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차를 타는 것을 좋아한다. 좁은 공간에 서로 무릎을 맞대고 앉아서 천천히 같은 속도로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간다. 발아래의 풍경이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한다. 곤돌라 속 공기는 서로가 내뿜는 날숨으로 조금 더워진다. 볼이 빨개지는 것만 같고, 숨이 가빠오는 것만 같고, 괜스레 조금은 무섭다며 너스레를 떨다가, 우아-하고 탄성을 지른다. 너와 내가 있었던 곳이 바로 저곳이라고, 우리 함께 사는 세상이 발아래에 있다고. 가슴이 담뿍 벅차오른다. 수많은 사람들 중 수많은 사람들 속에 우리가 우리로 만났다는 것에. 가장 높은 곳을 지나, 다시 지상으로 천천히,처음과 같은 속도로 내려온다. 서서히 익숙한 풍경이 돌아오고, 나도 모르게 전보다 더 세게 그녀의 손을 쥔다.
대한민국에서 관람차를 탈 수 있는 곳은 손에 꼽을 것이다. 롯데월드에서는 공중 열기구로 대체되어 있고, 에버랜드의 경우 사람이 탑승하도록 운영되지는 않는다. 이제 관람차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오래된 놀이동산뿐이다. 더 이상 새로운 놀이동산은 생기지 않는다. 점점 더 강렬한 자극을 원하는 사람들은 관람차 같이 시시한 것에는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고, 낭만을 위해 모험을 감수할 기업도 없다. 굳이 비비탄이 든 사격을 하지 않아도 게임으로 실감나는 전투를 할 수 있고, 엄청난 레일을 깔지 않아도 4DX 시뮬레이터로 롤러코스터와 유사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쓸데없이 크고 온화하기 만한 관람차가 서 있을 자리는 그렇게 점점 사라져간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곳을 찾는다. 형형했던 원래의 색이 바라고, 칠이 벗겨지고, 조금씩 삐걱대는 곳의 천천히 흐르는 시간이 좋다. 오랫동안 누군가의 즐거움이 묻어 있는 곳에서는 켜켜이 쌓인 시간만큼의 편안함이 밀려온다. 결국에는 홀쭉해질 헬륨풍선, 순식간에 질려버릴 장난감들, 설탕일 뿐인 솜사탕을 욕심냈던 시간들이 천천히 밀려온다. 관람차가 돌아가는 속도로 천천히. 오래전 엄마가 내 손을 놓는 것을 불안해했던, 엄마의 손을 놓는 게 세상을 잃어버리는 거였던 그때로, 아주 천천히. 키가 크기만을 바랐던 아주 작은 꼬마로 돌아가는 느린 주문.
부산 광안리에는 커다란 관람차가 있었다. 해변에 앉아 파도소리를 들으며 관람차를 한없이 바라봤던 스무살의 나도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함께 타야지, 천천히 하늘을 가로질러야지, 그러다 무서우면 뽀뽀를 해야지. 짝사랑뿐이라 쓸쓸했던 마음에 파도처럼 따뜻함이 밀려왔던 건 그 순간이었다. 관람차에 매달린 작은 곤돌라 하나하나마다 추억이, 사랑이 그 순간에도 피어오르는 것만 같아서, 이 바닷가에 살게 된다면 오랫동안 저 관람차를 보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이제 관람차는 없다. 작은 놀이동산은 폐장해버렸고, 그 자리에 호텔이 들어올 거라고 했지만, 아직까지 진척없이 문은 굳게 닫혀 있을 뿐이다. 짠바람을 맞으며 나는 종종 관람차가 있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본다. 내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봤던 풍경, 눈앞의 그녀, 같은 공간 안에서 무수히 피어올랐을 사랑들을 떠올린다. 추억할 매개체가 사라진 빈자리에서 좀처럼 시선은 떨어지지 않고, 오늘 나는 너무도 빠르게 흘러가는 지금의 속도가 조금은 원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