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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제12강 -1 (2011. 1. 31.)
大方廣佛華嚴經 往復序(대방광불화엄경 왕복서)5. 유인물
世主妙嚴品-八,師子座의菩薩-2,菩薩名(보살명)~
3,供養雲(공양운)
一心頂禮 盡十方三世(진시방삼세) 一切諸佛(일체제불)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일체존법)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일체현성승)
我弟子等(아제자등) 講論三藏(강론삼장) 唯願三寶(유원삼보)
爲作證明(위작증명)
南無本師釋迦牟尼佛(나무본사석가모니불)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無上甚深微妙法(무상심심미묘법) 百千萬劫難遭隅(백천만겁난조우)
我今聞見得受持(아금문견득수지) 願解如來眞實意(원해여래진실의)
삼배 올리고 입정하고 왕복서를 독송 하고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왕복서를 독송 하려고 스님이 이렇게 찍어가지고 법공양을 했으니까 지금부터 매번 한 번씩 읽고 강의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大方廣佛華嚴經 往復序(대방광불화엄경 왕복서)
唐 清涼山 大華嚴寺沙門 澄觀(淸涼國師)撰
(당 청량산 대화엄사사문 징관(청량국사)찬)
往復(왕복)이 無際(무제)나 動靜(동정)은 一源(일원)이라
含衆妙而有餘(함중묘이유여)하고
超言思而迥出者(초언사이형출자)는 其唯法界歟(기유법계여)며
剖裂玄微(부열현미)하고 昭廓心境(소확심경)하며
窮理盡性(궁리진성)하고 徹果該因(철과해인)하며
汪洋沖融(왕양충융)하고 廣大悉備者(광대실비자)는
其唯大方廣佛華嚴經焉(기유대방광불화엄경언)인저
故我世尊(고아세존)이 십신초만(十身初滿)에
正覺始成(정각시성)하사 乘 願行以彌綸(승원행이미륜)하시며
渾 虛空爲體性(혼허공위체성)하시니
富有萬德(부유만덕)이요 蕩無纖塵(탕무섬진)이로다
↑ 8강-1
湛智海之澄波(담지해지징파)가 虛含萬象(허함만상)이요
皎性空之滿月(교성공지만월)이 頓落百川(돈락백천)이로다
不起樹王(불기수왕)하사 羅七處於法界(라칠처어법계)하시며
無違後際(무위후제)하사 暢九會於初成(창구회어초성)이로다
盡宏廓之幽宗(진굉곽지유종)하사 被難思之海會(피난사지해회)
하시니 圓音落落(원음락락)에 該十刹而頓周(해십찰이돈주)하시고
主伴重重(주반중중)하사 極十方而齊唱(극시방이제창)이로다
雖空空絶跡(수공공절적)이나 而義天之星象(이의천지성상)이
燦然(찬연)이요 湛湛亡言(담담망언)이나
而敎海之波瀾(이교해지파란)이 浩澣(호한)이로다
若乃千門潛注(약내천문잠주)라 與衆典爲洪源(여중전위홍원)이요
萬德交歸(만덕교귀)나 攝群經爲眷屬(섭군경위권속)이로다
↑ 9강-1
其爲旨也(기위지야)가 冥眞體於萬化之域(명진체어만화지역)하고
顯德相於重玄之門(현덕상어중현지문)이로다
用繁興以恒如(용번흥이항여)하고
智周鑑而常靜(지주감이상정)이로다
眞妄交徹(진망교철)이라 卽凡心而見佛心(즉범심이견불심)이요
事理雙修(사리쌍수)라 依本智而求佛智(의본지이구불지)로다
理隨事變(이수사변)이라 卽一多緣起之無邊(즉일다연기지무변)이
요 事得理融(사득이융)이라 則千差涉入而無礙(즉천차섭입이무애)
로다 故得十身歷然而相作(고득십신역연이상작)하고
六位不亂而更收(육위불난이갱수)로다
廣大卽入於無間(광대즉입어무간)이요
塵毛包納而無外(진모포납이무외)로다
↑ 10강-1
炳然齊現(병연제현)은 猶彼芥甁(유피개병)이요
具足同時(구족동시)는 方之海滴(방지해적)이로다
一多無礙(일다무애)는 等虛室之千燈(등허실지천등)이요
隱顯俱成(은현구성)은 似秋空之片月(사추공지편월)이로다
重重交暎(중중교영)은 若帝網之垂珠(약제망지수주)요
念念圓融(염념원융)은 類夕夢之經世(류석몽지경세)로다
法門重疊(법문중첩)은 若雲起長空(약운기장공)이요
萬行芬披(만행분피)는 比華開錦上(비화개금상)이로다
↑ 11강-1
若夫高不可仰(약부고불가앙)이라 則積行菩薩(즉적행보살)도
曝鰓鱗於龍門(폭시린어용문)이요 深不可闚(심불가규)라
則上德聲聞(즉상덕성문)도 杜視聽於嘉會(두시청어가회)로다
見聞爲種(견문위종)이라 八難(팔난)에
超十地之階(초십지지계)하고 解行在躬(해행재궁)이라
