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한 자리를 다듬는 작업치고 의외로 간단한 채비다. 익힌 솜씨도 웬만큼 숙달된 터니 염색체와 일회용 장갑에 비닐 덮개 한 장이면 충분하다. 무슨 공예 작품 손질이 아니라 원색을 잃어버린 새치 머리에 염색을, 하는 일이다. 휑하니 빠져나간 시간의 흔적을 어루만지는, 심적이면서 미적인 작업이라 해 둘까.
사람이 지닌 가장 패셔너블한 것 중 하나가 머리카락이지 싶다. 머리의 모양이나 색깔에 따라 이미지가 확 달라진다. 각양으로 표출된 헤어 패션을 봤으리라. 미적 감각을 타고난 여성들에게 머리카락은 자유자재한 변신의 아이콘이다. 어깨 뒤로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 롤링 파마, 볼륨 파마 등 이름에서 혀부터 꼬부라드는 파마머리, 우아한 올림머리, 싹둑 친 커트 머리, 머리 모양은 새로운 기분까지 일으켜 준다. 외모적 변화에 자타(自他)의 마음 자락을 끌어당기는 헤어 스타일의 영향력으로 머리카락은 이미지와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한다.
생긴 대로 살기보다는, 사는 대로 생겨진다는 요즈음이다. 이미지는 은근한 경쟁력 아닌가. 아무리 눈부신 의상도 헤어 스타일을 젖혀 놓고서야 패션의 역할을 다할 수 없다는 것쯤 모르지 않는다. 그러기에 ‘센스쟁이’들은 머리 단장에 시간과 돈을 과감히 투자한다. 보다, 고아하게 샤프하게 이지적이게, 때론 에로틱하게, 따져 보아도 사람의 인상을 좌우하는 데는 헤어 스타일만 한 것이 없기에, 머리카락은 패션의 시작이면서 완성이며 자존심일 수도 있다.
여자에게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열망은 시대를 초월하며 나이도 상관없다. 내 어릴 적 곤궁한 시절에도 어머니는, 설날과 추석이면 ‘뽀글 파마’를 하셨다. 그때 어머니를 따라간 동네 미장원에서 후끈대는 쇠 집게의 열기를 견디며 기어이 했던 불 파마는 내 헤어 패션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조그만 계집아이가 얌전히 묶어 준 엄마표 머리에 자주 까탈을 부렸을 만큼, 미적 애착은 당초 여자의 본성이며 자기표현이었다.
사는 일이 눈물겹거나 허허한 날, 나는 헤어 스타일로 깜짝 변신을 시도한다. 옛날의 금잔디 동산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는 세상을 박차고 나가 무한 창공을 날아 볼 수도, 물처럼 흐를 수도 없는 처지에, 머리를 부추겨 삶을 추슬러 보는 거다. 눅눅한 기분을 싹둑싹둑 ‘커트’하거나 로맨틱한 ‘볼륨 파마’로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을 달래도 보고 머리에 색깔을 입혀 변화를 기대해 본다.
하지만 삶이 그리 고분고분 따라 주던가. 풍경 소리도 외로운 산사에서 가끔 마주치는 여승에게선 소슬한 바람 냄새가 났다. 세속의 색깔들을 삭제한 무채색 승복보다. 파르라니 깎아 버린 맨머리가 더욱 속을 파고드는 것은, 머리에 대해 유난한 마음 때문일까. 여자 아닌 한 여승으로서의 삭발은 ‘머리를 깎는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타고난 본성과 애욕마저 무명초인 듯 자르고 떨쳐 버린다는 각인이기도 할진대, 머리카락에는 숱한 사연의 생성 과정이 담겨 있다.
