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음부 4단계 형벌
지옥사자가 형벌을 직접 주관하지만 고통의 정도나 참혹함은 아랫음부 3단계와는 차원이 다르지요. 인간 경작 이래 가장 극악한 죄인들이 형벌받는 곳이니 그 형벌이 얼마나 중하겠습니까? 예를 들어 4단계에는 십자가에 달린 채로 고문받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들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저주의 대가를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에는 사실 우리 각 사람이 달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십자가에는 누가 달렸습니까? 바로 우리 예수님께서 달리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로 인한 저주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4단계 형벌에 떨어진 영혼들은 이런 대속의 은혜와 전혀 상관이 없지요.
디모데전서 4장 1~2절에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이들은 양심에 화인 맞아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저주의 상징인 나무 십자가에 달려 각자 자신의 죗값을 받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배신자의 대명사로 알려진 가룟 유다이지요.
가룟 유다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곁에서 직접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사랑받았고 진리의 말씀, 선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놀라운 기사와 표적도 전해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보았고 체험했지요. 그러나 끝내 탐욕을 버리지 않으므로 사단의 사주를 받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스승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팔아 넘겼지요. 물론 예수님이 죽음에 넘기우시는 것을 보고는 늦게나마 자기 죄를 깨닫고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회개하려고 했겠습니까. 자신에게 돈을 건넨 자들에게 가서 되돌려 주려 했지요. 그러나 회개하려 해도 유다에게는 회개의 영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죄의 짐이 얼마나 무거웠던지, 가룟 유다는 마음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사도행전 1장 18절에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하고 비참한 결말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지요. 가룟 유다는 4단계 아랫음부의 수많은 십자가 무리의 맨 앞에 매달려 피 흘리고 있습니다. 이 가룟 유다를 필두로 하여 그 뒤로 하나님을 심히 대적한 많은 영혼들이 십자가에 달린 채로 쭉 늘어서 있습니다. 이 음산한 광경은 마치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생겨난 공동묘지, 혹은 수많은 짐승을 잡아 매달아 놓은 도살장을 연상시킵니다. 십자가 형벌은 이 땅에서도 가장 참혹한 사형 법 중의 하나입니다. 가룟 유다를 비롯하여 십자가를 지고 있는 영혼들은 마지막 대심판의 날까지 길게는 수천 년 동안 십자가에 달려 있어야 합니다.
가룟 유다의 머리에는 굵은 가시나무로 만든 관이 씌워져 있습니다. 온 머리를 휘감은 가시는 계속 자라고 자라서 피부를 뚫고 두개골을 파고들어 부드러운 뇌를 찔러댑니다. 이 십자가 아래에는 무언가 꿈틀거리는 짐승 같은 것들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4단계 형벌에 떨어진 다른 영혼들입니다. 이들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큰 악을 쌓아 지옥에 온 자들입니다. 심한 고문을 당해 몰골이 말이 아니지요. 이들은 가룟 유다의 십자가 아래에서 지옥사자의 창에 찔리며 고문을 당합니다. 자기들이 창에 찔릴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가룟 유다를 창으로 찔러댑니다. 자기들의 고통이 심할수록 더 힘껏 가룟 유다를 찌릅니다. 악에 받쳐서 더욱 악랄하게 찔러대며 분풀이를 하지요. 타락한 천사들, 곧 지옥사자들은 함께 입을 모아 가룟 유다를 조롱합니다. “저가 구세주, 자기를 구원할 자를 팔아넘긴 자라. 저가 우리에게 이롭게 하였도다. 정녕 잘하였도다. 웃기는도다” 하며 웃어 대지요.
가룟 유다는 육체에 가해지는 고통과 함께 이런 조롱 속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함께 받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을 팔아넘긴 저주받은 자임을 거듭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점점 자라나는 가시가 머리를 찌를 때마다 날카로운 창들에 찔릴 때마다 그 기억은 더욱 뚜렷이 살아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