一生(일생)에 圓曠劫之果(원광겁지과)로다
師子奮迅(사자분신)에 衆海頓證於林中(중해돈증어임중)이요
象王廻旋(상왕회선)에 六千(육천)이 道成於言下(도성어언하)로다
啓明東廟(계명동묘)하니 智滿不異於初心(지만불이어초심)이요
寄位南求(기위남구)하니 因圓不逾於毛孔(인원불유어모공)이로다
剖微塵之經卷 則念念果成(부미진지경권 즉염념과성)하고
盡衆生之願門 則塵塵行滿(진중생지원문 즉진진행만)이로다
↑ 12강-1
眞可謂常恒之妙說(진가위상항지묘설)이요
通方之洪規(통방지홍규)며 稱性之極談(칭성지극담)이며
一乘之要軌也(일승지요궤야)로다 尋斯玄旨(심사현지)하고
却覽餘經(각람여경)하니 其猶杲日麗天(기유고일려천)에
奪衆景之耀(탈중경지요)요 須彌橫海(수미횡해)에
落群峯之高(낙군봉지고)로다
是以菩薩 搜祕於龍宮(시이보살 수비어용궁)이요
大賢闡揚於東夏(대현천량어동하)로다
顧惟正法之代(고유정법지대)에도 尙匿淸輝(상닉청휘)어늘
幸哉(행재)라 像季之時(상계지시)에 偶斯玄化(우사현화)하고
況逢聖主(황봉성주)하며 得在靈山(득재영산)하야
竭思幽宗(갈사유종)하니 豈無慶躍(기무경약)이리요
題稱大方廣佛華嚴經者(제칭대방광불화엄경자)는
卽無盡修多羅之總名(즉무진수다라지총명)이며
世主妙嚴品第一者(세주묘엄품제일자)는
卽衆篇義類之別目(즉중편의류지별목)이니
大以曠兼無際(대이광겸무제)하고
方以正法自持(방이정법자지)하고
廣則稱體而周(광즉칭체이주)하고 佛謂覺斯玄妙(불위각사현묘)하
고 華喩功德萬行(화유공덕만행)하고
嚴謂飾法成人(엄위식법성인)하고
經乃注無竭之涌泉(경내주무갈지용천)이로다
貫玄凝之妙義(관현응지묘의)하며 攝無邊之海會(섭무변지해회)하며
作終古之常規(작종고지상규)로다 佛及諸王(불급제왕)을
並稱世主(병칭세주)오 法門依正(법문의정)을
俱曰妙嚴(구왈묘엄)이니 分義類以彰品名(분의류이창품명)할새
冠群篇而稱第一(관군편이칭제일)이니라
斯經(사경)이 有三十九品(유삼십구품)하니
此品(차품)이 建初(건초)라
故云大方廣佛華嚴經世主妙嚴品第一(고운대방광불화엄경세주묘엄품
제일)이라하니라
이것이 “여시아문” 으로 이어지시길 바랍니다. 돌아가셔서 꼭 “여시아문” 도 여기서 이렇게 읽듯이 그렇게 읽을 수 있도록 하셨으면 합니다.
오늘 우선 往復序(왕복서) 다섯 번째 유인물을 보겠습니다.
그 동안 화엄경 전반에 대한 내용이 쭉~~ 내려오다가 제 7門부터는 입법계품 이야기입니다. 입법계품 아시다시피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한분ㆍ한분 찾아 나서면서 그 동안의 어떤 내력들을 아주 간단하게 뼈대만 간략하게 추려서 여기다 서문에다가 이렇게 소개를 했습니다. 선재동자는 모든 불자의 모델이지요? 젊은 청년이 발심해서 말하자면 아주 그야말로, 평범한 한 청년이 발심해서 성불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을 그려놓은 것이 바로 화엄경 입법계품의 내용입니다. 거기에 들어있는 것을 청량스님께서 서문에 이렇게 이끌어 왔습니다.
처음에 보면 제목이 總顯高深(총현고심)이라 그랬습니다.
제 7門, 이익을 이룸에 한꺼번에 뛰어난다[成益頓超(성익돈초)]
말하자면 화엄경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큰 이익을 얻는데, 중생에서 바로 성불할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세월 걸리지 아니하고, 삼 아승지겁이니 하는 것은 다 소승교에서 하는 소리고요. 화엄경은 一生(일생)에 圓曠劫之果(원광겁지과)로다. 그랬습니다. 일생동안에 삼 아승지겁 동안 닦아야할 그 과를 원만히 성취한다.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여기서 밝히고 있는 것이지요.
<1> 初二(초이) 總顯高深(총현고심) 明權小莫測(명권소막측)
若夫高不可仰(약부고불가앙)은
則積行菩薩(즉적행보살)도
曝鰓鱗於龍門(폭시린어용문)이라. 그랬습니다.
높아서 가히 우러러 보지 못함은, 화엄경의 경지가 다른 경전하고 비교했을 때, 이것은 그 높이가 이루 말 할 수 없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積行菩薩도, 행을, 수행을 상당히 쌓았다고 하는 보살도, 말하자면
曝鰓鱗於龍門이라 그랬어요. 이것은 龍門이라는 것이 등용문이라는 뜻인데요.
