相撲
相撲는 민간에서 행해지던 자연발생적인 힘 겨루기 놀이었다. 그 후 궁중의례가 되었고, 한때에는 실전무술로도 인식이 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서 相撲는 흥행과 결탁이 되어 스포츠로서의 길을 가게 되었다. 지금 相撲는 일본에서 프로야구, 프로축구와 함께 일본에서 인기스포츠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최근에는 외국선수뿐만이 아니라 외국의 팬들까지 많이 생겨 미국, 영국,프랑스까지 원정경기를 벌이기도 한다.
이렇게 相撲가 인기가 있는 것은 단순해 보이지만 많은 기술이 있으며, 체중제한이 없기 때문에 순식간에 승패가 결정되고 의외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경기의 본래적인 재미 외에도 종교의례적인 요소와 엄격한 예의범절이 단순한 힘 겨루기가 아닌 아기 자기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1.相撲의 역사
(1)相撲의 기원
日本을 대표하는 국기인 相撲는 한국의 씨름과 같이 몽골이 원류라는 설이 있다.「古事記」에는 建御雷神(다케미카즈치신)과 建御名方神(다케미나카타신)이라는 두 신의 힘 겨루기 이야기, のみのすくね와 だいまのけはや의 격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 「日本書紀」에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서기 642년에 일본 왕이 백제에서 온 사신을 환대하기 위하여 병사들 가운데 장사를 뽑아 궁궐 안에서 相撲를 공연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학자들은 「古事記」나「日本書紀」등의 신화時代에 등장할 정도로 그 歷史와 傳統이 오래되었음을 자랑한다.
(2)奈良(なら)時代 : 조정행사→왕권의 힘의 과시
그 후에 相撲는 궁중에서 정기적인 의례로 행해지게 되었다.
중앙집권의 강화를 위해서 왕은 신하를 불러서 節會(せちえ)라는 잔치를 하였는데, 이 節會(せちえ)의 하나가 相撲節會었다.
이런 相撲節會를 개최하는 목적은 중앙정부의 권력을 과시하는데 있었다. 따라서 중앙정부의 권력이 지방까지 미치는 시기에는 相撲節會가 잘 되었지만, 왕권의 쇠퇴와 더불어서 쇠퇴하게 되었다. 이처럼 나라시대에는 조정의 행사 때나 볼 수 있었다.
(3)鎌倉(かまくら)막부시기 : 실전무술용→전문적으로 발전
중세에 이르러 권력이 조정으로부터 무사들에게로 넘어가자 중앙집권적 힘의 상징이던 相撲도 그 성격이 달라지게 된다. 이 시기의 相撲는 무사들의 전쟁을 위한 연습이나 일상적 신체단련등 실용적인 의미가 강조되었다. 전국시대에는 영주가 相撲를 장려하였으며 무사들의 필수무술로 인식되었다. 한때에는 相撲에 참가한 力士(りきし)가 1,500명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이 영주가 相撲를 장려되면서 전문적으로 직업적으로 相撲를 하려는 사람들도 등장하였다.
(4)江戶(えど)時代 : 대중오락→직업力士가 등장 (현재 일본 스모 협회의 기원이 되는 그룹형성)
전국시대가 끝나자 무사들의 일이 많지 않았다.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많은 무사들을 중심으로 大阪, 京都, 江戶 등지에 勸進相撲(かんじんすもう)라는 간판을 내걸고 직업적으로 相撲를 하는 집단이 생겨났다. 이 당시의 相撲는 전쟁이 끝난 후므로 전국시대와 같은 전쟁을 위한 실전용에서 그 성격이 변화하게 된다. 경기진행에 제한을 두어 점차 실전무술에서 스포츠의 의미가 가미되어 대중오락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5)明治維新(めいじいしん)-相撲의 침체기
明治維新은 일본의 근대화의 기점으로 일본사회에 큰 변화를 주었다. 새로운 정치제도에 의해 젊은 관리로부터 ' 相撲란 벌거숭이로 사람들 앞에서 추는 미개한 춤'이라고 비하되었고, 1871년에는 力士(りきし)들에게도 단발령이 내려져서 力士들의 독특한 상투머리(ちょんまげ)를 잘라야만 했다.
그러나 相撲 애호가인 몇몇 고관들의 힘에 의해 ' 力士들에게는 단발령의 예외조항'이 적용되어 力士들은 전통적인 머리모양을 유지할 수 있었다.
