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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제12장
사랑시
― 사랑은 생명이며, 생명은 하나다
사랑시를 쓰며
이 책의 마지막에 나는 논리나 교리보다 사랑에 관한 한 편의 시를 놓고 싶었다.
오랫동안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수많은 질문을 했다.
하나님은 누구인가?
그리스도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죄와 구원은 무엇인가?
죽음과 영생은 무엇인가?
그러나 오랜 질문 끝에 내가 다시 돌아온 곳은 놀랍도록 단순했다.
사랑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율법 가운데 가장 큰 계명을 사랑이라고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 마태복음 22:39
그리고 제자들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셨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요한복음 13:34
나는 이 말씀을 오랫동안 묵상하면서 사랑을 단순한 감정으로만 볼 수 없었다.
사랑은 생명을 살리는 힘이며,
생명은 우리 모두에게 흐르고 있고,
그 생명의 근원에서 바라보면 나와 너를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한 문장으로 이렇게 묵상해 왔다.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라.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한 문장이 어쩌면 이 책 전체의 마지막 대답인지도 모른다.
사랑시
― 생명을 바라보며
가족은 사랑이다.
사랑은 생명이다.
사랑은 신(GOD)이다.
사랑은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는
네 안의 생명이며
참자아이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독생자이며,
육으로 나타난 신,
전능자의 표현이며,
모든 존재 안에 있는
생명이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내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다.
너와 내가
생명의 근원에서 하나라면,
너를 아프게 하는 것이
어찌 나와 무관하며,
너를 살리는 것이
어찌 나와 무관하겠는가.
석가는 말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그 말씀을 마음에 품고 묵상했다.
아버지와 그리스도는 하나이며,
그리스도가
내 안의 생명이라면,
그리스도를
밖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생명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내 안에서 발견한 그 생명을
이웃 안에서도
발견해야 하지 않을까.
꽃에도 생명이 있고,
나무에도 생명이 있고,
새와 짐승에도 생명이 있으며,
너에게도 생명이 있고,
나에게도 생명이 있다.
모습은 다르지만
생명에는 높고 낮음이 없다.
부자와 가난한 자,
높은 자와 낮은 자,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
남자와 여자,
나와 너를 지나
생명의 자리에서 바라보면
우리는 서로를 향해
다시 말할 수 있다.
너도 생명이고
나도 생명이다.
그래서 사랑한다.
같아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편이라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잘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원수에게도 생명이 있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생명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의 계산을 넘어선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어려운 말씀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하나라면
다르게 들리기 시작한다.
사랑은
상대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미움은 나를 나누고,
사랑은 나를 하나 되게 한다.
두려움은 벽을 세우고,
사랑은 벽을 허문다.
사랑은 생명이며,
생명은 빛이며,
빛은 어둠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랑하고 싶다.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귀하게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든 이름을 내려놓고
한마디만 남기고 싶다.
사랑하라.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1. 사랑은 감정만을 뜻하는가
이 시에서 말하는 사랑은 단순한 애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따뜻한 감정도 사랑이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그것보다 훨씬 넓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나를 미워하는 사람까지 사랑하려면 감정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생명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것.
나는 그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의 중요한 의미로 묵상한다.
2. “사랑은 생명이다”
이것은 과학적 등식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저자의 영적인 묵상 언어다.
사랑은 생명을 살린다.
미움은 생명을 상하게 한다.
사랑받는 아이가 살아나고,
용서받은 사람이 다시 일어서며,
외로운 사람에게 건넨 따뜻한 손길 하나가 삶을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랑과 생명을 분리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생명을 향하고,
생명은 사랑 속에서 피어난다.
3. “사랑은 신(GOD)이다”
여기에서 GOD라는 표현을 정확히 설명하고 싶다.
GOD를 한국어로 옮길 때 흔히 하나님이라고 번역하지만, 문맥에 따라 신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나 ‘신’이라는 말 자체가 그 실재의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 요한복음 4:24
따라서 이 시에서 말하는 GOD는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가진 어떤 외부 존재를 단순히 상상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생명·영·빛·사랑의 근원이라는 관점에서 묵상한다.
이것은 이 책의 저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오랫동안 묵상하면서 도달한 하나의 해석이지, 독자에게 강요하는 교리가 아니다.
4. “사랑은 그리스도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란 무엇인가?
앞의 부록에서 우리는 이 문제를 깊이 살펴보았다.
