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려와 요나라의 전쟁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우리 나라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오늘은 역사에서 유래한 과만초(瓜蔓抄)라는 말을 떠올려보았습니다.
"과만초(瓜蔓抄)" 하니까 많이 들어 보지 않은 말처럼 느껴질 것이나 들어보면 아하 그게 그때 생긴 말이구나 할 것입니다.
중국 명나라 3대 황제인 성조 영락제는 황제가 될 때 조카인 혜종 건문제(朱允火+文)의 황위를 찬탈했어요. 혜종 건문제는 숙부 연왕(주체 朱木+미칠이)이 황궁으로 쳐들어 왔을 때 행방불명되었다고 전해 집니다. 황궁을 점령한 영락제가 조카 혜종을 급히 찾으니 환관이 불에 탄 시신 한구를 가져와 이것이 건문제의 시신이라 하였다 합니다. 그러나 실제 건문제 혜종의 시신인지는 모른다 전해지지요.
남경의 황궁을 점령한 영락제는 혜종의 신하로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던 유명한 학자인 제태, 황자징 등을 능지처참하였어요. 대학자 방효유도 죽임을 당하는데 방효유는 영락제에게 조카인 건문제는 어디 갔으며, 주문공은 조카를 잘 보필해 태평성세를 만들었는데, 반역의 사건인 정난의 역(靖難之役)에 대한 당위성의 조서를 쓰라하니 절대 쓸 수 없다며 대성통곡을 한 후 욕을 퍼붓다 했다 합니다. 끝까지 조서를 쓰지 않은 당대의 대학자 방효유와 그 가족, 제자인 문사들을 모조리 도륙을 했다 합니다. 참으로 엄청난 살육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또 병부상서였던 철현도 영락제를 등지고 서서 예를 표하지 않다가 일족 모두죽음을 당했다 합니다.
우리의 역사는 이렇게 참혹하게 많은 사람이 살육된 사실이 없는 것을 보면, 예가 있고, 정이 있고 자랑스런 역사라는 생각입니다.
주체 성조 영락제가 황위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잔악무도하게 건문제의 신하들과 방효유를 비롯한 유학자 그룹을 죽인 사건을 "과만초"라 했다 합니다. 과만초는 오이 '과'와 넝쿨 '만'을 말하며 이리 저리 얽혀 주변의 나무나 담장을 타고 올라가는 오이넝쿨을 제거한 것에 비유한 말이나 조카의 황위를 무력으로 찬탈한 정통성을 결여한 부도덕한 행위를 정당화하기에는 역부족한 말이라는 생각입니다.
정통성과 도덕성을 결여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한 일을 정당화하기에 열을 올리게 되지요.
어떤 일과 행위를 함에 있어 정당하고 의로운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며 즐겁고 행복한 날 되시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