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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의 부하가 되어
애꾸눈 궁예는 황용을 금성 태수에 임명하고, 왕건은 부하 장수로 삼았습니다.
897년에는 진성 여왕이 반란군에 시달려 물러나고 효공왕이 즉위하였습니다. 바로 이 해에
왕융은 궁예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읍을 정하시고 나라의 기반을 닦으소서. 도읍지로는 송악이 아주 적합합니다. 성 쌓는 일을
저희 부자에게 맡겨 주시오면 좋겠습니다.'
궁예는 송악을 살펴보고는 도성 쌓는 일을 왕을 부자에게 맡겼습니다.
왕융은 왕건에게 일러 주었습니다.
"네 성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일을 맡아 하여라."
왕건은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 두고, 일꾼들을 지휘하여 1년만에 성을 튼튼히
쌓았습니다.
898년, 궁예는 송악에 도읍을 정하고 왕건을 정기 대감으로 임명했습니다.
왕건은 궁예에게 수군을 양성하게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궁예는 이제껏 육지에서만 싸웠으므로
수군이란 말에 귀가 번쩍 띄었습니다.
"그러하오면, 예성강으로 나아가서 한강 일대를 모조리 정벌하겠나이다."
“오, 그거 참 좋은 생각이다!"
궁예는 왕건에게 수군 양성을 허락했습니다. 왕건은 곧 군선을 만들게 하고, 수군을 모집하여
훈련을 시켰습니다. 몇 달 뒤에는 군선 수십 척을 예성강에 띄울 수가 있었습니다.
왕건은 군천을 이끌고 공암헌(김포군 양촌면)으로 쳐들어갔습니다. 궁합 현령은 하루 동안
대항하다가 도망쳤습니다. 왕건이 이끄는 수군은 김포로 진격하여 한강 하류의 땅을 점령한 뒤
송악으로 돌아왔습니다.
"핫핫핫, 그대가 나를 크게 도움 줄은 몰랐도다."
궁예는 아주 만족해하였습니다.
899년, 왕건은 군사 1천여 명을 거느리고 임진강을 건너서 양주(서울 부근)와 진주(양주)로
쳐들어가 정벌하였습니다.
그 뒤, 양길을 쳐서 30여 성을 손에 넣은 궁예의 세력은 막강해졌습니다. 궁에는 904년에
도읍을 철원으로 옮겨 스스로 왕위에 올랐니다.
"이제 남은 신라와 후백제를 쳐서 모두 내 무릎 아래 끓리도록 하리라!"
궁에는 큰소리를 쳤습니다.
후백제 견훤이 완산주(전주)를 근거지로 하여 세웠습니다. 견훤은 상주 지방의 호족인 아자개의
아들이었습니다. 비장이 된 견훤은 신라에서 민란이 일어난 틈을 타, 진성여왕 6년 (892)에
5천여 군사를 모아 무진주(광주)를 비롯하여 대야성 등 10여 성을 빼앗있습니다. 900년에는
원산주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후백제'라 하였습니다.
견훤은 전라도 전체와 충청도 원대인 금강 유역을 차지했습니다. 이리하여 한반도는 경상도
일대로 줄어든 신라와, 마진(후고구려), 후백제와 함께 후삼국 시대가 전개된 것입니다.
궁예가 송악을 떠나 철원으로 도읍을 옮기고 '마진'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기 직전, 왕건은 구
도읍인 송악에 남아서 뒷일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런 다음 백말을 타고 철원으로 향했습니다. 이때는 아버지 왕읍은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나고
없었습니다.
왕건 일행은 정주 고을에 닿았습니다. 그 마을 길 양쪽에는 버드나무가 죽 늘어서 있었습니다.
왕건은 목이 몹시 말라서 샘을 찾아갔습니다.
샘 가에는 머리를 허리께까지 땋아 내린 처녀가 다소곳이 앉아서 물을 긷고 있었습니다.
“저, 물 한 바가지 떠 주실 수 있소이까?"
왕건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처녀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처녀는 방긋 웃고는, 바가지에 물을
떠서 샘 가에 드리운 버들잎을 쭉 훑어 띄워 왕건에게 주었습니다.
왕건은 목이 몹시 말랐으나 그 버들잎을 후후 불어가며 물을 마셔야 했습니다. 물을 겨우 마신
왕건은 처녀에게 짜증스러운 말투로,
"왜 버들잎을 훑어 넣었소?"
