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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림선원 서울선원 원문보기 글쓴이: 대도성김정애
유마경1 (73. 12. 6)
제6 불사의품(不思議品)
한 대목에서 이렇게 길게 시간이 걸리구만. 단단히 들으세요. 보살님들 이리 나오시죠.
[강송] 또다시 이르셨다. 아래쪽으로 항하의 모래수 불세계를 지나 한 불토를 떼어가진 다음 위쪽으로 되돌아 항하의 모래수인 한량없는 세계를 지나와도 마치 바늘 끝으로 한 개 대추나무 잎새를 꿰어 듦과 같다는 것이다. 이 땅덩이가 육중한 무게로 허공중에 떠서 시속 삼십오 킬로미터로 돌고 돌아도 나뭇잎새 한 개 까딱하지 않는 말씀이시다. 자, 어떻게 되는 일이냐. 이 참이냐 이 거짓이냐. 이 거사님의 말재주냐. 이 중생의 무딤이냐.
(유마경 제6 불사의품 p263:3~10)
어제 한 거여. 중생의 무딤, 미한 것,
[강송] 어허! 태산이 눈을 부릅떠서 오기 때문에 삼계는 그 기미에 맞추어서 허공중을 떠돌고 녹수는 귀를 가리고 가기 때문에 만법은 그 인연에 따라서 시방에 굴리는 것이로다!
이거는 성불송에 있죠? 보림삼관, 태산이 눈을 부릅떠서 오고 녹수가 귀를 가리고 간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말인가. 이걸 여러분들이 깨뜨려야 됩니다. 이것에 대해서 아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그러나 아직도 모르는 분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태산이 어찌 눈이 있는가, 녹수가 어찌 귀가 있느냐.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날 거예요. 사실은 생각나겠는데 그 때는 별 거 없어요. 온 누리가 눈 하나고 온 누리가 귀 하나다 말이여. 이렇게 생각을 떡 해 가면 아하, 그렇구나. 이 말이 그 말이구나 하는 것이 저절로 풀려 나가요. 솔직한 말로 온 누리 눈, 하면 눈 하나뿐이지 눈 이외에 또 뭣이 있느냐 말이여. 또 온 누리가 귀, 하면 귀 하나 뿐이지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느냐 말이여. 가만히 생각을 해 봐요. 그러면 어떠한 경우에 가서 이러한 말을 쓸 수가 있겠느냐. 이거 한 번 생각해 봐요. 생각해 보면은 저절로 이거 알게 됩니다. 그리고 또 이거 알아야 되요. 이거 알아야 됩니다.
[강송] 이러기에 한쪽 세계를 떼어서 이리 저리 던진다는 그 말에 깜짝 놀랄 사람도 있겠지마는 실은 모래수의 불세계는 한 마당의 노리개에 지나지 않거늘 던지는 이는 누구이며 던져지는 물건은 무엇이겠는가. 모든 것을 올바른 소견으로 관찰을 하면 그것이 그것일 따름이다. (p263:12~16)
실로 말이지 언제라도 설법이란 것은 방편인 줄 아세요. 언제라도 설법은 방편이에요. 왜 그러느냐. 설법이란 것이 원래 도대체 있을 수가 없어.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이것도 오늘 여러분들 처음 듣는 말이에요. 설법 무슨 필요가 있나요? 만약 설법이 있다면 이건 전부 거짓말입니다. 무슨 설법을 어떻게 한단 말이요. 가만히 생각해 봐요.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요. 모 절인데 왔어요. 와서 나한테 화두를 타 가져 있어요. 이 화두가 뭣이냐 하면 만법이 귀일하니 일귀는 하처려오.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가느냐는 이 화두를 내가 줬어요. 이 방에서 줬어요. 한 달인가 두 달 전에.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이 사람이 오지. 이번에도 또 왔더구만. 떡 들어와서 절하는 걸 보니 공부한 티가 나. 눈이... 벌써 달라. 딱 보니 달라. 너 요즘 공부 잘하구나. 한데 니가 공부 삿되게 하구나 했더니 싱긋이 웃더구만. 저는 모르지. 삿되게 니가 하는구나. 그래서 망상이 일어납니다. 뭐 어쩝니다. 어떤 높은 스님한테 물으니 만법이 귀일하니 이런 말은 빼고 일귀하처요 이렇게만 생각해라 이렇게도 합디다. 그래도 좋다 이랬지.
그러나 이걸 화두 내용을 알아야 된단 얘깁니다. 만법이 하나로 오기 때문에 하나는 어디로 가느냐 이 말이란 말이여. 실로 이걸 알고 보면은 바로 그것이 먼저 말한 말이고 나중 말한 말이 먼저 한 말이지만은 이걸 모르면 안 되는데 좌우간 어쨌든지 이걸 근본적으로 그 내용을 딱 판가름해서 안 다음에 화두를 가져야지. 그 말도 좋은 말은 좋은 말이여. 그런 것 아니라 했더니 납득하더만. 내가 이런 말을 했어요. 니가 화두를 가졌지? “예” 도대체 만법이 귀일하면 일귀는 하처려오. 이거 화두 아니냐. “예 그렇습니다.” 예 한 놈이 누구냐 말이여. 이것이 만법이 귀일하니 일귀는 하처려오거든. 만약 지금 니가 범어사 있다 할 테면 말이지 범어사가 바로 만법이 귀일하면 일귀는 하처요. 그거란 말이여. 흐르는 물을 봤다 하면 흐르는 물이 바로 만법이 귀일하면 일귀는 하처요 그거란 말이여. 부는 바람을 봤다면 그것이 바로 만법이 귀일하면 일귀는 하처요 그거란 말이여. 너의 몸뚱이 하면 그것이 만법이 귀일하면 일귀는 하처란 말이여. 니하고 만법이 귀일하고 둘로 보느냐 말이여. 니하고 돌하고 만법이 귀일하고 둘로 보느냐 말이여. 떠다니는 구름하고 만법이 귀일하고 둘로 보느냐 이런 식으로 얘길 했어요.
아마 여러분도 이 말은 처음일 거여. 여기 비슷한 말을 내가 했거든. 우리는 자비면 자비 자리에 들어앉아야 한다 바로 자비라야 한다 이런 말 하지 않았어요? 또 그와 마찬가지로 공부하는데도 그렇습니다. 니가 또 그걸 생각을 하고 있다면은 뭣을 니가 생각하냐 말이여. 이건 알 것이 없어. 그만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란 말이여. 모를 것도 없어. 그만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란 말이여. 니가 순전히 만법이 귀일하니 일귀는 하처란 말이여. 니가 만법이 귀일하니 일귀는 하처란 여기도 들어앉아도 안 된단 말이여. 들어앉을 것이 없어. 바로 니가, 니의 대명사가 말이지 니의 본명이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란 말이여. 뭘 알려고 하냐 말이여. 알 것도 없단 말이여. 그만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 이것만 알면 된다 말이여. 또 모를 것도 없단 말이여. 뭣을 몰라.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 이렇게 화두를 니가 가져서 굴려 나가야 된다 말이여.