(6)相撲의 부흥기
움추려 들었던 相撲가 인기를 다시 회복하게 된 시점은 1889년 천황이 직접 相撲를 관람하던 때부터이다. 그리고 1909년에 相撲 전용경기장인「國技館」이 도쿄시내(兩國)에 건립되어(13,000명수용) 相撲는 바야흐로 대중적인 운동이 되었다. 그 후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相撲는 전국민적인 스포츠로서 자리 매김을 하였다.
相撲는 일본역사의 변화와 같이하여 그 성격들이 변화해왔다. 이러한 변화 중에 相撲에는 단순한 힘 겨루기가 아닌 종교적인 요소와 흥행적인 요소가 가미되어왔다.
단순해 보이는 相撲가 이렇게 인기가 있는 것은 단순한 경기뿐만 아니라 이런 종교적인 요소와 흥행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相撲가 맥이 끊이지 않고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귀족들의 후원은 물론 민간 속에서도 草相撲(くさすもう), 奉納相撲(ほうのうすもう)와 같은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2.相撲관계자
(1)力士(りきし)-씨름선수
①자격
力士가 되려는 사람은 의무교육(중학교교육)을 마친 남자로 각 相撲部屋(すもうべや)의 親方(おやかた)의 추천을 거쳐서 相撲協會협회의 심사를 받는다.
기본적으로 체중 75킬로그램이상, 신장 173센티미터이상인 사람 중에서 의사의 엄밀한 검진결과 이상이 없는 자만이 力士가 될 수 있다. 일반은 23세미만이어야 하고, 일본 스모 협회가 지정하고 있는 사회인이나 대학의 아마츄어 대회에서 일정한 성적을 남긴 사람에 대해서는 만20세부터 25세미만인 사람만이 力士가 될 수 있다.
그리고 力士는 일본인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없어 1993년에는 曙(あけぼの)가 외국인으로서 처음으로 相撲의 최고의 자리인 橫綱(よこづな)에 오르기도 했다.
②力士이름
力士가 되면 본명 대신에 새로 이름을 짓는데, 이를 四股名(しこな)라고 한다.
이 四股名는 자기가 지어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스승이나 후원단체가 지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四股名는 산이나 바다를 나타내거나 힘센 것, 경사스러운 의미의 글자를 많이 사용한다. 특히 산과 바다처럼 듬직하고 강한 이미지를 많이 사용한다.
(例:「雙葉山」,「千代の富士」,「高見山」,「朝潮」,「北勝海」,「北の湖」,「大の國」,「火の龍」,「小錦」,「貴の花」,「若の花」,「牛若丸」등)
그리고 스승의 이름에서 한 글자 따서 만들기도 한다.
(例:「旭國」라는 스승 밑의 力士는 「旭富士」,「旭道山」,「旭豪山」등)
③力士의 지위
力士는 本場所(ほんばしょ)의 성적에 따라 자신의 랭킹이 정해지는데, 이 표를 番付け(ばんづけ)라고 한다.
최고의 자리인 橫綱(よこづな)밑으로 大關(おおぜき),關脇(せきわけ),小結(こむすび),前頭(まえがしら),十兩(じゅうりょう),幕下(まくした),三段目(さんだんめ),序二段(じょにだん),序ノ口(じょノくち)순으로 자리가 있다. 小結이상(三役)이 되어야지만 番付け에 큰 글씨의 이름이 오르고, 인기도 많아진다.
力士들은 독특한 모양으로 상투를 틀어 올리고 가랑이와 허리를 훈도시로 감고, 相撲를 한다.
은퇴한 力士는 親方가 될 수 있는데, 모든 力士가 親方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은퇴한 橫綱 가운데 특별히 인정을 받은 사람만이 親方가 될 수 있다. 親方는 독자적으로 相撲部屋를 개설할 수도 있지만, 대개는 스승의 相撲部屋를 물려받아 운영한다.
力士의 지위를 외형에서도 알아낼 수 있는데, 力士의 지위는 그들의 긴 머리 스타일을 결정한다.
十兩와 幕內(橫綱, 大關, 關脇, 小結, 前頭)의 스타일은 大銀杏 (まげ의 앞 끝이 은행잎과 비슷하다하여 지어짐)라고 불리고 더 정교하다.
그 이하의 등급에서는江戶시부터의 일반적인 형태인 ちょんまげ다. 패션과 보호의 의미가 있다.
