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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중보기도
32: 30-35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31.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35.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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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의 그 무서운 쇠사슬로부터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에서 쫒아오는 애굽의 군대를 뒤에 두고 홍해를 육지와 같이 걸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목이 말랐을 때 반석을 쳐서 생수를 마셨습니다. 아침에는 만나요, 석양에는 메추라기로 연명을 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기다리다 못해 새로운 지도자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형 아론에게 자신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아론은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만든 것이 송아지 형상의 우상입니다. 이 송아지 형상의 우상은 농업과 풍요의 상징으로 애굽에서 숭배하던 생활습관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지도자 모세가 없는 동안 쉽사리 출애굽을 시켜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애굽의 습관으로 돌아가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대신 자신들의 의도한 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상이 아닌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절기와 예배를 더럽혔습니다.
이 죄악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저지른 죄악 중 가장 큰 죄악이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은 모세의 후손만 남기시고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진멸하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안 모세는 세가지 이유를 들어서 애끓는 중보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첫째, 큰 권능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시고 선민으로 택하셨는데 이제 와서 멸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는 것이요 둘째, 이 백성이 진멸 당한다면 애굽인의 승리하는 일이라는 것이요 셋째,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효로 돌아간다는 것이 지요. 이 때에 모세는 기도하기를 출32:31-32에서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나가 그 민족이 범한 죄악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한 것이 오늘 말씀의 본문입니다.
1. 모세는 동족이 저지른 죄를 무관심하지 아니했습니다.
이렇게 종교적으로 탈선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모세에게 출32:7-10절 이하에서 "너는 내려가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때 모세는 자기 백성이 저지른 그 엄청난 죄악을 외면하거나 무관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진노를 그치고 그 뜻을 돌이켜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이웃의 죄에 대하여 방관하거나 무관심으로 외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일의 신학자요 목사였던 본 훼퍼는 나치의 학정이 극심할 때 독일교회와 민족을 향하여 "오늘 우리의 적은 나치의 학정이 아니라 우리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동족이 저지른 죄에 무관심하지 말고 모세와 같이 중보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저항 운동가들이 감옥에서 처형당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한 일이 없는데도 잘못 잡혀온 사람이 끼어 있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에 저항운동가들과 함께 처형당하는 것이 억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는 저항운동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그저 평안하기를 바라는 자인데, 이렇게 처형당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저항운동을 한 일이 없다. 그런데, 왜 내가 죽어야 한단 말인가" 라고 말입니다. 이때, 한 저항운동가가 옆에서 조용히 말하기를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잘못이다.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만으로 죽어 마땅하다. 전쟁은 5년이나 계속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도시가 파괴되고, 조국과 민족이 멸망 직전에 놓여 있는데, 도대체 왜 당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라고 매우 인상 깊은 말을 했습니다. 사실, 빈둥거리며 아까운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내는 것은 큰 죄입니다. 그러나 무관심은 불법이 아닐지 모르지만 분명히 부도덕한 일입니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사랑, 달콤한 사랑은 실천이지 단순한 취미가 아닙니다. 무관심은 큰 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무관심한 것이 죄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웃의 죄인들을 무관심하지 말고 관심을 갖고 중보기도를 통해 그들의 마음이 열리도록 하고 전도의 달에 꼭 구원을 받도록 힘을 쓰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모세는 민족을 사랑으로 감싸안고 기도했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사랑의 기도였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4백 30년 동안 애굽의 노예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살던 백성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출애굽 해서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으며 시내 광야까지 왔으며, 또 홍해를 건너는 하나님의 기적을 본지도 얼마 되지 아니 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그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 대신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자기들의 신이라고 춤추고 먹고 마시는 그 동족을 볼 때, 그 얼마나 원망스럽고 낙담이 되고 증오스럽겠습니까?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책임 부재가 있습니다. 이 때 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아론에게 묻습니다. 왜 이런 죄를 범했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아론은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어 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 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라고 출32:22-24에서 대답을 합니다.