우리가 전설적으로 잘 알고 있듯이 미꾸라지가 이무기가 되고, 이무기가 용이 되는데 등용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이무기가 되고 만다. 하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오지 않습니까? 보통 물고기가 용으로 승천하려면 용문을 뛰어 올라야 되는데, 그냥 曝鰓鱗於龍門이라고 하는 것은 보살도 뺨의 비늘을 龍門에 쬐이는 것이다. 그랬어요. 용문에 가까이 갔다가 비치는 것으로 끝났다 하는 것입니다. 뛰어 오르지 못하고...
뛰어 올라야 부처가 되고, 또 화엄경의 경지는 어떤 것인가를 이해하고ㆍ맛볼 수 있을 텐데 그저 저기 아득한 폭포라고 하지요? 우리 상상하면 그 높은 폭포를 훌쩍 뛰어서 아득히 바라보기만 하고, 그 용문에 뺨을 슬쩍 비치기만 하고 더 이상은 뛰어 오르지 못하는 그런 정도의 경지다. 화엄경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다른 경전과의 그 차이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거기는 높은 입장에서 이야기했고,
深不可闚(심불가규)는 그랬습니다.
깊고 깊어서 가히 엿보지 못하는 것은
則上德聲聞(즉상덕성문)도
杜視聽於嘉會(두시청어가회)로다.
上德聲聞 = 덕이 아주 높은 성문들. 여기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사리불ㆍ목건련ㆍ수보리ㆍ가섭ㆍ아란,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화엄경에 다 나옵니다. 그런 이들이 杜視聽於嘉會라. 보고 듣는 것이 嘉會에 막혔다. 이런 뜻인데 嘉會라고 하는 것은 법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화엄 법회를 말하는 겁니다. 서울에 가회동이 있는데 이 글자 그대로입니다.
거기 아마 옛날에 이름 지을 때 왕복서의 이런 낱말이 워낙 좋으니까...
嘉會. 참~ 좋잖아요. 화엄 법회를 아주...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법회다.” 그랬어요. 아주 근사한 법회가 열린다고 하는 소문만 들었지, 그 법회에 누가 오는지ㆍ누가 설하는지ㆍ어떤 내용인지를 전혀 몰랐다. 이런 뜻입니다.
그 자리에 있었어요. 참석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안목이 부족하고 수준이 못 미치다 보니까 ‘하~~ 좋은 법회에 내가 참석하기는 했는데, 이 법회의 주인공이 누군지ㆍ어떤 보살들이 모이는지ㆍ어떤 법문을 설하는지 도대체 모른다.’ 아~ 이렇게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깊은 도리는 사리불ㆍ목건련ㆍ수보리 같은 이런 아주 上德聲聞도 보고 듣는 것이 아름다운 법회가 있다는 소리에 그만 꽉 막혀버린 겁니다. 그걸로 끝입니다. 그 내용을 모른다. 하는 이런 정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화엄경ㆍ화엄경ㆍ화엄경 하는데 정말 화엄경이 우리가 제대로 깊이 있게 이해를 못해서 그렇지 참~ 제대로만 이해하면 정말 상상 할 수 없는 정도의 법희선열을 맛 볼 수 있는 그런 경전이 화엄경입니다.
<2> 後八(후팔) 正明成益(정명성익) 徧益頓圓(편익돈원)
見聞爲種(견문위종)이라 八難(팔난)에
超十地之階(초십지지계)라
보고 듣는 것이 종자가 되는 입장. 여기서는 이익 이루는 입장. 앞에서는 너무 높고 깊다고 하는 것을 표현했지만, 여기는 그런 높은 경전을 우리가 인연을 가까이하고 인연을 맺게 되면 耳根功德(이근공덕) 그러지요? 귀부리로 한 번 지나간 그 인연만으로도ㆍ그 공덕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우리가합니다. 그래 見聞. 보고 듣는 것이 종자가 되요. 화엄경은 그것이 종자가 된다고 그랬습니다. 마치 아무것도 이해 못하더라도 그냥 졸면서들어도 그래도 종자가 되어가지고 마치 다이아몬드를 삼키는 것과 같아서 그 다이아몬드는 우리 창자 속으로ㆍ다른 대변으로ㆍ저~ 거름더미로ㆍ똥통 속으로ㆍ밭으로ㆍ논으로, 임자를 못 만나서 곳곳으로 그렇게 거름더미 속으로 굴러다니더라도 결국은 변색도 되지 않고, 값도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이아몬드의 그 값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화엄경에 대한 우리가 보고 듣는 이 인연은 그와 같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八難에 超十地之階라 그랬어요. 八難이 뭡니까?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날 수 없는 어려운 여덟 가지 조건을 말하지요.
地獄(지옥). 지옥중생 불법만나기 어렵습니다. 그 다음에
餓鬼(아귀)도 불법만나기 어려워요.