(2)行司(ぎょうじ)-심판
①자격
相撲에서 약 600년전의 鎌倉(かまくら)시대의 사무라이가 입었던 예복을 입고, 軍配(ぐんばい)를 들고 올라와서 力士들의 시합을 진행시키고 승패를 판단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行司라고 한다.
이 行司를 담당할 수 있는 사람은 木村(きむら)가문과 式守(しきもり)가문 출신만 할 수 있고 엄격한 서열이 정해져 있다. 行司의 가문과 서열에 따라서 복장의 장식과 색깔이 다르다.
②行司의 지위
行司의 등급(5등급)은 軍配에 달린 노리개의 색깔에 의해 구분되어진다.
*자주색 , 자백색 : 立行司(たてぎょうじ, 심판의 우두머리)
*빨간색 : 三役「大關(오제키), 關脇(세키와케), 小結(코무스비)」
*홍백색 : 幕內
*청백색 : 十兩
*검청색 : 그 이하의 등급
行司의 최고계급은 立行司(たてぎょうじ)이고 이 계급에 오르면 칼을 차고 土俵(どひょう)에 오를 수 있다.
③行司의 역할
土俵위에서 力士들이 겨루고 있을 때, 相撲의 行司는「かまえて」(자세를 취하고),「見合わせて」(맞서고), 「油斷なく 見合って」(방심없이 맞서고),「まだまだ!」(아직 아직!) 등을 소리 지르고, 제한 시간이 오면 「時間です. 手をついて」 「待ったなし」 등을 소리 높여 이야기 해서, 양 力士의 정신을 집중시킨다.양 力士가 일어서는 것과 동시에 相撲의 심판이 軍配를 뽑는다.
시합 도중 「ハッキヨイ」,「ノコッタ」와 같은 말을 한다.
「ハッキヨイ」는「發揮揚揚(はっきようよう)」,「ノコッタ」는「殘った」를 뜻하는 것으로, 피하기만 하는 力士에게는 재촉하고 밀리는 力士에게는 경계선까지는 아직 남아있으니 승부가 나지 않았으니 힘을 내라고 경기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다가 경기의 승부가 나면 行司는 이긴 決り手(きまりて)를 선언하고 軍配에 상금을 얹어서 승자에게 전달한다.
(3)呼び出し(よびだし)
相撲경기를 보면 비를 들고 土俵위에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을 呼び出し(よびだし)라고 한다.
呼び出し는 정원이 38명이고, 정해진 서열에 따라서 담당하는 역할도 다르다.
呼び出し가 하는 일은 相撲경기의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
-흐트러진 土俵를 비로 쓸고 물을 뿌리는 일
-力士가 입가심을 하는데 쓰는 물과 종이를 준비하는 일
-소금을 준비하는 일
-土俵(どひょう)위에 상금을 낸 스폰서의 이름이 적힌 懸賞幕을 들고 올라가서 한 바퀴 도는 일
-本場所가 열리는 기간동안 아침마다 북을 치며 경기장일대를 돌고, 경기장 앞에 깃발을 세워 관중을 모으는 일
-力士에게 남은 제한 시간을 알려주는 일
-장내순서에 따라서 대전할 力士의 이름을 부르는 일
3.相撲의 준비
(1)씨름판
相撲競技에 있어서 경기장을 土俵(どひょう)라고 부르는데, 이 土俵는 本場所用과 稽古用이 있다.
①土俵(どひょう)만들기
土俵는 높이 34~60cm, 한 변이 6.7M가 되도록 정방형으로 흙을 쌓아 올려서 단을 만들어 굳힌다.
이 때는 四股(しこ)을 밟더라도 발자국이 나지 않게 물을 뿌려가면서 다져서 모양을 만든다.
그 위에 지름이 4.55미터가 되도록 장내 경계선을 만든다. 장내 경계선은 흙을 채운 작은 가마니 20개를 둥글게 바닥에 반 쯤씩 묻어서 고정시킨다. 그리고 土俵 한 가운데는 두 力士가 시합을 시작할 때 준비태세를 취하는 중앙선인 仕切り線(しきりせん)을 하얀 색으로 나란하게 긋는다.
이렇게 고생하여 만든 土俵는 한 대회를 치르고 나면 헐어버린다. 이는 신성한 공간, 깨끗한 공간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합을 열어야 한다는 相撲내부의 규율 때문에 한 대회가 끝나면 그 土俵는 때묻은 공간, 부정이 탄 공간이라고 여겨서 헐어버린다.