이 대답에 대해 주경가 베이커는 "이 얼마나 유치한 책임 전가인가, 얼마나 지리멸렬하고 어리석은 변명인가"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자연이나 사회 탓으로 돌리려고 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모세는 너무 격분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써주신 두개의 십계명 돌판을 내 던져 깨뜨리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또 그는 우상을 만드는데 앞장섰던 3천명을 죽이게 하지만, 곧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가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습니다." 라고 뜨겁게 기도하고 했습니다. 이렇게 중보의 기도는 사랑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아론이 회피하고 백성이 내팽개쳐 버린 죄의 책임을 모세가 사랑으로 그 죄를 걸머멘 채 땅바닥에 엎드
려 죄를 사해 주십시오. 아니면 제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내가 가야 할 길이 있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무엇입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은 비기독교인 보다 나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과 하는 일이 달라야 합니다.
모세는 죄 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자기 자신이 대신 사랑으로 뒤집어쓰고 땅바닥에 엎드려 용서를 구합니다. "만약 용서해 주시지 아니하면 차라리 제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모세의 사랑의 중보기도를 배워서 우리의 이웃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리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애족 애국심은 참된 크리스천이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복음을 배척하는 동족을 위해 사도 바울은 롬9:1-3에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 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라고 구원을 절규합니다.
우리나라는 무서운 일본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그 혹독한 탄압을 견디어 내지 못하고 중국 서북간도로 이민을 간 사람도 있습니다. 침략을 받은 지 10년만인 1919년 3월 1일 기미 대한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운동은 세계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이적인 대 사건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순전히 거족적인 거사로 모든 이념과 종파를 초월해서 오직 독립만을 민족의 살 길임을 외쳤습니다. 기독교, 천도교, 불교의 지도자들이 합쳤어도 갈등이 없었습니다. 순전히 애국 애족심의 자생적인 발로였습니다. 선교사나 외부 인사가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순전히 민족적 양심에서 일어난 자발적인 운동이었습니다. 일경의 감시가 심했어도 감지되거나 발각되지 않았습니다. 수 백명의 수개월 동안 비밀결사를 꾸미고 회의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고하거나 배신한 자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죄를 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에 사랑의 중보기도로 나라를 구원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독립투사들도 이 운동이 사랑의 중보기도 운동으로 확산되었더라면 우리민족이 더 쉽게 해방의 길을 갈 수가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왜 우리민족은 독립을 위해 사랑의 중보기도회의 모임이 강력하게 나타나지 못했는가 하는 아쉬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세처럼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과 태신자를 놓고 사랑의 중보 기도를 드려 응답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모세는 자기를 희생해서 민족을 구하려는 기도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죄는 그들 속에 잠재해 있던 불신앙을 겉으로 드러낸 일입니다. 이것은 그냥 묵인할 수 있는 작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 백성 전부를 멸망시키려고 하실 정도로 하나님을 진노케 한 큰 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는, 출애굽 할 때부터 줄곧 그들을 사랑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한 죄이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습니다. 모세는 그들이 범죄한 죄가 너무 큰 죄로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으므로 하나님 앞에 아무런 변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모세는 자기 백성과 자신의 운명은 둘이 아닌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기를 "합의하시면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한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라고 모세는 울부짖었습니다. 나 혼자만은 살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를 백성의 속죄의 희생물로 받아 달라는 간구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이웃을 위해 나를 희생해보려는 희생적인 중보기도입니다. 내 민족을 사랑으로 감싸안고 기도해야 합니다.
영국의 학교에서는 왕자나 귀족의 아들을 매질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소위 'Whipping Boy'라 하여 매를 대신 맞아 주는 그런 자가 있다고 합니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나라의 재난이 극심할 때 지방의 수령인 현감이나 목사가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이 재난을 자신의 부덕의 소치로 여겨 큰 죄를 뒤집어쓰고 자책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세처럼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과 희생의 중보를 기도를 드려 10월에 출산하여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