여러분들, 이제 대강 알겠죠? 화두 가진 분들, 화두하고 니하고 둘로 보지 말란 말이여. 내가 화두를 가졌다. 그 따위 법이 없어. 그건 무식한 사람들이 내가 화두를 이러이러한 화두를 가졌다 이렇게 생각을 하지, 벌써 공부를 해서 어느 정도까지 좋은 스승을 만나서 공부를 하는 자리에서는 말이지 절대로 그렇게 가지는 법이 아니란 말이여. 왜 그러느냐. 처음에 아무 것도 처음에 모른 사람들은 내가 이러이러한 화두를 가졌다 이렇게 생각한다 말이여. 그건 그렇게 말을 안 해 주면 그 사람들이 이해를 못해. 못하니까 그렇게 말하는데 그러나 조금 더 시일이 가서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 그건 그렇게 설법하는 법이 아니란 말이여. 나는 그러기 때문에 너한테 이렇게 설법한다 말이여. 니가 바로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란 말이여.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고. 하처가 무엇인가 난 알아야 되겠단 말이여. 뭣이긴 뭣이냐 말이여. 알 필요 없다 말이여. 그만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란 말이여. 그렇게 나가란 말이여. 그러면 모를 것도 없단 말이여. 뭣을 몰라?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인데 그것을 몰라? 그것뿐이라 말이여. 알 것도 없어. 무엇을 알려고 하냐 말이여. 그만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란 말이여. 굴러다니는 돌, 이거 바로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란 말이여. 떠다니는 구름, 그만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란 말이여. 니 몸뚱어리, 그만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란 말이여. 다른 것 아무 것도 없어.
담배 한 갑을 사왔어. 요새 그 애들 돈이 없거든. 돈이 어디서 나와? 담배 한 갑을 떡 가져 왔어. 이 놈아, 중놈이 담배 가져오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노? 허허허. 예, 처음에는 제가 선생님 찾아뵙고는 담배 피우시니 좀 이상했습니다. 한데 생각에 저는 그 정도는 좀 넘었습니다 하면서 담배를 사왔단 말이여. 큰 돈 썼어. 돈 없을 것이거든. 아직 젊은 애거든. 누가 돈을 담아 줘? 지 딴에는 큰 돈 쓴 거여. 내가 속에 언짢았어. 그래서 그 담배를 우편배달이 왔길래 고마워서 우펀배달을 줬어. 그 때 나한테 담배 한가치 밖에는 없었거든. 그 소중한 담배를 먹게끔 안 됐어. 우편배달 나한테 우편 심부름 해 주거든. 그 담배를 내가 효과 있게 썼어요. 내 사복을 안 채우고 말이지. 그 때 나한테 담배 한 개비인가 두 개비밖에 없었거든. 그래서 저녁때 샀지. 샀는데,
그렇게 내가 얘길 했어요. 왜 그러냐. 알 거 없다. 뭣을 알아? 그만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란 말이여. 그것이 바로 너란 말이여. 너란 것이 없어. 아, 이거 내다 그거 다 전도된 생각이여. 바로 니가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란 말이여. 돌멩이도 그렇다 지구도 그렇다 지구도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란 말이여. 범어사,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란 말이여. 범어사가 따로 없어. 바로 범어사 그거 자체가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란 말이여. 알겠느냐. 이놈이 실룩실룩하고 근육이 좀 움직거려. 아직 모르긴 모르거든. 근육이 움직인단 말이여. 공부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 그때 생각에 옳지 오늘 저녁에 우리 도반들에게 이런 법문을 해야 되겠다 했는데, 그리 들어가면 알 것이 없단 말이여. 뭣을 알아? 네가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라고 네가 그러하는데 뭣을 안다 말이여. 안다 하면 이건 망상이여. 그럼 모르면 어때? 모르는 것 없어. 만법이 귀일 일귀하처, 말로 옮길 줄 알고 뜻을 생각할 줄 아니까 말이여. 만약 모른다면 그건 무기여. 모를 것도 없어. 알 것도 없고 모를 것도 없어. 그만 그것만 가지란 말이여. 니 자신이 그거라 말이여. 범어사면 범어사가 그거다 말이여. 지구면 지구가 그거라 말이여. 태양이면 태양이 그거라 말이여. 그 위에 없단 말이여. 없는데 뭣을 알아? 알기는 뭣을 아느냐 말이여. 니가 만약 뭣을 안다고 하면 사도에 떨어진다고 했더니만 입을 씰룩씰룩해. 이건 물론 이건 내가 처음으로 하는 말이여. 공부 그렇게 하는 거여. 그러나 모든 걸 방하착 하는 거라. 화두를 들면 화두만이 있을 따름이지 내가 있고 화두가 있고 지구가 있고 화두가 있고 바람이 불고 화두가 있고 이거 있을 수 없어. 그래서는 안 되는 거여.
그래서 설에 오겠습니다 하고 이래 갔어요. 갔는데, 좌우간 어떻든지 말이지 이 공부란 것이 완전히 놓아 버려야 돼. 그런데 이거 좀 어려워요. 솔직한 말로. 왜 어렵느냐. 이러한 말은 여러분들 지금 처음 듣고 있거든. 솔직한 말로 말이지. 며칠 전부터 자비면 자비, 유화(?)면 유화라든지 이런 데 들어앉을 것도 없고 바로 그렇게 되란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물론 이거 납득 잘 안 간다는 것도 내 알아요.
여러분들이 자비면 자비라든지 화두를 가졌으면 화두 그 자체가 화두로 딱 변해 버리면 직접 그 자리에서 성불하는 거라. 그러나 이놈이 말은 쉬운데 그대로 안돼. 그러나 이걸 그대로 해 나가면 돼. 나중에 어느 사이에 된 줄도 모르고 되 버리는 거야. 그러기 때문에 솔직한 말로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부처님 하면 모습이 없거든. 모습이 있으면 파순이라. 달마대사 말이란 말이여. 모습이 있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면 관세음보살이 턱 나타나거든. 나타났단 말이여. 모습이. 파순이여. 그건. 부처님의 모습으로서 파순이가 나타난 거여. 이거 달마대사 말이여. 또 다른 성현도 그리 말했어.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거 아니거든. 관세음보살 한다 말이여. 아미타불 한단 말이지. 허공 에 턱 하니 나타났다 말이지. 삼십이상 팔십종호로서 턱 나타나니 거기 떨어져 버려. 그러니 그거 파순이의 장난이거든. 왜 그러냐. 본질적으로 파순이 아니라? 그러하기 때문에 부처는 모습이 아니란 말이여.