②吊り屋根(つりやね)만들기
相撲는 야외경기였는데, 관람료를 받으면서부터 관중석 가운데 土俵를 만들고 그 네 귀퉁이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어서 극장과 같은 씨름판을 고안하였다.
그러나 기둥은 관중들의 시야를 막았고, TV중계 때는 더욱 더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었다. 때문에 대형 실내 스모 경기장이 세워지면서부터(쇼와27년 (1952) 9월 場所)는 네 기둥을 없애버렸다.
기둥을 없애버리는 대신 네 기둥이 있던 자리에는 태양의 운행과 사방을 뜻하는 청색, 적색, 백색, 흑색의 굵기 60센티미터, 길이 2.1미터가 되는 색실 타래를 드리웠다.
네 가지 색깔이 나타내는 것은 東의 靑房은 春과 靑龍神, 南의 赤房은 夏과 朱雀神, 西의 白房은 秋의 白虎神, 北의 黑房은 冬과 玄武神을 나타낸다.
그리고 지붕은 伊勢神宮의 神明구조와 같은 모양을 본 떠 천정에 매단다.
지붕의 뼈대는, 알루미늄 경합금으로 만들어져 있다.
외장은 느티나무, 노송나무, 삼나무를 사용하고, 가로세로 각10미터, 높이8.6미터가 되고 있다.
문장이나 중요 부분은 순금 도금(メッキ)을 하고, 총 중량은 6톤이다.
씨름 이외의 행사(催(もよお)し)가 있을 때는, 상하 장치로 천정의 끝까지 올린다.
그 일에 걸리는 시간은 12분이다.
③水引き幕(みずひきまく)
지붕(吊り屋根)아래에는 폭 120cm의 자주색 바탕에 스모 협회의 심벌 마크인 벚꽃모양을 새겨 넣은 막을 사방으로 드리워져 있다.
이 막을 水引き幕(みずひきまく)라고 한다. 이 말의 뜻은 물을 드리운 막이라고 하며, 이는 力士들이 싸울 때 생기는 열기(火)를 잠재우기 위한 상쇄력을 지닌다고 한다.
(2)まわし
선수의 모습은 옛날 원시복장(loincloth) 그대로 지금이나 똑같이 まわし라는 띠 한 장으로, 남자의 가장 중요한 부분만을 가리고 허리 주위를 빙빙 감은 것(4번에서 7번정도)이 전부이다.
띠는 2 feet의 너비를 가지고 약 10 yards정도 된다. 경기 중에 그 앞에 차는 것은 단순히 장식용으로 경기 중에 떨어질 수도 있다.
4.相撲경기
(1)相撲의 경기방법
①경기규칙
相撲는 '土俵(どひょう)'라 불리는 직영 4.55M의 둥근 씨름판에서 행해진다. 발바닥이 아닌 신체의 일부분이 바닥에 닿거나, 土俵 바깥으로 밀려나면 지게 된다.
승부는 단판으로 하는데, 相撲는 두 선수가 맞붙는 시간보다 시합전의 요란한 의식이 더 시간이 길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에는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相撲에서 큰 대회를 本場所라고 하는데, 한번 열리면 15일동안 경기가 이루어지게 된다. 15일동안 각각 다른 선수들과 싸우게 된다. 그들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사람이 마지막 날,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 우승컵을 가지게 된다.
또, 相撲는 일반적인 레슬링이나 권투, 태권도와 같은 스포츠와는 체급의 제한이 없다.
②승부의 결정
相撲는 상대를 土俵밖으로 밀어내거나, 넘어뜨리면 승부가 난다.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서 여러가지 기술을 발휘하는데 이기는 순간에 쓴 기술(승부수)을 決り手(きまりて)라고 하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기술이 단순해 보이지만 일본 스모 협회가 이 기술을 총 70여가지로 정리하였다. 이러한 기술로 이기는 외에 반칙을 하거나 해도 패배가 된다.
ⓐ決り手
-廻し(まわし)를 잡고 끌어당기거나, 좌우로 젖히는 기술
-안쪽 혹은 바깥쪽으로 다리를 걸어서 넘어뜨리는 기술
-허리로 젖히는 기술
-어깨로 떠올려서 뒤로 넘기는 기술
-머리로 가슴을 밀어 붙여 뒤로 자빠지게 하는 기술
-번쩍 들어서 바깥으로 내보내는 기술 등
ⓑ반칙패
-주먹으로 상대방을 때리는 경우
-상투를 휘어잡는 경우
-손가락으로 급소를 찌르는 경우
-양 손바닥으로 동시에 얼굴을 때리는 경우
-廻し의 앞 부분에 손을 집어 넣는 경우
-목을 조르는 경우
-발끝으로 배를 차는 경우
-꼬집는 경우
ⓒ기타 (아래의 경우는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의외의 상황으로 승부가 나는 경우이다.)
