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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이사야(114)/창조
제목 : 새 하늘과 새 땅 창조
성경 : 사 65:17~25
찬송 : 293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40605 낙양교회 수요예배
사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사 65:18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사 65:19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사 65: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사 65:21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사 65:22 그들이 건축한 데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심은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내가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며
사 65:23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사 65: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사 65: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종들이 누릴 새 예루살렘의 복이 본문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본문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회복하시는 것이 심판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예루살렘을 기쁨으로, 그 백성을 즐거움으로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이제 새 예루살렘에서는 죄악도 존재하지 않고 이로 인한 고통과 슬픔도 사라집니다. 새 예루살렘의 백성은 나무의 수한만큼 오래 살기에 더 이상 죽음으로 인해 기쁨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대대로 그들에게 복 주시며 그들을 선대하시기에 그들은 여호와를 부르기도 전에,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응답받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언약의 샬롬을 누리기에 더 이상 외적의 침략으로 애써 수고한 것을 빼앗기는 슬픔도 당하지 않고, 맹수로 인한 위협도 당하지 않습니다.
새집으로 이사 가기 전날 우리는 설렘으로 밤잠을 설칩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생각하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집은 하늘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 말씀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시는 새 세상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참으로 영광스럽고 복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세상을 창조하실 때 무에서 유를 만드셨습니다. 이 우주는 캄캄하고 혼돈했으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말씀 하나로 온 세상과 생물체들을 만드신 후 참 기뻐하시고 좋아하셨습니다. 땅에는 식물들이 자라고, 하늘에는 새들이 날아다니고, 땅 위에는 많은 인류의 짐승이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주장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뛰어난 머리로 인간들은 서로 죽이고 부수고 멸망시키기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욕망을 억제하게 하셔서 문화를 만들고 제도를 만들어 가치 있게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어느 시점이 되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셔서 옛날 세상은 기억도 나지 않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여기 ‘새 하늘과 새 땅’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어느 시점에 지금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는 이 하늘과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이 땅을 모두 새 것으로 바꾸시면 이 세상은 완전히 새 세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새만금 간척지를 보십시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환경으로 바꿔지고 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하늘까지 바꿀 수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산 같은 것들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도 새 땅으로 바꾸시고 하늘도 새 하늘로 바꾸신다면 이 세상은 그야말로 완전히 새로운 곳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단 한 곳은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둔다고 하십니다.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그곳은 너무나도 가치 있는 곳이어서 도저히 없앨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창조하신 것 중 가장 귀한 보물이라서 이곳만 영원히 남게 됩니다. 과거 옥정호 댐을 새로 건설할 때 수몰지구에 살던 사람들은 계화도나 다른 곳으로 이주를 시켰고 중요한 문화재나 무덤들은 다른 곳으로 옮겼던 것을 어렸을 때 보았습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더라도 예루살렘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공작이고 최고의 가치를 가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 65:18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사 65:19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18절은 ‘그러나’ 또는 ‘대신에’로 시작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에 대한 합당한 반응을 소개합니다.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라는 명령은 그들에게 약속하신 기쁨이 확실하다는 근거가 됩니다(13~14절; 61:10). 어떻게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했습니까? ‘영원히’ 이것은 그들의 기쁨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을 암시합니다. 기뻐하라는 명령의 근거는 다시 ‘내가 예루살렘을 기쁨으로, 그 백성을 즐거움으로 창조할 것이다’는 선언의 형태로 제시됩니다. ‘기쁨(카라)’과 ‘즐거움(마소스)’을 지칭하는 명사가 명령형의 동사와 같은 어근을 사용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합니다. 즉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에게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명령하시는 이유는 그가 친히 기쁨과 즐거움을 창조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여호와는 예루살렘을 ‘기뻐하시고’ ‘나의 백성’, 즉 여호와의 언약 백성을 즐거워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그가 친히 그들과의 언약 관계를 지키시겠다는 결단의 표현입니다. 여호와의 결단으로 생기는 변화는 예루살렘에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상황이 나타납니다(25:8; 35:10). 죄의 열매인 눈물과 부르짖음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여호와의 백성이 죄로 인해 고통 받지 않음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부수지 않고 남겨 두신 예루살렘이 현재 이스라엘에 있는 그 도시를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의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지는 믿음의 사람들과 믿음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 예루살렘을 건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예루살렘과 거기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보고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십니다. 이들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좋은 학교 나오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중심을 말씀으로 채우면 됩니다.