그러하기 때문에 이 대승 설법은 부처님도 말씀하시기를 대승 설법은 말이지 미한 사람들에게는 하지 말아라. 근기 약한 사람들에게는 하지 말아라 말이여. 근기 약한 사람들에게 해 놓으면 곧이 안 듣는다 말이여. 곧이 안 듣는 것 까지는 좋은데 죄로 가. 죄로 가. 일겁을 갖다 부처님 욕을 해도 좋단 말이여. 그러나 죄는 돼. 욕을 해도 좋은데 경을 비방하면 죄가 많다 이리 했어. 법화경에 그리 돼가 있어요. 이거 무슨 말이냐. 참 무서운 말이여. 그 뜻은 뭣이냐. 이것도 전부 방편이여. 부처님을 욕을 해도 좋다는 거여. 그러나 죄는 있어. 하지만 경을 비방하면 큰 죄로 간다고 법화경에 부처님 석가세존께서 말씀했어요. 그 무슨 뜻이지? 부처님은 욕을 해도 좋단 말이여. 물론 죄는 가. 하지만 경을 비방하면 그 죄가 많다 이래 되어 있어. 도대체 무슨 말이냐. 모습을 타파하고 리음(?) 하나 살리는 것 아니라? 이건 부처님 말씀이거든. 만약 우리가 그런다면 거짓말이다 하겠지만 이건 내가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옮긴 거여. 리음, 우리말로 하면 이 자리는 뭣이냐. 뭣이라도 머리털 하나라도 있으면 안 돼. 이 머리털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되는 자리가 그리 좋은 자리인데 그러나 근기가 약한 사람들은 뭣인가 있었으면 싶어. 왜 그러느냐. 우리가 늘 모습놀이를 해 왔기 때문에 그것도 자연히 인정상 있게 되겠지. 그야 그건 사적으로 인정상 문제이지 진짜 그건 아니라.
이것 참 이 자리에 정이 들면 참 정이 들어. 그러나 모습이 없으니까 무시하는 이런 습성으로서 우리가 당연히 몇 천만겁을 내려왔기 때문에 말이지 무의식적으로 모습놀이, 모습놀이 그리 해서 그렇지 사실로 알고 보면 말이지 모습이란 건 시들하게 돼. 그렇다고 해서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니까 부처님 말씀에, 법연화경에 있어요. 부처님을 일겁을 욕을 해도 죄는 돼. 죄는 된다고 했어요. ...하지만 경을 비방하면은 그 죄가 굉장하다고 부처님이 말씀했으니 도대체 무슨 뜻이냐 말이지. 경과 부처님이 소중하다면 경은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이리 하고, 부처님은 직접 부처님인데 죄가 부처님 욕한 것이 더 커야 되겠는데 경을 비방한다면 죄가 더 많다고 했으니 도대체 무슨 뜻이냐. 이걸 그대로 알아두고. 달마대사가 말이지 어떠한 부처가 나타나더라도 부처가 모습으로 나타났으면 이건 마군이다 그 말하고 가만히 대조해서 생각해 봐요. 생각해 보면 이거는 저절로 풀려 나가.
그러니까 부처님 말씀에 근기 약한 사람들에게 이런 설법 하지 말란 것도 우리가 납득이 가. 아무래도 섭섭해. 뭣인가 의지하고 싶어. 우리 어릴 때 떡장사 엿장사 곶감장사가 요새는 없는데, 그 넓은 길가에 있어도 전봇대에 의지하고 있거든. 큰 돌이 있으면 돌 밑에 가서 의지하고 있거든. 그거와 마찬가지여. 의지하도록 되어 있어. 그러나 그것이 근본적으로 이 이치를 알면 솔직한 말로 의지할 것도 없고 안 할 것도 없고 법 공한 자리, 이 자리에 앉아서 모든 걸 관찰한다면 말이지 그러하기 때문에 운문선사도 그런 말씀을 했고 여러 선사도 여러 가지 말씀을 했지만 말이지 어떻든지 그만 그 리음, 어떤 문제가 있으면 바로 그 문제가 돼 버리는 거라. 그런데 처음 이걸 들으면 좀체로 그리 될 것 같지 않아. 상당히 공부한 사람도 될 것 같지 않아. 그러나 이거 참 쉬운 거여. 왜 그러느냐. 방하착하면 그리 돼 버려. 그러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어서는 어떤 문제, 자비면 자비 하나, 이거 자비도 하나 언구인데 그러나 자비의 리음 그 자리에 조금만 하면 그만 자비 뭉치가 돼 버려. 유화면 유화 뭉치가 돼 버려. 법공이면 법공의 뭉치가 돼버려. 내니 법공이 따로 없어. 여러분들이 바로 법공이 돼버려. 바로 내가 그리 돼 버려. 여러분들이 바로 그리 돼 버려. 그러하기 때문에 속인들이 볼 때는 말이지 멍텅구리 비슷하게도 봬. 그리 보이겠지? 멍텅구리 비슷하게 뵈고 바보 비슷하게도 보이긴 보일 거여. 실에 있어서는.
그러니 여러분들 이 기회에 일대 용단을 해서 한 번 그 자리에 들어가야 되요. 그 자리에 안 들어가서는 상식적으로 설혹 안다 하기로니 무슨 소용 있느냐 말이여. 그거 남의 살림밖에 안 되거든. 상식적으로 안다면은. 우리 도반들 중에 몇 분 있어요. 방하착 팔 할까지 한 분들 있어요. 한 두어서너 분 될 거여. 여러분들 이거 확실히 해야 되는데 절대로 지식을 가지고서 삼계를 흔들어도 그건 안 돼. 흔들지 못해도 흔들 줄도 몰라. 몰라도 말이지 그대로 어떠한 문제가 있으면 어떠한 문제에 그대로 동화해 버려야 돼. 이것이 대도에요. 우리가 이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가 공부하긴 하는 거예요. 이제 차차차차 여러분들이 그러할 때가 돌아왔어. 그러기 때문에 산에서 내려가는 것이거든요. 지금 여러분들 산에서 내려가는 중이에요. 산중턱에 있어요. 지금 내려가고 있거든. 저 밑에 내려가면 내가 없어. 내가 없어. 자비면 자비라든지 슬기면 슬기라든지 그 덩어리 하나만 있을 따름이여. 다른 것 없어. 만약 내가 있고 뭣이 있다 할 테면 벌써 공부된 것 아니여. 그런 줄 아세요.
