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민의 늪
나는 어렸을 때 손이나 발을 씻는 것이 끔찍하게도 싫었다. 하기야 6.25 전후에는 목욕탕이라는 말도 들어본 일이 없다.
겨울에는 얼굴만 고양이 세수를 했고 손이나 발은 씻는 척만 해서 때 가끼고 피부가 터질 지경이었다. 여름에는 우물가에서 가끔 목욕을 하고 냇가에 가서 때도 밀었다.
그것마저 하지 않았더라면 때투성이가 되어 드디어는 병에 걸려 죽었을지도 모른다.
씻지 않으면 때가 끼기 마련이다. 거울을 닦아주지 않으면 먼지가 낀다. 기계도 똑같다. 자주 쓰고 손보지 않으면 녹이 슬어 망가지고 만다.
사람의 생명은 마음이다. 우리는 흔히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을 한다. 그렇다. 어떤 삶을 사느냐 하는 것도 역시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러나 마음먹기가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
마음먹기가 어려워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연민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불경에 보면, 죄 많이 지은 사람이 길고 긴 가느다란 거미줄을 타고 멀고도 먼 극락에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는 장면이 나온다. 마음먹기가 어려워 우리는 모두 끊어질 듯한 거미줄을 타고 바둥댄다. 거미줄은 번민의 늪이다.
매사에 무분별한 어린시절을 지나면 누구나 옳고 그릇된 것은 안다. 그렇지만 마음먹기가 그렇게도 어렵다.
"에라 모르겠다. 이번만 넘기면 나도 마음먹고 살아야지. 정말이야. 꼭 한 번만 지나면 다음부터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거야."
거울에 먼지가 낀다. 이번에는 닦지 않지만 다음에는 꼭 닦겠다고 다짐해도 또 닦지 않게 된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고 거울은 썩어서 삭아버리고 만다. 맑은 거울을 보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늦어버렸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수시로 닦지 않으면 마음은 번민의 때로 얼룩지고 드디어는 어쩔 수 없는 번민의 늪에서 신음하게 된다.
마음을 무엇으로 닦을까? 마음에 스며든 번민의 늪을 무엇으로 지워버릴 수 있을까?
번민의 늪, 욕망의 그림자, 이기심의 불길을 소멸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역시 사랑의 힘이다.
사랑은 결코 받는 것이 아니다. 받으려는 마음은 이기심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사랑은 자신의 생명을 주는 것이다. 한 사랑이 자기의 생명을 줄 때 해결할 수 없는 일이 과연 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된다. 배울 줄 모르고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로만 이 세상이 가득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지옥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