畜生(축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축생도 불법만나기 어렵습니다. 그 다음에
長壽天(장수천)이라고 해서 아주 오래 사는 그런 세상에 태어나도 ‘아, 우리는 수백 년ㆍ수천 년ㆍ수만 년 살 텐데 뭐 불법이 무슨 소용이 있나?’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長壽天. 그 다음에
다섯 번째는 北鬱單越(북울단월)이라고 해서 이 세상에서 제일 아주 풍요롭게 살고ㆍ넉넉하게 살고ㆍ호화롭게 사는 그런 세계를 북울단월ㆍ울단월이라고 그러지요. 우리사회로 치면 아주 돈 많은 부잣집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벼슬이 높은 사람들이라고 할까요? 이런 수준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불교공부 잘 안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불교공부 잘하고 신심이 있습니다. 飢寒에 發道心(기한발도심)이라고 춥고 배고픈 사람이 도 닦을 마음을 낸다. 그런 이야기 우리 어려서 많이 들어왔지요? 북울단월에 태어나면 그것 역시 불법만나기 어려운 조건중의 하나입니다. 그 다음에
盲聾瘖瘂(맹롱음아)라고 해서 눈 먼 사람ㆍ귀머거리, 요즘 점자책도 있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합니다만, 그 사람들에게 포교를 합니다만 그래도 사실은 눈멀고 귀먹어 놓으면요? 이것 참~ 불법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선 눈이 열려있으니까 사찰 보고ㆍ또 불상보고ㆍ관세음보살 얼굴보고 신심 나잖아요? 또 이렇게 공부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환히 보면 없던 신심이 저절로 나고요. 그래서 우리가 사람 몸 받았을 때 정말 업 잘 지어야 됩니다. 행여 다음 생에라도 눈이 멀거나 귀가 멀거나하면 어떻게 됩니까? 불법 못 만나는 것이, 이것이 제일 큰일입니다. 제일 큰 손실이라고요. 그러니까 어쨌든 하여튼 불법 만났을 때 복 많이 짓고ㆍ공덕 많이 닦고ㆍ그저 좋은 일 많이 해가지고 보다 더 좋은 인생을 누릴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世智辯聰(세지변총) 이라고 하는 말이 있지요. 世智辯聰.
8난중에 일곱 번째 世智辯聰. 세속적인 그런 어떤 꾀ㆍ어떤 세속적인 총명. 이것만 늘어가지고 아주 깊이 있는 어떤 참되고ㆍ바른 진리의 말씀에 대해선 관심 없는 겁니다. 어떤 종교적인 성향하고는 거리가 먼 겁니다. 무슨 소리도 전부 자기 못된 알량한 그런 지식과 그런 꾀로 다 이리 꿰어 맞추고ㆍ저리 꿰어 맞추고 불법을 그냥 지 마음대로 해석 다 해요. 禪 道理(선도리)든ㆍ화엄도리든 지 마음대로 해석 다 해버려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불법이 가슴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 영혼의 밭에 심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 世智辯聰을 이 八難중에 하나 드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佛前佛後(불전불후)라고 해가지고, 불교가 없을 때 태어나도 불교를 못 만나고ㆍ불교가 이 땅에 사라졌을 때도 불교를 못 만나는 겁니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 라고 이렇게 표현하면 그것은 잘못된 겁니다.
오히려 우리가 후대일수록 불법이 살아 있기만 하면 공부할 것이 훨씬 많습니다. 달마스님 이후에 태어났으니까 우리는 달마스님 알잖아요.
육조스님 이후에 태어났으니까 육조스님 아는 겁니다. 사실은 늦게 태어난 것이 이렇게 홍복입니다. 그전에 태어났으면 달마도 모르고 육조도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이 佛前佛後라고 하는 것은 불교가 성한 시대를 우리가 생각을 해야 됩니다. 다른 조건은 다 갖췄는데 불교가 없다면 불교하고 인연 맺을 길이 없지요. 그래서 八難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악조건의 사람도” 이런 말입니다.
이러한 악조건에 있는 사람까지도 십지의 계단을 뛰어넘을 수 있다.
화엄경이면 그것이 가능하다 이 말입니다. 아~~! 대단하잖아요.
이런 八難. 여덟 가지 어려운 조건을 가진 사람도 화엄경만 인연을 맺으면ㆍ그저 화엄경에 입문하고 십주나ㆍ십행이나, 이런 단계에 오른 것이 아니고,
十地菩薩位(십지보살위)까지도 올라가버린다 이 말입니다. 십지 보살까지도... 十信(십신)ㆍ十住(십주)ㆍ十行(십행)ㆍ十廻向(십회향), 그 다음에 十地(십지)아닙니까? 十地는 十聖(십성)이라고도 합니다. 十住ㆍ十行ㆍ十廻向을 三賢(삼현)이라고 그러고, 현인의 지위라고 그러고,十地는 성인의 지위라고 그래요. 그 성인의 지위까지도 뛰어넘는다 그랬습니다. 대단하잖아요.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까? 八難이라고 하는 그런 악조건에 있는 사람도 화엄경하고만 인연이 제대로 맞아떨어지면 十地菩薩의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버린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청량스님의 그 안목과 화엄경에 대한 이해가 이와 같이 참 투철하고 뛰어납니다. 그 다음에
解行在躬(해행재궁)이라 一生(일생)에
圓曠劫之果(원광겁지과)로다.