그리스도를 단순히 예수님의 성처럼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가 그리스도를 생명과 사랑이 인간 안에서 드러나는 영적 실재라는 관점에서도 묵상했다.
따라서
“사랑은 그리스도다.”
라는 시구는 사전적 정의가 아니다.
시인의 묵상이다.
사랑이 드러나는 곳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드러난다는 고백이다.
5. 내 안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또는 번역에 따라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도 전해진다.
도마복음 3에서는 더욱 직접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너희 안에 있고 너희 밖에 있다고 전한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계속 밖에서만 찾던 것을 안에서도 바라보기 시작했다.
천국도,
생명도,
그리스도도,
아버지도.
그러나 이것을 인간의 육체적 자아가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식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내가 말하는 것은 육체적 자아의 확대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에 대한 자각이다.
6.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 요한복음 10:30
그리고 요한복음 17장에서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면서 놀라운 말씀을 하신다.
아버지와 자신이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다.
나는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나 됨이 오직 예수님 한 분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였다면 왜 예수님은 제자들도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을까?
이 질문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7. 도마복음 ― 둘을 하나로
도마복음 22에서도 예수님은 ‘둘을 하나로’ 만드는 것에 관한 신비로운 말씀을 하신다.
안과 밖,
위와 아래,
남성과 여성이라는 분리를 넘어 하나 됨을 이야기한다.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의 관점에서는 분리된 의식을 넘어 생명의 하나 됨을 발견하라는 말씀으로 묵상할 수 있다.
8. 우리는 하나라는 말의 의미
“우리는 하나다.”
이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똑같다는 뜻은 아니다.
얼굴도 다르다.
성격도 다르다.
생각도 다르다.
종교도 다를 수 있다.
하나 됨은 다양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파도가 서로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어도 같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나는 생명의 관점에서 인간과 모든 존재의 근원적인 연결성을 묵상한다.
9. 하나라면 왜 사랑해야 하는가
여기에서 이 책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만난다.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라.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만약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웃을 해치는 것은 결국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세계를 해치는 것이다.
이웃을 살리는 것은 그 세계를 함께 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 됨은 아름다운 철학으로 끝나지 않는다.
윤리적 책임으로 이어져야 한다.
10. 사랑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는 뜻이 아니다
사랑을 강조할수록 이것도 분명히 해야 한다.
사랑한다고 해서 잘못을 잘했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폭력을 허용할 필요도 없다.
거짓을 묵인할 필요도 없다.
불의를 보고 침묵하는 것이 반드시 사랑인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사랑에는 진실과 용기가 함께 있었다.
사람은 사랑하되 잘못은 바로잡을 수 있다.
사랑과 분별은 서로 반대가 아니다.
11.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가장 어려운 말씀 중 하나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마태복음 5:44
이것이 가능한가?
물질적 자아의 관점에서 보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나를 공격한 사람은 나와 분리된 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질문이 달라진다.
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의 생명까지 미워해야 하는가?
나는 이 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2. 사랑은 생명을 보는 눈이다
사랑은 단순히 무엇을 하는 행동 이전에 어떻게 보는가의 문제일 수 있다.
사람을 돈으로 보면 이용하게 된다.
지위로 보면 높고 낮음을 나눈다.
종교로 보면 우리 편과 남의 편을 나누기 쉽다.
그러나 생명으로 바라보면 질문이 달라진다.
“저 사람 안에도 나와 같은 생명이 있지 않은가?”
그때 사랑이 시작될 수 있다.
13. 어린아이의 마음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아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어린아이에게 완벽한 지식이 있어서가 아니다.
나는 이 말씀을 순수한 마음과 연결해서 묵상한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메시지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많이 알아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학박사가 되어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오히려 마음이 단순해질 때 보이기도 한다.
14. 결국 다시 사랑이다
33장의 본문을 지나왔다.
천국을 이야기했다.
기도를 이야기했다.
성령을 이야기했다.
영생을 이야기했다.
성전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부록에서 그리스도,
은혜,
부활,
구원,
우리의 근원,
삼위일체,
나,
죄,
심판,
거짓 선지자,
열두 제자와 바울까지 살펴보았다.
수많은 질문을 지나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어쩌면 이것 하나일지 모른다.
“나는 사랑하고 있는가?”
책을 마치며
다시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 책은 정답을 선언하기 위해 시작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성경을 읽으며 내가 품었던 질문을 예수님의 말씀 앞에 다시 가져가 보기 위해 시작했다.
