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대 미국 전쟁 이후 필리핀 제도에 주둔하기 시작한 미군들의 휴양지에서, 제 2차 세계 대전 직전 일본인들의 장지로, 일본 점령 시절에는 군대 집결지와 주둔지로, 또한 제 2차 대전 이후 공습으로 인한 폐허에서 미군 부대원들을 위한 아름답고 풍광 좋은 산악 휴양지로 되돌아 오기까지, 캠프 존 헤이의 역사는 80년 동안 다채롭고 때로는 비극적인 길을 걸어왔다.
1903년 6월, 필리핀 위원회는 바기오를 필리핀의 여름 수도로 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이후 같은 해에, 미 대통령 테오도르 루즈벨트는 바기오시 안에 535 에이커에 이르는 대지를 군사 목적으로 예비해 두었다. 이 지역이, 매킨리와 루즈벨트 대통령 정부 시절의 미국 장관 존 밀튼 헤이를 기념하기 위해 캠프 존 헤이로 명명되었다.
이 지역은 저지대에 근무하는 군대원들이 혹독한 열대 기후를 견디느라 소모된 체력을 회복하기 위한 휴양지로 사용되면서 최대 1,764 에이커까지 확장되었다. 이후 대지의 일부가 필리핀 정부로 반환되어 지금은 1,250 에이커 즉 695 헥타르를 아우르고 있다.
1906년 가을, 다섯 채의 장교용 숙소와 한 채의 병영 막사가 최초로 캠프 존 헤이에 세워졌고, 1906년 11월에 캠프 존 헤이는 방문객에게도 오픈 되었다. 이후 몇 년 동안은 자금 부족으로 인해 더 이상의 건물이 들어서지 못했다.
바기오시 당국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시의회가 설립되었을 때 캠프 존 헤이 사령관 M. R. 힐가드가 의원으로 위촉되었다.
이후, 캠프 존 헤이는 점유하고 있는 부지와 관련한 법률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결국1910년 10월 7일, 8년의 소송 끝에 미국의 대법원은 미군에게 부지의 양수를 목적으로150,000 페소를 지불하도록 판결했고 캠프 존 헤이는 공식적으로 미군에 이양되었다.
1911년, J. 프랭클린 벨 소장이 필리핀 사령관으로 선임되었다. 벨 사령관의 재임 기간 중, 기숙사 (현 메인 클럽)와 포장 도로, 군 피엑스, 병원(현 이고로트 숙소), 창고, 그리고 사령부 건물과 케논 로드의 캠프 6에 위치한 수력발전소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전쟁 전 건물들이 완성되었다.
벨 사령관은 또한 옥외 원형 극장을 직접 설계하여 건축하였다. 벨 사령관의 이름을 딴 이 아름다운 건축물과 가든은 지금도 바기오의 주요 관광 명소 중 하나로 손꼽힌다. 또한 이 시기에 그린이 모래로 설계된 18홀의 골프 코스가 바기오 컨트리 클럽과 클럽 존 헤이 합작으로 만들어진다.
캠프 존 헤이와 바기오는 1920년대에 이르기까지 공동으로 번영하여 전전 최고의 성장을 이룩하였다. 캠프 존 헤이에 위치한 세 개의 필리핀 정찰단은 추후 그들의 가족용 주거지인 스카우트 바기오를 건설하기에 이른다.
1940년, 전전 시절 마지막 주요 건물인 미 고위 정부 위원의 여름용 주거지가 완성되었고, 지금은 바기오 공식 미국 대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941년 초, 일본군이 인도네시아 쪽으로 세력을 확대함에 따라 필리핀 제도에도 긴장감이 확산되었다. 1941년 5월에는 필리핀 제도가 일본군의 침략 위험에 노출되었고, 필리핀 내의 모든 미국인들의 본국 소환이 결정되었다.
1941년 12월 8일, 오전 8시30분에서 9시 사이, 일본군 폭격기가 루손섬 중심부에 위치한 클락 공군 기지를 목표로 가는 도중 바기오 시내를 통과하였다. 그리하여, 필리핀 제도에서의 최초의 폭격이 밀리터리 서클 (캠프 존 헤이 정문)에서 시작되어 전쟁 최초의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한달 사이에, 필리핀은 일본군에 의하여 점령당하게 된다. 캠프 존 헤이는 미국과 영국 국적인 사람들의 집결장으로 탈바꿈하였다. 1942년 4월에는 일본군의 주둔지가 되어, 산악 지역에서 싸우고 있는 일본군 병사들을 위하여 중요한 수송지와 병기고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일본군은 강화 시멘트로 수많은 터널과 참호 그리고 무기고들을 지었다.
1945년 1월, 필리핀 내 일본 천황 군대의 사령관인 토모유키 야마시타 장군은 연합군의 공격을 예상하여 일본군 본부를 마닐라에서 바기오로 이전하였다. 처음에는 바기오 종합 병원에 본부를 설립하였으나, 뒤이어 연합군의 폭격을 피하고자 캠프 존 헤이로 본부를 옮기게 된다. 야마시타 장군은 그의 처소로 고위 정부 주거지(하이 커미셔너스 하우스)를 선택하였다.
1945년 4월 27일, 미 제 33사단은 바기오에 입성하여 바기오시와 마찬가지로 폐허가 되어버린 캠프 존 헤이까지 진군하였다. 폭격을 겨우 피했던 몇몇 건물들도 퇴각하는 일본군에 의해 대부분 불타 없어졌다.
아직 무너지지 않은 장교 본부 (메인 클럽) 역시 심하게 훼손되었다. 전쟁 중 폭격을 견뎌낸 시드너 홀 (군대 체육관) 역시 1990년 6월 16일 대지진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 단지 전전 시절의 병원 건물만이 언덕을 차지한 채 한때는 아름다운 골프 코스였던 채소 밭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장군 숙소 (제너널스 쿼터)와 벨 원형극장 또한 기적적으로 보존된 건축물들이다.
