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제3공화국이 시작되던 1980년 일이다. 현재 세계 지도자 중 최고 고령인 당시 말레시아 수상 ‘마하티르’는 ‘LOOK EAST’ 정책으로 한국이나 일본을 따라가기가 한창 때 일이다. ‘사바’주 지방정부는 원주민의 기술습득과 소득증대 사업의 일환으로 운동화 공장을 짓기로 한다. 근무하던 회사에서 신발관련 기계와 설비가 선적되고 기술이전 계약으로 총 아홉 명이 2년을 근무하고 철수했다.
옛날 있었던 일들이 오늘에 종종 글감이 된다. 지금은 청청지역으로 잘 알려진 ‘코타키나발루’ 외곽에 지어진 운동화 공장이다. 왕복 항공권 포함 일 년에 두 번 휴가와 당시 화폐 단위로는 큰 액수 수당에 해외 근무를 자청했다.
한국 현대사에 해외취업은 서독 광부 파견과 베트남 전쟁이 처음이다. 석유파동이후 중동건설 특수가 이어진다. 종합 무역상사가 발족되어 해외에 수주를 하려 무역쟁이들이 돌아다니던 때이다. 여행 자유화 훨씬 이전이고 여권 발급을 위해 반공연맹에 가서 교육을 받았던 삼엄한 때다.
자유를 원했던 나에게는 딱 이었다. 그 곳은 눈치와 자기 능력을 과시 할 일이 별로 없다. 현지인과 기술관련 회의 몇 차례와 현장 지도하는 한국직원과 본사 업무연락 이 전부이다. 일찍 끝난 오후에는 테니스 구장으로, 토요일은 4륜 구동차를 타고 밀림으로 쏘다녔다. 일요일은 어김없이 탁 트인 바닷가 나무 밑에서 캔 맥주를 홀짝거리며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구글 지도에 당시 다녔던 장소를 검색을 한다. ‘스트리트 뷰’ 3D로 다운타운을 돌아다니면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자주 다녔던 식당 건물도 나오고, 낮이 익은 시가지 건물도 보인다. 그 세월 동안 많이 변한 모습이다. 근무 중에 아내가 애 둘과 같이 일주일 다녀간 적이 있었다. 그 때 찍었던 사진을 들추며 아내는 “아직 숙소는 그대로 있을까, 한번 가보고 싶다.” 2년 동안 살았던 숙소는 주소가 없어 구글 지도로 볼 수가 없다. 이 참에 옛날 숙소도 찾아보고, 40년 전 일들을 들추기 위해 아내와 같이 지난주에 다녀왔다.
당시 말레시아 항공이 일주일에 한 편 서울에서 쿠알라룸푸르 가면서 중간 기착지로 코타키나발루를 지나갔다. 요즘은 저가항공사 항공기가 서울, 부산, 대구 등에서 과거 항공료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매일 승객을 실어 나른다. 시골 간이역을 연상케 하던 공항은 탑승교가 여러 개 달린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외국인 입국 절차간소화로 입국카드도 작성도 생략한다. 업타운인 공항쪽으로 쏘핑몰이 새로 생기고 국립해상공원에 외국인이 많다. 옛날의 조그마한 도시가 활기가 대단하다. 많이 변했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발 마사지 간판이 보인다. 한 시간 서비스가 50링깃 한국 돈으로 만 오천 원이다. 한국은 최저임금이 시간당 만원인데, 우리나라에 비해서 인건비는 저렴하다. 그 보다도 택시비는 더 싸다. 3시간 대절에 150링깃, 한국 돈 4만5천 원이다. 휘발유는 리터당 2링깃, 우리돈 600원 산유국이다. 중국 휴대폰 ‘화웨이’ 브랜드 큰 간판은 보이는데 삼성 휴대폰은 보이질 않는다. 화교 상권이 이곳을 장악하는 느낌이다. 공산품은 거이 전부 수입에 의존해서 비싼 편이다. 그러나 음식 값이 비싼 것은 딱히 납득이 가질 않는다.
택시 기사에게 구글 지도를 보여준다. 기사 휴대폰 GPS에 주소검색하면 이동거리며 소요시간이 나온다. 구글 지도 덕분에 어디든 찾아간다. 숙소로 가는 길에 천주교 성당이 있었던 기억만으로는 찾아지질 않는다. 성당 이름도 주소가 없어 네비게이션이 먹통이다. 아나로그에 입력된 기억으로 간신히 찾아간다. 당시에 제법 큰 집이 그대로 거기에 있다. 이런 걸 추억의 여행이라고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