인간이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큰 사고가 터지면 장관도 별 수 없고 총장도 별 수 없고 심지어 대통령조차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 속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면 인생 전체가 보석이 되고, 우리의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이 영원히 복을 내려 주십니다. 다시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에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즉 마귀의 어떤 시험이나 재앙도 이들을 아프게 하지 못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어떻게 창조하실까요?
우선 지구를 포함하여 우주 전부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우주를 만드실 수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세계 중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영광의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래부터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시고 완전히 새로운 우주를 만드실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 새로운 나라로 우리 성도들을 데려가실 것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지구만 멸망시키고 우주에 있는 많은 별들 중에 하나를 택하셔서 새로운 세상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우리는 땅 문제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이 온 우주를 개발하셔서 우리에게 땅을 풍성히 주실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마지막 어느 시점에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없애고 새로운 우주를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전에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를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 65: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죽음의 문제가 언급되는 것은 아마도 죽음이 눈물과 부르짖음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기 때문 인듯합니다. ‘결코 다시는 없으리라’고 언급되는 죽음의 대상은 생후 며칠 만에 죽은 ‘젖먹이’와 자기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한 ‘노인’입니다.
사 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즉 젖먹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새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은 자기 수명을 다 채운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백세에 죽어도 젊은 나이에 죽었다고 여겨지고 그 이전에 죽으면 저주받는 자 취급을 받는다는 표현은 새 예루살렘에서 죽는 사람을 찾기 힘들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아름다운 집을 짓고 열매 맺는 사람을 살 것입니다.
사 65:21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사 65:22 그들이 건축한 데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심은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내가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며
새 예루살렘 백성이 누리는 복은 언약의 복과 저주의 언어를 사용해 표현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이 건축한 집에서 살고, 자신이 심은 포도나무의 열매를 먹게 되리라는 것입니다(62:8~9). 같은 내용을 부정적으로 표현한 22절은 언약의 저주가 사라진 상황을 의미합니다.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다’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홍수 이전의 인물들처럼 500~1000년을 산다는 의미일 수 있는데(창 5장), 이는 20절에서 언급한 백세에 죽은 자를 젊은이로 불린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합니다. 특히 이 문맥에서는 ‘그 손으로 일할 것을 같이 누리리라’는 표현의 의미를 뒷받침합니다. 즉, 나무의 수한만큼 오래 살기 때문에 자신이 이룬 것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충분히 누릴 것입니다.
사 65:23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그들이 ‘헛되이’ 수고하지 않겠다는 표현은 21~22절에 대한 요약으로 보입니다. 특히 고생스럽게 수고하는 상황이 산고로 예시됩니다. ‘그들이 재난을 위해 낳지 않으리라’는 말은 산고를 겪으면서 낳은 자녀가 재앙의 때에 태어나 목숨을 위협받지 않으리라는 말입니다. 새 예루살렘 백성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 이유는 바로 그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후손도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관계의 형성
사 65: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사 65: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새 예루살렘 백성이 누릴 중요한 복 중에 하나는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와의 관계 회복입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여호와는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습니다.
사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사 40: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사 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사 64: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여호와는 자기 백성의 기도에 응답하실 뿐 아니라 그들이 부르기 전에 응답하고, 즉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들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 30:19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사 41:17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사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사 55: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새 예루살렘 백성이 누리는 평강은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상함도 없으리라’는 선언에 함축됩니다. 이리와 양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습니다(11:6~9절). 백이 흙을 양식으로 먹는다는 언급은 유독 뱀만 타락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여호와의 통치로 인해 시온이 누리는 안전과 풍요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기에 죄인인 우리와 죄악 된 세상은 이제 십자가에서 소멸되고 우리는 새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 되었고 우리의 삶의 모습과 목적이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고후 5:17).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풍성한 삶을 보장받았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새 예루살렘에서 누릴 영원한 복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더 이상 죄악 된 세상을 따라 살아갈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면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님 오실 날을 사모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벧후 3: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