-상대방을 거의 다 밀어내었는데, 힘을 과다하게 사용하여 상대방의 몸보다 자신의 발이 먼저 바깥으로 나가는 경우
-너무 긴장하여 상대방이 아무런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주저앉은 경우
-土俵위에서 廻し가 풀어져 내린 경우
②相撲경기전의 행사
ⓐ土俵祭り(どひょうまつり)
本場所경기가 열릴 때마다 土俵를 새로 만든다. 이렇게 本場所를 위한 土俵, 지붕등을 새로 만들고 나면 스모 관계자(스모 협회 이사장, 심판위원 등)가 모여서 이 土俵위에서 열리는 경기일정이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신에게 비는 제사를 지낸다. 이를 土俵祭り라고 한다.
土俵祭り는 제관이 제문을 읽고, 土俵의 한가운데 바닥에 사방이 15Cm되는 구멍을 파고 제물(밤, 씻은 쌀, 다시마, 마른 오징어, 소금, 술)을 파묻어둔다. 제사를 지낸 술로 음복을 하고, 북을 치면서 土俵를 세 바퀴 돌면 土俵祭り는 끝이 난다.
ⓑ取組(とりくみ)-대진표 또는 대진
⒜本場所 15일 동안의 대진 일정표 가운데 첫째 날, 둘째 날만 미리 짜두고, 그 다음날부터는 시합의 결과를 보고 다음날의 대진표를 짠다.
⒝取組는 심판부가 경기 전에, 番付 상위 力士로부터 차례로 정해 간다.
현재는, 같은 部屋 力士끼리는 대전하지 않는다. 형제로의 取組도 없다. 그러나, 우승 결정전은, 설사 형제라도, 같은 部屋이라도 대전한다.
그리고 1일의 取組 수는 약 220번있고, 幕內가 약 20번, 十兩가 13번, 幕下이하가 약 180번이 되고 있다.
⒞매일 매일의 取組는 하루종일 진행된다.
아침부터 시작을 하여 저녁까지 계속되는데, 아침에 시작하면 하급力士부터 시작하여 相撲가 진행된다. 저녁으로 갈수록 중량급 力士대전이 이루어지고 경기의 마지막에는 삼역力士(小結,關脇,大關)와 橫綱의 경기가 열린다.
하루의 열리는 시합가운데 마지막 15판의 시합을 幕內(まくうち)の取組라고 하여 관중의 시선이 집중된다.
이 때에는 橫綱가 먼저 土俵에 나와서 의식을 하고 나서 경기가 시작된다.
橫綱는 앞치마 모양의 장식용 복장인 化粧回し(けしょうまわし)를 하고, 칼을 든 두 力士의 호위를 받으면서 등장한다. 土俵에 오른 橫綱는 바닥을 힘차게 밟기도 하고, 손을 힘차게 올렸다, 내렸다,벌렸다, 오므렸다 한다. 이러한 행동에는 땅과 하늘의 神에게 土俵에 부정이 타지 않도록 하는 것과 시합이 공정하게 무사하게 진행되기를 빈다는 의미를 표현한 것이다.
이런 의식이 끝나고 力士가 등장하여 경기를 하게 된다.
③相撲의 경기
相撲는" 예의로 시작하여 예의로 끝난다."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른 스포츠에 비해 예의를 가장 중요시할 뿐 아니라 엄격하기도 하다.
각 날 幕內시합의 시작 직전에 土俵入り라는 의식이 행해진다.
하루의 의식(rite)을 마무리하는 "bow dance"이다.
마지막경기가 끝나고 특별히 선발된 幕下 力士가 - 이 의식을 수행하는 심판에 의해 전해진 활을 들고 土俵에 오른다.
이 의식은 江戶시대에 이긴 力士가 상으로써 활을 받고 그 만족감을 표시하기 위해서 "bow dance"를 춘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선수입장
相撲경기는 장내순서에 따라서 呼び出し(よびだし)가 대전할 力士의 이름을 부른다.
ⓑ물로 입을 헹군다.
