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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화 체육복을 읽는 아침 14. 흰자위가 슬픔을 불러오는 걸까 240704
흰자위가 보일락말락 할 만큼 작은 눈구멍. 작은 단추 같은 눈구멍을 꽉 메운 까만 머루 같은 눈망울. 그 밑으로 눈동자의 부스러기가 잔뜩 떨어진 듯한 주근깨 무리. 아래쪽으로 내려올수록 두툼해지는 살집 붙은 얼굴. 윗입술보다 아랫입술이 살짝 더 튀어나와 꽤 고집스럽게 보이게끔 앙다문 입술. 세상을 빼꼼 내다보고 있지만 누가 살짝 건드리기라도 하면 달팽이처럼 제 집 속으로 쏙, 하고 숨어버릴 것만 같았던 효은이의 첫인상이었다.
효은이가 어릴 적에 이혼한 아버지는 같은 도시의 다른 동네에 새 가정을 꾸렸고 새로운 아이들도 여럿 태어났다. 시나브로 효은이는 그 집에 있는 것이 어색한 천덕꾸러기가 되어갔다. 저도 자신에게 붙은 그 딱지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그랬는지 때마침 찾아온 사춘기를 정통으로 맞으면서 인위적으로 엄마라고 불러야 했던 그분과 좋은 사이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그래야만 했다는 듯이 그 가정 밖으로 밀려나 시골에 홀로 사시는 할머니에게로 보내졌다.
고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당연히 효은이는 가장 가까운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학생들을 전국적으로 모집하는 다른 특성화 고등학교가 인근에 있었지만, 하루에 몇 대 다니지 않는 버스로는 도통 통학이 어려웠던 탓에 그리로 가는 것이 어렵기도 했다. 그렇게 입학하게 된 학교가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였다면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어울려 지내다가 그럭저럭 성적에 맞는 아무 대학이나 가서 또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학 대신 취업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는 아이들 가운데서 효은이는 오히려 도드라져 보였다. 적성에도 안 맞는 전공과목들의 성적이 낮은 것은 물론이고, 교통은 불편해도 거리상으로는 집이 가까우니까 기숙사에도 들어가지 못해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도 더욱 갖기 힘들었다.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는 것을 보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지만 때때로 아이들은 깊숙이 숨겨둔 잔인함을 내보일 때도 있다. 사회생활에 닳고 닳은 어른들만큼이나 아이들도 그들 사이의 관계에 있어 누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경쟁할 만한 사람인지, 또는 손절해야 할 사람인지 기가 막히게 파악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을 여과 없이 표출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사랑과 꿈이 가득한 에버랜드로 가게 된 첫 현장 체험학습. 한두 달쯤이면 아이들은 어느 정도 관계를 맺고 서로 집단을 형성한다. 특히 여학생들은 그 집단을 그룹 또는 무리라고 일컬으며 상당한 소속감을 갖는다. 한 학급을 일 년 동안 꾸려가야 하는 담임 교사의 입장에서는 이런 현장 체험학습을 갈 때 구성원들을 막 섞어서 그룹의 고착화를 저지하고 어색한 친구들과의 강제적 교류에서 뜻밖의 즐거움을 얻게끔 시도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사람의 관계라는 걸 그렇게 의도적이고 강제적으로 만들려고 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느끼게 되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꿈과 희망의 나라에서 친한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담임의 말을 잘 듣는 것보다 그들에게는 훨씬 중요한 일이었다는 것도.
꿈과 희망의 나라에 입장권을 보이고 들어서자마자 효은이는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와 같은 조인 다른 아이들은 담임이 억지로 묶은 울타리를 우습게 뛰어넘어 제가 친한 아이들과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효은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담임의 전화번호를 누른 채 신호음을 들으며 말없이 서 있는 것뿐이었다. 헐레벌떡 달려가 마주 본 효은이의 얼굴. 흰자위가 슬픔을 가져오는 원인이라고 여기는 듯 슬플 때는 유난히 까만 눈동자로만 더 가득 차 보이는 얼굴, 제 방 안에서 홀로 숨어 울었을 시간만큼 훌쩍거리는 소리조차 스스로 거센 듯이 일그러진 주름조차 없이 그저 홀로 떨어져 내리는 굵은 눈물방울, 방울.