1945년 4월 29일, 시청 앞에서 공식적인 해방 의식이 거행되었고, 미국 국기와 필리핀 국기가 다시 한번 나란히 바이오 하늘에 나부끼게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이 선언되었고, 1945년 9월 3일 오후 12시 10분, 야마시타 장군 휘하의 전 일본군의 공식 항복이 캠프 존 헤이 하이 커미셔너스 하우스에서 거행되었다.
클락슨 장군 지휘 아래, 바기오는 산악지역에 숨어 있는 일본 잔병들을 상대로 한 전투 병력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적인 배후 기지로의 빠른 변화의 길을 걸었다. 같은 기간, 캠프 존 헤이 역시 프랭크 M. 스미스 대령의 지휘 아래 재건이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주요 시설들이 다시 지어졌고, 명성 높은 캠프 존 헤이 골프 코스도 1945년 11월 17일 다시 문을 열었다.
1945년 8월 23일, 서태평양 암드 포스 (AFWETPAC)에 의해 캠프 존 헤이의 미래를 결정짓는 일반 수칙이 다음과 같이 발행되었다.
“1945년 8월 24일을 기하여 필리핀 제도 벵겟 주 바기오시 캠프 존 헤이에 캠프 존 헤이 요양 센터를 설립한다.”
“이 요양 센터의 역할과 기능은 필리핀 제도의 루손 섬에 주둔한 모든 군대원들의 휴식과, 휴양 그리고 건강 회복을 위한 시설을 제공하는 데 있다.”
(1955-1990 )
1955년 11월 17일, 캠프 존 헤이는 캠프 존 헤이 공군 기지로 재구상 된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 부임하는 사령관들마다 이 북부 루손 지역에 있는 산속의 아름다운 휴양처를 개발하고 개선하였다. 쾌적한 숙소, 그리고 각종 회의 시설과 여가 시설이 마련되었고, 해마다 이 “산속의 파다라이스”에 수 천명의 미군들이 방문하게 되었다.
일반 병사부터 고위직 장교와 그들의 가족에 이르기까지 캠프 존 헤이를 방문하는 모든 계급의 취향을 고려하여 수많은 여가 시설과 클럽 활동과 야외 스포츠 시설이 완비되었다.
캠프 존 헤이의 골프장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독특하며 특별한 18홀 골프 코스 중 하나로서, 완벽하게 다듬어진 페어웨이와 세심한 그린이 프로 골퍼들과 초보자들까지 유혹하였다.
또한 등산로, 테니스 코트, 각종 남녀용 헬스 시설과 오디오와 비디오 시설이 갖춰진 깔끔한 도서관, 깨끗하고 따뜻한 수온의 수영장, 영화관, 모형 자동자 레이싱 트렉 및 다양한 레크리에이션 센터 등을 갖추어 비골퍼들의 여가와 휴식을 위한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요리 도구부터 은그릇까지 모든 가구가 완비된 통나무집과 아파트 그리고 듀플렉스 타입의 큰 숙소 등 방문객들을 위한 숙박시설도 마련되었다.
4개의 메인 클럽과 5개의 스낵 바를 포함한 외식 시설들이 곳곳에 산재하여 매일 아침 7시부터 자정까지 운영되었
다.
캠프 존 헤이는 또한 현대식 시청각 시스템과 편안한 시설을 완벽하게 갖춘 뛰어난 컨퍼런스 센터를 자랑했다. 캠프 내에 위치한 총 4개의 컨퍼런스 센터 중 가장 크고 시설이 잘 갖춰진 곳은 메인 클럽 컨퍼런스 센터였다.
30개 이상의 미 공군 부대와 550명 이상의 현지 고용인들을 포함한 민간인 직원들이 다음과 같은 캠프 존 헤이의 미션을 수행하고 있었다. “캠프 존 헤이를 방문하는 병사 및 민간인과 그의 가족들에게 최상의 휴식과 여가 시설을 제공하라.”
(1991-1996)
88동안의 미군과 국방부 소속 직원,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위한 휴양과 여가 기지로써의 역할을 마치고, 캠프 존 헤이는 1991년 7월 1일 미국 정부로부터 필리핀 정부에 공식적으로 반환되었다.
당시 필리핀 공화국 대통령 코라존 C. 아퀴노는 대통령령 346호를 통해 캠프 존 헤이 담당 적정 정부 기관을 구성하기 전까지 잠정적으로 관광국(DOT)을 지정하여 캠프와 관련 시설을 감시 보호하고 유지 보수케 하였다.
DOT 산하의 필리핀 관광 기관(PTA)은 이 과거의 미군 시설을 “AA” 리조트라 명명하였다.
DOT는 바기오 내의 사업체들과 6개월에서 최대 18개월까지의 기간 동안 캠프 존 헤이의 유지 보수와 운영을 위한 단기 계약을 체결하였다.
1993년 6월 30일, 피델 V. 라모스 대통령의 칙령 198호에 따라 캠프 존 헤이의 소유권과 운영권 등 제반 모든 권리가 법령 7227호에 의해 설립된 미군기지이전개발기관 (BCDA)에 넘어갔다. BCDA의 주요 역할은 모든 미군 기지의 상업적이며 생산적인 재개발이었다.
그 후 BCDA는 부속 기관인 존 헤이 포로 포인트 개발회사(JPDC)를 설립하여 관련 시설들의 관리와 운용 그리고 최적화된 용도로의 변경 등을 위탁하였다. “AA” 리조트로 명칭이 바뀐 존 헤이는 대중에게 개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