呼び出し의 부름을 받고 경기장에 나온 力士는 土俵에 오르기 전에 土俵의 한쪽에 있는 물통에 있는 물을 국자로 퍼서 입을 헹구고 종이로 입가의 물기를 닦는다. 신성한 공간, 깨끗한 공간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합을 열어야 한다는 相撲의 내부규율이 있는데, 이러한 행동은 몸을 깨끗하게 한다는 뜻이 있다.
또 相撲를 보다 보면 직전의 경기에서 이긴 力士는 다음의 力士에게 종이와 물을 떠주지만, 진 力士는 그냥 그대로 물러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직전 경기에서 이긴 쪽은 이긴 力士가 종이와 물을 떠주고, 진 쪽은 진행위원이 종이와 물을 떠준다. 이러한 행동은 승리의 운이 이어지기를 기원한다는 뜻이 있다.
ⓒ土俵에 소금(淸めの鹽,きよめのしお)을 뿌린다.
相撲를 보면 力士가 土俵에 나오면서 흰색의 가루와 같은 것을 土俵에 뿌리면서 나오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흰색의 가루는 소금으로 이렇게 뿌리는 것은 땅속의 나쁜 기운을 물리쳐 土俵의 부정을 씻어내어 정결하게 하는 의미와 선수가 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기원함과 동시에, 찰과상등을 입었을 때 살균효과를 하는 역할을 하는 의미를 가진다. 이 소금을 뿌리는 행위는 幕內, 十兩, 幕下 力士들의 특권이다.
ⓓ力士가 土俵에서 한쪽 발을 들어 올렸다가 내리는 동작을 한다.
力士가 土俵에 오르면 먼저 가볍게 인사를 하고 양다리를 벌리고,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낮춘 상태에서 양다리를 교대로 높이 올렸다가 발끝에서 뒤꿈치 순으로 닿도록 내린다.
이러한 행동을 四股(しこ)を踏(ふ)む라고 한다.
이렇게 다리를 들어 땅을 밟는 이유 사악한 귀신을 밟아 쫓아내어 대지를 잠재우고 정신을 가다듬는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相撲경기에 앞서서 몸의 긴장을 풀고, 정신을 집중시키기 위한 행동이다.
ⓔ격돌할 것 같다가 그만두는 행위
이러한 준비과정이 끝나고 나면 경기에 돌입하게 된다.
두 力士가 마주 서서 서로의 눈을 쳐다보면서 氣싸움을 하고, 土俵바닥에 있는 선 앞에서 몸을 낮추어 웅크리고, 주먹을 바닥에 대고 있다. 이 자세를 任切り(しきり)라고 하는데, 실로 긴장된 순간이다. 순간적으로 일어서면서 앞으로 돌진하여 상대방을 넘어뜨리거나 土俵밖으로 밀어내기 위해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로 웅크리고 긴장감이 흐르는 순간 준비자세를 푸는 것을 볼 수 있다. 김 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이것 때문에 力士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호흡이 맞지 않거나 상대방의 호흡을 흐트리기 위해서 준비자세를 푸는 것이다. 야구에서의 견재구와 같은 작전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力士의 등급에 따라서 재 격돌할 수 있는 횟수와 시간에 제한이 있다.
<勝負規定>
制限時間
東西의 力士 이름을 부르고 난 후부터 계산한다
幕內
十枚目
幕下以下
4 分
3 分
2 分以內
ⓕ立合い(たちあい)
두 力士가 웅크린 자세에서 순간적으로 힘차게 일어나면서 서로의 기술을 사용하게 위해 맞붙는다. 바로 이 순간이 相撲의 하일라이트로 立合い라고 한다.
이 후에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넘어뜨리거나 도효 밖으로 밀어낸다. 한국사람이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일본 스모 협회는 70여종의 기술을 주장한다.
ⓖ승부의 결정
두 力士중 한명의 力士가 土俵바닥에 닿거나, 바깥으로 밀려나면 지게 된다.
승부는 단판승부로 결정이 되며, 승부가 결정되면 심판은 決り手를 확실하게 선언한다.
심판은 軍配로 이긴 쪽으로 가르치고, 군배에 상금을 얹어서 이긴 力士에 전달해 준다. 상금을 받은 力士는 오른손을 펴서 좌, 우, 중앙으로 흔든 다음에 상금을 집어 드는데, 이것은 이번 판에서 이기도록 해준 신에게 감사한다는 뜻이 있다.
相撲에서는 승부에 집착을 하지만 승부가 난 후에는 승부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겼다고 한국과 같이 포효하지 않고, 졌다고 실망하는 표정은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 심판의 판정에 승복을 한다.