학급에 있는 아이들 모두가 두루두루 잘 지내기를 바라는 것은 그저 담임을 비롯한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욕심이다. 아이들은 서로 무척이나 다르고 그래서 그것을 확인하고 인정하고 맞춰가는 곳이 학교다. 학교는 그것을 사회에서보다 안전하게 연습할 수 있는 곳이다. 물론 그것에 실패하고 상처받았을 때 교사와 특히 부모의 지지로 극복했을 때 아이는 한 단계 성숙하게 되지만 그 둘 중 무엇이라도 부족하게 되면 아이가 성장하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된다. 효은이가, 그랬다.
하필 꿈과 희망의 나라에서 자신이 친구들로부터도 밀려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던 그날, 안타깝게도 효은이의 곁에는 겁이 많아서 놀이기구도 제대로 못 타는 담임이 있었고, 그래서 어린아이들이나 타는 꼬마 기차나 타야 할 뿐이었다. 사실 그날 효은이의 곁에 있었던 건 잘 놀 줄 몰라서 그냥 같이 있어 줄 수밖에 없었던 서른두 살의 아저씨가 아니라, 뚱뚱하고 아는 척 많이 해서 재수 없다고 친구들에게 따돌림받았던 한 초등학생이었다는 걸 효은이는 알고 있었을까.
씁쓸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지만, 학교는 다시 이전과 같았다. 아이들은 저마다 각자의 자격증을 따기 위해, 좋은 내신 성적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거기에 맞게 학교는 언제 현장 체험학습을 다녀왔냐는 듯 빡빡한 스케줄로 돌아갔다. 그런 만큼, 효은이가 여기저기로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같은 반 아이가 쓰던 립글로스를 교실 뒤편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바르는 일. 몇 개 먹다 남긴 뽀또를 제 것인 양 먹는 일. 학교 앞 문구점에서 오늘 짝꿍이 등굣길에 새로 산 샤프와 지우개를 제 필통에 집어넣는 일, 뭐라고 하기도 힘든 사소한 것들이지만 뻔히 다 알고 본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딱 잡아떼는 효은이의 행동에 아이들과 효은이의 마음속 거리는 메우기 힘들 만큼 벌어져갔다.
증거가 없으니, 효은이를 범인으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고 애써 외면하던 담임과 담판을 짓겠다며 여자아이들 몇이 나를 찾아오고 난 다음, 효은이의 할머니가 학교로 오셨다. 립글로스와 머리핀과 필기도구를 변상해 주겠다며 몸빼바지 속 꼬깃꼬깃 접어둔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시려는 것을 애써 눌러 잡았다.
“할머니, 학교에 그런 돈 다 있어요. 할머니가 변상 안 해 주셔도 돼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이구 선생님 고맙습니다. 얘들아, 할머니가 대신 사과할게. 효은이가 외로워서 그래. 어렸을 때부터. 너희들이 마음 넓게 이해해 주길 할머니가 이렇게 부탁한다.”
에버랜드에서의 그날처럼 할머니 곁에 앉아 무심하게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던 효은이와 뜻밖에 할머니로부터 사과를 받은 당사자 아이들은 몸 둘 바를 몰라했다. 그날의 일 때문에 그 자리에 있었던 아이들은 또다시 반복되는 효은이의 행동에도 앞장서 바람막이와 버팀목이 되어 주려 노력했다. 나도 그들을 더 끈끈히 묶어주려 데리고 나가서 밥도 사주고, 다이어리도 사서 안기며 교환일기도 써보라며 권했다. 하지만 나의 시도도, 그 아이들의 마음도 효은이의 마음을 녹이는 데까지는 가 닿지 못했던 것 같다.
