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야, 가다가 막히면 뒤돌아 보아라!"
-엄마는 네가 가다가 지치고 힘들 때 뒤 돌아보는 시선이 머무는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채근담을 근거로 해서 수필집을 낼 때 제목 아래 단 문구다.
강지는 내가 아이들을 부를 때 쓰는 별칭이었다.
엄마로서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그냥 그렇게 믿고 뒤에서 지켜보는 일이었다.
앞서 끌어 주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가 아이들은 잘 자라서 저 넓은 곳으로 나아가 잘 이겨나가고 있다.
이제는 나의 손길이 필요하기 보다는 내가 아이들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아이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건강관리를 한다.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닌 살아 있는 그 순간 잘 살기 위해서다.
되돌아보니 참 아픈 세상이다.
12.3 실패한 게엄령 국민들은 또 무슨 저력을 버틸것인지
말 같지 않게 옹호하는 팀과
말같지 않은 사실을 넘기 위해 벌이는 몸싸움들이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안타깝다.
무정부상태에서 살아가는 우리 역시 불쌍하다.
정치를 한다는 인간들이 우리를 불쌍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12.29 항공기 사고 역시 참담하다.
모처럼 즐겼을 가족과의 여행
맨날 가는 것도 아니고 참 어렵게 즐거운 마음으로 나섰을 여행길이
마지막 여행길이 되었으니
안타까운 사연들도 많다.
내가 가장 근접하게 접한 슬픈 소식은 같이 일보는 이의 숙부가 그 비행기에 타고 계셨다가 변을 당했다는 것
화순군에 관련한 분들이 많이 희생되었다는 것이다.
마침 12월 31일 송광사에 갈 일이 있었다.
일을 보고 나오는데 초하루라는 것을 알았다,
초하루이니 대웅전에 삼배 하고가야지 했는데 법당에 분향소가 차려져 있었다.
초하루 법회가 끝나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화순에 지나다가 분향을 하고 갈까 했는데 송광사에서 하게 되었다.
내가 뭘 하든 달라질 것은 없지만 그냥 향이라도 피우고 분향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고 났다는 그 순간부터 광명진언을 외고 다닌다.
나의 기도의 파장이 영혼 하나라도 건질 수 있다면 장례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는 잊지 않고 하려고 한다.
특히 알지는 못하지만 3살 가장 어린 영혼을 위해!
2025년이 되었다.
새해 첫날 해가 떠 올랐으니 또 잘 살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