그래서... 내가 만법귀일에 대해서 처음으로 하는 말이라. 참말로 이건 녹음하나 했으면 좋겠다 이랬어. 내가 죽더라도 다른 분들도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 있을 것 같지 않다. 몰라. 있을는지도 모르지. 내가 너무 좁은 소견, 공부도 안 하고 옳게 못 해서 그렇지만 있을는지도 모르지만 나로서는 오늘 처음으로 말했거든. 그런데 이거 여러분 아주 신중하게 생각해야 되요. 절대 우리 지금 구경하는 것 아니거든. 실지로 말이지 하나의 곶감이다. 하면 우리가 곶감이 되기 위한 공부거든. 내가 곶감이 돼야 돼. 내가 뭘 갖다 놓고 설명을 해 봤든 안 돼. 설명이 어찌 될 거라? 설명이 어찌 될 거라? 우리가 바로 곶감이 돼야 돼.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은.
그러하니까 이러한 방향으로 여러분들이 나가야 돼. 이러한 방향이 아니면 안 돼. 우리가 상식적으로 뭘 안다 이리 하는 것은 말이지 그건 하나의 지식밖에는 안 되는 것이거든. 지식은 어디까지라도 지식이지 견문각지이지 도는 아니거든. 도와 견문각지와는 문제가 달라. 그러기 때문에 가장 여기서 중요하게 하는 것은 행을 제일 먼저 보는 거예요. 또 행을 그리 할 줄 알면 벌써 달라. 눈동자가 다르고 태도가 달라. 그러하니까 어떤 분이 선생의 멱살을 잡고 말이지 인가할래, 안 할래? 막 부회(화)가 나서 인가할래, 안 할래? 칼로 죽인다 하니, 시퍼런 칼이 여기 있는데 인가 안 돼 안 돼. 하하하. 나는 그 용기, 그 용기에 굉장히 찬탄해요. 한데 어딘가 모순이 있었어. 어딘가 모순이 있었어. 그건 우리 한국에서 그런 사실이 있다는 말을 들었어. 칼을 들고 인가 할래 안 할래. 하하하.
그러니까 오늘 저녁에 얘기 하는 것은. 그만 순전 묵연한 것. 그 마음 가짐새가 묵연해야 돼. 어떤 하나의 문제가 나온다 할 것 같으면 그대로 그것이 돼 버려야 돼. 머리털 하나라도 거기에 끼면 안 돼. 머리털 하나라도 끼면 완전치 못해. 머리털 하나라도 낀 걸 갖다 그걸 인정을 했다 하면 그 사람 버려버리는 거라 말이지. 그 사람 버려버려. 이리 되는 거여. 이건 다른 문제와 달라. 다른 문제는 선심도 쓸 수 있어. 선심 쓴다 하면 그 사람 버려버리는 거여. 어떻게 돼? 참 이거 어려운 거여. 이거 지식놀이가 아니거든. 지식놀이가 아니라.
화두 가지는 법 아까 말했죠? 이거 내가 참고적으로 말하는데 절대로 이건 몇 천만 년 후가 되더라도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는 이래 나가야 되요. 절대로 이거 아니면은 안돼요. 이거 아니면 안 돼. 내 확실히 얘기해 둡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인간의 본래지란 말이여.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슬기. 인간의 본래지라는 것은 부처지견을 뜻한다 말이여. 실은 우리가 전부 부처지견이에요. 우리가 미해서 부처지견을 그대로 못 쓰고 중생지견을 쓰기 때문에 그렇지 실은 다 가지고 있어요. 다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가리어져 그렇지. 중간에서. 우리가 부처지견을 못 써서 그렇지 어느 사람 부처지견 안 가진 사람 어디 있나요?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의 슬기는 어떤 거냐.
[강송] 태허가 무궁 무진 무변하니 인간의 본래지도 이렇듯이 무궁무진 무변한 것이지만은 아깝게도 현 시점에서는 (p263:17~18)
자, 이거 우리가 한 가지. 만약 부처님의 지견만이 무궁 무진 무변하고 우리의 지견은 무궁 무진 무변하지 못하다면 법은 두 나(개)입니다. 꼭 같아요. 꼭 같은데 왜 그럼 무궁 무진 무변이란 이런 말을 썼느냐. 허공이 가이 있나요? 허공이 무궁하고 허공이 무변하기 때문에 우리의 슬기도 무궁무변 무진하다고 이리 쓰는 거예요. 이건 절대 과학적이에요. 만약 허공이 한계가 있다면 우리의 슬기도 한계가 있어야 돼요. 그리해야 그것이 옳아. 그러나 허공이 한계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슬기도 한계가 없는 것이거든요. 이건 여러분들 알아듣겠죠? 그러하니 아깝게도 현 시점에서 우리가 그렇게 안 돼. 왜 그러느냐. 우리는 중생지견을 같이 써. 우리는 뭣인가 있는 성 싶어. 뭣인가 있어야 섭섭하지 안 해. 자기 자신도 모르면서 자기 자신이 어떤 중생지견으로서 희구하는 것이 있어. 정작 설명하려고 해도 안 돼. 뭣인가 있어. 이 놈이 가려 있거든. 그 놈을 탁 내버릴 줄 모른단 말이여. 여러분 중에 있어요. 알고 있어요. 오늘 내가 이름은 말 안 하겠어요. 우리가 같이 공부하는 도반끼리 이름을 말해도 좋아. 좋지만은 지금 현 시점에서 뭣인가 가지고 있는 분들 방하착해야 되요. 앞으로는 이 말 안 해요. 오늘 이거 내가 이 자리에서 언명합니다. 뭣인가 가지고 있거든. 수미산 같은 보배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이건 방하착해야 되요. 이 자리에서. 이것을 방하착 못하면 말이지 벌써 안 돼. 알아도 안 돼. 이런 줄 아세요. 그러니까 아닌 게 아니라 우리의 중생계로 봐서는 말이지 일천만 개의 기계를 만들어서 달나라까지 갔다 온 것밖에는 안 돼. 그러나 이 달나라까지 갔다 온 이것도 중생의 분으로 봐서 굉장한 사실이에요. 참 굉장한 사실이에요. 더욱이 과학도 모르는 우리로 봐서는 이거 어마어마한 사실이거든요.
