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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차이나 경영’ 도덕 버리고 ‘FUN!’
[2138호] 2011.01.03 주간조선
조성관 편집위원
‘차이나 파워’를 신성장동력으로 카지노 2개 만들고 중국인 불러 모아,
2년 뒤 매출 라스베이거스 앞지를 듯
리센룽 총리 취임 이후 ‘도덕국가’ 싱가포르에 변화의 바람
야간 F1 경기도 유치 재미있는 국가 이미지 심기
“카지노 유치는 싱가포르의 미래” 국민 반대 밀어붙여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 1년도 안돼 세계적 명물로 부상
▲ 마리나베이에서 본 마리나베이 샌즈 복합 리조트 전경. |
싱가포르는 지금 대역사(大役事)가 진행 중이다. 그 대역사의 현장은 마리나베이(灣). 인도네시아에서 사온 모래로 바다를 메운 매립지다. 해가 뜨면 공사가 시작되고 해가 지면 소음이 잦아든다.
베이프런트 애비뉴 10의 마리나베이 샌즈(Marina Bay Sands) 호텔은 거대한 변화의 랜드마크다. 마리나베이 샌즈 복합리조트(이하 샌즈 리조트)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샌즈 그룹이 투자해 지었다. 복합리조트는 호텔, 스카이파크, 쇼핑센터, 식당가, 카지노, 극장, 박물관, 엑스포·컨벤션 센터로 이루어져 있다.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은 1년도 안되어 세계적 명물로 부상했다. 샌즈 호텔의 외관은 어디서 많이 본 모습 같다. 그렇다. 런던 근교에 있는 선사 유적지 스톤헨지와 흡사하다. 미국 보스턴에서 활동 중인 건축가 모세 사디프가 설계하고 쌍용건설이 시공했다. 55층짜리 타워를 세 개 세운 뒤 그 위에 고인돌을 얹은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고인돌은 배 모양이다. 이게 하늘 위에 떠있는 공원 스카이파크다.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에서 객실문을 열고 들어가 키카드를 키홀더에 꽂으면 방에 불이 켜지는 동시에 낮은 기계음이 들린다. 자동으로 유리창의 커튼이 열리는 소리다. “즈즈즉~” 10여초 만에 바다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복도 반대쪽 방에선 고층빌딩의 스카이라인이 들어온다.) 동시에 입이 벌어진다. 바다에 하도 많은 선박들이 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적벽대전 당시 조조의 함대를 연상케 한다. 싱가포르가 수백 년 동안 물류의 허브(hub) 역할을 해왔다는 게 실감이 나는 장면이다. 수백 대의 선박 너머에 거뭇거뭇한 게 보인다. 인도네시아 땅이다. 바다는 말라카해협이 남중국해와 만나는 지점이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도시?
▲ 57층 스카이파크의 수영장과 전망대.
연태준 변호사는 다국적 제약회사 GSK의 싱가포르 아시아태평양 본부에 3년간 근무했다. 3개월 전, 연 변호사는 GSK 코리아로 자리를 옮겼다. 연 변호사는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친구들에게 “싱가포르에 놀러 오라”고 할 때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거기 가서 뭐하고 노냐?” “그 재미없는 곳에서 어떻게 사냐?” 하지만 지난 4월 이후에는 조금씩 반응이 달라졌다. “거기에 카지노가 생겼다며? 카지노엔 가봤어?”
1년도 안되어 세기적 명물이 된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은 카지노의 심벌이다. 싱가포르는 2009년까지 라이언 시티(Lion City)로 통했다. 모든 기념품에는 서 있는 사자의 형상이 들어가 있었다. 샌즈 호텔이 그 라이언을 밀쳐내고 싱가포르의 기념비로 자리잡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인공의 낙원 싱가포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대한항공 여객기가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착륙하자 스튜어디스가 말했다.