제가 말씀드린 것이지요. 이해와 실천이 몸에 있다. 자기 자신에게 있다 이 말입니다. 이 一生은 선재동자의 일생입니다. 선재동자는 일생에 佛果(불과)를 다 이뤄 마쳤습니다. 삼 아승지겁이 걸린다 하는 것은, 불교에는 방편이 워낙 많아요. 또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굽어 살펴보니까 수준이 워낙 각양각색입니다. 수준이 워낙 각양각색이니까 부처님은 그 수준 하나도 놓치지 않으시려고 별별 방편을 다 나열 해놓다 보니까 참 좋은 점도 있지만, 문제도 많이 생기는데 그래서 삼 아승지겁이라는 말도 그 방편말씀 속에 나옵니다. 그러나 화엄경은 그런 방편 필요치 않습니다. 그대로, 곧이곧대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一生에 曠劫동안, 삼 아승지겁동안 닦아야 부처를 이룬다고 하는, 불과를 원만히 이룬다. 선재동자가 그 모습을 보여줬고, 그 다음에
師子奮迅(사자분신)에 衆海(중해)가
頓證於林中(돈증어임중)이요 그랬는데,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니 부처님께서 화엄경에 여러 가지 삼매를 보입니다. 화엄삼매가 있고ㆍ해인삼매. 중요한 것이 해인삼매지요. 그 다음에 사자분신 삼매라고 하는 것도 있어요. 이것도 삼매 이름입니다. 부처님께서 사자분신 삼매. 이것은 사자가 짐승을 잡기 위해서 힘을 다 모아가지고, 한 번 용을 쓰는, 그리고 몸을 확~ 뻗는 그런 말하자면 부처님의 모든 능력과 힘이 여기에 다 포함되는, 거기에 다 갈무리되는 그런 삼매를 ‘사자분신 삼매’ 그래요.
부처님이 그 삼매에 드니까 衆海라고 하는 것은 무수한, 무량 아승지겁 보살들이 있는데 거기 선재동자가 수행하려고 53선지식을 만나려고 출발하는 그 환경에 무수한 보살들이 동참을 합니다. 그 보살들이 林中. 서다림 이라고 하는 것은 그 숲에서 다 깨달아 버렸어요. 頓證. 한꺼번에 다 깨달았다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에
象王廻旋(상왕회선)에 六千(육천)이
道成於言下(도성어언하)로다
그러니까 화엄경 잘 보면 소득이 이렇게 많습니다. 화엄경의 소득을 쭉~~ 이렇게 나열하고 있는데요. 象王廻旋이라고 하는 것은, 문수보살이, 입법계품에 가면 “문수동자” 라고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문수동자가 비구들을, 사리불이 6000비구를 데리고, 문수보살을 친견 하도록 안내를 합니다. 그러니까 문수동자가 쭉~~ 이렇게, 큰 코끼리가 아주 천천히, 코끼리는 체격이 크니까 빨리 걷지도 않지요. 천천히 그 대중들을 돌아보는 그런 모습을 象王廻旋이라고 그래요. 한 번 돌아보는데 6000명의 비구들이 道成於言下로다, 한 마디 아래에 도를 이뤘더라. 이런 좋은 점도 있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우리가 입법계품까지 참고 쭉~~ 공부하다 보면 이런 자세한 설명들을 경에서 다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啓明東廟(계명동묘)에 智滿(지만)이
不異於初心(불이어초심)이요 했는데,
이것도 복성동쪽에, 복성이라고 하는 城(성)이 있습니다. 그 동쪽에 대탑묘처가 있습니다. 東廟라고 하는 것은 복성동쪽 대탑묘처에서 열어 밝힌다. 말하자면 이 도리를, 화엄의 도리를 보이는데 그 지혜가 佛果에 이른, 부처의 경지에 이른 지혜인데, 지혜가 가득하니까요. 그것이 初發心時便正覺(초발심시변정각)이라고 했듯이 처음 출발한 초심과 다르지 않다 그 한 마음속에, 처음 마음속에 결과적인 불과의 지혜, 부처님의 지혜가 우리 처음 마음 낸, 초심에 다 들어있더라 하는 것입니다. 초심과 다르지 않더라 참~ 글도 아름답게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이렇게 썼습니다. 그 다음에
寄位南求(기위남구)에 因圓(인원)이
不逾於毛孔(불유어모공)이로다 했는데,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친견하기 위해서 복성동쪽 대탑묘처에서 출발 해가지고 남쪽으로ㆍ남쪽으로ㆍ남쪽으로, 일백 이십 성을 지나서 53선지식을 한분ㆍ한분 친견하지요? 그 친견하는 내용이 화엄경 입법계품인데요.