지각이 점점 잦아지니 내가 출근길에 효은이의 집까지 가서 학교로 데려오기도 여러 번이었다. 포장된 도로가 끊기고 흙과 자갈이 얼기설기 섞인 울퉁불퉁한 길을 차로 3분 남짓 더 올라가면 효은이의 집이 있었다. 그야말로 시간이 60년대에 멈춘 듯한 그 집. 축사였던 듯 보이지만 지금은 자주 쓰이지 않는 농기구들이 처박힌 헛간. 그 헛간 한쪽 기둥에 매어진 누렁이가 핥아먹다 남긴 개밥이 들어있는 찌그러진 스테인리스 그릇.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밥을 지었을 것 같은 아궁이 위의 귀퉁이가 깨진 가마솥. 그 아래 채 다 꺼지지 않은 불씨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비 맞고 바람맞아 이리저리 뒤틀린 대문 간의 나무 기둥. 그 기둥 사이로 보이는 방 두 칸 중에 효은이의 방은 왼쪽일까 오른쪽일까, 고민했을 나를 내리누르는 시골 측간의 문득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냄새.
지각이 점점 많아지니 조퇴도 많아지고, 며칠 걸러 한두 번씩 결석도 늘어갔다. 매번 전화하고 데리러 가는 것도 점점 지쳐가니 나 역시 못 이긴 척 학교에 오지 않아도 좋다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내가 그 답답한 마음 전부 다독여 줄 수 없고, 학교에 의미 없이 앉아 있는 게 그리 힘들면 바깥바람이라도 쐬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등교 시간을 조금 넘긴 시각, 효은이 할머니에게 먼저 전화가 왔다.
“아이고 선생님. 애가 집엘 안 들어와요. 시내로 친구 만나러 간다고 하고 나가고는 연락이 없어요.”
“할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 저도 연락해 보고 친구들 통해서도 알아볼게요.”
간간이 페이스북에는 접속하지만, 전화를 받지는 않는 상태, 가출이었다. 용돈도 떨어져 사는 아빠에게 어쩌다 한번 받는 애가, 빈혈이 심해서 어디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기 힘든 애가 대체 어딜 가 있는 건지. 실종 신고를 해야 빨리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할머니께 경찰에 연락해 보실 것을 권했고, 곧 그 아이는 동서울터미널 근처의 찜질방에서 꼬리가 밟혔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동서울로부터 돌아오는 그 아이를 만났다.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 아이를 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갔다. 그 웃음이 담임 선생이나 할머니에 대한 미안함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의도한 바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에 가까웠다는 걸 그 학기 내내 반복해서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찜질방 대신, 온라인에서 만난 매번 다른 애인들의 집에서 묵는다는 것이 바뀐 부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애인들이 모두 여자여서 적어도 임신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좀 덜 된다는 것이었다. 가출한 애를 두고 그나마 애인이 여자라 임신을 안 할 확률이 높다는 것에 안도해야 한다는 이 비현실적인 상황.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밀려나기만 하던 이 아이를 할머니와 담임 선생이 아이의 옷 끝자락 하나 겨우 붙잡고 있는데 심지어 애인을 만나는 것조차 평범하지 않으니, 이제는 타인이 아니라 본인이 세상을 밀어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출(出) 것과 귀(歸)의 반복은 아이가 한 살을 더 먹으면서 잠잠해졌다. 같은 반 친구들은 이 공기업 저 공공기관에 거듭해서 지원하고 전형 준비를 하느라 난리법석이었지만 반대로 효은이는 더욱 조용히 가라앉았다. 어항 속에서 쉼 없이 움직이는 물고기들의 배경으로 그들이 일으키는 물결에 따라 그저 흔들리는 물풀 같았다. 그렇게 거의 가을에 접어들 무렵, 효은이에게 취업을 나갈 기회가 왔다.