나는 틀릴 수 있다.
『그리스도의 강론』의 해석도 검토할 수 있다.
도마복음도 비교해서 읽어야 한다.
교회의 전통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 책 역시 독자의 질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독자에게 부탁하고 싶다.
나의 말을 믿기 전에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읽어 보시라.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서 물어보시라.
이 말씀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나는 더 사랑하고 있는가?
더 자유로워지고 있는가?
더 생명을 귀하게 바라보고 있는가?
다른 사람을 더 쉽게 정죄하게 되었는가, 아니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는가?
나는 이 긴 여정 끝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문장으로 묵상한다.
**순결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라.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랑하자.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하자.
그리고 사랑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삶으로 알아가자.
마지막으로 이 책의 시작에서 붙들었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간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 누가복음 21:33
그리고 그 없어지지 않는 말씀을
우리의 삶에서 살아내자.
― 끝 ―
사랑시.
가족은 사랑이라네.
가족은 절대사랑이라네.
사랑은 가족이라네.
사랑은 생명이라네.
사랑은 생명력이라네.
생명은 사랑이라네.
사랑은 신(GOD, 하나님)이라네.
사랑은 그리스도라네.
신은 사랑이라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찬양해야 한다네.
사랑은 모든 곳에 존재한다네.
신은 모든 곳에 존재한다네.
그리스도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네.
그리스도는 네 안의 생명이라네.
석가는 천상천하 유아독존하니, 부처 되라 하고
예수는 아버지와 그리스도는 하나이니, 그리스도 되라 하네
그리스도는 육(분자,물질)으로 나타내는 신(GOD, 하나님)이라네.
그리스도는 전능자의 표현이라네.
그리스도는 모든 존재 안의 생명이라네.
그리스도는 네 안의 참 자아라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독생자라네.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나의 열매 맺는 가지요
아버지는 농부(수액)이시다.
그리하여 포도나무와 가지와 농부(수액)는 일체동일한 하나라네.
그리스도와 아버지는 하나.
나와 그리스도도 하나.
아버지와 나도 하나라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나라네.
우리는 일체동일한 하나라네.
하나되라는 의미는
이 몸은 아버지 몸이다.
아버지 마음이 내 마음이다.
내 말은 곧 아버지 말이다를
늘 의식하며 행동하면 전능자의 권능이 나온다네!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 .
기도의 힘은 기도와 응답이 하나라는 사실에 있다네.
너와 아버지가 하나라는 깨달음으로 기도하라,
그러면 아버지의 뜻이 네 안에서 이루어 진다네.
나는 생명이다.
생명에는 중단(죽음)이 없다네.
생명은 분리가 없다네.
생명은 무주객(주인과 종) 일체동일이다네
생명은 무고저 일체동일이다네
천국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가깝다네.
천국은 네 가슴 안에 있다네,
그러나 천국에 도달한 자는 없다네.
천국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문(분리,벽담)을 열어야 한다네.
가슴이 순결한 자는 복되다.
그들은 신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네.
이 우주는 누가 창조 했나?
생명이 창조했다네!
이 우주에 생명이 먼저 있어
그 생명의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에 창조는 시작 되었다네.
과거는 추억 일 뿐
과거 현재 미래는 동시에 일어난다네
현재에 집중해서 기쁘고,즐겁고,행복하게 계속 이어지면 그 미래는 내가 창조한 것이라네
일체 답은 내 안에 있다네.
천국도 지옥도 내 안에 있다네.
구세주도 내 안에 있다네.
종교 지도자들이 만든 지옥의 늪에서 빨리빨리 벗어나길. . .
나는 벗어나니 대자유라네.
하나님(천국,왕국,아버지)은 산자의 하나님(GOD, 신) 이라네.
왜야하면
네 자신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아라네.
절대긍정일원심이 무한대도라네,
마음 하나 바뀌면 천국인 것을!
몸과 마음은 하나라네
마음과 물질과 에너지와 생명은 하나라네
그래서 나는 생명(에너지)이다.
에너지 입장에서 보면은 바늘구멍도 통과 할 수 있다네
가족은 절대사랑이다네.
우리는 우주(宇宙)가족이라네.
宇宙 가족은 사랑이라네.
宇宙가족은 절대사랑이라네.
그래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네!
2024 12 12
sangmak
예수님 말씀으로 성경 이해하기 운동본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