인공의 낙원! 싱가포르를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이다. ‘인공’으로 ‘낙원’은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싱가포르는 그걸 만들어냈다. 싱가포르의 2010년 이전까지 이미지는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깨끗하지만 재미없다’. 특히 한국 성인남자의 관점에서 보면 싱가포르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도시로 각인되었다.
싱가포르의 깨끗함은 알려진 대로 강력한 통제의 결과다. 예컨대 쓰레기를 쓰레기통이 아닌 거리에 버리다가 사복경찰에게 적발되면 500싱가포르달러(약 45만원)의 벌금을 문다. 흡연구역이 아닌 곳에서 담배를 피다 걸리면 1000싱가포르달러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싱가포르에는 담배를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 만일 담배를 들고 반입하다 적발되면 한 개비당 20싱가포르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 물론 첫 방문자의 경우 예외조항이 적용된다. 싱가포르의 벌금 조항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싱가포르를 벌금의 천국이라 부르는 이유다.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범죄율이 낮은 사회다. 범죄율 0%를 지향하는 나라다. 마약을 소지하고 있다 걸리면 국적과 연령에 관계 없이 사형에 처해진다. 실제로 2005년 호주 남자가 마약을 들여오다 적발돼 사형에 처해졌다. 호주 정부와 국제사면위원회가 구명 운동을 벌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호주 남자가 처형되었을 때 외국 언론이 싱가포르 사법당국을 비난했다. 하지만 싱가포르 사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듯 싱가포르에 오면 싱가포르법을 따라야 한다”는 정부 당국자의 언급에 비난 여론은 금방 사라졌다. 2009년 한국인 3명이 헤로인을 호주로 옮기려다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현지에선 한국인 세 명이 사형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도덕국가 이미지 국가발전 한계’ 판단
▲ 샌즈 리조트의 성격을 말해주는 이정표.
싱가포르 형법은 관점에 따라 전근대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마약과 관련, 싱가포르 형법은 헤로인 15g, 코카인 30g, 대마초 500g 이상을 밀거래하다 적발되면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싱가포르 사법 당국은 지금까지 마약 범죄와 관련 한번도 예외를 둔 적이 없다. 곤장은 가장 전형적인 봉건시대의 형벌이다. 싱가포르에는 곤장을 치는 태형(苔刑)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형법 조항에 불만을 드러내는 싱가포르 국민은 거의 없다. 현재 지구상에 태형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이슬람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주요 도로마다 설치되어 있는 ERP(Eletronic Road Price) 시스템도 관점에 따라 사회통제의 수단으로 볼 수 있다. ERP는 자동 요금부과제. 싱가포르에서 운행되는 모든 차량은 ERP시스템에 의해 매일매일의 동선이 기록된다.
정치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싱가포르를 관료적 권위주의국가로 규정한다. 싱가포르는 다당제 국가지만 내용상으로 일당독재 시스템이다. 1965년 인민행동당(People’s Action Party)이 정권을 잡은 후 한번도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노동당, 싱가포르 민주당, 싱가포르 정의당 등 6개의 야당이 있지만 의석 수에서는 집권 PAP에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일당독재 시스템 국가가 전부 그렇듯 국영TV와 신문에서는 정부에 불리한 기사나 비판적인 칼럼을 찾아보기 힘들다.
도시가 깨끗하고 범죄가 없고 부정부패가 없는 사회. 싱가포르를 도덕국가라고 부르는 이유다. 언뜻 보면 이런 사회가 이상사회처럼 보인다. 그러나 도덕국가라는 이미지가 역설적으로 싱가포르를 기피하는 이유가 되었다. 인공낙원의 한계다.
‘너무 깨끗한 물에선 고기가 살지 못한다(水淸無大魚)’는 말은 현대에도 유효하다. 인간은 유희적 동물(homo ludens)이다. 싱가포르는 50년 이상 인간의 유흥 본능을 억압해왔다. 홍콩과 비교하면 이 점은 두드러진다. 사람들은 말해왔다. 홍콩은 재미있지만 싱가포르는 따분하다고. 그 증거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실제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하나만 보더라도 홍콩과 싱가포르는 큰 차이가 난다.