학교로부터 차로 두 시간쯤 가야 하는 경기도 남부에 있는 어느 공장의 생산직 자리였다. 어디에서도 자신을 반겨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비록 단순한 작업이지만 스스로의 노동으로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단초가 될 자리를 발견하게 되자 그 얼굴에 꽤 오래 보지 못했던 생기를 피워올렸다. 공장장님의 앞에 나와 함께 앉은 효은이는 쑥스러워하며 그의 물음에 대답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대변인인지, MC인지 모르겠지만 아이 대신 대답하고 평소보다 두 톤쯤 높은 웃음을 애써 흩뿌리며 아이를 떼어놓고 돌아 나오며 역시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고,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고 조금은 들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들뜸이 사라지는 데는 채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이틀이 지난 오후, 공장의 인사담당자라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전화.
“채용 신체검사를 했는데 악성 빈혈이랍니다. 오랫동안 서서 작업해야 하는데 도저히 안 될 겁니다. 애도 착하고 너무 아쉽지만 지금 당장은 채용이 어렵겠습니다. 선생님.”
다시 두 시간을 거슬러 달려 도착한 공장 사무실 문 앞에 효은이가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차라리 날 보고 서럽게 울었으면 좋으련만 언제나처럼 아랫입술로 윗입술을 덮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서로 공수표인 것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빈혈이 낫거든 꼭 좀 저희 효은이 부탁드립니다. 과장님 또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소릴 거듭했다.
“야야, 효은아. 회사가 여기밖에 없냐. 니가 갈 수 있는 자리가 또 많을 거야. 걱정 말고 또 찾아보자. 좋은 자리 찾아서 돈 벌어서 할머니 편하게 모시기로 쌤하고도 약속했잖아.”
애써 쾌할하려 했지만, 우리의 대화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늦은 밤 도착한 그 아이의 시골집에는 예의 그 암모니아 냄새가 났다. 다만 예전보다는 꽤 시끄러웠는데, 키우던 개가 애비가 누구인지도 모를 새끼 다섯 마리를 낳은 것이었다. 아무리 새하얗고 내 주먹만큼 앙증맞은 녀석들이라도 자신이 주인과 그 집을 지키는 개라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을 아는 듯 처음 보는 나를 보고 제법 카랑카랑하게 짖었다. 효은이가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 마치 내 탓인 것만 같아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지만, 등을 돌리고 나오기가 민망하여 들어온 그 길을 후진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걸릴 것이 없는 흙길에서 차 뒷바퀴가 돌부리를 하나 타넘은 듯 한 번 덜컹했다. 그런데 돌부리의 질감이 좀 달랐다. 타이어 아래서 난 소리도. 뭘까 싶어 내려 본 차 아래에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파르르 떨고 있는 하얀 강아지 새끼 한 마리. 어쩔 줄 모르고 황망해하는 내게 할머니는 무심한 듯 허망한 듯 말씀하셨다.
“어쩌겠소. 제 팔자인 게지. 어서 가세요, 선생님.”
그 뒤로도 효은이에게 몇 군데의 자리를 제안했지만, 아예 가지 않거나 면접을 통과하지 못했다. 결국 효은이는 아무 곳에도 취직하지 못한 채 졸업을 맞았다. 3년 동안 제 밥벌이를 할 만한 수단을 갖도록 해 주지 못한 것이 죄스러웠지만, 가족 대표로 졸업식에 홀로 오신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셨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 효은이가 고등학교라도 졸업했소.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내 손에 억지로 쥐어 주셨던, 당신이 직접 농사짓고 거두어 기름을 짜신 들기름 한 병. 견뎌주어서 고맙다고 내가 졸업 선물을 주어도 모자랄 것을 무엇이 고맙다고 도리어 선물을 주시는 그 마음을, 아직도 나는 받기에 송구하고 면구스럽다. 들기름과 할머니와 나를 번갈아 보던 효은이는 덕분이라는 말을 길지고 짧지도 않게 남기고 학교를 떠나갔다. 다만, 그 표정은 분명히 후련해 보였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렇게나 취직을 해서 떠나고 싶다던 그 낡은 집을 떠나서 살고 있을까. 간호사가 되어서 할머니 고생 그만하시게 하겠다던 효은이는 지금, 어디서 흰자위와 슬픔을 지워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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