[강송] 천만 개의 기계에 의존하여서 달세계까지의 탐색이 고작이다. 물론 중생계의 분으로는 영웅적인 단행으로 위대한 그 업적임에는 틀림이 없으며 인류 사상 최초의 일대 성사일 뿐 아니라 또 앞으로의 우주 계발에도 크게 약속이 되는 일대 장관사이다. 그러나 부처지견인 본래지의 분으로는 냉정히 비판하여서 구우의 일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왜 그러냐면 인간의 본래지인 그 자체가 그대로 밝히어진다면은 필요에 따라서 다른 천체에의 내왕은 물론이요 뜻에 맡겨서 그 자리까지라도 자재로이 이리저리 옮겨 놓을 수도 있을 것은 숨김없는 사실이어야 할 것이다. 이것만으로 자랑을 삼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자랑할 수도 없는 것이다. 무궁 무진 무변한 전성체니 무궁무진 무변한 본래지가 그대로 뛰쳐나와야 되지 않겠는가. 실로 일체만법은 나의 영특스런 앎인 여래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사실임을 알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p263:18~264:7)
지금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전부 해서 일천만 개의 기계까지 연구를 해서 달나라까지 갔다 왔다고 이리 되어 있는데 사실 그거 분명한 사실이에요. 좌우간 어떻든지 달나라까지 갔다 온 것이 우리가 입에 들어가는 밥이 안 되고 약이 안 되고 그래서 비방할는지도 몰라. 하겠지만 그러나 하나 큰 의의가 있는 것은 사람의 슬기로써 달나라까지 갔다 올 수 있는 이런 슬기가 실현이 될 수 있다는 이런 걸 안다는 것은 대단히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불교 공부하는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그러니 일천만 개의 기계를 만든 것도 본래지의 일부 개발이에요. 일부 개발된 겁니다. 불교신문에서 왔길래 글을 써줬습니다... 일부 개발에 지나지 못한 겁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면 된다는 것이 우리가 달나라까지 갔다 올 수 있다는 것이 입증이 딱 됐다는 거죠. 그러니 공부하면 되겠다 하는 이런 자신이 생기고 그러나 이건 일부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거든요.
좌우간 우리는 달나라까지 한계를 둔다든지 화성까지 한계를 둔다든지 절대로 한계를 둬선 안 됩니다. 어디까지라도 허공 이건 한계가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허공이 가도 가도 끝이 없기 때문에 우리도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슬기가 있다고 이리 생각해야 됩니다. 또 그것이 사실이고. 왜 그러느냐. 슬기에 어떤 모습이 있던가요? 모습이 없거든요. 모습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허공도 모습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우리의 슬기도 그렇다고 단정을 할 수밖에 도리가 없는 거예요. 우리가 이 슬기를 개발하는 도중이겠지만은 그러니 이 슬기 자리, 이것이 바로 여래장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슬기를 나는 알았다. 알았다 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또 몰랐다. 이래도 한계가 있어. 그러기 때문에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른 것도 아니라고 해야 말이 딱 되는 거여. 왜 그러느냐. 허공이 가도 가도 끝이 없잖아? 가도 가도 끝없는 걸 알았어. 그러나 그거 모르는 거나 한가지라. 그러니까 아는 것이 없는 거여. 우리의 슬기는 지금 아는 것이 없어야 돼. 또 아는 것이 없는 반면에 모른 것도 없어야 돼.
우리 한국말에 이런 말이 있어요. 저 사람 참 아는 것도 없고 모른 것도 없다. 그거 참 좋은 말이여. 그러나 우리 중생계에서는 남을 욕하는 말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실은 그것 참 철학적인 언사여. 아는 것도 없고 모른 것도 없단 말이여. 실은 우리는 이 슬기를 가져야 돼. 이 슬기를 가져야 되는데 이 슬기를 가지기가 좀 어렵죠? 실에 있어서는. 그러하기 때문에 슬기란 이것마저도 우리는 놓아버려야 돼. 참 어떻든지 여러분의 마음속에 머리털 하나라도 좋다는 것도 놓아버려야 돼. 나쁘다는 것도 놓아버려야 돼. 밝다는 것도 놓아버려야 돼. 어둡다는 것도 놓아버려야 돼. 뭣이라도 하나가 걸려 놓으면 안 돼. 이걸 놓아 버려야 나중에 밝은 걸 나투든지 어두운 걸 나투든지 좋은 걸 나투든지 나쁜 걸 나투든지 미운 걸 나투든지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아니라요?
사실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 자체가 그렇고. 허공이 어디 모습이 있던가요? 진짜 허공성이란 비암비명 아니라요? 어두운 것도 아니고 밝은 것도 아닌 그걸 갖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이거든요. 비암비명이기 때문에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한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어떻든지 일체만법을 다 놓는 데 있어야 되요. 하기 때문에 일천만 개의 기계를 만든 것도 고작 해 봐야 그것밖에 안되겠지만 말이지 그거 다 여래의 슬기에서 나온 것이고 우리의 본래지에서 나온 것인데 그러기 때문에 이 슬기는 한도가 없는 거여. 허공이 끝이 있어야 슬기가 한도가 있죠. 그러니 그런 줄 아시고
[강송] 이렇듯이 불가사의한 해탈법에 머무는 보살이라면은 (p264:8)
여러분들이 이러한 마음의 씀씀이를 가진다면은 이 말입니다. 보살, 하면 다른 보살이 따로 있고, 우리는... 물론 우리가 중생은 중생이여. 하지만 중생이 보살이 되고 보살이 중생이 될 수가 있어. 부처가 미하면 중생이 되는 것 아니라요? 중생이 깨치면 부처가 되는 것 아니라요? 좌우간 이것이 전부 다 마음 씀씀이 하나의 가짐새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그대로 슬기 자리에 들어앉느냐 못 들어앉느냐 여기 달린 것이라요. 그러하기 때문에 어느 사람이 보살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강송] 모든 법을 굴리는 데 있어서 걸림이란 없기 때문에 능히 신통으로서 불신을 짓고 혹은 벽지불신 성문신 범천왕신 제석신 전륜성왕신도 나툰다.
(p264:8~10)
이거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어떤 정한 법이 없어. 본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기 때문에 신통으로서 부처신도 만들고 벽지불신 몸도 나투고 성문신도 나투죠 연각신도 나투죠 제석신도 나투죠 전륜성왕신도 나투죠 중생신도 나투는 거예요. 축생신도 나투는 거예요. 중생 축생 하면 업연에서 이루어진 것이겠지만. 이거 중요한 말이에요. 뭣인가 마음속에 하나 있어. 머리털만큼이라도 뭣인가 하나 있어. 또 있어야 섭섭하지 안 해. 이러하면 이거 한계가 딱 있는 거라. 부처 몸은 못 나투거든. 나툴 수가 없거든. 우리는 부처 몸도 나툴 수 있고 제석 몸도 나툴 수 있고 벽지불이든지 성문이든지 전륜성왕신이든지 뭐든 나툴 수 있어야 돼. 그러니까 딱 깨놓고 그 자리, 그 소소영영한 자리에 우리가 떡... 자리가 아니라. 인자 자리란 말도 이젠 뺍시다. 그만 소소영영해 버리면은 경우에 따라서 인연에 따라서 부처신도 나퉈. 그 때는 환신을 나투는 거라. 벽지불신도 나퉈. 뭐든지 다 나툴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참말로 그래 되기가 좀 어려워요. 그러니까 우선 다 안 되더라도 해 나갈 때는 어떻게 해 나가야 되겠느냐. 천상 일체 경계에 머물지 않아야 돼. 자기 몸뚱이에도 머물지 않고 전부 방하착해 버려야 돼. 이럼 차차차차 이리 들어갈 수가 있는 거예요.