도덕국가 싱가포르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04년. 14년간 집권한 고촉통(吳作棟) 총리에 이어 리센룽(李顯龍)이 3대 총리로 취임했다. 리센룽은 건국의 아버지 리콴유(李光耀) 선임장관(전 총리)의 장남으로 영국과 프랑스에서 유학한 뒤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 리센룽은 ‘깨끗한 싱가포르’만 가지고는 싱가포르에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리센룽은 취임 일성으로 ‘유연하고 깨끗한 싱가포르’를 내세웠다.
자국민 해외카지노 유출 5억달러
▲ 샌즈 리조트 내의 명품 쇼핑매장.
익명을 요구한 현지의 한 관계자는 “리센룽 정부는 비밀리에 세계적 투자은행인 메릴린치에 싱가포르 미래전략에 관한 용역 보고서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에 따라 지금 ‘유연한 싱가포르’가 착착 진행 중이다. 메릴린치가 만든 보고서에는 ‘세계 카지노 시장과 아시아 카지노 시장의 미래’가 한 항목으로 있었다. 보고서에는 중국, 일본,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별로 카지노 목적 여행객 수와 이들이 카지노에서 쓰는 돈의 추이가 나와 있었다.
이 보고서는 연간 싱가포르 국민이 외국으로 나가 카지노에 쏟아붓는 돈이 5억달러(5702억원)가 넘는다는 점을 적시했다. 한국인이 매년 외국 카지노에서 뿌리는 돈은 1조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 밀물처럼 쏟아져 나가는 중국인 카지노 관광객을 유치하고 자국민이 외국 카지노에 뿌리는 돈을 싱가포르에 쓰도록 하기 위해서는 해법이 명확했다. 카지노 시설을 자국 내에 만들어야 했다. 주 타깃은 차이나 머니였다. ‘차이나 경영’은 더이상 미룰 수 없었다.
여기서 중국인의 민족성을 잠깐 언급할 필요가 있다. 중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도박을 좋아하는 민족이라는 사실은 상식으로 통한다. 마카오에서 만난 유명 중국인 사업가(83)에게 중국인이 왜 도박을 좋아하는지를 물었다. 이 사업가는 “옛날부터 그래왔는데, 나도 왜 그런지는 모른다”고 답했다.
중국인이 도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베이징 주재원들이 베이징 근교의 골프장에 나갔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내기 골프를 하며 코스를 돌고 있었다. 한 사람이 세컨 샷을 한 공이 그린 가까이에 붙었다. 칩샷으로 홀컵 옆에만 붙여놓으면 파를 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런데 이 남자가 그만 칩샷을 잘못해 결국 더블보기로 끝내고 말았다. 이때 담당 캐디가 골퍼에게 버럭 화를 냈다. 상식 밖이었다. 알고 보니 중국인 캐디 여성들이 자기가 맡고 있는 골퍼의 홀별 성적을 놓고 내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지역과 민족별로 도박을 좋아하는 강도에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북방계가 남방계보다 훨씬 도박을 좋아하는 성향이 강하고 한족보다는 만주족이 더 내기를 즐긴다. TV에서는 술과 도박을 즐기는 가장을 풍자한 코미디 프로그램까지 나올 정도다.
2006년 싱가포르 정부는 ‘카지노 투자유치’를 공론화했다. 여론이 뜨겁게 달라올랐다. 카지노 유치 반대 여론이 커져갔다. “중국인이 도박을 좋아하는데 도박에 더 빠진다” “싱가포르 사회가 한탕주의 문화로 흐를 것이다” 등. 이런 반대 여론은 사회 분위기에 비춰 당연한 것이었다. 카지노는 ‘깨끗한 싱가포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반대 여론이 비등해 정부가 밀리는 듯하자 침묵하고 있던 리콴유 전 총리가 입을 열었다. 리콴유는 “카지노 투자유치는 싱가포르의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리콴유의 발언 이후 반대 여론은 잦아들었다.
