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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주일설교.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 (역대상 17장 16-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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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초기 3대 왕은, 사울, 다윗, 솔로몬입니다. 이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재위 기간이 각각 40년(통치 기간의 추정에는 약간 차이기 있을 수 있음)으로 동일합니다. 이것을 제외 하고는, 이 세 사람은 확연하게 구별되는 독특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아마도 인간의 흥망성쇠와 길흉화복이 이 세사람의 인생에 다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세 인물의 언행들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서, 남은 인생에 반영하시고, 나의 현재 신앙을 잘 점검 해 보시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
세 사람 중에 가장 정점에 있던 인물은 다윗 이었습니다. 다윗은 당시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가 통치하던 시대역시, 영토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최고의 번영을 누리던 시기 였습니다. 다윗 시대를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영토확장에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시대, 국가 통치에서는 세종대왕의 시대, 종교적으로는 평양 대부흥 운동의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합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다윗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다윗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은, “양치기 목동, 8남매 중 막내, 물 맷돌과 골리앗, 사울왕의 사위, 10여년의 도피 생활, 법궤 입성과 춤, 우리아와 밧세바, 셋째 아들 압살롬의 반역, 인구조사 칠만 명 죽음” 등의 내용들 이 떠오르실 겁니다. 존경 받는 위대한 왕 이었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참으로 파란 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결코 평탄한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존경 받는 위대한 인물이었다고 평가 받지만,다윗왕에게도 내우외환(內憂外患)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장기간 쫓겨다녔던 죽음의 위기, 낙심과 실패의 위기, 가족간 피로 물든 분쟁의 위기, 왕권에 대한 위협과 반역의 위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일생동안 평안했던 시간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왕으로 선택 받기 전 목동 시절이 가장 평안의 시간이었을 겁니다. 이런 면을 보면, 왕(권력)이든, 부자(재력)든, 모든 인생은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행 13:22, 내 마음에 맞는 자)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사람이 평가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렇게 평가해 주셨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이런 최고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까요? 지난 번에도 말씀 드린 적이 있는데, 다윗에게는 가장 큰 신앙의 장점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꼭 배워야 합니다.
첫째, 다윗에게는 항상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소한 일도 하나님께 먼저 묻고, 그 물음에 대답하실 때까지 기다렸고, 대답을 주시면 그 즉시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듣고 순종하는 것이 너무나 단순하고 당연한 것 같지만, 이것 하나를 제대로 지켜가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청종(聽從) 하는 생활, 즉, 듣고 순종 하는 마음 하나만 올바르게 지켜 나가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평가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다윗에게는 즉시 회개하고 돌이키는 결단이 있었습니다. 밧세바 사건에서 보듯이, 다윗은 용서 받지 못할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그는 범죄한 직후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듣고, 그 즉시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참회했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죄가 죄 됨을 알고, 죄에 대해 분노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평가 받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지닌 이 두 가지 장점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바로 ‘기도’입니다. 다윗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또한 찬송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신앙 생활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형통할 때 찬송하고, 곤고할 때 기도” 하였다라고 압축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입술에서 찬송과 기도가 끊이지 않는 사람은 복 중의 복을 누릴 줄 아는 정말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다윗이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기도의 사람답게,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 내용입니다. 왜 감사기도를 드리게 됐는지 앞의 이야기를 잠깐 설명을 드립니다. 다윗은 단 번에 이스라엘의 왕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사울왕이 죽자, 사울왕의 아들인 이스보셋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서 2년간 다스리면서 다윗과 맛섰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일부 지역만을 다스리는)에 올랐습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 6개월을 다스린 후에야 비로서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다윗왕이 오랜 내전과 외부 나라들과의 전쟁에서 승리 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법궤를 성 안으로 들여오는 것이었습니다. 법궤가 성 안으로 들어올 때 옷이 흘러 내리는지도 모르고 기쁘게 춤을 추었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 입니다. 이후에 다윗이 제일 열심을 낸 일은, 매일 같이 번제를 드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최고의 정성을 드렸습니다.
또한 찬양대를 조직하고, 항상 찬양대를 앞세워 성대하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계속하도록 했습니다. 역대상 16장에 이러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욱 읽어 보시면, 다윗이 얼마만큼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송과, 예배와 기도를 중요시 했는지를 잘 이해 하실 수 있습니다.