[강송] 뿐이냐. 더욱이나 시방세계에 있는 중생의 크고 작은 소리를 다 변화시켜서 (p264:10~11)
이거 한 몸이기 때문에 이러할 수가 있어요. 슬기가 최고로 발달되면 이리 할 수가 있어요. 발달이 아니라 본래의 슬기를 우리가 쓴다면 이리 될 수가 있거든요.
[강송] 크고 작은 소리를 다 변화시켜서
소리란 것이 딴 것 있나요? 지가 다 만들어내는 것인데, 그 소리를 다 변화시켜서 부처님의 소리로 만든다 그 말이에요. 부처님의 목소리를 무상고공, 떳떳하지 않음과 괴로움과 빔과 내가 없는 것, 무아.
[강송] 무상, 고, 공, 무아의 소식과 부처님이 설하시는 바의 가지가지 법을 널리 얻어듣게 함이니 이는 다 모든 시방 세계로 하여금 노리개거리로 삼음을 밝히심이라 하겠다. (p264:11~13)
법공 자리에 앉으면 이 까짓 거, 무상이니 공이니 고니 무아니 이거 다 그대로 해결 돼. 법공 자리에 앉아버리면은. 이것이 다 뭣이냐. 우리 슬기의 노리개에 지나지 못하는 거예요. 우리 슬기. 별 거 아니에요. 우리가 분별상을 가져서 니는 니다 나는 나다 하면 이거 또 문제가 달라. 문제가 달라요. 하지만 본바탕에 있어서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본바탕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부처님 바탕이나 우리의 바탕이나 꼭 한 가지거든요. 왜 그러느냐. 모습이 없기 때문에 꼭 한 가지 아니라요? 그러니까 그렇게만 해서 이 모습만 완전히 놓아버릴 수 있다면은 전부 우리 슬기, 그대로 모습을 둬도 그 슬기놀음에 지나지 못하다 이렇게 알 수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삼라만상이 전부 우리의 슬기놀음이나 한가지에요. 슬기놀음, 지혜놀이.
[강송] 참으로 드높은 고개다. 이 고개를 뛰어넘을 자 뉘리요?
(p264:13~14)
그런데 이거 알고 보면 그리 쉽지도 않지만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거든요.
[강송] 이 고개를 뛰어넘을 자 뉘요? 오직 무심 무연. (p264:14)
마음도 없어. 마음 없다 해서 마음 없다는 걸 말한 것이 아니에요. 정념을 말하는 거예요. 바를 정자, 생각 념자. 없을 무자, 마음 심자. 이거 마음 없애 버리는 것 아니에요. 이거 까딱 오해하면 큰일 나요. 정념, 정심, 바른 마음을 가지는 거예요. 직심, 이걸 가지는 거예요. 무심 무념, 인연에 끄달리지 않는 것, 부처님은 인연에 안 끄달려요. 중생들은 인연에 끄달리죠. 그러니까 우리가 모습놀이를 안 하면은 무연이 되요. 무연 도인이 되는 거예요. 왜 그러냐. 이 모습이란 건 전부 인연으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무연탄을 넣었기 때문에 이 난로가 따시지 않아요? 그거 인연 아니라요? 그러나 모습을 딱 여의어 버리면은 법공 자리에, 법이 빈 자리에 앉아 버리면 인연이 들어붙을 자리가 없어. 인연이 어떻게 들어붙어.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전부 모습을 인정해. 무엇인가 하나를 인정해. 이리해 놓으면 백귀가 난무라. 백 가지 허깨비가 막 날뛰어. 그러나 완전히 자기 마음 씀씀이, 모습을 놓아버리면은 그땐 어찌 해볼 도리가 없어. 인연이 있기로니 어떻게 할 거여? 이거나 한 가지여. 그러기 때문에 무심, 무연. 마음도 없고, 이건 정념을 말하는 거여. 정심.
[강송] 무심 무연으로 달리는 발가숭이가 아니면은 어찌 이 삼계를 노리개 거리로 삼을까 보냐. (p264:14~15)
여러분, 우리가 이 삼계, 욕계 색계 무색계뿐만 아니라 장엄불토니 뭣이니 이걸 노리개 거리로 삼을라 하면은 어찌 해야 되죠? 우리가 거기 들어앉아 버리면은 그만 거기의 지배를 받아. 지배를 받아. 내다, 내 모습이다. 내란 것이 있다. 삼계가 있다. 욕계 색계 무색계가 있다. 장엄불토가 있다. 그만 거기 속해 버려. 거기 일부가 돼. 노리개 거리가 내가 돼 버려. 하지만 완전히 모습을 여의어 버리면 말이지 벌써 그거 전부 내 노리개감 아니라요? 모습으로서 나툰 것. 이리 되거든요. 그러하기 때문에 모든 걸 완전히 놓으란 것이 그거예요. 완전히 놓아 버려야 되요. 완전히. 완전히 놓으라고 해서 당장 이 몸뚱어리 죽여버리라는 이 말 아니에요. 지구를... 이 말도 아니에요. 그대로 굴리면서도 나라는 걸 놓고 무아인 나의 입장에 서라 그 말이에요. 완전히 무아인 입장에 선다면은 심 의 식, 마음과 뜻과 알이 세 개를 다 놓아 버린단 말이죠. 이래도 성품은 안 놓아지거든. 인연이 있기로니 인연이 날 어떻게 할 거여. 솔직한 말로. 천당이 있으니 천당이 나를 어떻게 할 거여. 욕계가 있으니 욕계가 날 어쩔 거여. 다만 내가 굴릴 따름이지. 그리해야 발가숭이가 되야 되지 발가숭이가 아니면은 어찌 이 삼계를 노리개 거리로 삼을까 보냐 이 말이 그 말이에요.
[강송] 뭉쳐 말하자면 보살의 신통이 이와 같을 따름이어니와 만약 널리 말을 함일진댄 가히 궁겁을 다 하여서 마침을 보지 못할 것으로 알아두자.