▲ 지난해 9월에 열린 싱가포르 그랑프리. 멀리 마리나베이와 샌즈 리조트가 보인다. photo 조선일보 DB
내국인만 입장료… 외국인은 무료
싱가포르 당국은 매립지 마리나베이와 센토사섬에 카지노를 유치하기로 결정하고 공개 입찰을 실시했다. 2006년 5월 마리나베이 지역은 미국 샌즈그룹, 센토사섬은 말레이시아 겐팅그룹이 각각 낙찰되었다. 2007년 마리나베이 샌즈와 리조트월드 센토사가 착공에 들어갔다. 겐팅그룹이 49억달러를 투자한 리조트월드 센토사는 2010년 2월에 개장했고, 샌즈그룹이 55억달러를 투자한 샌즈 리조트는 2010년 4월 문을 열었다. 샌즈그룹은 싱가포르 정부로부터 토지를 60년간 임차해 그 위에 복합리조트를 건설했다.
싱가포르 카지노를 상징하는 것이 샌즈 호텔이다. 스톤헨지 모양의 호텔에는 카지노가 없다. 카지노로 가려면 도로를 건너야 한다. 길 건너에 엑스포·컨벤션센터, 카지노, 극장, 박물관이 각각 별도의 건물로 자리잡고 있다. 호텔에서 카지노로 가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세 개의 타워에서 연결된 지하보도를 통해 가는 것.
카지노로 가는 통로는 세계 명품 매장의 전시장을 걷는 것과 같다. 카지노로 가는 것인지 명품쇼핑 매장에 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화려하다. 카지노 면적은 1만5000㎡(4545평). 싱가포르인은 입장료로 100싱가포르달러를 받지만 외국인에게는 무료다. 외국인의 돈을 벌겠다는 의지가 역력하다. 카지노의 도시 마카오는 내외국인 모두에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객장에는 바카라, 룰렛, 블랙잭 등을 즐길 수 있는 테이블이 600개를 넘는다. 슬롯머신은 1500대. VIP 전용 객장인 파이자(Paiza)에서는 바다를 보면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도박을 하는 사람의 95% 이상이 중국계 싱가포르인이거나 중국인이다. 카지노 정문을 나서 호텔에 가려면 또 다시 수십 개의 명품매장을 거쳐야만 한다. 명품들은 제 몸을 반짝거리며 카지노에서 딴 돈으로 자신을 구매하라고 유혹한다.
MICE산업 선두주자 급부상
MICE산업은 관광산업의 총아로 불린다. 알려진 대로 MICE는 기업회의(Meeting), 포상관광(Incentive travel), 국제회의(Con vention), 전시·박람회(Exhibition)를 통칭해 일컫는 용어다. 세계 MICE산업 규모는 이미 2008년에 3000억원(378조원)을 넘어섰다. 기자는 샌즈 리조트 관계자의 안내로 5개층으로 구성된 엑스포·컨벤션을 둘러보고 그 규모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샌즈 전시·박람회장은 10명 규모부터 1만명 규모까지 모든 다양한 회의나 파티를 치를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넓었다. 대연회장(그랜드 볼룸)은 6600명이 동시에 식사가 가능하다. 2008년까지 아시아에서 MICE산업 선두주자는 홍콩이었다. 2010년 이후 MICE산업의 선두주자는 싱가포르가 독보적이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에 많이 진출하고 있는 LG전자의 경우 임원간부 회의를 싱가포르에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샌즈 리조트를 구성하는 스카이파크, 쇼핑센터, 극장, 박물관을 보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 샌즈 리조트를 돌아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샌즈 리조트에서 카지노의 비중이 매우 미미해 보인다. 사실이 그렇다. 전체 매립지(15.5㏊) 중 샌즈 리조트가 세워진 공간은 58만㎡(17만평). 카지노의 면적은 그중 2%(1만5000㎡)에 불과하다. 싱가포르의 국가 이미지를 일순간에 바꿔놓은 카지노가 실상은 샌즈 리조트 내에서 공간적으로 2%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할까. 