내전도 끝나고, 튼튼한 왕궁(시온성, 다윗성)도 얻었고, 주변 국가들은 다 제압되었고, 법궤도 성으로 들어왔으니 다윗에게는 이제 태평성대를 꿈꾸게 될 만한 최적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좀 평안히 쉬면서 여유롭게 지내도 될만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은 백향목으로 지은 으리으리한 궁전에 살고 있는데 비해서, 하나님이 임재 하시는 법궤는 초라해 보이는 장막 안에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래서 다윗이 멋진 사람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기본적인 심정으로는 등 따숩고 배부르면 만사가 귀찮아 집니다. 자신이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면, 오만해지고, 자기 밖에 모르는 독불장군이 됩니다. 안일해져서 신앙생활도 느슨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화려한 생활을 즐기기 보다, 오히려 그 화려함 속에 빠져서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지 않을까를 염려 했습니다. 진짜 믿음의 부자는 더 가지려는 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자기 것을 굳게 지키려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살펴보면 볼수록 참 대단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진심을 다 아시고, 그의 언행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불러 말씀 하시기를, “나는 이 장막 저 장막, 이 성전 저 성정으로 옮겨 다니면서 어떤 집에도 거하지 않았고, 이스라엘의 어떤 사사에게도 내가 살 백향목의 집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다.”(17:4-6)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이 나를 찾고, 나를 항상 생각하는 변치 않는 그 마음 하나만 있다면, 나는 족하다. 기쁘다. 내가 그의 진심을 알았으니 일평생 그와 함께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다윗의 말 한 마디에 하나님은 큰 영광을 받으셨고, 그에 합당한 선물을 주실 작정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가서 이렇게 전하라고 나단 선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① 너를 목동에서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은 것은 나 여호와 하나님이다.
(다윗이 이것을 잊지 않고 있음을 칭찬하는 동시에 계속 명심하라는 뜻)
② 네가(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내가(하나님)너와 항상 함께 있어, 네 대적자를 물리쳐 주었다.
(전에도 함께 하셨고, 계속 함께 해 주시겠다는 뜻)
③ 네(다윗) 이름을 존귀한(위대한) 자들과 같이 빛나게 해 주겠다.
④ 내가(하나님) 한 곳을 정하여 이스라엘이 옮겨 다니지 않고 정착하도록 도와 주고, 악한 사람들에게 억압 받지 않도록
지켜 주겠다.
⑤ 내가 사사 때와는 다르게 왕조를 세워 네 집안에 세우고, 네 모든 적들을 굴북시키겠다.
⑥ 네가(다윗이) 죽은 후, 네(다윗) 몸에서 난 아들(솔로몬)이 내게 집을 지어 줄 것이고, 내가 영원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게 하겠다.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17:7-15)
참으로 엄청난 말씀들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맞는)하게 행동했더니, 아직 무언가 이루어 드린것도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은 그 마음만을 기쁘게 받으셨을 뿐인데, 이토록 엄청난 복의 복을 내려주시는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다윗도 참 멋지지만, 우리 하나님은 다윗 보다, 더, 더, 더, +&&&... 멋지고, 멋지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얼마나 많은 복을 주시려는지, 또 주실 수 있는 분이신지 잘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마음만 진실로 드리게 되면, 하나님은 이토록 나와 내 후손 위에 영원한 복으로 역사하여 주십니다.
이 엄청난 복된 말씀을 나단 선지자에게 전해 들은 다윗의 반응은, 성막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를 시작합니다. 16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에게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아멘.
다윗의 반응도 남다릅니다. “하나님 감사 합니다, 복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받고 잘 누리며 살겠습니다” 이런 일반적인 감사의 첫 마디가 아니라, “내가 뭐라고(잘한게 뭐 있다고, 잘난게 뭐 있다고, 칭찬 받을만한게 뭐 있다고) 저를 이런 자리에까지 오르게 하십니까?”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그냥 점잖게, 겸손함을 표시하려고 한 번 해 보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쯤은 좀 해 주어야 겸양과 미덕이 있다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공로를 더 드러내기 위해서 한 번쯤은 그저 괜찮은 척 말해보기도 합니다. 다 옳지 못한 나쁜 태도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이러한 기도는 ‘복’이라는 하늘의 은혜를 받는 사람이 취해야 할 올바른 자세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나는 복(은혜, 선물,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이라는 신앙 고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 고백은 정말 기초가 탄탄하면서도, 밀도 있는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 드릴 수 있는 진실한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은, 복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이렇게 남다릅니다.