생의 봄날엔 차랑차랑 흔들리는 여자의 머리카락에서도 찬란한 인생이 물결친다. 숯검정 색으로 뻗쳐 오르는 남자의 머리카락에는 불끈대는 청춘이 있다. 구약성서에 ‘삼손’의 힘이 긴 머리카락에서 나왔다고 한 것을, 보면 머리카락에는 힘이 생멸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들어 있다. 빛나는 어제와 심란한 내일을 내포한 채 시나브로 변해가는 머리카락은 그 힘의 간격마저 일러 준다.
몸의 칠십 퍼센트가 물이라면서 몸의 부호들은 왜 퍼석해 가는지. 탄력적인 생머리를 살짝만 흔들어 주면 넘치는 자신감인 양 윤기 자르르하던 머리카락이 푸석푸석, 색깔조차 희끗하게 날려 버릴 땐 가슴 한쪽도 숭숭 구멍이 난다. 허하다. 아직도 물관을 타고 감성에 젖어 들어 출렁이며, 감상에 빠져 일을 그르친다는 시인의 말처럼 나 또한 그러하건만. 수지부모(受之父母)한 신체발부(身體髮膚)라 살피고 살핀다 해도 거침없는 시간 위에서라면 생은 애잔하다.
쏜 살이라 하였나. 상긋한 풀 향기에 꽃빛 아롱다롱했던 내 봄날과 꽃다운 나이 다 빼먹어 버리고도 ‘언제 그랬어?’ 시침 뚝 떼는 수상한 시간 들. 정체도 불명한 얄궂은 흐름에 속절없이 빠져나간 것들이 서럽다고, 부려 놓은 자국이 아리다고, 주저앉기엔 세상은 사무치도록 눈부시다. 제 색깔을 날려 버린 애련한 자리를 감쪽같이 메워서라도 자신을 찾고픈 음모가 고개를 치켜든다. 그 야심 찬 걸작 중 하나에 염색 머리가 있다.
염색은 빛깔을 찾아 주는 일이다. 여자들이 색색의 화장품으로 봄빛 얼굴 단장을 한다면, 염색 머리는 원색으로의 희귀를 갈망하는 색채 화장일 테다. 몸의 부호들이 품었던 난연 하면서도 진하고 선명한 빛을 기억해 보라. 절정을 향해 뜨겁던 계절을 떠올려 보라. 뜬금없는 여백 앞에 바람 한 점 까딱 않는 가슴일 수 있는가.
희끗희끗한 머리에 염색을 서두르는 데는 주술 같은 것이 깃들어 있다. 섣불리 놓고 싶지 않은 자존심, 자신감, 아니 건조한 시간까지 손바닥 뒤집듯 가뿐히 채색하겠다는 반전의 마음 다짐일 수 있다. 알싸한 세월의 모퉁이를 돌아 나온 자들이 꿈꿔 보는 잃어버린 시간 찾기이거나, 애달픈 생의 문장에 새겨 넣어 보는 한 꼭지 부호이면 어떠리. 무색무취, 무미건조는 삶의 기호가 아닌 게다.
여자는 오늘도 거울 앞에서 연출을 시도한다. 고락을 함께한 몸의 부호인 머리카락에 색깔을 입힌다. 숙련된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화장술로 개성을 살리되 최대한 내추럴하게, 너무 어둡지도 경망스럽지도 않은 명도와 채도의 갈색 톤을 입혀 준다. 안쓰러움을 다독인 자리에 주춤거리는 희망을 한사코 부풀려 꼼꼼히 바르고 가볍게 덧 바른다. 그러고도 온전히 스미도록 한참을 뜸 들인 후, 지금 막 은밀한 회심작 한 편을 완성한다.
거울 속에 서 있는 여자.
자연스런 갈색 머리가 디시금 시간을 일으켜 세운다. 애초롬한 그녀, 실은 푸석한 몸의 부호들뿐 아니라 뼛속의 바람까지 보듬어야 하건만 자신을 까무룩 속인 여자. 아득한 계절을 건너오는 봄바람 소리 들리는 듯, 꽃 향이라도 품을 듯이 사뭇 의미심장한 미소를, 저 발끈한 개화(開化)를 누가 알기나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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