익명을 요구한 마리나베이 샌즈 고위 관계자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싱가포르는 그동안 도덕국가를 지향해 왔다. 하지만 차이나 파워가 부상하면서 카지노를 유치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카지노의 폐해를 최소화하면서 카지노산업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게 무엇인가를 놓고 싱가포르 정부는 고민했다. 답은 하나뿐이었다. 거대 카지노 자본만이 병폐를 최소화하면서 관광객을 늘려 국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시설을 지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지금 그 믿음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센토사섬의 리조트월드 센토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센토사섬은 어린이들의 천국이다. 놀이공원인 유니버설스튜디오가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에는 유니버설스튜디오가 4개 있다. 본고장인 할리우드가 있는 미국 LA, 플로리다 올랜도, 일본 오사카, 그리고 싱가포르다. 가족 단위 동남아인들이 언제나 북적거린다. 센토사섬에 오면 카지노는 놀이시설의 일부로 자리잡은 느낌마저 든다. 유모차를 밀고 있는 부모, 어린이들, 핫팬츠를 입은 10대 소녀들이 카지노 정문 앞에서 활보한다.
유니버설스튜디오는 세계 어디나 비슷하다고 보면 리조트월드 센토사의 특징은 호텔에 있다. 호텔 마이클, 크록포드 타워, 페스티브 호텔, 하드락 호텔 싱가포르, 스파 빌리스, 에쿠아리우스 호텔(2011년 개장 예정) 등 6개다. 각각의 호텔은 철저하게 고객층을 나눠 공략하고 있다. 크록포드 타워는 모든 객실이 스위트룸이다. 객실의 작은 소품까지 명품으로 장식된, 말 그대로 럭셔리 호텔이다.
페스티브 호텔은 이름에서 풍기는 것처럼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을 위한 호텔이다. 인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침대는 2층 침대다. 페스티브 호텔의 한 객실에 들어가 보았다. 2층 침대가 방마다 있었다. 인테리어는 또 어떤가. 꿈나라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화려하다. 객실 천장은 마치 은하수를 뿌려놓은 것만 같다. 이 호텔에서 한번 지내본 어린이들이 어떻게 이곳을 잊을 수 있을까. 각각의 호텔은 이런 식으로 완벽하게 투숙객의 구성과 소비성향 등을 고려해 설계되었다.
야간 F1대회 유치의 숨은 뜻
▲ 센토사 카지노 입구
테마파크 속에 카지노가 묻혀 있는 느낌을 주는 곳이 센토사 카지노다. 물론 미성년자의 카지노 출입은 엄격히 금지된다. 샌즈 카지노처럼 이곳에서도 싱가포르인은 입장료로 100싱가포르달러를 내야 한다. 객장 인테리어도 마치 놀이동산에 들어온 것처럼 요란하다.
일반 객장에 여성전용 테이블을 마련해 놓았다는 사실도 센토사 카지노의 마케팅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사람의 얼굴이 각기 다른 것처럼 기호와 취향도 제각각이다. 리조트월드 센토사의 슬로건은 ‘더 많은 특권, 더 많은 선택, 더 많은 경험’이다. 샌즈 카지노와 센토사 카지노. 어느 객장에 손님이 더 많을까. 답은 센토사 카지노다.
싱가포르를 답답한 나라로 보던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준 또다른 사건은 세계 최대의 모터스포츠 이벤트인 포뮬러원(F1)유치다. 2008년 첫 대회를 시작했다. 물론 F1 유치 자체가 큰 뉴스는 아니다. F1을 하는 지역이 20여개나 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말레이시아도 매년 F1 대회를 연다. 도심을 질주하는 F1 코스도 더이상 뉴스거리는 아니다. 모나코에서 열리는 F1은 해변 도로와 도심을 질주한다.