남쪽으로ㆍ남쪽으로 갑니다. 그래 南求입니다. 그런데 因圓이 不逾於毛孔이라 그랬는데요. 인행이 원만함이 모공을 넘지 아니했도다. 毛孔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가 하니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친견하느라고 일백 이십 성을 지나갑니다. 년 수로도요? 수 백 년입니다. 어떤 선지식은 16년이나 걸린 것이 기록에도 나오고 그래요. 대충 잡아서 수 백 년 걸리고, 城의 숫자로는 일백 이십 성이고요. 사람 숫자는 153명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세월 멀고 먼 길을 갔지만, 보현보살의 毛孔을 벗어나지 않했다. 보현보살의 무수한, 우리 인체에 모공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한 개인의 인체에 모공만 하더라도 무수히 많은데, 그 무수히 많고 많은 한 모공 속에 있다 하는 소리입니다. 보현보살의 한 모공 속에서 선재동자가 그렇게 그 오랜 세월 길고 긴 거리를 또 53선지식을 만나고한 그 내용이 전부 보현보살의 그 많고 많은 모공 중에, 한 모공 속에서 이뤄지는 일이더라 하는 것입니다. 참 신기한 일 아닙니까? 이것이 법성게에서 우리가 늘 외우는 一微塵中含十方(일미진중함시방). 한 먼지 속에 시방세계가 다 들어있다. 시방세계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인 무한한 아승지 시간도 그 속에 다 들어있다. 시간과 공간이 한 먼지 속에 다 들어있다. 그런 표현을 여기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남쪽으로 그 많은 거리와 많은 시간을 경과 하면서 갔지만,
보현보살의 한 毛孔속을 넘지 아니했다. 그 다음에
剖微塵之經卷(부미진지경권)에
則念念果成(즉염념과성)이요
微塵의 經卷이라고 했는데, 이것도 경전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경전에 있는 것을, 이 화엄경이 사실은 어디서 나왔는가 하니 티끌 속에 있었어요.
한 먼지 속에 화엄경이 있었어요. 微塵속에 있는 經卷을 쪼갬에 순간순간 불과를 이룬다 그랬지 않습니까? 이것도 화엄의 이치. 그리고 모든 이 우주만유가 존재하고 있는 그 존재의 원리를 그대로 표현하면서 거기에 맞게 화엄경이 설해졌기 때문에, 화엄경을 먼지 속에서 가져 왔어요. 그러니까 어떤 한 특정 먼지만 그런 것이 아니고, 먼지ㆍ먼지 마다 화엄경이 다 들어있습니다.
안목 밝은 사람은 이제 이런 무거운 책 가지고 다닐 필요 없습니다. 온갖 일거수일투족 속에ㆍ천지만물ㆍ삼라만상ㆍ하나ㆍ하나 속에 전부 화엄경이 다 있으니까요.
이것 화엄경을 이해하는 아주 좋은 열쇠가 됩니다. 잘 기억 하세요.
어쨌든 납득은 안 되더라도 말만이라도 기억해 놓으면 그것이 언젠가 가슴에 탁 와 닿을 때가 있을 겁니다. 두두 만물 하나하나가 전부 말하자면 그 속에 화엄경이 다 들어있다. 아니, 두두 물물이 그대로 화엄경 그 자체다. 두두가 비로요, 물물이 화장이라. 그런 말도 있지요? 낱낱이 다 비로자나 부처님이고, 물물이 다 화장 찰해더라. 그런 것들도 다 이러한 내용에서 정리된 것입니
다. 微塵의 經卷을 쪼개면 ‘그 이치를 알면’ 이런 뜻이지요. 먼지 속에 화엄의 도리가 다 포함되어있다. 고 하는 사실을 알면 순간순간에 불과를 이룬다. 그대로 성불이다 이 말입니다. 則念念果成이다. 이렇게 압축해서 정말 선문을 썼습니다. 그 다음에
盡衆生之願門(진중생지원문)에
則塵塵行滿(즉진진행만)이로다.
衆生의 願門을, 서원을 다 함에 먼지ㆍ먼지마다 수행이 가득 하도다
중생의 서원 따라서ㆍ중생의 서원 따라서 말하자면 달리 크게 무슨 사업을 하고ㆍ뭘 이루고ㆍ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어 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 하나하나 속에, 천지삼라만상ㆍ하나하나 속에 그대로 우리의 수행이 가득했다 하는 것입니다. 어디 따로 눈에 보이고 하는 그런 어떤 수행을 꼭 쌓아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화엄의 도리는 이것 잘 궁구하면 참 기가 막힌 도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살기가 훨씬 편하지요. 아주 편합니다. 어떤 상황도 다 용납하게 되고, 어떤 상황도 다 이해가 됩니다. 이해가 되고 용납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그럴 수 없이 편한 그런 도리를 화엄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해가지고는 사실 이 선문의 깊고 오묘한 그 맛은 1000분의 1이나 볼까말까 하고, 마침 독송용을 우리가 만들었으니까 이걸 가지고 조용히 읊조리면서ㆍ즐기면서ㆍ그러면서 그 속에 있는 의미를 몸소 잘 느끼고 체득하는 것. ←이것이 제대로 화엄의 도리를 공부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오늘 화엄경 97쪽 끝 부분부터 보겠습니다.