(p264:15~17)
좌우간 어떻든지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이 모습 모습해서 수십 번 듣고 해서... 완전히 모습을 여의었다 합시다. 그런데 그거 잘 안 되지. 왜 안 되느냐 하면 우선 나를 여읠 수가 없어. 배고프면 배고픈 줄 알아야 돼. 그거 어찌 내가 여의느냐. 배고픈 줄 알아도 그 당처가 공한 줄 알면은 되는 거예요. 내가 몸이 아프단 말이지. 나는 여기 있으니까 내 육신 이건 말이지 고통 받을 필요가 없다 이래하겠지만 말이지 그런 것 아니거든. 육신이 있으면 고통을 받아요. 허나 고통 받는 그 당처가 공한 자리다. 빈 자리다. 이렇게 늘 그런 생각을 가져 보면, 그러기 때문에 이 몸을 여읠 뿐이지 몸을 버리란 말은 아니거든요. 여기에 들어앉지 말라는 것이지 이걸 버리라는 것은 아니거든요.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말이지 전부 공이다. 사실 또 허공이 공이니까 공 아닐 수가 없어. 솔직한 말로 공 아닐 수가 없어. 다시 말하자 할 테면 허공은 나를 여의지 아니하고 나는 허공을 여의지 아니했다. 그러니까 허공이 지금 나이고 내가 즉 허공 아니가? 이렇게 할 수도 있다 말이죠. 이론상으로 봐서. 실은 말이죠. 허공이 있고 내가 있다면은 이거 법 두 나(개)예요. 자연히 허공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나도 이런 말 했는데, 허공과 내가 둘 아니거든요. 허공과 내가 둘 아니란 이걸 철저히 알아버리면은 알 때 비로소 이 몸 여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철저히 이걸 알아버리면은 어떤 인연이라도 속박 안 됩니다. 어떠한 인연이라도 속박되는 것 아니에요. 나중에 가서는 이 몸을 나투는데 있어서도 굉장한 몸을 나투게 되는 거죠. 이미 이건 받아놨으니까... 굉장한 몸을 나투게 되는 겁니다. 왜 그러냐면 물거품이 있는데 물거품을 나투었다 해서 그 물이 물 아닌 것은 아니거든.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 나투었어요. 나투어도 바로 이 놈이 허공이에요. 바로 이 허공이나 한 가지에요. 그런데 이거 납득이 안 가. 그런데 이것이 납득이 안 갈 때는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 이거 움직이는 것도 하나의 예가 되지만은 말이지 이거 부서져. 이거 죽비 같으면 이거 부서지기도 하거든. 허공성이기 때문에 부서지는 거예요. 허공성 아니면 이거 부서지지 않아요. 허공성이기 때문에 우리가 몸을 이리도 하고 이리도 하고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처음에 듣는 사람은 참 이것이 인식이 안 가지.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지.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이지. 허공성이기 때문에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이래도 하고 저래도 하고 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모든 걸 방하하는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그러면 방하만 하겠느냐 아니거든요. 우리는 슬기를 하나 가져야 돼. 그래서 화두를 가지는 이유가 거기 있어요. 화두를 깨쳤단 말이지 또 화두를 깨쳤단 말이지. 그 다음엔 나를 가져. 무아인 나, 무아인 나를 항상 잊어버리지 안 해. 잊어버리지 않으면은 뭘 가지고 있어. 가지고 있는데 이 놈이 형체가 없네. 아무 형체가 없어. 그러면 좀 섭섭할런지도 모르지. 맨날 육체 이 놈, 육신 이 놈에 끄달리던 마음이 있으니 할런지 모르지만 나중에 여러분들이 죽 하게 나가서 습관이 딱 돼 놓으면 도리어 이 모습 있는 것 귀찮습니다. 모습 있는 것 그렇게 반갑지 않아. 미운 것도 아니라.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는 이것이 그대로 좋아.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손을 이래도 하고 저래도 할 수 있는 것이거든. 여기 뭐 있으면 손 이리 못하거든요.
그와 마찬가지로 마음대로 나툴 수가 있는 것이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완전한 이것만 가지고 있으면 말이죠 이번에 부처 몸 나투어 볼까 그대로 나투어. 이번엔 벽지불 몸 나투어 볼까 그대로 나투어. 이번엔 전륜왕 몸 나투어 볼까. 그대로 나투어. 심지어 이번엔 말 몸을 나투어 볼까. 말 몸 나투어요. 개 몸 나투어 볼까. 개 몸 나투어요. 그리 되면 개 몸 나투어도 개 몸 나툰 것 않은 것 아니라? 그러나 나투긴 나투었지. 이리 되는 거라. 그러나 뭣이 걸리면 그리 안 돼. 완전히 여러분이 놓아버리면 마음대로 하는 거여. 그때는 여김 하나로써 이리도 되고 저리도 되는 거여. 그러나 거기 머리털만이라도 뭣인가 하나 걸려 놓으면 이건 안 돼. 머리털 하나가 전 누리에요. 누리. 말이 머리털 하나이지 그 머리털 하나라도 있다 할 테면 말이지 그만 이것이 천지가 그만 머리털 하나에 칭칭 감겨 버려. 그 슬기가 그만 감겨 버려. 그래서 자유대로 이걸 못 가지는 것이에요. 실에 있어서는.
그러니까 좌우간 말이지 니가 화두를 가지기 위해서는 말이지 니가 화두란 말이지. 산하대지가 만법귀일하니 그대로 일귀하처란 말이여. 니 몸뚱이가 만법귀일하니 일귀하처란 말이여. 실로 그래요. 이거는 화두를 깨뜨리는 것만 그러는 것이 아니에요. 다른 것도 그래요. 우리가 부처도를 배우는데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자비를 행해야 된다 말이지. 자비를 행해야 될 것 같으면 그대로 자비라야 돼. 거기에 머리털만치의 분별이 있어서는 안 돼. 자비라 한다고 내 몸뚱이를 내버리는 것 아니여. 내 몸뚱이를 남을 준다고 하는 이것이 아니에요. 근본의 자비스러운 그거, 본래 의식도 않으면서 내 몸을 아끼는 그런 마음, 의식도 않으면서. 세상 사람들 그래요.
황 군, 니 딸 있지? 딸 사랑스럽지? 실은 전부 그것이거든. 딸의 모습이 사랑스럽지 딸의 진짜 법신 자리가 사랑스러운 것은 아니거든. 무럭무럭 자라나. 참 좋아. 생명을 떼 줘도 괜찮아. 아버지라 해쌓고. 그거 뭣이여? 그거 모습이거든. 모습에는 성품이 없어. 이렇게 우리가 습관을 들여 나가세요. 그러기 때문에 도인이나 부처쯤은 그거 아니거든. 모습을 사랑하는 건 아니여. 모습을 사랑했자 그걸 몰라. 어떻게 아는고? 그 놈이. 그걸 알 턱이 있는가? 모습이라는 건 성품이 없는데. 이거 오줌을 누고 똥을 누는데 말이지 실은 법신은 내하고 똑 같은 건데 말이지 아빠 할 줄 알고 엄마 할 줄 알고, 법신이 어린 육신을 통해서 기관이 발달 안 된 이 육신을 통해서 이리한다. 그리 나가는 거여. 이러면 그만 그 모습, 아, 내 딸이 귀하다 내 아들이 귀하다 이것만 생각하는 사람과 도인의 입장에서 이 법신이 말이지 법신이 이 색신 이 기관을 이용해서 이렇게 한다 저렇게 한다는 건 문제가 다르지 않아요? 크게 문제가 다른 거여. 이거 여러분이 경험을 해 봐요. 경험을 해 봐야 알지 말만 해서는 곧이 못 들어요.
