 먼저 나온 사람들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눈물로 의를 심는다고 할 때 적당한 보상을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주시는 것은 한량이 없습니다. 우리가 돈을 비롯해서 교만, 정욕, 화라는 자아의 걸림돌을 처리하고 하늘에 보화를 쌓는 삶을 산다면 주님은 축복을 쌓아놓고 은혜로 베푸실 것입니다. 19장 28-29절
①현세에 백배의 보상을 받습니다.
②주님이 다시 오실 때 영생을 상속 받습니다.
③천년왕국과 새 하늘 새 땅에 참여자만 될 뿐 아니라 주님과 함께 온 땅을 다스릴 것입니다.
우리의 천연적인 생각에서의 보상은 내가 뿌린 만큼 거두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속담도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사자성어도 인과응보, 사필귀정, 종과득과 다 같은 뜻입니다. 성경도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갈라디아서 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그러나 이것은 보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으로 심으면 영적 열매를 거두는 것이고, 육으로 심으면 육의 열매를 맺는다는 뜻일 뿐인 것입니다. 보상은 분명 말씀하신대로 현세에 100배도 받고 영생도 받고 주와 함께 다스리는 권위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 누구든지 그가 심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단 은혜의 방법으로... 따라합시다. 오직 은혜
그러므로 내가 희생한 것을 조건으로 내걸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은 나의 희생을 똥으로 여겼습니다.
빌립보서 3:8-9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여러분, 혹시 주님께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요? “주님, 내가 이렇게 교회 다녔는데 왜 나만?” “저의 공로가 얼마나 큰데 왜 몰라주시나요?”
사도 바울처럼 모든 행위를 배설물로 여기고 다만 모든 일에 충성을 다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것에 감사함으로 나아가십시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모든 것에 자유하며, 오히려 만족과 누림을 얻을 것입니다.
시간의 개념으로 봅시다. 오늘날 현재는 몇 시일까요? 새벽도 아니고, 정오도 아니고 오후 5시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다 말세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선배들이 믿음 생활 한 것에 비하면 우리는 예수님 믿지도 않는 것입니다. 저들은 박해를 받고 순교를 하고, 예배시간도 하루 종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인 오후 5시에도 은혜가 동일하게 임하니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따라합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 사이는 교회 시대요 은혜 시대입니다. 오늘날은 은혜시대입니다. 죄된 자아를 회개하고 십자가에 처리하고, 속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예수 생명으로 사는 자들은 반드시 은혜가 임함으로 말미암아 예비하신 축복을 누리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믿습니다.✞-동문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