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로 들여다 본 사찰 38. 석조(石槽)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0호 보은 법주사 석조.
물을 채워두거나
곡물을 씻는 통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보은 법주사를 찾은 초보불자 김모 씨. 그는 커다란 석조물을 보고 놀랐다. 처음에는 규모를 보고 스님들이 사용하던 야외목욕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안내판을 보고서야 일종의 물통이라는 데 다시 한 번 놀랐다. 얼마나 많은 대중이 사용했기에 이렇게 큰 물통이 필요했단 말인가.
절터나 화재로 여러 번 중창한 사찰의 경우에도 남아 있는 옛 흔적으로, 그 당시 절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유물 가운데 하나가 석조다.
석조는 큰 돌을 파서 물을 채워 두고 쓰거나 곡물을 씻는 일종의 돌로 만든 통이다. 주로 사찰이나 궁중, 상류층 가정에서 사용했다.
보은 법주사에는 720년(성덕왕 19)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0호)가 있다. 석조는 높이 130㎝, 길이 446㎝, 너비 240㎝, 두께 21㎝의 대형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쌀 80가마를 채울 수 있다. 법주사가 번창해 3,000여명의 스님들이 모여 살 때 물통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석조는 바닥에서 맨 위에 이르기까지 4벽이 수직을 이루고 있으며 안팎에는 아무런 문양이나 장식이 없어 단조로운 모습이나 윗면의 가장자리를 경사지게 깎아내어 모각이 없게 했다.
벽체의 두께도 다르게 해 긴 쪽은 23㎝, 짧은 쪽은 34㎝로 해 수리적인 비례와 균형을 잃지 않도록 배려했다. 남쪽 벽 바닥에는 지름 11㎝의 구멍이 있어서 실제 용구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모서리 일부에 약간의 파손을 제외하고는 거의 원형으로 남아 있다.
영암 도갑사 석조처럼 ‘강희 21년 임술(1682년)’이라는 조성 연대가 새겨져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석조는 정확한 그 시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서산 보원사지 석조는 보물로 지정돼 있다.
출처 : 금강신문(https://www.ggbn.co.kr)
[출처] 돋보기로 들여다 본 사찰 38. 석조(石槽)|작성자 안동처사 택전 윤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