거기 보면, 앞으로 보살님들이 부처님을 찬탄한 게송을 많이 쭉~~ 설하게 되는데, 그 보살들의 출처가 어디냐 하면,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師子座의 菩薩(사자좌 보살)이라 그랬어요. 이것이 아직도 서론이잖아요.
화엄경의 서론 世主妙嚴品(세주묘엄품). 첫 품이고요. 서론이다 보니까 부처님께서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성도를 하셨어요. 그 성도 했을 때 부처님의 그 성도한 그 순간, 부처님의 정신세계ㆍ성도 했을 때 부처님의 그 정신세계. 우리가 한번 상상해 봅시다. 그 정신세계를 그려놓은 것이 화엄경인데요.
이제 서론이다 보니까 아직은 그 자리에 앉아계십니다.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에 앉아계십니다. 앉았으면 부처님이 어디에 앉았지요? 師子座에 앉아계십니다.
부처님이 법상에 앉아 있다고요. “그 법상에서 보살이 출현한다.”
出處(출처)가 뭡니까? 그 때에 如來의 師子之座(여래사자지좌),
사자의 자리에서 衆寶妙華(중보묘화)와 그리고 輪臺基陛(륜대기폐)와 그리고 及諸戶牖(급제호유) 이와 같은 一切莊嚴具(일체장엄구)에 낱낱이 각각 나왔다. 뭐가 나왔는가? 佛刹微塵數菩薩摩訶薩(불찰미진수보살마하살)들이 그 莊嚴具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 뜻입니다. ←이것도 깨달음의 안목에서 그렇지, 그 당시 무슨 사자좌가 그렇게 화려한 사자좌가 있었을 것이며, 무슨 보물을, 우리가 생각 하는 그런 보물을 갖다가 그 법상을 장엄 했겠습니까? 그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깨달음을 성취하신 부처님의 안목에서 볼 때는, 풀을 깔고 바위 위에 올라앉았지만 그 풀이, 풀이 아니고, 바위가 바위 아닙니다.
화엄경 처음에 서두에서 표현한 그 모습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불교는요? 세상을 바꾸는 일은 아닙니다.
내 안목을 바꾸는 일입니다. 내 안목을... 절도 크게 잘 지으면 좋겠지요.
하지만 그 이전에 내 안목ㆍ내 눈, 내가 현실을 보고ㆍ내가 처한 환경을 보는 그 눈을 바꾸는 것. 그 눈을 우선 바꿔야 됩니다. 그러면 사실은 모든 문제 해결입니다. 그래 놓고 그 다음에 인연 따라서 불사도 하고ㆍ무슨 집도 짓고ㆍ무슨 길도 내고 그렇게 해야지요. 이것이 불교와 세속의 길. 불교의 길과 세속의 길의 다른 점이 바로 그 겁니다. 세속에서는, 세속의 안목은 눈에 보이는 현상부터 고치려고 하고, 불교는 보는 내 눈부터 고치려는 겁니다. 보는 내 눈부터 고쳐놓고 나머지 현상은 그저 分따라서 고치고 인연 따라서 고치는 겁니다. 못 고치면 그대로 상관없고요. 못 고쳐도 그대로 상관없고 고쳐서 잘 해 놓으면, 다른 사람도 편리하게 잘 해 놓으면 그것은 그대로 좋고요. 이것이 불교의 안목입니다. 정리하면 사실은 간단한 것이지요.
아무튼 그래서 부처님이 깨달음의 그 순간에 그 師子座에서 무수한 보살님들이 나왔다. 그 다음에 어떤 보살들인가? 그 보살들 이름을 우리 같이 합송합시다.
2, 菩薩名(보살명)
其名曰海慧自在神通王菩薩摩訶薩(기명왈해혜자재신통왕보살마
하살)과 雷音普震菩薩摩訶薩(뇌음보진보살마하살)과
衆寶光明髻菩薩摩訶薩(중보광명계보살마하살)과
大智日勇猛慧菩薩摩訶薩(대지일용맹혜보살마하살)과
不思議功德寶智印菩薩摩訶薩(부사의공덕보지인보살마하살)과
百目蓮華髻菩薩摩訶薩(백목연화계보살마하살)과
金焰圓滿光菩薩摩訶薩(금염원만광보살마하살)과
法界普音菩薩摩訶薩(법계보음보살마하살)과
雲音淨月菩薩摩訶薩(운음정월보살마하살)과
善勇猛光明幢菩薩摩訶薩(선용맹광명당보살마하살)이라
如是等(여시등)이 而爲上首(이위상수)하사
有衆多佛刹微塵數(유중다불찰미진수)가
同時出現(동시출현)하시니라
其名曰海慧自在神通王菩薩摩訶薩(기명왈해혜자재신통왕보살마
하살)과 雷音普震菩薩摩訶薩(뇌음보진보살마하살)과
衆寶光明髻菩薩摩訶薩(중보광명계보살마하살)과
大智日勇猛慧菩薩摩訶薩(대지일용맹혜보살마하살)과
不思議功德寶智印菩薩摩訶薩(부사의공덕보지인보살마하살)과
百目蓮華髻菩薩摩訶薩(백목연화계보살마하살)과
金焰圓滿光菩薩摩訶薩(금염원만광보살마하살)과
法界普音菩薩摩訶薩(법계보음보살마하살)과
雲音淨月菩薩摩訶薩(운음정월보살마하살)과
善勇猛光明幢菩薩摩訶薩(선용맹광명당보살마하살)이라.
