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군위 인각사 / [2] 군위 제2석굴암
[1] 군위 인각사
▪️고려 역사서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스님이 마지막에 주석하시다가 입적한 사찰
▪️규모는 아주 작고 소박한 절이다.
◈ 일연의 삼국유사 (三國遺事)
-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의 명승 보각국존 일연이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유사(遺事)를 모아서 지은 역사서. 활자본. 5권 2책. 편찬 연대는 미상이나, 1281~83년(충렬왕 7~9) 사이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현재까지 고려시대의 각본(刻本)은 발견되지 않았고, 완본으로는 1512년(조선 중종 7) 경주부사(慶州府使) 이계복(李繼福)에 의하여 중간(重刊)된 정덕본(正德本)이 최고본(最古本)이며, 그 이전에 판각(板刻)된 듯한 영본(零本)이 전한다.
- 본서는 김부식(金富軾)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 고대 사적(史籍)의 쌍벽으로서, 《삼국사기》가 여러 사관(史官)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사(正史)이므로 그 체재나 문장이 정제(整齊)된 데 비하여,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씌어진 이른바 야사(野史)이므로 체재나 문사(文辭)가 《삼국사기》에 못 미침은 사실이나, 거기서 볼 수 없는 많은 고대 사료(史料)들을 수록하고 있어 둘도 없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헌이다. 즉, 그 중에서도 특히 고조선(古朝鮮)에 관한 서술은 한국의 반만년 역사를 내세울 수 있게 하고, 단군신화(檀君神話)는 단군을 국조(國祖)로 받드는 근거를 제시하여 주는 기록인 것이다.
- 그 밖에도 많은 전설․신화가 수록된 설화문학서(說話文學書)라고도 일컬을 만하며, 특히 향찰(鄕札)로 표기된 《혜성가(彗星歌)》 등 14수의 신라 향가(鄕歌)가 실려 있어 《균여전(均如傳)》에 수록된 11수와 함께 현재까지 전하는 향가의 전부를 이루고 있어 한국 고대 문학사(文學史)의 실증(實證)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은 일찍이 본서를 평하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야 될 경우를 가정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후자를 택할 것"이라고까지 하였다.
- 《삼국유사》의 체재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 第 一 王曆 】 : 연표(年表)로서 신라, 고구려, 백제, 가락, 후삼국, 고려 통일까지를 중국의 연대와 대조기재. 《삼국사기》 연표의 경우와는 달리 역대 왕의 출생․즉위․치세(治世)를 비롯하여 기타 주요한 역사적 사실 등을 간단히 기록하고, 저자의 의견도 간간이 덧붙여 놓았다.
【 제 二 紀異 】 : 단군신화 , 가락국기 (금관주지사) 등, 고조선~통일신라의 기이한 帝王 설화, 흥망 등
【 제 三 興法 】: 고 백 신 불교 전래 과정, 이차돈의 殉敎 , 고승(高僧)들에 관한 행적
【 제 四 塔像 】 : 불탑, 불상, 범종에 얽힌 이야기 30편
【 제 五 義解 】 : 원광, 자장, 원효, 의상 등 신라 명승 행적 14편.
【 제 六 神呪 】 : 밀교(密敎)의 이적(異蹟)과 이승(異僧)들의 전기 3편
【 제 七 : 感通 】: 일반 신도들이 부처와의 영적 감응(感應), 영이(靈異) 등을 다룬 10편의 설화
【 제 八 避隱 】: 높은 경지에 도달하여 은둔(隱遁)한 일승(逸僧)들의 이적을 10편
【 제 九 孝善 】: 뛰어난 효행 및 선행에 대한 미담(美談) 5편.
- 저자가 사관(史官)이 아닌 일개 승려의 신분이었고, 그의 활동 범위가 주로 영남지방 일원이었다는 제약 때문에 불교 중심 또는 신라 중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북방계통의 기사가 소홀해졌으며, 간혹 인용 전적(典籍)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을 뿐더러, 잘못 전해지는 사적을 그대로 모아서 수록한 것도 눈에 뜨이나, 그것은 《삼국유사》라는 책명(冊名)이 말해 주듯이 일사유문적(逸事遺聞的) 기록인 탓에 불가피한 일이었다
- 당시의 민속, 고어휘(古語彙),성씨록(姓氏錄),지명 기원(地名起源),사상,신앙 및 일화(逸話) 등을 대부분 금석(金石) 및 고적(古籍)으로부터의 인용과 견문(見聞)에 의하여 집대성해 놓은 한국 고대 정치,사회,문화 생활의 유영(遺影)으로서 한민족(韓民族)의 역사를 기록한 일대 서사시(敍事詩)라 할 수 있다.