싱가포르의 F1이 화제가 되는 것은 마리나베이 5㎞ 코스에서 야간대회로 치러지기 때문이다. 카지노에서는 슬롯머신으로 아무리 거액의 잭팟을 터뜨려도 그 축하음이 건물 밖으로 새어나갈 수 없다. 하지만 F1은 다르다. 시속 300㎞의 속도가 천지를 진동시킨다. 야간에는 그 굉음이 더 크게 들린다. 야간 도심코스 F1은 전세계에서 싱가포르뿐이다. 밤이 되면 쥐죽은 듯 조용한 도덕국가 싱가포르에서 굉음의 축제를 벌인다! 카지노 유치와 함께 야간F1은 싱가포르의 나이트 라이프를 바꿔놓았다.
싱가포르 그랑프리가 다른 F1대회와 또 다른 점은 정부가 총력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남 영암 그랑프리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과는 대조가 된다. 후원사는 싱텔(SingTel). 우리의 KT 같은 곳이다. 출발선이자 결승선은 샌즈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바로 앞에 있는 팬독빌딩에 VIP 관람석이 마련된다.
2008년 첫 대회는 적자였다. 제3회 대회는 2010년 9월 24~26일 치러졌다. 싱가포르 F1은 벌어질 때마다 결승전 사진이 전세계에 퍼진다. 야간F1 사진은 세계인의 뇌리 속에 ‘싱가포르는 재미있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중앙선데이는 야간F1 사진을 2개 면에 걸쳐 실었다. 싱가포르 그랑프리는 3회 대회부터 흑자를 기록했다.
동아시아, ‘싱가포르’ 학습 중
싱가포르 카지노의 성적표는 어떨까? 개장한 지 1년도 안되었지만 눈부시다. 카지노 전문가들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카지노 규모는 마카오와 비교해 2 대 5 정도다. 센토사 카지노는 지난 2월 개장 후 2분기만 6억30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샌즈 카지노는 4월 개장 후 7월까지 2억6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센토사 카지노 하나만으로 이미 한국 17개 카지노의 매출을 앞질렀다. 이와 같은 성장 추세가 이어진다면 2012년 싱가포르가 라스베이거스를 앞지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예측이다. 마카오가 라스베이거스를 능가한 게 2006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싱가포르의 성장세는 소름 끼칠 정도다.
싱가포르의 카지노 유치는 동아시아를 혼란에 빠트렸다. 이미 대만은 2009년 1월 카지노를 합법화했다. 대만과 중국 사이에 있는 펑후섬에 카지노 리조트를 건설하려 했으나 지역 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일본 역시 2009년 10월, 오사카부 도쿄도(都) 지사가 카지노 유치를 전격 선언했다. 이후 다른 지자체도 카지노 도입 찬반 논란에 휩싸였다. 불교 국가인 태국도 싱가포르의 성공에 자극받아 카지노 합법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필리핀은 도심 카지노 유치를 검토 중이고 베트남도 들썩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싱가포르의 전환에 자극받아 싱가포르 사례를 연구하는 중이다. 중앙 정부로는 국무총리실 TF가 이미 싱가포르의 카지노를 방문해 충분한 조사를 마치고 돌아갔다. 전북을 비롯해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여러 번 싱가포르를 다녀갔다. 샌즈 카지노의 홍보 관계자는 한국에서 너무 많은 방문자들이 찾아와 똑같은 질문을 계속하는 바람에 한국 측 인사의 방문을 피하려 한다고 말할 정도다.