相撲에서 심판은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때로는 심판의 판정에 불복하여 이의를 제기하면, 5명의 심판위원이 비디오로 판정하거나 합의하여 재시합을 결정하는 수도 있다.
ⓗさんやくそろいぶみ
정규 토너먼트의, 千秋樂 ( 結びの 3 番前に) 행해지는 의식이다.
東西 각각 小結· 關脇· 大關의 三役에 해당하는 세 명의 力士가 土俵에 오르고, 부채(扇) 형태로 정면을 향해서 3명이 四股 (しこ)를 밟는다.
東方에서는 앞에 2명, 뒤에 1명이, 西方은 앞에 1명, 뒤에 2명. 이 마지막의 3番을 役相撲라고 말하고, 小結에 해당하는 取組 승리 力士에게는 화살이, 關脇에 해당하는 取組 승리 力士에게는 활시위(弦(つる))를, 大關에 해당하는 取組 승리 力士에게는 활이 각각 준다.
ⓘ우승자의 결정
이 15일(初日 - 千秋樂)동안 각각 다른 선수들과 싸우게 된다. 대회기간동안 '마쿠노우치'와 '주료'의 고위권 선수들은 15일 중 단 하루만 시합을 하며, '마쿠시타', '산단메', '조니단', '조노쿠치' 등의 선수들은 7일동안에 경기를 한다.
많이 이기면 이길수록 좋다. 그러나 선수들의 목표는 대회기간동안 승리회가 더 많아서(15게임 중 8번이상, 7번 중 4번이상) 현재의 순위를 유지하거나 더 높은 순위로 진출하는 것이다.
대회의 승리는 가장 좋은 성적(가장 많이 이긴)을 낸 '마쿠노우치'에게 돌아간다. 만약 동점자들이 생기면 마지막 날 다시 시합을 하여 결정을 한다.
'마쿠노우치'경기가 있기 전에 좋아하는 선수들에게 상금을 기증할 후원사들은 경기장 주위에 회사이름이 적힌 광고용 깃발을 걸어 놓는다. 깃발의 크기가 클수록 상금의 액수가 크다. 경기가 끝나면 심판이 우승자에게 깃발을 건네준다. 우승자는 경기장의 가장자리에 웅크리고 앉아서 '테가타나(손을 칼 모양으로 뻗침)'를 하고 상(현금, 쌀, 쌀로 빚은 술)을 받는다.
그리고 세가지 상이 더 있는데, 킴보시 (대부분 요코즈나나 오제키를 이긴 경우- 이러면 남은 활동기간의 봉급이 크게 인상된다. ), 기능상, 감투상이다. 이 때의 자격은 적어도 15경기중 8경기 이상을 이겨야 한다.
ⓙ番付け(ばんづけ)결정
현재 프로 相撲 선수들은 요코즈나로부터 약 800여명이 있다.
이들의 순위는 한국의 씨름과 같지 않다. 정규 토너먼트 경기인 本場所 후에는 일본 스모 협회(심판위원들)에서 力士의 15일간의 시합성적에 따라서 승진이나 강등으로 새로이 지위를 만드는데, 이 일람표를 番付け라고 한다. 番付け는 성적이 좋은 力士의 이름을 위쪽에 큰 글씨로 쓰고, 다음 차례로 아래의 작은 글씨로 차츰 써 내려간다.
순서는 위로부터 橫綱(よこづな),大關(おおぜき),關脇(せきわけ),小結(こむすび),前頭(まえがしら),十兩(じゅうりょう),幕下(まくした),三段目(さんだんめ),序二段(じょにだん),序ノ口(じょノくち)순으로 된다.
요코즈나라는 지위는 좀 특이하다. 과거 3백년동안 단지 65명의 요코즈나가 탄생했다.
이 지위는 아무리 성적이 좋지 않더라고 결코 강등당하지 않는다. 대신 나쁜 성적이 계속된다면 은퇴할 수밖에 없다. 요코즈나가 되려면 오제키등급에서 연속으로 本場所를 우승해야 한다.
그렇다고 조건을 다 갖춘 것은 아니고, 일단 심사위원회에서 승격 문제를 심사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현대에 가장 유명한 요코즈나는 다음과 같다.