如是等(여시등)이 而爲上首(이위상수)하사, 이와 같은 보살이 上首가 되어서 有衆多佛刹微塵數(유중다불찰미진수)가, 무수한 佛刹微塵數가
있어가지고 同時出現(동시출현)하시니라. 동시에 출현했다. 그랬습니다. 그냥 막 쏟아진다. 이것을 그대로, 액면대로 우리가 표현하면 그 사자좌에서 이와 같은, 뭐 이름도 확실하게 있으니까 이것 가짜가 아니지요. 분명히 이름도 있고, 족보도 있고요. 이런 보살들이 무수히 쏟아진다. 액면대로라면 이렇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깨닫고 나니까 두두 물물이 전부 보살입니다.
두두 물물이 보살이고, 두두 물물이 그냥 부처입니다. 이것 그렇게 해버리면 간단하지요. 이까짓 것 어려운 것 아닙니다. 뭐 사람만 부처이고ㆍ사람만 보살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 기 법화경차원에서는 “사람이 부처다.” 이렇게 나오지만, 화엄경에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두두 물물이 전부 부처입니다. 전부 보살이고요. 그래서 그 보살들이 어떻게 하느냐?
供養雲(공양운)이라고 해서 공양을 일으킨다. 부처님계시니까 부처님한테 공양을 올리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 “일으킨다.” 라고 했습니다.
興供(흥공)이라고 그렇게 표현하지요. 雲자가 전부 붙었는데 雲 = “풍성하다ㆍ많다.” 이런 뜻입니다.
3, 供養雲(공양운)
此諸菩薩(차제보살)이 各興種種供養雲(각흥종종공양운)하시니
所謂一切摩尼寶華雲(소위일체마니보화운)과
一切蓮華妙香雲(일체연화묘향운)과
一切寶圓滿光雲(일체보원만광운)과
無邊境界香焰雲(무변경계향염운)과
日藏摩尼輪光明雲(일장마니륜광명운)과
一切悅意樂音雲(일체열의악음운)과
無邊色相一切寶燈光焰雲(무변색상일체보등광염운)과
衆寶樹枝華果雲(중보수지화과운)과
無盡寶淸淨光明摩尼王雲(무진보청정광명마니왕운)과
一切莊嚴具摩尼王雲(일체장엄구마니왕운)이라
如是等諸供養雲(여시등제공양운)이
有佛世界微塵數(유불세계미진수)어든 彼諸菩薩(피제보살)이
一一皆興如是供養雲(일일개흥여시공양운)하사
雨於一切道場衆海(우어일체도량중해)하야
相續不絶(상속부절)하시니라
此諸菩薩(차제보살)이 各興種種供養雲(각흥종종공양운)하시니,
이 모든 보살들이 각각 갖가지 공양구름을 일으켰다. 우리가 염불할 때 興供. 그러지요? 所謂一切摩尼寶華雲(소위일체마니보화운)과
一切蓮華妙香雲(일체연화묘향운)과
一切寶圓滿光雲(일체보원만광운)과
無邊境界香焰雲(무변경계향염운)과
日藏摩尼輪光明雲(일장마니륜광명운)과
一切悅意樂音雲(일체열의악음운)과
無邊色相一切寶燈光焰雲(무변색상일체보등광염운)과
衆寶樹枝華果雲(중보수지화과운)과
無盡寶淸淨光明摩尼王雲(무진보청정광명마니왕운)과
一切莊嚴具摩尼王雲(일체장엄구마니왕운)이라.
如是等諸供養雲(여시등제공양운)이, 이와 같은 等. 여러 가지 供養雲이
有佛世界微塵數(유불세계미진수)어든, 佛世界微塵數가 있다.
彼諸菩薩(피제보살)이, 저 모든 보살들이
一一皆興如是供養雲(일일개흥여시공양운)하사, 낱낱이 다 이와 같은 공양 구름을 일으켜서 雨於一切道場衆海(우어일체도량중해)하야,
一切道場衆海에다가 비 내리듯이 쏟아 부어서, 그 쏟아 붓는 것이
相續不絶(상속부절)하더라. 이런 뜻입니다. 저~ 앞에서는 39중, 온갖 신장들과 이런 이들이 쭉~~ 법회 청중으로 있었고, 그 다음에 보살들이 거기서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끝에 와가지고 世主妙嚴品 이제 끝인데요.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 사자좌를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사자좌를 이야기하면서 사자좌에 보니까 또 전부 보살들입니다. 또 보살들이 자기 할 일도 다 합니다. 나중에 노래로, 전부 노래도 한 마디씩 부르고 그러면서 그 노래로써 부처님을 찬탄을 하고 하는 그런 내용으로 이어 집니다.