계속 이어지는 다윗의 기도 내용들을 보면, “하나님은 주인이시고, 나와 내 집은 종일 뿐입니다. / 나 한사람 보살펴 주시는 것도 감사한데, 나의 집안(가족, 넒게는 국가)까지, 나의 후손까지 살펴 주십니까? / 나와 내 집에 말씀 하신 약속을 다 이루어 주십시오. / 나와 내 집안이 튼튼히 서 가게 해 주십시오. /나의 자손이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믿음의 대를 이어가게 해 주십시오. /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겠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요즘 젊은 세대의 표현 중에, 영화, 드라마, 스포츠 등에서 감동적인 장면을 보거나, 훈훈한 어떤 미담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 “가슴이 웅장해 진다”는 표현을 씁니다. 저는 다윗의 이 기도를 몇 번씩 읽는 중에 정말 가슴이 웅장해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왜 다윗이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 찬양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였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가슴이 웅장해지는 다윗의 감사 기도문입니다.
마지막 구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겠습니다” 라고 한 것이 기도의 절정의 순간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받은 이 엄청난 복이 자신만 누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손 대대로 이어지면서 그대로 유지 되기를 바랐습니다.
복을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이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바라는 이 자세야 말로, 모든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복에 대한 올바른 자세입니다. 복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복이 보입니다. 복을 붙잡으면 하나님을 놓치게 되고, 하나님을 붙잡으면 복은 영원히 내 인생에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복 받는 비결, 복을 계속 유지하는 일체의 비결을 터득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영원한 복을 누리기를 원하시고, 영원한 복을 누릴 수 있도록 차고 넘치는 복에 복을 계속해서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았던 그 많은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받은 복이 점점 소멸되고, 새롭고 더 좋은 복이 내려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은 채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들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① 형통할 때 감사하며 하나님 찬송하기를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② 곤고할 때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기도를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③ 복 주셨을 때 그 복에 취해서, 더 많은 복을 구하기를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④ 복 받는 것이 은혜인줄 모르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이름 부르기를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⑤ 받은 복을 우리 후손들도 영원히 누리도록 소망하기를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복을 영원히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이 다섯 가지의 장애물들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늘 본문의 기도문을 통해 극복해 내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우리는 다윗의 이 기도문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큰 소리로 따라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성숙하고, 진실된 나만의 기도문을 만드셔서, 영원히 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해 달라는 간구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이 복의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간절한 기도”를 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간절한 기도를 쉬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두려워)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고, 죄와 싸웁니다.
간절한 기도를 쉬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감사하기 때문에, 말씀이신 예수님의 언행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간절한 기도를 쉬지 않는 사람은, 성령님의 동행과 인도를 구하면서, 항상 겸손과 모범을 보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과거에 한 번 복을 받아본 사람, 지금 복을 받아서 너무나 좋은 사람, 복 주신다고 약속의 응답을 받은 사람 중에,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복을 받은 사람입니까? 이러한 모든 분들이 다 복을 받은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진짜 복 받은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마음에 감동 주신대로 즉시 행동으로 영광 돌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주신 복이 있으면, 그 복을 나와 내 후손이 영원히 누릴 수 있도록, 찬송과 간절한 기도를 쉬지 않고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의 현재의 모습이, 그리고 미래의 모습이 다 이렇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6월 한달 동안 우리는 “복”을 주제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연약한 인생을 돌보시고, 복 받고 행복한 인생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참 좋으신 복의 근원 이십니다. 우리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다면, 나와 내 후손은 영원한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복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습니다.
내게 주신 복을 나도 누리고, 내 가족, 내 후손들도 영원히 누릴 수 있도록, 형통할 때 찬송하고, 곤고 할 때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 가십시오. “여호와여 주께서 나와 내 가족과 교회 위에 참된 복에 복을 풍성하게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겠습니다” 다윗의 이 기도가 우리의 간절한 기도문이 되어서, 천대, 만대,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아가시는 은혜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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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당장의 복을 구하다가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놓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주옵소서. 형통할 때 찬양하고, 곤고 할 때 기도하게 하셔서, 영원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복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