싱가포르가 카지노를 유치하면서 노린 것은 고용창출이었다. 실제는 어떤가. 마리나베이 샌즈가 개장하면서 7400명이 여기에 고용됐다. 이 중 70%가 싱가포르인이다. 샌즈그룹이 미국 회사이다보니 아무래도 고위간부에는 미국인이 많다. 한국인도 상당수 마리나베이 샌즈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VIP전용 매장 파이자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조재우씨는 근무한 지 9개월이 넘었다. 조씨는 경희대 호텔경영학과 출신이다. 호텔 내 뷔페식당에는 한국인 7명이 인턴으로 실습 중이다.
센토사 카지노의 VIP룸 크록포드 클럽에도 한국인 2명이 근무한다. 이대석씨는 딜러로 있고, 김연정씨는 마케팅실에서 근무한다. 두 사람은 제주관광대 카지노경영과 출신. 모두 산업인력관리공단 홈페이지에 떠 있는 공개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해 합격했다.
경희대 호텔관광대 변정우 교수는 싱가포르의 카지노를 유치 단계부터 지금까지 주의깊게 지켜봐 온 사람이다. 변 교수는 싱가포르의 카지노 유치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카지노가 갖고 있는 부작용을 싱가포르 정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국가 미래를 위해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이를 받아들였다. 단순히 카지노 중심이 아닌 컨벤션과 전시, 금융, 물류, 관광, 교육 중심의 국가발전에 부수적인 측면에서 카지노를 받아들였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지노와 야간F1으로 대표되는 싱가포르의 대변신은 이미 싱가포르 사회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현재 싱가포르 인구는 외국인 거주자 131만명을 포함해 507만6000명. 싱가포르 정부가 상정하는 적정 인구는 700만명. 면적이 685.4㎢로 서울보다 조금 넓으니 녹지공간을 훼손하지 않고도 인구를 늘릴 수 있다. 싱가포르의 교육환경은 아시아에서 최고로 각광받는다. 인종적 편견 없이 영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배울 수 있는 데다 사회가 안전하니 학생들이 나쁜 길로 빠질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차이나 파워’ 역발상 접근
▲ 센토사 리조트 내 페스티브 호텔의 객실 모습.
다국적기업의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 본부가 하나둘씩 싱가포르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다. 과거에는 다국적 기업들이 이머징 마켓 본부를 주로 런던 등에 두어왔다. GSK 코리아의 연태준 변호사는 “중국과 인도와 한국 시장이 커지면서 시차가 없고 아시아 지역의 컨트롤이 가능한 싱가포르를 이머징 마켓 본부로 선호하고 있다”면서 “설령 다른 아시아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어도 가족들은 싱가포르에 남겨두는 경향”이라고 말했다. 2010년에 일부 다국적 기업과 같이 GSK도 이머징 마켓 본부를 싱가포르로 옮겼다. 현재 싱가포르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은 7000개 정도인데 그중 60%가 아시아·태평양지역 본부를 싱가포르에 두고 있다.
지금 세계는 차이나파워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싱가포르는 차이나파워를 역발상으로 접근해 신성장동력으로 삼았다. 중국 동북 3성 지역의 인구는 1억5950만명. 중국 13억 인구의 8.3%에 해당한다. 베이징을 포함한 중국 화북 지역의 인구는 1억5754만명. 이를 동북3성과 합하면 3억을 훌쩍 넘는다. 중국 화북과 동북3성 지역 사람이 아무리 도박을 좋아해도 마카오나 싱가포르를 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덩샤오핑(鄧小平)이 개방정책을 시작한 게 1978년. 30여년 만에 중국은 1인당 평균 국민소득이 3000달러를 넘었다. 현재의 추세라면 10년 내에 중국인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전망이다.
싱가포르는 해일처럼 밀려오는 차이나파워 앞에 도덕국가 이미지를 포기하고 실리 선택으로 응전했다. 본격적인 ‘차이나 경영’을 시작한 것이다. 중국 화북·동북3성 사람들에게 지리적으로 카지노 관광의 최적지는 한국이다. 그런데 한국은 팔짱만 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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