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존경하는 세종대왕에 대한 영화가 나온다기에
언제 나올까, 언제 나오지? 하면서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국민배우 송강호와 박해일, 거기다가 얼마전에 하늘나라로 떠난 단아한 배우 전미선까지 나온다니 정말 기대 만땅이었지요.
나오자마자, 영화관으로 달려가 벅찬 마음으로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참 많이 불편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중에 화장실을 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화장실까지 다녀오는 이상한 현상도 발생하고...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과 고심고심하며 만들어내었다고 알고 있던 한글이
신미라는 스님이 만들었다고 하니 깜놀할 수밖에요.
게다가 신미의 말투는 왜 그렇게 거슬리는지요.
마치 세종을 자기 발밑 신하, 아니 신하보다 더 못한 듯이 막 대하는 모습도 보기 안 좋았습니다.
그뿐인가요.
집현전 학사들이 한 일이라곤 달랑 훈민정음 해설본을 만들었다는 것!
훈민정음해설본을 내놓자, 쳐다보지도 않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신하들의 모습도 불쾌했고.
(그 당시에도 탄핵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고는 하나, 그들의 태도는 그들의 임금을 개무시하는 듯했지요.)
보면서 내내 어리둥절,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보고 난 후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하기 싫었습니다.
그래도 뭔가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서 글을 써 봅니다.
역사를 다룬 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역사왜곡을 가장 두려워해야할 일 아닌가요?
물론 조금의 역사왜곡은 그동안에도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렇게 논란을 불러일으킬만큼 엄청난 왜곡은 아니었던 듯 싶습니다.
초중고 학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심히 걱정스럽네요.
학생들이 여러 역사책을 보고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 봅니다.
‘조선왕조실록’ 문종 즉위년 경오(1450) 4월6일(기묘)
임금이 영의정 하연, 좌의정 황보인, 우의정 남지, 좌찬성 박종우, 우찬성 김종서, 좌참찬 정분, 우참찬 정갑손을 불러 도승지 이사철에게 명령해 의논케 하기를, “대행왕(大行王; 세종대왕)께서 병인년(1446; 훈민정음 반포년도)부터 비로소 신미의 이름을 들으셨는데, 금년(1450)에는 효령대군의 사제(私第)로 옮겨 거처해 정근(精勤)할 때 불러 보시고 우대하신 것은 경들이 아는 바이다.”
‘훈민정음’이 계해년(1443)에 창제된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세종의 아들인 문종의 위 증언에 따르면, 세종이 신미라는 이름을 들은 해는 1446년, 접견한 해는 1450년입니다. 그러니까 조선왕조실록을 왜곡하지 않고 훈민정음 창제에 신미가 끼어들기란 불가능하다는 얘기죠.
신미대사 훈민정음 창제설의 근거라는 ‘원각선종석보’가 허위임을 2016년 논증한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 소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철현 감독은 6월25일 제작보고회에서 이송원 작가하고 1개월 이상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봤다고 했다. 오늘 입장문에서도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말을 수차례 언급했다. 자신이 강조하는 ‘우국이세’라는 말 또한 문종실록 1450년 7월6일에 나오는 말이다. 이로 보아 ‘세종이 신미라는 이름을 1446년에 처음으로 들었다’는 문종실록 1450년 4월6일의 기록 또한 분명 봤을 것이다. 신미가 훈민정음을 만들었고 극중에서 ‘사냥이 끝난 사냥개의 처지가 이런 것이로군’하며, 신미의 저작권을 세종이 탈취한 것으로 묘사해 세종을 두 번 억울케 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그 사실을 고의적으로 뺐다. 이에 대해 조 감독은 진심으로 사죄해야 하며, 일제 때의 ‘창문틀’설과 유사한 ‘서까래’를 보여주며 훈민정음 창제과정 또한 왜곡시킨 영화를 해외에 상영해 국격을 훼손시키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첫댓글 여봐라! 이 감독이라는 자를 매우 쳐라!!
더불어 제작에 참여한 모든 이를 철저히 조사하도록 하라!
좋은 배우들 데려다 뭐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ㅠㅠ
기고만장에 기가찰 노릇.ㅜㅜ
재미도 별로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