-69회의 연승을 포함하여 866회를 이긴 '후타바야마(1937~1945)
-총 32회의 시합에서 승리하고 45회의 연속경기에 참가한 '타이호(1961~1971)
-가장 어린(21세 2개월)나이에 요코즈나에 오른 '키타노우미(1974~1985)
-가장 적은 시합(30회의 시합 후)회수로 요코즈나가 된 '아케보노(1993~)
-19세의 나이로 시합의 가장 어린 우승자가 된 '타카노하나(1994~)
(2)相撲의 시기
1年중에 큰 相撲대회는 모두 6차례(1, 3, 5, 7, 9, 11月)열리는데, 이를 本場所(ほんばしょ)라고 한다. 이 本場所는 매번 15일의 일정으로 진행이 된다. 本場所기간 동안 선수들은 전국의 시골지역을 돌며 지방경기에 참가하는데, 이는 相撲에 대한 흥미를 증진시키고 새로운 선수를 모집한는데 큰 도움이 된다. 本場所는 TV, 라디오의 중계는 물론 신문, 잡지에도 소개가 된다.
명칭
시기
개최장소
初場所(はつばしょ)
1月
東京의 國技館
春場所(はつばしょ)
3월
大阪
夏場所(なつばしょ)
5月
東京의 國技館
名古屋場所(なごやばしょ)
7月
名古屋
秋場所(あきばしょ)
9月
東京의 國技館
九州場所(きゅうしゅうばしょ)
11月
福岡
5.相撲의 국제화
相撲의 대중적 인기는 열렬한 팬이었던 히로히토 천황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1955년 5월의 토너먼트 대회를 시작으로 히로히토 천황은 동경에서 열리는 각 경기에 하루씩 꼭 참석하여 귀빈석에 앉아 관람하곤 했다. 이러한 관습은 다른 왕족들에게도 계승되었다. 외교사절이나 해외의 방문인사들은 종종 相撲경기에 초대받는다.
相撲는 해외의 일본단체들이 처음으로 외국에 선을 보였지만 수십 년 전부터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1960년대 이래로 미국과 캐나다, 중국, 한국, 몽고, 태평양의 통고섬 등의 젊은 레슬링 선수들이 相撲를 배우러 일본으로 왔는데 그 중의 일부는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극복하고 성공하였다. 1993년에 하와이에서 온 미국인 ‘아케보노’는 ‘요코즈나’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호주와 유럽,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열린 시범경기로 큰 선전효과를 거두어 相撲는 해외에서도 인기있는 스포츠가 되었다. 아마추어 스모 후원인들의 노력으로 相撲는 올림픽에 시범종목으로 소개되었으나 그 채택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6.相撲경기로 본 일본
(1)사무라이문화
한국의 씨름은 3판 2승(결승전 제외)으로 승자를 가리는 데 비해 일본의 相撲는 단판 승부이다.
한국의 씨름은 한번의 실수를 인정하는 반면 일본의 相撲는 패자에게 더 이상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과는 달리 일본의 역사적으로 전쟁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전쟁에서 한번의 실수는 죽음과 연결이 된다. 이것이 결승도 예선과 같이 단판으로 이어진 것이다.
(2)복종
相撲에서 심판은 절대적인 존재이다. 혹 심판이 잘못된 판정을 내리더라도 선수는 그 판정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복종한다. 한국의 씨름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양국간 차이를 볼 수 있다. 한국인은 자기 주장이 강한 반면 일본인은 절대자의 한마디에 복종하는 편이다.
(3)本音와 建前
일본의 相撲선수들을 보면 경기의 승패와 상관없이 표정은 똑같다. 경기에 졌다고 실망하는 표정을 볼 수 없고, 이겼다고 해서 한국과 같이 포효하는 장면을 볼 수 없다.
반면 경기의 승패에 관계없이 표정의 변화가 없는 것은 本音와 建前의 한 장면이 아닐까?
(4)儀式(ぎしき)文化
相撲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전성기 때의 타이슨의 경기를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본경기를 보기 위해서 몇 시간이나 되는 경기를 보았는데, 진짜의 메인 경기는 16초에 끝이 난다.
순간 한눈을 팔면 지금까지의 기다림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일본의 相撲도 두 선수가 시합을 하는 시간에 비하여 시합 전의 의식에 더 오래도록 공을 들인다.
한국사람들은 이런 相撲를 재미있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인은 이러한 相撲를 즐긴다.
이것은 일본의 문화 중의 한 축인 儀式을 중요하게 여기는 일본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절차가 복잡하고 규율이 까다로운 자체가 일본인에게는 즐거움인 것이다.
이러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茶道, 花道, 劍道 등 道가 붙은 일본문화의 이해는 힘들뿐만 아니라 재미가 없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