하고 물었습니다. 처녀는 또 방긋 웃었습니다.
“물에 체하면 약도 없다는 말을 못 들었습니까?”
왕건은 다시 한 번 그 처녀를 눈여겨보았습니다. 처녀는 아름답기 그지없었습니다.
‘버들잎을 띄워 준 저 처녀의 지혜가 보통이 아니다 했더니, 인물또한 보통이 아니구나?’
처녀는 왕건을 똑바로 쳐다보고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 기와집으로 오시면 저희 아버님을 뵐 수가 있사옵니다.”
금새 얼굴이 빨개진 처녀는 물동이를 이고 샘 가를 떠났습니다.
왕건은 넋을 잃었습니다.
‘아름다운 목소리, 저 아릿다운 걸음걸이…………. 내가 낭자의 집을 알고 싶어하는 마음까지도
짚어 버렸구나!'
왕건은 말 위에서 껑충 뛰어 내렸습니다. 처녀가 '저 기와집으로 오시면 저희 아버님을 뵐 수가
있사옵니다'라고 말한 것은, 청혼을 하면 허락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때문에 왕건은 쉽게 그 처녀를 아내로 맞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처녀는 뒷날 샘 솟듯하는
지혜로 왕건을 도와 고려를 열게 한 ‘유화 부인'입니다.
왕건의 나이 42살 되던 해에 궁예가 미치광이짓을 하자, 홍유·배현경 · 복지겸· 신숭겸 등
네 장수는 왕건을 찾아왔습니다.
이들에게 술상을 차려다 준 유화 부인은, 방 안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한 장군이 유화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밭에 햇오이가 열렸지요? 저는 술안주로 햇오이만 먹습니다. 밤중이지만, 나가셔서 햇오이
몇 개만 따다 주시겠습니까?"
유화 부인은 얼른 대답을 하고는 문 밖으로 나왔습니다. 유화 부인은 그 장군이 왜 햇오이를
따다 달랬는지를 눈치챘습니다."
'아무래도 무슨 긴한 비밀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야.'
낱낱이 엿들었습니다
유화 부인은 밭으로 나가지 않고 문 밖에서 장군들의 이야기를 네 장군이 왕건에게 차례로
말했습니다.
"궁예는 이제 아무나 마구 죽이는 살인 미치광이로 변했습니다. 만백성의 마음은 왕건 장군에게
쏠려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만히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 모두가 궁예에게 트집을 잡혀서 목이 달아납니다.
왕건 장군께서 대왕의 자리에 앉으셔야 하옵니다.”
“도탄에 빠진 백성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왕건 장군, 우리의 뜻.을 받아 주십시오."
“때가 급합니다! 왕건 장군, 지금 한 시각도 지체할 수가 없습니다. 왕건 장군, 어서 일어나십시오.”
왕건이 네 장군에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임금이 포악해졌다 하더라도, 그 임금을 섬기던 우리가 어찌 몰아낼 수가 있겠소? 나는
그런 짓 못하겠소이다.”
이때, 유화 부인이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예로부터 임금이 포악해지면 그 임금은 백성뿐만 아니라 군신들에게서 멀어지는 법이옵니다.
기회를 잃으면 이쪽의 목숨을 부지하지 못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햇오이를 따오겠으니
그것을 씹으면서 잘 생각해 보십시오."
유화 부인은 또다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왕건은 그제서야 네 장군을 둘러보며,
“나의 아내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두 번 목숨을 잃을 뻔했구료!"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한 번은 목이 하도 말라서 물을 마실 때 버들잎 때문에 물에 체하여
죽을 병이 걸리지 않았음을 이르는 것이고, 한 번은 바로 이 순간을 이르는 것입니다.
그때 또다시 유화 부인이 들어왔습니다. 부인의 손에는 오이가 들려져 있는 게 아니라, 왕건의
투구와 갑옷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오이 먹을 시간조차 없을 만큼 다급해진 것 같습니다."
왕건은 벌떡 일어나서 무장을 갖추고, 네 장군과 함께 나가서 1만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궁궐을
포위하였습니다. 이미 폐인이 된 궁예를 따르는 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왕건은 왕위에 올라 나라 이름을 '고려'라 하고, 연호를 '천수'라 정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자신이 성을 쌓은 송악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청솔 간, ‘이야기 한국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