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초에 영화 에어리언 2를 봤다.
번쩍번쩍 폭발 장면이 많은 초대형 히트 영화였다.
잘 때 여전히 눈에서 계속 번쩍번쩍 하는 느낌이 있고 좀 아프다했는데, 다음날 아침 한쪽 눈이 꽤 충혈되어 있었다.
# 홍채염, 스테로이드, 그러고 성심안과
그 당시 의정부에서 “용”하다고 소문난 성심안과에 갔다.
그 안과 상당히 유명해서 상당히 멀리서도 왔다.
홍채염이란다.
그런 눈병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홍채염이 고2 내내 4번 재발하며 나를 괴롭혔다.
약 먹고 몇일 있다가 오라는데, 의사는 속으로 좋아했겠지만, 간호사 누나들의 만류에도, 나는 매일 병원으로 출근했다.
혹시나 다 났나 하는 기대에…
그리고 풀이 죽어 나오곤 했다.
무슨 약인지 얼굴이 빵빵해지고 밥먹고 돌아서면 배고팠다.
그땐 몰랐지만 스테로이드였다…
그런 증상들을 얘기하니 스테로이드 양을 줄였는지 이상한 증상들은 사라졌다.
그 병원은 그런 약들을 심하게 써서 당장 증상을 없애주니 유명해진거였다.
# 녹내장과 정혜륜 교수
그러다 고3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녹내장이 되었단다.
눈안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시신경이 조여져 실명이 되는 심각한 병이다.
의사가 자기는 못하겠다며 혜화동 고대부속병원으로 가보란다.
어머니나 나나 서울에 대형 대학병원은 처음 가봤다.
성심안과에서 소견서같은 것도 없었고, 아침 일찍 가야한다는 말밖에 들은 게 없다.
어느 눈 심하게 오던 날 꼭두 새벽에 안과창구앞에서 무작정 기다렸다.
왠 모자가 궁상맞게 않아있으니 간호사가 뭔일인가 물어본다.
그 병원 못고치는 환자 다 여기로 보낸다면 투덜대더니,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되고 빨리 접수하고 오란다.
그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안과의사 두 분중 하나라던 정혜륜교수의 지정진료였다.
진료때마다 젊은 의사들이 병풍처럼 둘려싸고 있으니, 병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어도 질문을 할 수 없는 위압적인 분위기였다.
그 당시 한국병원의 특징이 아닌가한다.
환자수가 엄청 많으니 설명할 시간도 없고, 환자는 질문없이 의사가 시키는대로만 하고, 다 났다면 다 나은줄 아는거다.
고3내내 병원을 들락날락 했었는데,
눈에 주사도 한대 맞고, 보험 안돼 무지 비쌌던 안약 넣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안압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들 하는 말이 녹내장은 그냥 가는 병이 아니니 매년 안압검사를 받으며 조심하란다…
처음 몇년은 매년 검사를 받았다. 그러다가 헤이해져 안가다가, 눈이 출혈되거나 왠지 불편하면 혹시 재발했을까봐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가곤 했다.
유학와서도 마찬가지로 녹내장은 내 머리속을 한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가끔 UNC 병원도 가봤고, 의대가 유명한 Duke 병원 의사들도 만나봤다. 이런 저런 눈 아프게 하는 검사만 하고 이상없다고 했지 별 다른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 동네 안경점에서 만난 명의
그러다가 동네 안경점에 안경 맞추러 가게 되었다.
회사보험이 2년에 안경 한개를 커버해주기때문이다.
그 안경점 소속 안과가 있는데, 그 곳 의사는 검안의사(optometrist)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안경을 사도록 유도하는 것이 임무이다.
검안사가 눈검사를 하고, 지금까지 history 즉 홍채염, 녹내장에 대해 적은 후 몇 분인가 기다리니, 여의사가 들어왔다. 그 번개같은 등장은 잊을 수가 없다.
들어오자마자 빠르게 자기 소개를 하더니, 다짜고짜 내 history를 봤는데 그 녹내장은 진짜 녹내장이 아닌, 유발된 녹내장이라고 선언하는게 아닌가.
홍채염은 일종의 알러지 반응이라고 한다. 면역이 강한건 좋지만, 그런 사람들은 가끔 면역체계가 그런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홍채염의 치료약은 면역을 억제시키는 스테로이드인데, 그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으로 일시적으로 안압이 높아진거지, 진짜 녹내장은 그렇게 쉽게 가지 않는단다.
1985년이후 얼마나 불안한 삶을 살았나.
그 오랜 불안이 단 몇 분만에 깨끗이 풀어져 버렸다.
사실 다른 의사들은 그 녹내장이 다른 원인에서 올 가능성도 있었기에 말을 아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의사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을 나에게 얘기해 준 것이다.
매년 정기검진으로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상당히 프로패셔널하고 똑똑한 의사다. 항상 모든 질문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성격이나 실력이나 안과를 열면 환자가 넘쳐날 것 같다. 그러나 욕심이 없어, 시간 많은 동네 안경점에서 일하면서, 가족과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지않나 하는게 나의 추측이다.
한국에서는 능력없고 약만 쎄게 쓰는 지방의사가 녹내장을 유발시켰다. 사실 사람들이 꾸역구역 병원을 서울로 가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동네 검안의사가 나를 구해줬다.
지금도 우리가족 모두 매년 그 의사를 만나고 있고,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의사중 최고의 명의라고 생각한다.
그 의사는 Dr. Julia Predgen으로 학부 UNC 출신이다.
https://www.myeyedr.com/about/our-eye-doctors/dr-julia-pridgen
첫댓글 미인이군요^^
외모 자체보다는 말과 행동이 상당히 매력적인 진정한 미인이예요.
미인에 한표~ ㅋㅋㅋ 근데 카페에 의사 쌤들도 많으신데 ㅋㅋ
의사선생님들은 어찌 생각하실까 몰라요^^
문듯 든 생각인데,, 미인과 명의 이 둘의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ㅋㅋ
한국에서는 자존감 문제가 달려있어서 상관관계가 있을듯해요^^ 외국에서는 별로^^
@안재형 한국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제 동기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친구들은 다들 보건소, 좀 한가한 병원등에 취직해서 나름의 삶을 살고 있죠.^^ 입고 있는 옷이 그 사람을 말하는게 아니듯 좋은 병원이 곧 좋은 의사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안 박사님, 오랫 동안 맘 고생을 엄청 심하게 하셨네요.
명의를 만나는 건, 천운이죠. 대학병원이라고 무조건 명의가 근무하거나, 동네 의원이라고 무시할 이유는 없다는 게 제 개인적인 경험이네요. 이런 저런 이유로 저도 전문의나, 인턴/레지던트들을 많이 만난 적이 있는 대... 의사가 받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한 거 같아요. 강한 정신력과 체력을 요구하고.... 감정노동도 심하고...암튼 제가 만나 여자의사는 모두 미인들.. 기억에 남는 건 미남 의사들 ㅋㅋㅋ
확실한건 경험많은 의사는 확실히 다르더라구요.
@안재형 네~~ 완전 동감!! 이전에 한 연구에서, 다양한 변수들이 작용하며, 빠른 결정이 필요한 직업들, 이 중에 의사도 포함해서. 자기 분야에 자신감을 갖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년 이상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유행하던 그 "10년 경험"하고는 상관 없는 연구이구요.
그래서, 자기분야에서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면 안 될 거 같아요. 물론 의사나 최고경영자처럼 작은 실수가 큰 손실과 희생을 발생할 때는, 옆에 유능한 조력자들이 많아야겠지만, 저처럼 일반인인 경우에는 도전하는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