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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8촌은 누구입니까?” 누군가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금방 ○○○입니다라고 즉석에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8촌 이내 혈족의 결혼을 금지하고, 혼인한 두 사람 사이가 8촌 이내로 밝혀지면 그 결혼은 무효로 하는 민법 제809조등이 “혼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 들어와 헌법재판소가 공개 변론에 나섰다.
3개월 뒤 B씨가 “A씨와 나는 6촌 관계”라며 혼인 무효소송을 냈는데 가정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결혼은 무효가 됐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A씨는 항소 8촌 이내 결혼을 금지한 민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2018년 헌법소원을 청구한다. 물론 A씨의 경우가 아주 보편적인 경우는 아닐 수 있다. 변론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관계에 따르면 A씨는 미국 시민권자인데 미국에서는 3촌 이내의 결혼만 금지한다. 즉 외국에선 인정받는 두 사람의 관계가 한국에서 문제가 되는 셈이다. 헌재 관계자는 “12일 변론에서는 당사자들의 개인 사정보다는 현시대와 민법 조항의 관계가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여러분의 8촌은 누구입니까?. 간략히 그린 아버지 쪽 촌수 관계 A씨 측 주장대로 8촌 이내 혼인 금지는 ‘과도한 제한’일까. ‘나’ 를 기준으로 아버지 쪽 촌수관계만 따져보면 나와 같은 대에 있는 8촌은 고조할아버지를 공통 조상으로 한 자손이다. 어머니 쪽도 똑같이 8촌 이내 범위에서 결혼이 금지된다. 간소화된 그림이 아니라 현실 가계도를 펼쳐놓으면 8촌 관계는 훨씬 복잡할 수도,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A씨 측을 대리하는 장샛별 변호사는 “도시화,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친족 관념이 약화한 현시점에서 8촌 이내 결혼 금지를 법으로 강제할만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8촌 이내 혼인금지’를 정한 민법 809조는 2005년 민법이 바뀌면서 생겼다. 전에는 동성동본(同姓同本) 사이 결혼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었다. 1997년 헌재가 이 조항이 헌법불합치라고 결정하며 민법을 바꿔야 하자 8촌 이내 혈족으로 금지 범위를 정했다는 것이다. A씨측은 “당시에도 ‘8촌 이내 혼인금지’가 타당한 범위인지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 이날 공개변론에서 가장 많은 질문을 한 이선애 재판관은 시대상의 변화가 실제로 있는지 A씨 측에 물었다. "사회가 많이 변했다"는 A씨측과 달리 법무부는 “구체적인 입법 논의 등 변화의 필요성은 없었다”는 주장을 폈다. 2005년 당시 이 조항을 새로 만들 때 국민의 친족관념이나 법감정을 반영한 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법무부는 민법 제777조 1호가 8촌 이내 혈족을 친족으로 규정하고 있고 이를 기초로 한 혼인 금지 범위는 타당하다. 한국은 여전히 친족 관념이 강하고 친족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지역도 적지 않다.
12일 열린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에서 이선애 재판관이 양측 대리인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해외의 사례와 비교하며 한국의 ‘8촌 이내 결혼 금지’가 과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A씨 측은 “독일ㆍ스위스ㆍ오스트리아는 3촌 이상 방계 혈족이면 결혼을 할 수 있고, 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이탈리아ㆍ 일본은 4촌 이상 방계 혈족 사이면 혼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A씨 측 참고인으로 나온 현소혜 교수는 “나라마다 사회ㆍ문화가 달라 제도가 국가마다 같을 필요는 없다. 과거에는 한국의 가족 기능과 외국의 가족 기능이 현저한 차이가 있었지만 지금은 서구의 가족개념과 비슷해지고 있기 때문에 친족 개념도 그렇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법무부 측 참고인으로 선 서종희 교수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의 내용을 들며 각국의 혼인 금지의 범위는 그 나라의 제도와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소설 속 베넷 가에는 자손이 여자뿐인데 당시 상속은 남자에게만 돼 사촌 남성(콜린스)과 딸의 혼인을 논하는 내용이 나온다”고 말했다. 소설 속에서 베넷가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는 콜린스는 베넷가에 보내는 편지로 "상속에 대해 보상을 하겠다. 딸과 결혼 의사를 넌지시 알린다. 베넷 부인은 콜린스와 대화로 딸을 상속자에게 시집보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이를 두고 “사촌 간 혼인을 금지하면 딸에게 상속 유지가 불가능하니 서구에서 ‘혼인 금지 범위’를 넓히지 못한 것이다. 즉 근친혼 금지 제도는 상속제도나 신분 질서 유지 등 다양한 목적이 고려된 것이기 때문에 한국과 단순비교는 어렵고, 문화적ㆍ법제적 관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A씨 측 참고인인 현소혜 교수는 “누군가가 나의 8촌 이내 혈족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호주제가 폐지된 지금은 더 쉽지 않다. 과거에는 호적ㆍ제적등본으로 4촌ㆍ6촌을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었다면 지금은 개인별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하는 것으로 제도가 바뀐 탓이다. 현 교수는 “누군가가 8촌이라는 걸 증명하려면 부모, 조부모, 증조부, 고조부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모두 뗀 다음 세대 별로 추가적인 가족관계증명서를 확인해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했다. 혼인신고서에는 근친혼인지 아닌지를 당사자가 체크하는 란이 있다. 실제 혼인신고를 할 때도 “혼인당사자들이 8촌 이내의 혈족 사이에 해당합니까?” 라는 서식에 "네" 또는 "아니오"로 답을 받는 정도에서 그친다. A씨측 변호사는 “만약 두 사람이 서로 8촌 이내인 걸 모르고 혼인신고를 했다면 한쪽 당사자나 4촌 이내 친족이 언제든 ‘혼인 무효 소송’을 낼 수 있다”며 “두 사람 사이 자녀가 있었다면 혼인 외 자녀가 되고, 어떤 경우엔 축출 이혼도 가능하다”고 우려했다. 법무부 측 참고인 서종희 교수는 “모든 입법에는 예측 못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데 부작용이 바로 그 조문 자체의 위헌성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반박했다. 현 제도에서 혼인신고 시 8촌 이내 여부를 제도적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것은 시스템 정비 문제로 해결될 문제라는 취지다. 혼인 외 자녀·축출 이혼 문제에서도 “세계적으로 예외적인 입법을 통해 사실혼 상태를 보호하거나 혼인외 출생자를 보호하는 법리가 있는데, 이 예외 때문에 원칙을 바꾸자는 건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헌재는 양측 주장을 종합해 살펴본 뒤 결론을 내겠다고 알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