하 사장 딸래미, 하 사장이나 부인 말이지 딸 굉장히 사랑하는 모양이라. 애가 총명하더구만. 사랑하는 모양이라. 그래서 하 사장 부인이 오늘 오시니 이 말 하는데. 서울에 한 달에 한 번씩은 올라가는 모양이라. 딸이 보고 싶어서. 뭣고? 가죽주머니 보고 싶은 것 아니라? 물론 공부하니까 좀 다르겠지? 다르긴 다를 거여. 솔직히 딱 깨 놓고, 그거 가죽주머니 보러 가는 것 아니라? 가죽주머니 변하는 것 아니라? 그러나 가죽주머니를 통해서 말을 하고 눈을 이리 돌리고 저래 돌리고 방긋방긋 웃고 하는 이 놈은 뭣이냐 할 것 같으면 법신 자리거든. 법신이 가죽주머니를 통해서 이것도 움직이고 저것도 움직이고 이래 쌓거든. 도인은 그걸 알아. 그것도 인연에 의해서 가죽주머니가 왔단 말이지. 그래서 이제 좋긴 꼭 같이 좋지. 그러나 그 이치가 다르다는 것이 그거여. 자비가 거기서 나와.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전부 쏠려 버려. 그만 내 자식이 좋아. 내 손주가 좋아. 이것 참 이쁘다 해서 그만 귀엽다 해서 쏠려. 그 가죽주머니에 쏠려. 가죽주머니는 아무 성품도 없는 건데. 자,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그러하기 때문에 모든 걸 놓으란 말이여. 모든 걸 놓아야 된다는 이유가 여기 있어. 왜 그러느냐. 우리의 본래의 법신 자리가 아무 머리털 하나가 없는 자리라. 그러하면서 그 자리에 앉아서 가죽주머니를 나투어서 굴린다는 이유가 그것이거든요. 다시 말한다면 그거에요. 될 수 있는 대로 여러분은 그렇게 한 번 해 보세요. 만일 자비면 자비라든지 무아면 무아라든지 법공이면 법공이라든지 아무 것이라도 좋아요. 이거 하나만 해결하면 그대로 돼 버리는 거예요. 다른 것 그대로 돼. 그만 그대로 한 번 앉아 봐요. 그대로 한 번 행해 봐요. 법공이면 법이 공하다, 빈 자리다. 내가 비었다. 내가 법신 자리에 앉아야 되겠다. 사실 법신과 색신이 둘 아니에요. 둘 아닌데 그러나 얘기할 때는 천상 둘로써 이리 말해야 되는데 그래서 그만 무아인 경지에 턱 앉아서 모습놀이를 한 번 해 봐요. 해 보면서 또 어떤 사고방식도 해 본다면은 말이지 당연히 부처문중에 들어가. 그렇지 않고 언제든지 이걸 버릴 것 버리지 못한다 하면 말이지 도저히 이건 만 년 공부를 했자 지식은 늘어. 지식은 늘어도 이런 결과는 못 가져오는 거예요. 그러니 모습을 놓는 데 가장 중요한 그것이 있습니다.
그러면은 오늘 비로소 이것이 떨어졌어요. 지금까지 설법, 닷새인가 엿새인가 이리 됐어요. 닷새인가 엿새 됐는데 여러분이 납득 안 가리라 이리 생각하는데 다른 거 하고 불이법문에 넘어가면 금방 납득이 갑니다. 지금은 납득이 안 가더라도 저절로 납득이 가게 됩니다. 납득 가게 되니까 그런 줄 아시고 이제 넘어가도록 이리 합시다. 시간이 어떻게 됐노? 오분 남았어? 원문 읽어놓고 내일 합시다.
[강송] 이때 큰 가섭이 보살의 불가사의 해탈법문을 설하심을 듣고 일찍 없었음이라 찬탄하며 사리불에게 이르시되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소경 앞에서 뭇 빛깔의 형상을 나투어도 저는 보이지 않는 듯이 일체 성문이 이 불가사의 해탈 법문을 듣고 능히 알지 못함도
이거 봐. 가섭 존자 말이여. 성문이라면 성현 지위라요. 우리 속세에서 말하자면 성현 지위인데 성현들도 이 법문을 잘 못 알아들어요. 성인들도. 이 말이에요.
[강송] 불가사의 해탈 법문을 듣고 능히 알지 못함도 이와 같음인지라 슬기로운 이가 이를 듣고 그 뉘라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지 않으리오? 우리들은 어찌 하야 길이 그 뿌리를 끊어서 이 대승법에 썩은 종자가 되었는고?
이건 가섭 존자가 한탄하는 장면입니다.
[강송] 일체 성문이 이 불가사의의 해탈 법문을 들으면 다 울부짖어 우는 소리는 삼천 대천 세계를 진동할 것이요 일체보살은 응당 크게 기뻐하여 이 법을 받자오리니 만약 어떠한 보살이 불가사의 해탈법문을 믿고 아는 자라면 일체 마귀들도 어쩌지 못하리라 하시더라. 큰 가섭이 이 이야기를 말씀하실 때에 삼만 이천 천자가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다. (p265:6~17)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여러분도 아는 거예요. 아는 것 한 번 얘기해 봅시다. 무상 정등 정각인데 깨달은 자리라. 위없고 평등한 거여. 절대성 자리를 말하는 거여. 정각이라. 바로 깨달은 것을 말하는 거여. 그럼 뭣을 바로 깨닫는다 하죠? 우리의 슬기 바로 그거라요. 그러니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얘기를 해도 몇 십 년 몇 천 해도 안 된다고 이리 되어 있어요. 구 겁을 다해도 이건 안 된다고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그건 부처님들 말씀이고 우리 무식한 우리끼리 얘기 해보자 말이죠. 무상정등정각, 위없는 바른 평등한 절대성 자리, 또 정각 자리 이것이거든요. 이걸 구하려고 우리가 그렇게 애를 쓰는 거예요. 그럼 이 자리가 뭣이냐. 우리 무식쟁이로서, 우리 중생들끼리 한 번 논의해 보자 말이여. 다른 거 아무 것도 없어요. 허공을 내 몸으로 삼으면 돼요. 왜 그러느냐. 허공은 가짜라는 거 늘 말하죠? 허공이라는 것도 이름자, 이 허공이 어디 있나요? 없잖아? 없어.
“...”
없어. 하하하. 그러니 실은 우리가 무슨 관념적으로서 개념적으로서 허공을 내 몸으로 삼는다는 것이 아니여. 실은 허공이 내 몸이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