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림 스님과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은 94년 종단개혁 불사를 할 때였다. 당시 기자는 스스로 ‘종군기자’라고 칭하며 개혁의 현장을 종횡무진 취재하고 다녔다. 개혁불사 과정에서 겪었던 숱한 어려움과 난관들을 뚝심으로 헤쳐나가는 개혁불사의 선봉 효림 스님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당시 기자가 효림 스님에 붙여주었던 별칭이 ‘야전사령관’이었다. 94년 종단개혁불사를 이루는 동안 효림 스님과 기자는 숱한 비화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개혁불사 성공 이후 잠시 종단의 요직을 거친 스님은 다시 야인으로 돌아갔다. 야인으로 돌아갔을 때, 기자는 수구암에 주석하던 스님을 만나 장문의 인터뷰 기사를 <유심>지에 게재했던 적이 있다.
<맨발로 오신 부처님>을 펼쳐보고 있는 효림스님.
당시 “글 잘 쓰던 스님들은 다 주지하고, 정치하고, 다른 일을 하느라고 바빠서, 할 수 없이 나처럼 문재가 부족한 사람이 글을 쓴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 효림 스님은 시인이 되었다. 설악사 무산오현스님으로부터 시를 쓰라는 ‘명령’을 받은 후 시승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전에 이미 몇 권의 수상집을 펴내 이름을 알렸던 스님이기에 설악산 큰스님이 그의 감춰진 문재를 파악했던 것 같다.
이후 스님은 2002년 <유심) 봄호에 ‘한 그루 나무올시다’ 등의 작품을 출품하며 신인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스님을 만난 것은 만해축전이 열리는 백담사와 만해마을 등 문학행사장에서였다.
이후 성남 봉국사 주지로 거처를 옮긴 스님이 어느 날 절에서 내쫓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94년 종단개혁불사로 새롭게 체제를 개편한 조계종단에서 개혁불사의 선봉에 섰던 스님을, 이런저런 이유로 내쫓았다는 소식에 기자는 혀를 찼다. 태생도, 역사도, 최소한의 고마움도 모르는 사람들이 종단을 운영하고 있으니 조계종의 모습이 참 딱하지 않은가.
<유심> 출신 시인들의 모임에서 스님이 충청남도 어느 곳에 땅을 사서 가건물처럼 절을 짓고 산다는 소문을 들은 후로는 영 소통을 못하던 차에, 문든 스님이 조계종출판사에서 책을 펴냈다는 전갈을 받았다. 조계종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에, 옛날 서암 종정스님처럼 스님이 조계종을 떠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출판사가 주선한 스님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오랜 만의 해후를 했다. 반가움을, 그리고 서로의 모습에 많은 세월이 흘렀음을 스님과 맞잡은 손을 한동안 놓지 못하는 것으로 주고받았다.
효림 스님이 펴낸 책의 제목은 <맨발로 오신 부처님>이다. 부제로 ‘시(詩)로 읽는 부처님 일대기’가 붙었다. 그동안 무엇을 하고 지내셨나 했더니, 시로 부처님 일대기를 쓰고 계셨던 것이다. 조계종출판사는 이 책에 대해 “언어의 체로 거르고 거른 우주 진리의 말씀, 걸림없는 맑은 바람처럼, 시로 오신 부처님!”이라는 찬사를 붙였다.
책을 살펴보았다. 때론 간결한 시로, 때론 짧은 에세이 같은 서사시로 부처님의 일생을 특유의 푸근하고 구수한, 그러면서도 깊은 함의가 깃든 문장으로 스님은 그려내고 있었다. 꽤 두툼한 이 책은 말 그대로 한편의 부처님 일생을 그린 대서사시였다.
니디!
염려하지 마라
나의 법은 맑은 물
세상의 온갖 더러움을 능히 씻어 내리니
어찌 너인들 깨끗하게 해 주지 못하겠느냐
니디!
너의 신분은 수다라 가장 낮은 계급
너의 직업은 똥을 푸는 사람
그러므로 세상을 가장 깨끗하게 하는 사람
자 망설이지 말고
내 손을 잡아라
나와 같이 강가로 가자
강물로는 너의 몸에 똥물을 씻고
내 법으로는 너의 업보를 씻어 주마
그리고 너와 나는 같은 길을 가는 벗이 되자
‘똥을 푸는 니디’라는 제목의 이 시는 그 유명한 똥군 니디를 교화한 부처님의 이야기이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부처님께서 보여주신 이 장면은 파격적이다. 모든 차별을 벗어버린 부처님이시기에 가능한 행이 아닐 수 없다. 효림 스님은 이 장면을 시로 적으며 가슴이 먹먹했다고 술회했다.
책을 읽으며, 21세기 한국판 ‘불소행찬’이 탄생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불소행찬>이란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 600년 후에 마명 존자가 부처님의 일대기를 서사시로 쓴 고대 인도문학의 고전이다. 효림 스님의 이번 책 <맨발로 오신 부처님>은 현대판 불소행찬으로 평가해도 손색이 없다. 역사적 순차에 따라 부처님의 일생과 가르침을 기술하면서도, 불제자로서 교조에 대한 찬탄과 감동이 시구에 절절하게 배어 있다.
특히 각 시편마다 각주를 달아, 2500년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현재의 상황에 맞게 해설하는 친절함을 빼놓지 않았다. 보통 각주가 달리면 딱딱한 논문을 연상하지만, 이 책의 각주는 효림 스님 특유의 구수하고 친절하며 자상한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올해로 출가 43년을 맞은 효림 스님은 현대 한국불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이다. 조계종의 개혁종단을 건설하는 데 효림 스님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그를 조계종단은 무자비하게 내쳤다. 내친 이유가 그가 걸어온 길이 좌파에 가깝고, 현 정권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그리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권력에 빌붙어 이해나 따지는 졸렬한 권승들의 짓이라면 준엄한 인과를 받게 될 것이다.
그래도 효림 스님은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너털웃음 뒤에 배인 서운함이 아주 가시지는 않은 듯하다. 부디 그 서운함을 21세기 판 ‘불소행찬’ <맨발로 오신 부처님>으로 녹여낸 것처럼, 아름답고 깊이 있는 시와 저술로 풀어내는 동력으로 승화시키시기를 바란다.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