- 김부식의 《삼국사기》 편찬에 있어 유교의 합리주의적 사고(思考) 또는 사대주의 사상으로 말미암아 누락시켰거나, 혹은 누락되었다고도 보여지는 고기(古記)의 기록들을 원형대로 온전히 수록한 데에 오히려 특색과 가치를 지니며, 실로 어느 의미에서는 정사(正史)인 《삼국사기》 이상의 가치를 지닌 민족사의 보전(寶典)이라 일컬을 만하다.
🟫 일연 스님_탄생에서 입적까지
▪️일연은 1206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났다. 이해 6월 11일 (양력으로는 7월 25일이다.
▪️속성은 김씨였으며 이름은 見明이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윈 그는 홀어머니의 손에 길러졌다.
▪️아홉살 나던 해 광주 무량사로 취학하였다. 처음엔 다만 공부를 하기 위해서 갔던 무량사에서 인연이 되어 일연은 1219년 열네살이 되던 해 설악산 아래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로 가서 삭발을 하고 스님이 되었다.
▪️진전사는 신라 말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아흡 선문의 하나였던 가지산파에 속해 있었으니, 그는 여기서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산문이 결정되었고 왕명이 아니면 고칠 수 없다는 산문이라는 호적이었기에 평생을 이 파에 속한 승려로 살다 갔다.
▪️마흔네 살에는 당대의 실력자 정안이 경상도 남해의 개인집을 내놓고 정림사를 만들었다. 그곳의 주지로 부임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이때부터 바야흐로 불교계의 지도자로 자리잡아가게 된다.
▪️왕명을 받들어 불고행사를 주관하기도 하면서 1260년 개인적으로는 지금 남아 유일하게 전하는 중편조동오위가 간행되기도 하였다.
▪️일연 이란 이름은 그가 만년에 쓴 것으로 보인다. 처음 이름이 건명이었고 불교의 이름을 회연(晦然)이라 지어 밝음(明)과 어둠(晦)을 대조시켰다. 그러다가 만년에는 이 둘 곧 밝음과 어둠을 하나로 보겠다는 뜻에서 새로운 이름에 一자를 넣었다.
▪️밝음이 어둠이요 어둠이 곧 밝음이며, 어둠과 밝음은 종국에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교의 깊은 진리가 일연의 이름 속에 숨어 있다.
▪️일연 1283년 그의 나이 78세에 국사로 책봉되었다. 이제 명실상부한 한 나라의 정신적인 지도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해 국사의 자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1285년 인각사를 하산소로 하고 여기에서 두 번의 구산문도회를 개최하는 한편 이 시기에 삼국유사를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1289년 7월 8일(양력 8월 2일) 84세를 일기로 인각사에서 입적하였다
절 옆에 개울이 좋다.
[2] 군위 제2석굴암
대율리
양산서원 ; 제2석굴암 바로 옆에 있다.
▪️부림홍씨 세거지.
▪️홍노, 홍귀달, 홍언충 세분을 현창하는 서원
*️⃣ 홍귀달(洪貴達) ; (1438, 세종 20 ~1504, 연산군 10)
▣ 이시애 난에 공을 세웠고, 영천군수로 보내려 하자 "그는 글을 잘하니 조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사람" 대제학 서거정이 건의하여 취소되기도 하였다. 좌참찬, 경기도 관찰사 등 역임.
▣ 손녀를 궁중에 들이라는 연산군 왕명을 거역하여 장형을 받고, 경원 유배도중 교살되었다. 문장이 뛰어나고, 성격이 강직하여 부정한 권력에 굴하지 않았다.
▣ 마지막으로 한 말은 "내가 국은을 두터이 입고 이제 늙었으니 죽어도 원통할 것이 없다." 함창의 임호서원에 제향됨. 중종반정후 신원 됨.
*️⃣ 홍언충 ; (1473년 성종4~1508년 중종3)
▣ 문경새재에서 홍언충의 한시를 보았다.
<새재의 용담을 지나며>
우렁찬 폭포소리 물 속에 잦아들고
에워싼 나무들로 그윽하게 깊어라.
용아, 너는 예로부터 어떻게 닦았기에
지금 여기 누워서도 놀라지 않는냐.
▣ 홍언충은 연산군 때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글을 올려 임금을 간하다가 노여움을 사서 문외출송門外黜送(* 黜은 물리칠, 출) 되었다가 진안으로 유배되고, 또 해도로 이배되었다. 집안사람들이 몸을 피하라고 했으나 왕명을 거역할 수 없다하고 묵묵히 길을 떠났다.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풀려났으며, 종중이 불러 직강(直講 ; 성균관 정5품 벼슬-요즘 국립대학 교수격)을 제수하였으나 벼슬에서 은퇴했다. 상주 근암서원에 제향되었다.
▣ 홍언충이 “용아 너는 예로부터 어떻게 닦았기에 지금도 여기 누워서 놀라지 않느냐?” 라고 읊었다. 연산군의 폭정에 피해를 입은 관리였는데. ‘악법도 법이라는 소크라테스’가 생각난다. 어떻게 마음을 닦았기에 ‘악한 왕도 왕이다.’ 라는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